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36화 (536/633)

536. 공주의 영토 (2)

“공주님. 그분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침대만이 덩그러니 있는 거대한 공간.

비대한 몸집의 노파가 말했다.

노파의 등에는 요정과 같은 날개를 달려있어 공중에 둥둥 떠 있을 수 있었다. 마치, 동화 속 요정 할머니처럼.

“알고 있어요. 인사까지 했거든요.”

침대 위에서 깬 공주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며 답했다.

수백 년을 살았건만 그녀는 여전히 싱그러운 소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그 모습마저 아름다웠다.

아니, 어쩌면 이 표현은 잘못된 것일지도. 공주는 살아있는 게 아닌, 존속해 있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둘 다 원치 않은 건 매한가지였지만.

“괜찮을까요?”

노파가 손을 꼼지락대며 물었다. 불안하다는 증거.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그 불안감을 이용해 수백 년 전 일국도 무너트린 흑마법사가.

아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걸지도 몰랐다. 그만큼 아는 게 많다는 거였으니.

아는 것이야말로 공포요, 절망이었다.

그 사실을 공주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안 괜찮을 건 뭔가요?”

“예······?”

“안 괜찮을 건 뭐냐고 물었어요.”

공주의 질문에 노파가 눈을 내리깔며 입을 꾹 다물었다. 죄를 지은 죄인처럼. 왜냐면 실제로도 죄를 지었으니까.

이제 와 다 무슨 상관있겠느냐마는.

“어차피 운명은 정해져 있고, 저희는 그 운명을 구성하는 나사. 저희의 행동이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그분께서 오실까요?”

“글쎄요? 일단, 그분이 관심 가질만한 단어를 슬쩍 던지긴 했지만······.”

공주가 말꼬리를 흐리며 창문을 바라봤다.

창문에 쳐진 커튼이 부드럽게 젖히며,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위치도, 범위도 시시각각 변하는 잠자는 숲이 말이다.

숲은 얼핏 한적해 보였지만, 이 숲의 주인이자, 노예인 공주는 느낄 수 있었다.

이 숲이 지금 얼마나 요동치고 있는지. 수많은 침입자를 물리치기 위해 숲은 스스로의 의지로 활성화해 숲의 범위를 늘리고, 환경을 열악하게 만들며, 크리처를 생성하고 있었다.

마치 몸 안의 면역체계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쉽지 않을 거 같네요. 숲이 이 상태면 어지간한 의지로는 여기로 못 올 테니까요.”

그랬다. 잠자는 숲은 공주의 통제를 받기도 했지만, 아니기도 했다.

공주는 이 숲의 주인인 동시에 노예.

공주가 위험하다고 판단한다면 숲이 외부와 그녀를 차단하기도 했다. 공주가 있기에 이 숲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

공주가 이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수많은 침입자가 생기고, 자신을 직접 노리는 자들도 있는 상황이라면, 숲은 평소보다 더 강하게 자신을 보호할 테고,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더 많은 수고를 들여야 했다.

숲 이상의 강렬한 의지를 지녀야 할 정도로.

“······그분이 관심 가질 단어로 불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괜찮지 않겠습니까?”

노파가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불안감을 느끼며 물었다.

공주가 답했다.

“예, 불합리한 운명을 짊어진 분이라고 관심을 끌었죠.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할 거예요.”

팔랑. 팔랑. 날개 달린 노파가 공주 곁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노파의 의지는 아니었다. 공주의 의지였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함을 이용해 나라조차 뒤흔들었던 흑마법사라 해도, 지금은 공주의 크리처 중 하나에 불과했으니.

“그분은 지금 참으로 모순적인 감정을 품고 있거든요.”

“공주님······?”

“자신에 대해 알고 싶지만, 동시에 알고 싶어 하지 않죠······. 만약, 정말 알고자 했다면 더 빨리, 더 확실히 아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요.”

공주는 자신이 꿈에서 본 광경을 떠올렸다.

멸망한 땅의 주인이 자신들의 비밀을 알려주려 했을 때,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자 바로 떠나버린 그를.

그 외에도 인육 요리사와 악마, 테어도어 등 그는 늘 자신에 대해 알 기회가 생기면 은근슬쩍 뒤로 물러나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답답하기 그지없게.

