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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537화 (537/633)

537. 공주와 왕자 (1)

질병계열 흑마법에 걸린 숲속의 크리처들은 올리버가 빈틈을 보이자마자 덩치, 무게, 숫자를 앞세워 덮쳐왔다.

마치 거대한 수소가 사람을 들이박듯.

말라 빠진 올리버는 충격에 날아가 쓰러지고 말았고, 그 위로 고름, 부스럼, 수포가 난 크리처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순수하고 원초적인 폭력.

단단한 이빨로 돌을 씹는 듯한 소리가 숲속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밀리유를 포함한 중간에 합류한 흑마법사, 용병, 트레저 헌터들은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봤다.

폭력에 종사하는 이들답게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었다.

현재 올리버가 여기서 가장 큰 전력이라는 걸.

이 비상식적인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그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크리처들의 공격에 당하고 있었다.

“······.”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도와줘야 마땅했으나,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겁에 질린 것?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분명, 올리버가 공격당하고 있음에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보이는 시각 정보로는 올리버가 위기인데,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종류의 불안함을 퍼졌다.

압도적인 힘과 존재감. 거부할 수 없는 지배력.

갈로스 밖에서 온 이들은 이 생소한 감각에 혼란을 느꼈으나, 갈로스 안에서 활동한 이들은 오히려 익숙함을 느꼈다.

인육 요리사의 밑에서 일했던 그 잔당이라든가, 혹은 인육 요리사와 경쟁하던 밀리유의 여러 보스라든가.

“루시앙. 이건······.”

밀리유의 여러 보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피에르가 물었다.

빚쟁이 이완의 살점을 자르려다 올리버가 말렸을 때, 느낀 희미한 감각이 지금 이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인육 요리사의 존재감이 말이다.

루시앙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역시 눈앞의 광경 정신이 팔렸기에.

인육 요리사가 없어져 혼란스러운 지금 이곳에 인육 요리사가······. 아니, 그보다 더한 존재가 나타났다.

“그림자. 먹어 치우세요. 모조리.”

올리버가 낮게 읊조렸다.

주변이 고요한 탓에 모두가 들을 수 있었고, 덕분에 사람들은 땅 위로 쏟아진 잉크처럼 넓게 퍼진 그림자가 다수의 치아를 생성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콰직!!

거부감이 들 정도로 가지런한 치아는 그 상태로 질병에 걸린 크리처들을 산 채로 씹어먹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

“꾸르르륵! 끄르르륵!!”

“가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하고 위협적이던 크리처들은 저마다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치아 사이로 사라졌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벌레를 먹는 광경을 보듯 불쾌함과 혐오감, 거부감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용기, 객기로만 어쩔 수 있는 게 아닌 인간의 근본적 감정.

신경 쓰이는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올리버의 그림자가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에 걸린 크리처를 먹고도 멀쩡한 것 역시 흑마법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이상하게 여길 일이었다.

크리처 전용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에 걸린 크리처를 먹고도 멀쩡하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사람으로 치면 병과 기생충에 감염된 고기를 먹고도 멀쩡하다는 거였으니.

그게 가능한 건 질병 그 자체에 내성이 있다는 것 말고는 말이 안 됐는데, 그건 술식으로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 이전의 타고난 특성의 문제.

그게 가능한 존재는 오직 단 한 명뿐이었다.

수천수만 가지의 질병을 다루고, 거기에 내성을 가지고 있던 인육 요리사.

“고오오오오오오!”

그림자가 주변의 크리처들을 다 잡아먹으려던 찰나, 저 멀리 있던 다른 크리처들이 일제히 방향을 바꿔 와 그림자를 덮쳤다.

5미터가 넘는 거대한 해골 거인이 음울한 고성을 내며 거대한 손으로 올리버의 그림자를 잡아 깨물었다.

올리버의 그림자는 특유의 연체동물 같은 움직임으로 되려 해골 거인을 붙잡아 반격하려 했으나, 또 다른 크리처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와 그림자에게 공격을 가했다.

머리 없는 허수아비가 낫과 괭이로 찔렀고,

속이 텅 빈 갑옷이 창과 검으로 베며,

눈이 가려진 참수인이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고,

커다란 코를 가진 난쟁이가 말뚝을 찔러 그림자를 조종하려 했다.

