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8. 공주와 왕자 (2)
터벅. 터벅. 터벅.
올리버는 잠자는 숲 중심부를 향해 말없이 걸어갔다.
이유는 오직 하나. 이 숲의 주인인 공주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수십만 명은 족히 되는 사람을 재료로 한 잠자는 숲의 주인이자, 웃기지도 않는 장난질을 친 당사자.
올리버는 오직 그녀를 만나기 위해 뭐에 홀린 사람처럼 묵묵히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그 사실에 잠자는 숲은 은은한 거부감을 빛냈다.
흑마법사의 눈에 신경을 집중하지 않았음에도, 수십만 명의 사람을 재료로 한 그 방대한 기운 탓에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지만.
왜? 별거 없었다. 올리버가 그런 걸 신경 쓸 이유가 하등 없었으니까.
계속해 숲을 거닐자 갑자기 거대한 나무와 바위가 나타나 올리버를 가로막았다.
수천 년은 산듯한 거목은 빌딩보다 크고 굵었으며, 바위는 절벽보다 거대했다.
흡사, 자연으로 이뤄진 성벽.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경이롭고, 장엄한 광경이었지만, 올리버는 무감각한 눈으로 눈앞의 장애물을 말없이 바라봤다.
아무리 장엄하다 해도 그 본질은 크리처에 불과했으니.
올리버는 손을 뻗어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와 바위에 손을 댔다.
그리고 그 상태로 크리처를 구성하는 술식을 분석, 해석해 입자 단위로 분해했다.
잠자는 숲을 구성하는 무수한 에너지로.
올리버는 그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손안에 쥔 채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일직선으로.
올리버가 말없이 다시 앞을 걷자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이 나왔다.
올리버는 아까 전 손에 넣은 에너지와 지형을 재구축해 길을 만들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숲은 동요했으나, 올리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하단 듯이.
뒤이어 강이 나왔고, 호수가 나오며, 늪지대도 나왔으나, 앞서 그러했듯 올리버의 발걸음을 멈추긴커녕 경로조차 바꾸지 못했다.
아무리 험준하고, 더 쉬운 길을 만들어도 올리버는 자신의 길을 나아갈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잠자는 숲은 수많은 크리처를 내보내 올리버를 막으려 했으나, 올리버는 그림자를 시켜 크리처를 먹어 치우거나, 핏빛 단검을 휘둘러 크리처를 베어낼 뿐이었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 크리처들 역시 더 이상 올리버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물러서거나 멀리서 지켜볼 뿐이었다.
술사에게 복종하는 게 크리처긴 했지만, 동시에 살고 싶어 하는 생물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
사람으로 만든 특별한 크리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게 올리버는 한참을 말없이 걷고 또 걷다 이윽고 한 지점에 멈췄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들판 위.
올리버를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잠자는 숲은 차라리 무한한 여정을 선물해준 거였다.
공황 증세가 올 것 같은 탁 트인 풍경 속에서 올리버는 클로드와 나눴던 대화를 잠시 떠올렸다.
뭐라고 했더라?
잠자는 숲은 일정한 시간마다 다른 지역으로 위치를 옮기며, 수많은 크리처가 나타나고, 동시에 시공간이 왜곡된 듯한 형상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실제 시간보다 훨씬 오래 있는 듯하고, 지형도 시시각각 변한다고 말이다.
클로드는 이게 사실 가장 위험한 요소하고 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크리처보다도 계속해 변하는 잠자는 숲의 지형과 그 끝을 알 수 없는 크기가.
컵 속에 든 개미처럼 일방적으로 농락당할 수밖에 없었으니.
물론, 평소에는 그 정도로 심하진 않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상황이 다른 듯했다.
공주의 의지인지, 숲의 의지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 잠자는 숲은 필사적으로 올리버를 거부하고 있었다.
“다 불태워 버릴까······?”
올리버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탐욕과 마력을 뒤섞은 탐화(貪火)를 쓴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창조계열 흑마법에 의해 탄생한 이 숲은 탐화(貪火)에 있어 기름 창고나 다름없었으니. 그저 불씨만 놓으면 됐다.
하지만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크리처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지만, 수십만 명의 사람을 재료로 만들어진 이 잠자는 숲이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에.
어쩌면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면 치명적인 피해를 각오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대응을 할지도 몰랐다.