허나, 공주는 그를 원망할 생각 따위 없었다.

공주가 칭했듯이 그는 세상 그 누구보다 불합리한 운명을 짊어진 존재였다.

그런 그가 자신의 운명을 외면하려 하는 것도 이해됐다.

그 누구보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많지 않아요. 저도 지치고요. 그러니 당신께서 도와주세요. 그분과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요.”

공주가 노파를 보며 말했다.

***

“못 본 사이 더욱 대단해지셨군요······.”

도움을 청했던 클로드가 올리버를 보며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게, 올리버가 참전해 단검을 휘두르자 끊임없이 재생하며 공격하던 크리처들이 맥없이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핏빛 단검에 깃든 수천수만 가지의 질병에 오염돼.

올리버는 그 핏빛 단검을 도로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옛날에 비슷한 크리처를 한번 상대해 봤거든요.”

올리버가 신대륙에서 본 팬의 크리처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팬의 크리처는 인간의 영혼, 육신 등을 재료로 창조된 것이라 보통의 크리처보다 훨씬 강력하고 까다로웠는데, 그건 올리버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팬의 그림자-크리처와 공간 전체를 뒤덮은 창자-크리처는 그 수준이 남달랐다.

한쪽은 데미지를 거의 입지 않았고, 다른 한쪽은 너무 거대해 데미지가 거의 안 들어갔다.

이 두 크리처를 상대로 유효한 효과를 낸 것은 다름 아닌 방금 집어넣은 핏빛 단검이었다.

올리버의 피를 매개로 질병계열 흑마법을 덧씌운, 켈 자유독립군인 윌레스에게 선물 받은 단검.

올리버는 이 잠자는 숲에 있던 크리처들을 보자마자 보통 까다로운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 반사적으로 단검을 꺼내 휘둘렀다.

다행히 해당 크리처들은 단검에 깃든 질병에 바스러지듯 사라졌다.

“그보다 클로드 님. 여기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영토라 하던데······, 그 공주라는 분이 만들었다는 뜻입니까?”

올리버는 클로드를 구해준 이유를 바로 꺼냈다.

아는 사이라 원래도 도와줄 생각이긴 했지만, 궁금해서 도와준 것도 있었다.

“예······. 혹시, 누군지 모르십니까?”

클로드가 되물었다. 반응을 봤을 때 제법 유명한 흑마법사인 듯했다.

“예, 누군지 잘 모릅니다······. 검은손인가요?”

클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주인님 같은 손가락은 아니지만, 그와 비견되는 흑마법사지요. 소문이긴 하지만요.”

손가락과 비견되는 흑마법사라. 올리버는 납득했다.

아까 본 크리처는 둘째치더라도 지금 서 있는 결계 안 잠자는 숲만 보더라도 손가락과 비견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퍼펫이 보여준 지옥의 입구와 비슷한 기운이 풍겼으니.

“그런데, 왜 그분이 여기 있는 거죠? 이곳 울창한 숲에는 인육 요리사님의 유산이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건 그녀의 영토가 계속 이동해서 그렇습니다.”

제3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빼빼 마른 몸에, 주황빛 머리를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특이하게도 그는 먹보주머니로 만든 조끼를 입고 있었다.

올리버와 클로드의 눈이 마주쳤고, 클로드는 그를 소개했다.

“그······. 베이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역병상인.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챙기려고 같이 온 동료입니다.”

“베이라면 폭탄장수 베이 님 말씀입니까?”

올리버가 베이를 콕 가리키며 물었다. 왜냐면 울창한 숲에 오자마자 백여 구의 자폭-인형으로 공격한 게 그였으니까.

클로드와 베이 역시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 움찔했으나, 이내 인정했다.

“죄송합니다. 란다에서 명성이 자자한 분이라 저도 모르게······.”

“아. 괜찮습니다. 다들 인육 요리사 님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 걸고 온 건데요. 이해합니다.”

“그렇습니까?”

의외라는 듯 베이가 물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필요하면 그럴 테니까요.”

대답을 들은 클로드와 베이, 역병상인은 움찔하며 올리버를 바라봤다.