그 외에도 거대한 돈 자루를 든 꼽추와 아이처럼 작지만 뒤틀린 꼬마 괴물들이 그림자를 깨물어 공격했다.

마치, 지옥이라도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거대한 그림자 괴물을 상대하는 수많은 괴물이라니.

올리버의 그림자는 특유의 탐욕과 포악성으로 주변의 크리처들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지만, 먹는 양 이상으로 많은 크리처가 쏟아져 나와 그림자를 상처입혔다.

잠자는 숲의 힘이 인육 요리사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하긴, 이 잠자는 숲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수가 최소 수십만 명은 되는 듯했으니.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을 거 같은 아귀 지옥과도 같은 풍경 속에서 그림자 망토를 두른 올리버가 천천히 일어섰다.

쓰러진 직후, 그림자가 몸을 보호해 준 것으로,

그렇게 일어난 올리버는 고개를 한쪽으로 꺾어 우두둑 소리를 내더니, 피곤한 듯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후웁······. 하아-”

한숨을 내뱉자마자 올리버는 왼손에 들린 핏빛 단검을 어깨높이로 들어 올렸다.

오싹······!

별거 아닌 가벼운 동작.

그러나 그 모습을 본 밀리유 일부와 인육 요리사의 잔당은 모두 인육 요리사. 그 이상을 떠올리며,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오직 죽음뿐.

올리버가 단검을 든 팔을 뒤로 약간 젖히자 근육이 수축하더니, 공기가 그 등을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아주 느린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사람, 크리처. 너나 할 것 없이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뱀을 마주한 쥐처럼.

그때, 누군가 외쳤다.

“엎드려!”

스걱━

외침과 동시에 올리버는 뒤로 땅긴 팔을 앞으로 휘둘러 허공을 베었다.

차가운 절삭음(切削音)이 작은 파문과 함께 허공 사이로 조용히 퍼져나갔고,

올리버를 중심으로 시야가 닿는 모든 크리처와 나무, 바위 등이 깔끔하게 토막 나 그 일부가 땅 위로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냈다.

올리버가 허공에 휘두른 단 한 번의 칼질로 의해 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는 상황 속. 유일하게 이해한 것은 과거 인육 요리사를 상대해 본 밀리유와 그를 모셨던 인육 요리사의 잔당뿐이었다.

대항하는 자들의 목을 일제히 자르는 참수로.

이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들은 죽음의 공포에 압도돼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싸우길 포기한 자들밖에 없었다.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

죽은 인육 요리사가 되돌아온 기분이었다. 아니, 더 최악의 형태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루시앙을 비롯한 밀리유와 거기 합류한 흑마법사, 용병, 트레져 헌터들은 제각기 엎드린 채 올리버를 올려다봤다.

유일하게 전신에 철갑을 두른 성기사만이 참격을 방어해 두 다리로 서 있을 뿐이었다.

“먹어 치우세요.”

그러나 올리버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굳은 표정으로 그림자에게 명령. 토막 난 크리처들을 먹어 치우게 했다.

명령을 듣자마자 올리버의 그림자는 뱀처럼 뻗어 나가 회복하려던 크리처들을 먹어 치웠다.

심지어 크리처뿐 아니라 잘린 나무, 땅까지 말이다.

이상한 건 아니었다.

애당초, 이 잠자는 숲 자체가 창조계열을 바탕으로 탄생한 공간. 결계술식이 더 해지고, 구성하는 술식이 고차원적이긴 했으나, 그 근본은 크리처에 불과했다.

올리버의 그림자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 주변의 모든 것을 먹어 치웠다.

그리고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그림자의 근본인 올리버는 단검을 휘두른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시선이 멈췄고, 감정을 추출해 한쪽을 향해 던졌다.

안개 형태의 감정이 엷게 뻗어 나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부딪히며 파문을 일으켰다.

파문이 일자 공간이 일그러졌고, 잠시 후, 허공에 요정과 같은 날개를 단 웬 노파가 나타났다.

“그림자.”

노파가 허공에 나타나자마자 올리버는 그림자에 부탁했고, 그림자는 가지런한 치아를 앞세워 노파에게 달려들었다.