사람이란 저마다 비장의 수를 숨겨두는 법이었으니.
뭣보다 이 방법의 가장 큰 문제는 올리버가 공주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건 절대 안 됐다.
올리버는 공주의 얼굴을 반드시 이 두 눈으로 봐야 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장난질을 쳤는지. 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직접······.
“······꿀꺽.”
올리버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계속해 걸은 탓인지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 건 방금까지 포식한 그림자도 매한가지인지. 그림자는 주변을 마음껏 먹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역시 나쁘지 않을지도 몰랐다. 찾을 수 없다면 나올 때까지 주변을 먹어 치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으니.
허나, 이 역시 위와 같은 이유로 기각했다.
자칫 크리처가 공주까지 먹을지도 몰랐다.
그래선 안 됐다. 공주의 얼굴을 반드시 올리버의 두 눈으로 직접 봐야 했다.
그림자는 올리버의 결정에 아쉬워하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고, 올리버는 생각을 거듭했다.
어떻게 해야 자신을 거부하는 숲에서 공주를 만날 수 있을지.
올리버는 셔츠 칼라 안쪽에 부착한 통신 장치를 확인해 봤다. 당연히 먹통인지라 이브(Eve)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흑마법사의 눈을 집중해도 잠자는 숲을 구성하는 막대한 에너지와 지옥의 기운 탓에 도시처럼 전역을 살펴볼 수도 없었다.
일정 범위만 넘어가도 막대한 에너지가 뿌연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고, 잠자는 숲의 범위 역시 가늠이 안 됐기에.
수색은 사실상 불가능.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공주를 이곳으로 불러내는 것 하나뿐이었다.
가는 게 안 되면, 오게 해야 하는 것처럼.
문제는 그걸 어떻게 하느냐는 거였다.
올리버는 그림자를 바라봤다.
인육 요리사의 감정과 생명력, 마력을 흡수해 그 틀을 갖추고, 신대륙에서 만난 홍인 흑마법사 굽히지 않는 무릎의 그림자-크리처를 흉내 내 임시로 만든 자신의 크리처를.
현재에 이르러선 팬과 잠자는 숲의 크리처를 포식한 덕분에 그 힘과 특성이 더욱 방대해졌다.
올리버조차 그 끝이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아까 전처럼 그림자를 지면에 박아 잠자는 숲 자체를 조작해볼까 했지만,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올리버의 그림자가 강해졌다고 하나, 아직은 잠자는 숲 전체와 비교할 수 없었다.
공주를 이곳으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잠자는 숲 전체를 장악해야 했는데, 그림자를 지면에 박아 기생시키는 것으로는 기껏해야 반경 수십 미터. 턱없이 부족했다.
한정적으로 써먹을 수 있으나, 현재 올리버가 원하는 규모는 아니었다.
이러는 사이에도 잠자는 숲은 공간을 한계까지 넓혀 올리버 주변을 탁 트이다 못해 공허한 들판으로 둘러쌌다.
음······. 짜증 났다.
이렇게 짜증 나는 게 얼마 만인지.
그러자 올리버는 문득 자신이 몇 번이나 짜증 났는지 돌이켜보았다.
‘마텔······. 바토리······. 셰이머스······. 인육 요리사······.’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리며 속으로 읊었고, 개중에 바토리와 인육 요리사는 지금처럼 임무 도중 짜증이 솟구쳐올랐다.
올리버는 그때를 떠올렸다.
바토리가 올리버의 소중한 사람을 다 죽인다고 했을 때를.
인육 요리사가 올리버를 멋대로 평가했을 때를.
지금 생각해봐도 불쾌하기 그지없는 순간이었다.
올리버는 짜증으로 빚은 조악한 칼을 이용해 바토리의 팔을 잘라냈다.
피를 매개로 재생하던 그녀의 신체는 회복되지 않았고, 올리버는 그 상태로 그녀의 사지를 잘랐다.
공황에 빠진 바토리는 피를 조종해 발악했으나, 올리버는 자기 피를 몇 방울 섞음으로 그녀가 쌓아 올린 모든 노력, 감정, 인생 전체를 부정했다.
“······.”
인육 요리사는 올리버의 요동치는 감정을 추출해 자기 몸에 투여함으로, 완전한 용으로 각성하였다.
