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43화 (543/633)

543. 백조 왕자 (2)

“다녀왔습니다.”

흙먼지를 뚫고 나타난 올리버가 태연하게 말했다.

방금 전까지······. 아니, 지금도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들에겐 너무나도 무신경한 발언.

그러나 감히 따지는 자는 없었다.

올리버가 보여준 존재감이 아직 그들의 뇌리에 남아 있었고, 또, 등장하자마자 7미터를 가뿐히 넘기는 괴조를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기본 흑마법인 트러스트(Thrust)로.

꽤나 충격적인 장면으로, 흑마법에 조예가 있는 이들이라면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그도 그럴 게, 기본 흑마법인 트러스트(Thrust)는 자세히 파고들면 그냥 대상을 밀어내는 단순한 흑마법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대상을 밀어내는 건 맞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한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흑마법의 힘으로만 밀어내는 것이 아닌, 술사의 육체도 영향을 받는.

가령, 트러스트는 술사와 대상의 힘, 무게, 질량 차이가 나지 않으면 대상을 쉬이 밀어낼 수 있으나,

대상이 압도적으로 질량이 높다면 오히려 술사가 밀려나 데미지를 입는 흑마법이었다.

그런데, 올리버가 그런 트러스트를 사용해 괴조를 단숨에 저편으로 날려버렸다?

한 개인이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을 뭉친 구조물을 밀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말은 즉 안타까울 정도로 말라빠진 올리버의 육체가 수백 명을 가뿐히 뛰어넘는다는 이야기였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올리버는 시체와 잔해 사이를 지나며 사람들에게 정중히 부탁. 앞으로 나아갔다.

방금까지 싸우느라 달아오른 피가 차갑게 식는 걸 느끼며 하나둘 뒤로 물러났다.

단 한 명에 의해 공기가 변한 것.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건 비단 아군만이 아니었다.

수백 명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압도하던 백조 교단의 왕자 후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싸움을 멈추며 특유의 무감각한 얼굴로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마치, 올리버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길을 터주면 뒤로 물러나 주는 사람들 사이로, 올리버와 백조 왕자가 마주 봤다.

정적이 주변을 뒤덮었다.

“하아······. 안녕하십니까.”

먼저 입을 연 것은 올리버. 그는 숨을 크게 뱉더니, 엉겅퀴 관을 쓴 남자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만나러 갔을 때 보였던 날카로운 태도가 아닌 평소의 모습.

그 모습에 올리버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정작, 인사를 들은 백조 왕자는 침묵할 뿐이었지만.

“······.”

불쾌해하진 않았다. 그가 침묵하는 동안 올리버는 백조 왕자를 살펴볼 수 있었으니.

‘영양실조를 연상케 하는 몸, 넝마나 다름없는 옷, 머리에 두른 엉겅퀴 관과 수많은 사람이 느껴지는 살점 칼······.’

올리버는 그중 살점으로 이뤄진 칼에 눈이 많이 갔다, 낯익은 기운이 보였기에.

침묵은 계속해 이어졌다. 어찌나 긴지 옆에서 지켜보던 구경꾼이 끼어들었다.

“이봐, 대답을-”

“-아뇨, 괜찮습니다. 이분들,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말을 할 수 없으시거든요.”

올리버가 손을 들어 백조 왕자를 대신 변호해줬다.

악마와의 거래를 통한 부작용인지, 인신공양술의 부작용인지 자세한 내막은 몰랐으나, 올리버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통해 교주인 백조 공주와 왕자 후보들이 말을 못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감정 상태를 보니 역시나 맞는 듯했다.

올리버는 예를 갖춰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백조 교단의 왕자 후보 님. 제 이름은 데이브. 란다 T구역 30번 거리의 해결사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제 말을 잠시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백조 왕자는 올리버를 한번 훑어보더니 아무런 제스처 없이 침묵했다. 말해보란 뜻이었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왕자 후보 님······. 왕자 후보 님께선 절 모르시겠지만, 전 왕자 후보 님에 대해 아주 조금 압니다. 우연히 듣게 됐거든요.”

“······.”

“혹여 이 사실이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올리버가 앞뒤 상황을 전하며 정중히 다시 한번 사과했다. 정말 평소의 모습. 그러나, 다음에 예상 밖의 말을 꺼냈다.

“혹시, 이대로 돌아가 주실 수 없겠습니까?”

“······?!”

올리버의 단도직입적인 부탁에 듣고 있던 모두 움찔했다. 백조 왕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왕자 후보 님께서 왜 이곳에 오셨는지 들었습니다. 인육 요리사 님의 유산이 아닌, 이곳에 나타난 잠자는 숲속의 공주 님에게 볼일이 있으신 거지요?”