수많은 크리처를 먹어 치워 덩치와 포악성을 키운 그림자의 돌격.

등에 날개를 단 요정은 이미 각오하였는지, 손에 든 지팡이를 휘둘러 흑마법을 시전했다.

분명, 크리처인데 보통 크리처는 아닌 듯했다.

팬의 그림자처럼 남다른 재료를 사용한 것일 터.

노파가 휘두른 지팡이에 맞춰 그녀의 몸에서 감정이 뿜어져 나오더니, 반짝이는 빛으로 변해 그림자에 적중했다.

‘조작계열 흑마법.’

올리버가 노파의 특기 계열을 알아맞혔다.

어둠을 빚어 움직이고, 허공 속에 자기 몸을 숨기며, 올리버의 크리처에게 정신조작 계열 흑마법을 사용했으니 그리 어려운 사실은 아니었다.

노파가 날린 빛에 올리버의 그림자는 1초 정도 멈칫했다.

아무래도 노파는 크리처가 되기 전, 상당한 실력의 흑마법사였던 것 같았다.

개체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정신조작 계열 흑마법은 매개나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성립되기 힘들었는데.

허나, 그래 봤자 1초.

그림자의 공격을 막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노파는 당황하는 대신 이번엔 잠자는 숲 자체를 조작해 그림자를 밀어냈다.

지면 자체를 파도처럼 밀려내 그림자 역시 뒤로 날려 보낸 것.

그와 동시에 노파는 다른 술식을 전개해 이동하려 했다.

공간 술식을 뒤튼 것으로 노파의 지면 아래에 떠오르는 흑마법진이 그 증거였다.

그녀는 잠자는 숲이라는 크리처를 매개로 뒤틀린 술식을 적용해 이 자리에서 도망치려 했다.

찰나와 같은 순간. 술식이 발동돼 지면이 일그러지듯 터져 노파를 삼켜 이동시키려 하였는데, 그때 지면이 멈추더니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올리버가 노파의 술식을 역으로 전개해 방해한 것이다.

“아······.”

당황한 노파가 올리버를 보며 탄성을 냈다. 올리버가 잠자는 숲에 영향력을 발휘해 술식을 방해한 것에 놀란 것.

그도 그럴 게, 술식을 이해한다 쳐도, 이해한 술식을 크리처인 잠자는 숲에 적용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으니.

크리처는 인공생명체. 주인이 아닌 이상 통제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노파는 반사적으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고, 곧, 올리버의 그림자가 거대한 침형태로 잠자는 숲 지면에 박힌 걸 볼 수 있었다.

잠자는 숲의 크리처를 먹어 치워 그 특성을 흡수한 그림자가 기생하는 형태로 잠자는 숲을 파고들어 통제력을 발휘한 거였다.

자기 손바닥 안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이 남의 손이 된 상황.

노파는 대다수 사람이 그러하듯 당혹감과 공포에 물든 채 올리버를 바라봤고, 그때, 올리버와 눈을 마주쳤다.

노파가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

“자, 잠깐-”

-[타겟팅(Targeting)]

올리버가 왼손을 뻗으며 영창했다.

올리버의 손과 노파의 목에 다트판을 형성됐고, 올리버는 그 상태로 인력(引力)을 높여 노파의 목을 끌고 와 움켜쥐었다.

“끄억······!”

너무나도 빠른 속도와 강한 손아귀 힘에 노파는 그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맥없이 붙잡히고 말았다.

흑마법 실력과 별개로 전투는 특기는 아닌 듯했다.

붙잡힌 노파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버둥거리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것뿐.

노파는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와중 필사적으로 무어라 소리 냈다.

목이 꽉 붙잡힌 탓에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올리버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필사적인 감정을 목소리 대신 읽을 수 있었기 때문.

“아까 그 짓. 당신이 한 거 맞죠?”

올리버가 어둠으로 빚어진 콜린을 떠올리며 물었고, 노파는 감정을 번쩍이며 그렇다고 대답하는 동시에 억울한 감정을 빛내며 절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올리버가 다시 질문했다.

“누가 시키신 건가요? 공주?”