담담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심이 느껴졌다. 베이와 역병상인은 클로드가 왜 올리버를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라 표현했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여하튼, 과거의 사소한 문제를 해결한 후, 클로드와 베이는 올리버에게 잠자는 숲이 일정 시간마다 위치가 변하며, 그뿐 아니라 수많은 크리처가 나타나고, 음식과 물, 약품 등이 빠르게 부패하는 것 등 여러 정보를 알려줬다.

“거기다 지형도 실시간으로 변한다고 하지요.”

“중요한 정보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클로드가 알려준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도와주신 보답입니다. 그런데 어째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게 관심이 있으신 듯하군요?”

클로드의 갑작스러운 질문. 올리버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 잠깐 마주한 소녀를 떠올렸으나, 설명하지 않고 적당히 둘러댔다.

“제가 모르는 검은손이라니, 호기심이 가서요. 사실 아까 전에도-”

올리버가 말을 멈칫하며 주변을 살펴봤다.

안개에 삼켜질 때 같이 사라진 건지 레드후드의 모습이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데이브 님?”

“······재밌는 분을 만났거든요. 잠자는 숲속의 공주란 분도 재밌는 분일까 싶어서요.”

클로드는 침묵했다. 손가락과 맞먹는 위상을 가진 그녀를 재밌을 거 같다고 하는 인간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인사와 정보 교류가 어느 정도 끝을 보이자, 올리버는 슬슬 떠나려고 했고, 그때, 클로드가 제안했다.

“데이브 씨. 저희도 데려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예?”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노리고 온 것은 맞지만, 지금 저희 상황이 썩 좋지가 않거든요. 웬 사이비에게 습격당해, 준비도 없이 잠자는 숲으로 와서요.”

“사이비요?”

“예······. 백조 공주라고 원래는 조용한 편인데, 갑자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희도 그놈들에 습격을 받아 이곳으로 도망쳤습니다.”

올리버가 백조 공주에 관해 물어보려 했으나, 클로드가 반 박자 더 빠르게 입을 열었다.

“거기다 잠자는 숲도 저희가 아는 것보다 훨씬 공격적입니다. 솔직히 말해, 데이브 씨의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대신, 저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면 뭐든지 돕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진심이었다.

올리버가 그 진심 속에서 한가지 또 다른 감정을 읽으며 물었다.

“그대도 원하는 게 있으신 것 같은데요?”

클로드는 부정하지 않았다.

“있긴 하지만 지금 그걸 주장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습니다.”

클로드가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며 대답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올리버가 질문했다.

“혹시, 퍼펫 님을 위한 겁니까?”

***

올리버가 클로드에게 말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저도 밀리유 분들이랑 같이 일하는 거라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분들 의견을 여쭤보고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도도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클로드가 대답하자마자 올리버는 품 안에서 종이를 꺼내 허공에 투척. 술식을 발동했다.

술식이 발동하자마자 종이 위로 보라색 포털이 생성됐고, 올리버와 클로드 일행은 그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아, 오셨습니까!!?”

올리버가 포털 밖으로 나오자마자 반겨준 것은 다름 아닌 루시앙이었다.

그것도 은빛 갑주로 중무장한 루시앙.

그는 올리버를 보자 심히 반가운 감정을 빛냈는데, 주변을 살펴보자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잠자는 숲 곳곳에서 크리처가 쏟아져나와 습격한 것.

반파된 캠프만 봐도 밀리유는 수세에 몰린 듯했다.

그나마도 온몸에 철갑을 두른 성기사가 펼친 거대한 방어막과 개틀링 기관총 세례 덕분에 버티고 있었다.

아주 차분했는데, 나중에 대화라도 해보고 싶었다.

“공주님의 크리처입니까?”

“그렇습니다······. 아시는군요?”

“알려주신 분들이 있어서요.”

올리버가 클로드 일행을 가리켰다. 같은 갈로스 뒷세계 출신이라 그런지 루시앙은 그들의 얼굴을 바로 알아보았다.

올리버가 어떻게 이들을 만나고, 왜 같이 왔는지 따질 법했지만, 루시앙은 이에 대해 일절 따지지 않았다.

이미 경험을 통해 아는 거였다. 잠자는 숲에서 쏟아지는 크리처 때문에 임시로 손을 잡은 걸.