불타는 것처럼 붉고 뜨거운 눈과 모든 걸 삼킬 것 같은 거대한 아가리, 전신을 뒤덮은 검붉은 비늘, 하늘을 덮을 듯한 거대한 날개와 산보다 크면서도 바람보다 날렵해 보이는 몸.
애벌레가 고치 속에서 나비로 변하듯, 인육 요리사는 인간이란 틀을 뛰어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노린 건가 싶었지만, 그러한 노력이 무색하게 올리버는 자기 피를 매개로 흑마법을 펼쳐, 그 용을 제압했다.
전설 속 용조차 감당할 수 없는 질병으로 사방을 뒤덮고, 자기 피가 발린 단검을 휘둘러 강철보다 단단한 용을 난자한 것.
“······.”
당시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어쩌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던 사실일지도 몰랐고.
둘 중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올리버는 지금 이 순간 그 사실을 새삼 마주했다.
수백 년을 산 괴물들의 노력을 한순간 부정해 버린 자신의 피를.
더할 나위 없이 불쾌하지만, 유용한 정보.
올리버는 망설임 없이 손에 쥔 단검을 이용해, 검지에 작은 상처를 냈다.
똑.
올리버가 낸 상처 사이로 붉은 피 한 방울이 공기를 타고 흘러내려 광활한 대지 위해 떨어졌다.
들판 위에 스며드는 올리버의 피 한 방울.
잠자는 숲의 광활한 크기와 그 잠자는 숲을 구성하는 수십만 명의 사람에 비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기이하게도 잠자는 숲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잠자는 숲은 무수한 크리처를 땅 위에 솟아나게 했다.
올리버를 방해하기 위한 것. 그러나 그러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크리처들은 감히 올리버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올리버가 손가락을 입 위에 댔기 때문이었다.
“쉿.”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
그 작은 동작에 올리버를 막기 위해 나온 크리처들은 움직이긴커녕,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올리버의 미세한 감정이 깃든 그 가벼운 동작에 크리처가 압도된 것.
타인의 크리처. 그것도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크리처에게 이만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상식 밖의 엄청난 일이었지만,
올리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자기 피가 떨어진 땅을 한참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피를 매개로 잠자는 숲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희미한 흔적만 남은 핏자국을 중심으로 바닥이 진동하며, 공간이 일그러지듯 땅이 우그러들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올리버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
올리버는 이 감각을 느끼고 이해하며 그 영역을 잠자는 숲 전역으로 확장했다.
흑마법사의 눈을 한계까지 확장한 듯 사방이 어둠으로 물들며, 올리버는 단순히 겉이 아닌, 그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잠자는 숲을 구성하는 일그러진 수십만 명의 사람들과 이를 가능하게 해준 한 줌의 지옥의 기운.
잠자는 숲이 방대한 줄은 알았지만, 이면에 깃든 힘은 그 이상이었다.
허나, 방대하다고 해도 무한하진 않은 법.
올리버는 방대하지만 유한한 숲을 한눈에 집어넣었다.
엄청난 정보량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덕분에 올리버는 숲에 있는 무수한 사람들과 그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잠자는 숲의 주인도.
숲을 이루는 방대하고 정밀하며 난해한 술식이 그녀를 뿌리로 두고 있었기에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올리버는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모든 신경을 그녀에게 집중했고, 숲은 이를 방해하려고 했다.
그 순간 올리버는 아까 전 뿌린 피를 매개로 자신의 의지를 투영. 잠자는 숲의 의지를 밀어내고, 숲을 이루는 술식을 통째로 붙잡아 끌어당겼다.
압도적이고 일방적이며 불합리한 힘으로.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주변을 가득 메운 크리처들은 어느새 그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잠자는 숲의 의지가 올리버의 의지에 꺾여 부러졌다는 증거.
작은 점 형태로 일그러지던 균열은 계속해 떨리더니, 이윽고 한계에 다다른 듯 그 균열이 팽창하며 땅을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가······!!
지축을 뒤흔드는 흔들림과 함께 생겨난 대지의 상처.
그 상처 사이로 고름을 쥐어짜듯 낡고 볼품없는 작은 성이 비죽 솟아올랐다.
성이라고도 말하기 뭣한 규모와 외형.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이곳에 공주가 있는 걸 확신하며 성문 앞으로 걸어갔다.
왜냐면 올리버가 공주를 떠올리며 직접 끌어낸 거니까.