그 볼 일이란 게 공주를 살점 칼로 찔러 흡수하는 거였지만, 올리버는 구태여 그 사실을 이야기하진 않았다.

백조 왕자는 침묵으로 동의했다.

올리버는 그답지 않게, 혹은 그답게 뻔뻔히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이쪽 공주님께 아직 볼일이 있어 그건 곤란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물러나 주실 수 있겠습니까?”

부탁의 당사자인 백조 왕자뿐 아니라 옆에서 지켜보던 수백 명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일제히 꽂혔다.

아무래도 그 짧은 시간 사이 올리버는 본인의 말마따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만난 듯했다.

어쩌면 그 탓에 평소와 같은 태도를 보임에도 무거운 존재감을 내뿜는 걸지도 몰랐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자기를 만난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거나, 지식을 나눠준다곤 했으니.

허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 올리버의 태도였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손가락과 같이 유명하진 않지만, 그녀 역시 손가락에 못지않다고 알려진 반쯤 전설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올리버는 그런 존재를 아직 볼 일이 있다는 수준으로 말하고 있었다.

말과 행동은 화자가 사는 세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자. 그 점을 고려하면 지금 올리버의 위치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올리버는 손가락과 같은 수준에 이른 흑마법사였다. 수백 년을 산 노괴들과 같은 수준말이다.

놀라웠지만 이상하진 않았다.

충격적인 발언에 무거운 침묵이 일었고, 올리버가 다시 질문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올리버의 질문에 백조 왕자가 가만히 서 있었다.

침묵은 다시 이어졌고, 어디선가 크리처가 움직이는지 부스럭 소리가 울렸다. 올리버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백조 왕자는 살점 칼을 당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찌르기 위한 준비 단계.

반응하지도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에 공기가 백조 왕자를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며 압축.

쾅! 하고 폭발음이 울리며, 땅이 진동. 백조 왕자가 두 손을 땅 위에 대며 무릎을 꿇었다.

감정으로 이뤄진 거대한 손이 백조 왕자가 공격하기 직전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눌렀기 때문이었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백조 왕자는 고개를 억지로 들어 올리버를 올려다봤고, 덕분에 그는 볼 수 있었다.

자기보다도. 다른 왕자 후보보다도 무표정한 올리버의 얼굴을. 마치, 아무것도 아닌 걸 보는 듯 무감각하고 오만한 올리버의 얼굴을.

그 모습을 보자 백조 왕자의 가면 같던 얼굴에는 균열이 일어났다.

허나, 올리버는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관심 없는지 다시 정중히 부탁했다.

“죄송하지만, 다시 부탁드립니다. 물러나 주실 수 없겠습니까? 오늘 제가 너무 많이 피곤해 정말-”

━파앙!!

올리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조 왕자는 머리에 쓰고 있는 엉겅퀴 관을 통해 신도들의 생명력을 전달받아 육체를 강화. 우악스러운 힘으로 자기를 내리누르는 검을 손을 뿌리쳤다.

그로 인한 여파로 충격파와 돌풍이 발생. 땅이 뒤집히고, 사람들의 시야를 한순간 가려졌다.

그건 올리버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백조 왕자는 여세를 몰아 바로 달려들었다.

[오브젝티브 헤이트(Objective Hate)]

백조 왕자가 달려들자마자 올리버는 흑마법을 발동.

백조 왕자가 억지로 일어날 때 만든 파편에 증오의 감정을 심어, 백조 왕자를 공격하게 했다.

겉보기에는 흙이나, 돌멩이, 나뭇가지였으나, 엄연히 잠자는 숲의 일부분.

사방으로 퍼져나간 파편들은 하나하나 총탄이 되어 백조 왕자의 몸에 깊이 박혔다.

퍼버버버버벅!!

백조 왕자는 파편이 박힐 때의 충격 탓에 잠시 멈칫했으나, 딱 그뿐. 그 이상 그렇다 할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테터너스(Tetanus)]

올리버가 질병계열 흑마법을 쓰기 전까지는 말이다.

올리버가 흩뿌린 질병은 몸에 박힌 파편을 매개로 백조 왕자의 몸에 파고들어 쇼크를 일으켰다.

상대의 몸에 칼이나 파편 등 상처를 입혀야지만 사용 가능한 조건 탓에 발동은 까다로웠지만, 그 대신 효과는 뛰어났는데.

백조 왕자는 쇼크를 일으키며 코와 입에서 피를 내뿜었다.

비틀거리는 백조 왕자.