캠프 안과 밖에 있는 수많은 흑마법사와 해결사가 그 증거.

서로의 상황을 파악한 올리버와 루시앙의 대화 없이 뜻을 주고받았고, 올리버는 급한 불부터 끄기로 했다.

습격받으니 좋은 점도 있었다. 척 봐도 마음이 통하지 않는가?

“뭐부터 할까요?”

긍정적인 올리버의 물음에 루시앙은 바로 성법으로 쳐진 방어막 바깥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방어막 안쪽으로 미처 들어오지 못한 이들이 다수 있었고, 개중에는 이완도 있었다.

“으아아아악! 도망칠 타이밍을 놓쳤다!! 뒤져라!!!”

이완은 사방이 크리처에게 포위된 다급한 상황에서도 특유의 유쾌함을 잃지 않고, 사람 머리가 달린 헤드 완드(Head Wand)와 고양이로 만든 기관단총을 들어 불과 탄환을 사방에 흩뿌렸다.

화력 하나만큼은 엄청난지 크리처들도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고, 그런 이완을 중심으로 밀리유 병력과 흑마법사, 해결사 등이 모여 뒤로 천천히 이동했다.

“빌어먹을! 너희가 날 지켜야지! 난 전투원이 아니야!!”

이완의 믿음직한 모습. 그러나 곧 불길한 쿵! 쿵! 소리가 울리며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숲속에서 5미터가 넘는 해골 거인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

이완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화력을 집중했으나, 5미터 해골 거인은 타고난 방어력으로 이를 무시. 전진해왔다.

동요하는 사람들.

그때, 올리버는 감정을 추출. 질병에 섞인 늪을 만들어 해골 거인의 발을 묶었다.

기우뚱거리는 해골 거인.

올리버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블랙 슈트를 다리에 두르며, 핏빛 단검을 뽑아 들었다.

[타겟팅(Targeting)]

올리버가 영창하자 올리버와 해골 거인의 몸에 제각기 다트판이 형성됐고, 올리버는 인력(引力)을 높여, 단숨에 해골 거인에게 접근 그대로 해골 거인을 찔러버렸다.

푹!

퍼지는 질병-약화계열 흑마법.

놀랍게도 어떠한 화력도 견디던 해골 거인은 쓰러졌다.

그 모습에 모두가 환호했으나 올리버는 멈추지 않고 바스러지는 해골 거인에게서 감정을 추출해 아래의 늪과 뒤섞은 후, 주변에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을 퍼트렸다.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고, 크리처에게만 효과가 있는 질병으로.

같은 술사의 손에 태어난 크리처라 그런지 그 전염성은 실로 막강했다.

그 순간 올리버의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주변에 있는 무수한 크리처를 먹게 해달라고.

인육 요리사의 감정, 마력, 생명력으로 이뤄진 크리처답게 욕심이 실로 대단했다. 아마, 허락만 한다면 다 먹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올리버는 이를 거절했다. 이 정도 양의 크리처를 먹으면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었기에.

다른 크리처였다면 허락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림자는 올리버 자신의 그림자로 만든 거라.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올리버는 그림자의 요청을 묵살한 채, 화기계열 흑마법을 사용하려 했으나, 그때, 누군가 올리버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탁. 탁.

낯이 익은 감각.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뒤를 바라봤고, 어둠으로 빚어진 아이를 볼 수 있었다.

과거 본 적 있었다. 불타버린 자가 보여줬으니.

물론, 불타버린 자가 만든 것보다 그 형태가 조악하긴 했지만.

올리버는 불타버린 자 때처럼 아주 잠깐 멈칫하곤 옷자락을 당겨 이를 뿌리치려 했다.

가짜였으니까.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조악하게 빚어진 아이의 모습이 일렁이더니, 올리버가 아는 얼굴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크읍······. 죽는 게 너무 무서워요. 제발요. 지옥에 가기 너무 무서워요.]

콜린.

올리버는 굳고 말았고, 그 찰나와 같이 순간 질병에 발이 묶인 크리처들이 사방에서 달려와 올리버를 덮쳤다.

먹이에 달려드는 육식 동물처럼.

모두가 경악하는 와중 올리버가 나직이 말했다.

“그림자. 먹어 치우세요. 모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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