그렇게 올리버가 성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성의 장식처럼 보이던 근엄한 국왕의 석상과 자애로운 왕비의 석상이 살아 움직이며 올리버의 앞을 가로막았다.
쿵━!
쿵━!
4미터가 되는 거대한 돌 조각상은 떨어지자 땅이 흔들거리며, 남다른 압박감을 내뿜었다.
그러나 올리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앞서 그러했듯 일직선으로 계속해 걸어갔다.
그렇게 석상이 올리버를 가로막으려는 찰나 잠자는 숲 전체에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괜찮아요. 비켜주세요.]
앳된 소녀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올리버는 잠시 멈칫했고, 돌로 이뤄진 국왕과 왕비의 석상은 가로막던 문 앞에서 비켜 올리버에게 길을 터줬다.
올리버는 잠시 국왕과 왕비의 석상을 보더니, 이내 가던 길을 갔다.
“······.”
끼이이이익━
성문을 열자 올리버의 눈에 방대한 정보량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세계수의 허공 세계처럼 칠흑뿐인 공간.
그곳에서 올리버는 한 그림자 인형극을 보고 있었다.
물체를 조명에 비춰 생긴 그림자로 연희(演戲)하는 극.
그곳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성이 있었고, 그 성 앞에는 무수한 사람들 모여 환희하고 있었다.
“위대한 공주님 만세! 지혜로운 공주님 만세!!”
“만세! 만세!”
“우리 왕국의 보물!!”
“왕국의 꽃 공주님!”
올리버는 작지만 아름다운 성을 통해 해당 왕국이 작지만 잘 통치되고 있다는 사실과 백성들이 왕국을 사랑한다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림자 인형극의 묘미는 작은 힌트를 통해 그 숨은 뜻을 찾는 데 있었으니까.
거기다 눈앞에서 펼쳐진 그림자는 단순한 그림자가 아닌 감정과 기억으로 빚어진 그림자라 더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지간한 연극이나, 라디오 드라마, 영화보다 더.
왜냐면 사실을 토대로, 당시 기억과 감정을 이용해 구현한 것이었으니까.
과거 이와 비슷한 감각을 느낀 적 있었다. 필거렛을 피웠을 때.
죽음을 초월하는 의지, 감정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빛으로 만든 필거렛을 피웠을 때와 매우 흡사했다.
대상의 기억과 감정을 토대로 그들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그래서일까? 올리버는 인내심을 발휘해 눈앞의 인형극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성 앞에 모인 수많은 군중 중 한 남자가 하늘 위로 두 손을 들며 열성적으로 외쳤다.
그에게서는 공주에 대한 존경과 사랑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 더 크게 만세를 외칩시다! 미래를 봄으로 우리를 무수한 재앙에서 구한 지혜로운 공주님을 위해! 신께서 우리에게 베푼 살아있는 자비를 위해!!”
신까지 거들먹거리는 그의 외침에 사람들은 조금의 거부감도 내비치지 않고 동조하며 만세를 외쳤다.
“옳은 말씀! 공주님 덕분에 산불을 피할 수 있었어요!”
“전염병도!”
“전쟁도 피할 수 있었지!”
“이번 기근도 넘길 수 있었어!!”
하나같이 진심.
아무래도 그림자 인형극의 배경이 되는 왕국에선 공주의 예지력을 통해 무수한 재앙을 피한 듯했다.
그 힘은 실로 놀라워 수많은 사람이 공주를 사랑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공주에 대한 애정과 존경, 숭배로 하나가 된 왕국.
잠시 후, 인형극의 배경이 왕국 외부에서 내부로 바뀌었다. 허나, 분위기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작지만 적당히 화려한 왕궁 안에는 근엄한 국왕과 자비로운 왕비, 유능한 신하들이 입을 모아 공주를 칭찬하고 있었다.
그녀의 놀라운 예지력에 감탄하고, 그 예지력의 축복을 아낌없이 베푸는 그녀의 어여쁜 마음씨를 칭찬하기 바빴다.
국왕, 왕비, 가신, 백성. 그 누구도 질투하지 않았고, 진실로 공주를 사랑하고 사랑했다.
공주 역시 그 사랑을 기쁘게 받으며 또 다른 사랑으로 베풀기 꺼려하지 않았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꿈의 왕국. 영원할 것 같은 황금기.
그때, 음울한 피리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