당장 쓰러질 듯했으나 그는 머리 위에 쓴 엉겅퀴 관을 통해 생명력를 다시 받아 몸을 곧 회복했다.

공주의 말이 사실이었다.

‘백조 공주는 인신공양술을 쓸 수 있습니다. 적게는 생명력이나 신체 일부. 크게는 사람 그 자체를 바쳐, 악마의 힘을 빌릴 수 있죠.’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말하길 그 인신 공양의 힘으로, 인육 요리사는 까다로운 소환 마법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고, 백조 교단이 이베리냐 공화국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기존의 신도를 희생해 새로운 기적을 선보여 새로운 신도를 늘리는 식으로.

어째 셰이머스의 ABC투자가 떠오르는 방식.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백조 왕자의 초인적인 힘과 궤를 벗어난 재생 능력 역시 이러한 인신 공양에 기반한다는 점이었다.

즉, 이론상으로는 신도만 충분하면 죽지도 않고, 무리 없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제법 엄청난 이야기였지만, 피곤한 탓인지 올리버는 그렇다 할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것은 백조 왕자가 든 살점 칼과 머리 위에 보이는 검은 손뿐이었다.

마리의 머리 위에 있던 검은 손과 그 결이 다른 검은 손.

‘역시, 피할 수 없다면······. 확보해서 연구해봐야겠지?’

마음을 굳힌 올리버는 한 손으로 잠자는 숲에 깃든 대량의 감정과 생명력을 추출.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에 흩뿌렸다.

토막 난 시체들은 생명을 얻었고, 곧 생명을 준 술사의 통제 아래 들어왔다.

[플레쉬 필러(Flesh Pillar)]

통제 안에 들어온 시체를 이용해 올리버는 분홍빛 살점과 허연 뼈, 누렇게 변색한 가죽으로 이뤄진 살점 기둥을 생성. 백조 왕자가 휘두른 칼날을 가볍게 막았다.

퍽!

고밀도의 감정과 생명력, 신선한 시체를 재료로 한 흑마법이었으니까.

허나, 백조 왕자는 오히려 기회를 엿본 듯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감정을 번뜩였고, 지켜보던 이들은 위기감을 빛냈다.

그중 한 명이 소리쳤다.

“조심하십시오! 흡수합니다!!”

올리버를 위한 조언. 그 말을 증명하듯 백조 왕자의 살점 칼날은 꾸드득 생살이 으깨는 소리를 내며, 살점 기둥을 흡수하려 했다.

[핑거 건(Finger Gun)]

그때 올리버는 시체를 조종할 때 따로 챙긴 손가락을 십수 발 탄환으로 날려 백조 왕자의 몸을 꿰뚫었다.

살이 꿰뚫리는 둔탁한 소리가 낮게 울리며 백조 왕자는 당황했다.

분명, 그의 계산에 따르면 살점 기둥을 흡수한 상태로 올리버를 베어냈어야 했건만, 살점 기둥을 흡수하긴커녕, 외려 공격까지 허용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리 놀랄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인신공양을 통한 악마의 힘을 빌렸다 해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인 이상, 술식을 그 바탕에 둘 수밖에 없었으니.

흡수하려는 찰나 올리버는 그 술식을 해석해 역으로 파고들어 흡수를 막은 것뿐이었다.

물론, 말처럼 간단한 것은 아니었으나, 올리버는 이를 성공. 그게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올리버는 거기서 만족하진 않았지만.

[바이오밤(Biobomb)]

올리버는 백조 왕자의 몸에 박은 손가락을 매개로 생명력과 감정을 폭발시켰다.

고밀도의 감정과 생명력, 초인의 신체 등 좋은 재료만 골라 사용한 덕분에, 백조 왕자의 몸은 여기저기 불룩불룩 부풀더니 그대로 폭발해 산산이 조각났다.

‘주인님 제자로 들어갔을 때가 떠오르네.’

사람이 산채로 터지는 끔찍한 광경에 모두가 경악하는 와중 올리버는 과거를 떠올리며 만족했다.

사람을 터트린 게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예상대로 백조 왕자의 생명력이 크게 깎여져 나가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큰 데미지를 입을수록 재생에 많은 에너지가 소비됐으니.

‘바토리 패밀리의 피, 인육 요리사의 인육처럼. 백조 교단은 신도를 재료로 사용한다지만, 기본적인 이치는 똑같을 테고, 그렇다면 똑같이 공략할 수 있겠지. 아무리 신도가 많다 해도 그 수는 무한하지 않을 테니.’

올리버가 수많은 재생 능력자들을 상대한 경험을 토대로 백조 왕자를 공략했다.