올리버가 이 숲의 주인이 누군지 기억하며 추측했고, 추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노파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빛내며 결코 자기 뜻이 아닌 공주가 시킨 게 맞다고 답했다.

재료의 특성이 강해서인지 보통의 크리처보다 자기 보신이 강했는데, 올리버는 딱히 개의치 않았다.

크리처 따위 관심도 없었고, 원하는 대답은 다 들었으니까.

“커······!”

올리버의 그 감정을 읽었는지, 노파는 생명의 위기를 느끼며 필사적으로 소리 내 기회를 달라 말했다.

자신도 그저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런 거라고 말이다. 절대 악의는 없었다고.

허나, 이미 앞서 이야기했듯이 올리버에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뚜둑!

볼일이 끝난 올리버는 그대로 손에 힘을 줘 노파의 목을 가볍게 부러트렸다.

일말의 자비도, 변호도 허용치 않은 차갑고 무감각한 태도로.

이상하게도 그 모습은 올리버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오만하며, 일방적이고, 무자비한.

올리버는 거추장스러운 쓰레기를 버리듯 노파의 땅 위에 던졌고, 그림자는 노파의 시체를 한입에 씹어 삼켰다.

모두가 침묵한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지금 먼저 입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잠시 공주 좀 만나고 오겠습니다.”

올리버가 그리 말하며 그 누구의 대답도 듣지 않고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누구도 감히 막지 못했다.

***

올리버가 숲 중심부로 떠나고 몇 분 후,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 모두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넋 놓은 표정을 지으며 침묵했다.

그도 그럴 게 아카이브에 의해 살해당한 인육 요리사가 다시 나타난 것 같은 경험을 했으니.

착각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착각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선명했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란다에서 그 명성이 자자하다 해도, 갓 스무 살을 넘긴 듯한 청년이 어떻게 수백 년을 산 노괴. 그 이상의 존재감을 내뿜는 건지.

무엇보다 마지막에 보았던 그 참수는 그냥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반항하는 자는 목을 자르고, 겁먹은 자는 굴복시키는 인육 요리사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기술이었으니까.

결코, 그냥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밀리유의 수많은 보스는 루시앙을 바라보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무언으로 물어봤고,

잠자는 숲에 쫓기듯이 와 이곳에 합류한 인육 요리사의 잔당들 역시 서로 말없이 바라보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서로 물어봤다.

당연히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의문이 커졌다. 가령, 인육 요리사를 쓰러트린 게 정말 아카이브가 맞는지?

방금 눈앞의 광경을 보자, 그런 의문이 밑도 끝도 없이 생겨났다. 가만 생각해보면 아카이브가 인육 요리사를 쓰러트렸다고 본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허나, 쉽사리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말도 아니었기에, 모두 침묵했고, 그때,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이인지, 노인인지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렸다.

“인육 요리사가 떠오르는군.”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온몸에 철갑과 철코트를 두른 성기사였다.

지금 그가 그 한마디로 모두가 무언으로 느끼는 의문을 표면으로 꺼내줬다.

올리버의 모습에 겹쳐 보인 인육 요리사, 그리고 누가 인육 요리사를 쓰러트렸냐는 의문을.

늘 침묵하던 그가 말하자 말의 무게는 더욱 무거웠고, 모두 그가 무슨 말을 더할지 궁금해하며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나 성기사는 다시 침묵하더니 뭔가를 감지한 듯 주변을 둘러봤고, 한쪽 지점을 가리켰다.

일제히 움직이는 시선. 잠시 후, 엉망이 된 잠자는 숲의 균열을 누군가 벌리듯 부글부글하 시쳇더미가 땅 밑에서 솟구쳐 올라 쪽문 형태로 변했다.

흑마법? 아니, 흑마법과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였다. 인간의 생명을 대가로 한 인신공양 술식.

모두가 경계심을 빛내며 태세를 취하는 사이. 시체로 이뤄진 쪽문을 통해 웬 인형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

머리에는 엉겅퀴 관을 쓰고, 한쪽 손에는 살덩어리로 이뤄진 뾰족한 칼을 든 남자가.

클로드를 비롯해 인육 요리사의 잔당과 수많은 사람을 습격한 백조 교단의 왕자 후보였다.

그가 지금 인신공양을 이용해 이곳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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