아무리 재생에 필요한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한 번에 수십, 수백 명이 소멸하는 데미지를 받으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으니.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아 저돌적이던 백조 왕자는 처음으로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얼핏 별거 아닌 동작이었으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올리버, 구경하는 사람들, 백조 왕자조차.

올리버는 여세를 몰아 주변의 시체 살점과 뼈로 수십 개의 탄환을 생성해 백조 왕자를 향해 쐈고.

백조 왕자는 살점 칼로 흑마법을 일으켜 거대한 늑대-크리처를 생성해 벽으로 삼아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와 맞먹는 늑대-크리처는 살점 탄환에 맞자마자 불룩불룩 몸이 부풀어 터졌고, 그 사이를 이용 백조 왕자는 숲 안쪽까지 도망쳤다.

그 모습을 지켜본 모두 경악했다.

흑마법사, 트레저 헌터, 왕족 귀족 등에게 고용된 용병, 밀리유 모두 말이다.

자신들이 다 덤벼도 제압하지 못한 백조 왕자를 도망치게 하다니.

올리버가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마치, 기연을 만나 엄청난 힘을 얻은 것 같았다. 아니면 몸을 붙들고 있던 족쇄가 풀렸거나.

그때, 올리버가 말했다.

“도망치신 게 아닙니다.”

백조 왕자의 감정을 꿰뚫어 본 올리버가 말했다.

그는 올리버의 대응에 당황한 건 사실이었지만, 기가 꺾이거나, 공포 혹은 두려움에 젖지도 않았다.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은 분노와 절망에 기인해.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분노뿐 아니라 모든 걸 포기하게 만드는 절망마저 원동력 삼아 움직였다.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곧, 그는 그 방법을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그 방법이란 다름 아닌 올리버가 등장했을 때 저편으로 날려버렸던 괴조(怪鳥)로,

백조 왕자는 살점 칼이 흡수한 사람들을 연료 삼아 망가진 괴조를 회복시켜 가지고 돌아왔다.

괴조의 몸이 깃든 방대한 에너지가 그 증거.

괴조와 함께 다시 나타난 백조 왕자의 등장에 사람들은 동요했으나, 올리버는 차분히 쿼터스태프를 고쳐 잡아 블랙 재블린을 둘러 그대로 투척했다.

검은빛 섬광을 그리며 날아가는 쿼터스태프.

백조 왕자는 괴조를 이용해 쿼터스태프를 받아쳐 하늘 높이 날려버렸다.

빈손이 된 올리버.

괴조는 그 상태로 삽을 번쩍 들더니 대지를 내리찍었다.

삽이 대지에 닿자 발바닥에서 정수리까리 울리는 진동이 발생하며, 삽이 박힌 지면이 울룩불룩 부풀어 올랐다.

그 광경을 본 이들 모두 대지가 폭발하며, 해일처럼 지면이 뒤집힐 것을 직감했으나,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올리버의 그림자가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크기를 키워, 괴조 주변 대지를 뒤덮어 힘으로 폭발을 억눌렀기 때문이었다.

그림자는 이대로 괴조를 먹게 해 달라 요청했으나, 올리버는 그림자가 이미 많은 크리처를 먹은 점을 고려해 거절.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려 했다.

안타깝게도 이번엔 백조 왕자가 조금 더 빨랐지만.

그는 살점 칼을 대지에 박더니 올리버 주변에 부패한 살점을 피어오르게 하곤 육포 같은 붉은 석상을 다수 소환했다.

석상은 얼굴을 포함 온몸이 구속구에 묶여있었으며, 오직 입만 밖으로 빼꼼 나와 있었다.

기괴한 형태의 석상은 비명인지 기도문인지 모를 소리를 질렀고, 그 순간 올리버의 그림자가 괴로워하며 요동쳤다.

이 석상이 내는 기도문. 신대륙에서 불타버린 자가 소환될 때 보았던 의식과 상당히 비슷했다.

순식간에 수축하는 올리버의 그림자.

흑마법 역시 비명에 술식이 교란돼 몇 초 동안은 사용할 수 없었고, 백조 왕자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허공을 향해 살점 칼을 번쩍 들어 하늘 위에 거대한 주먹을 소환했다.

거인의 주먹과 비슷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수많은 사람의 팔을 녹여 만든 것을 알 수 있는 끔찍한 주먹을.

흐릿해진 허공을 찢고 떨어지는 거인의 주먹.

비명 섞인 기도문을 읊는 붉은 석상.

그 가운데에 있는 올리버는 머리보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왼손을 주먹 쥐어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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