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34화 (534/633)

534. 짐승 (2)

레드후드가 땅을 박차자 형체가 흐릿해지며, 충격파와 함께 사라졌다.

전격을 몸에 두름으로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결과.

올리버 역시 마탑의 수업을 청강하고, 책을 읽은 덕분에 해당 마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

순간 화력만큼은 최고봉인 전격 마법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신체 강화 마법으로,

지속시간이 긴 편이 아니나, 경우의 따라 힘의 차이도 뒤집을 수 있는 압도적인 속도와 순간 화력을 가진 마법이었다.

[헤잇 불릿(Hate Bullet)]

그러나 올리버는 그 속도에 압도되는 대신 손을 정확히 뻗어 레드후드를 향해 증오의 탄환을 쐈다.

허공을 가르는 흑탄(黑彈).

그 흑탄이 레드후드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으려는 했으나, 전격으로 반사신경과 동체 시력을 끌어올린 레드후드는 그 거대한 몸을 젖혀 피했다.

“······!”

그는 올리버의 대응에 꽤 놀란 눈치였다.

전격으로 강화한 자신의 속도는 단순히 알고 있다고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을 초월했기 때문.

하지만 이상한 건 아니었다.

올리버 역시 인육 요리사의 살점을 한입 먹음으로써, 신체 능력뿐 아니라 반사신경이 좋아졌으니.

허기가 조금 더 심해지지만 집중력을 조금만 높이면 한순간 세상이 느려지는 듯한 현상도 체감할 수 있었다.

거기다, 레드후드의 강렬한 감정과 타격지점에 먼저 소량의 전류를 내보내는 전격 마법의 특성 탓에, 대충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보이는 것도 한몫했다.

레드후드도 그 점을 인지했는지, 몸에 두른 전격 마법을 해제하곤, 뒤로 빠르게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올리버는 증오의 탄환을 쏘고, 미니언을 내보내 공격했다.

빗발치는 증오의 탄환.

레드후드는 검은 손톱에 흑마법을 부여해 올리버가 날린 탄환을 쳐낼 뿐 아니라, 참격까지 날려 미니언까지 요격했다.

그뿐 아니었다. 그는 손톱 끝에 흑마법을 집중한 상태에서 발사해 투사체를 정면으로 날려 보냈고, 거기에 참격을 휘어지게 날려 다각도에서 올리버를 공격했다.

카가가가가각!!

올리버는 블랙 실드를 좌우 측으로 비스듬히 세워 옆으로 날아오는 참격을 흘려보내며, 정면으로 날아오는 투사체는 똑같이 증오의 탄환을 난사해 영격. 화력 싸움을 걸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날카로운 손톱으로 투사한 레드후드의 탄환이 더 높은 강도(剛度)와 관통력(貫通力)을 가졌겠지만, 지금은 감정을 압축하고 회전을 추가한 올리버의 탄환이 오히려 압도했다.

당황한 레드후드는 열 개의 손톱을 전부 사용해 탄환의 개수를 늘렸지만, 올리버가 검지에 중지를 추가하자 연사 속도가 더 빨라져 무의미한 발악이 되었다.

그렇게 허공에서 탄환과 탄환이 부딪치자 번쩍이는 빛과 함께 굉음이 일고, 공기에 균열이 일어나 주변을 요동치게 했다.

“캬햐햐햐햐햐학!!”

화력 싸움으로는 답이 보이지 않는지 레드후드는 사격을 중단. 흑마법이 담긴 검은빛 포효를 토해 광범위한 충격파를 날렸다.

주변의 흙먼지를 밀어내며 다가오는 거대한 포효.

올리버는 양편에 비스듬히 세운 블랙 실드를 움직여 정면에서 포효를 막았고, 실드는 포효의 충격파에 공명하더니 유리처럼 박살 났다.

파자자자창!

올리버는 앞서 그러했든 부서진 실드를 낭비하지 않고, 파편을 붙잡아 레드후드에게 날려 보냈다.

수백 개의 유리 파편이 강풍에 날려가듯 블랙 실드 파편이 날아갔다.

레드후드는 예상했다는 듯 마력을 끌어모아 거대한 흙벽을 만들더니. 돔 형태로 전신을 덮어 방어했다.

참으로 대단했다.

아무리 식인을 통해 얻은 힘이라 해도, 힘을 얻는 것과 다루는 것은 별개의 문제.

전격마법에 대지마법 등 마법을 다루는 수준이 상당했다. 엄청난 훈련을 통해야지만 가능한 영역.

거기다 근접전, 원거리, 지원 등.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다.

부하들을 데리고 다닐 이유를 못 느낄 정도로 말이다.

올리버는 문득 아까 전 레드후드의 감정과 대사가 떠오르며 실수했나 싶었다.

‘난······. 짐승이 아니야.’

생각해보니 좀 무례하고, 차별적이었던 것 같았다.

퍼버버버버버벅!!

레드후드의 포효에 붕괴한 실드 파편이 강철보다 단단한 흙 방벽 위에 촘촘히 박혔다.

안 받힌 곳보다 박힌 곳이 더 많은 수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레드후드 역시 알고 있을 텐데, 그는 도망치기보단 뭔가를 준비했다.

그게 뭔지 궁금했다.

[블랙 실드(Black Shield)]

올리버는 호기심 풀기 위해 술식을 전개했다.

촘촘하게 박힌 실드 파편은 흙 방벽에 박힌 상태로 복구됐고, 그 압력을 이용해 강철보다 단단한 흙 방벽 내부를 파고 들어갔다.

쩌저저저정!!

원래 크기로 돌아올 때, 흙 방벽뿐 아니라 실드끼리도 서로 부딪치고 쪼개져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굉음이 발생했다.

뒤이어 죽음을 연상케 할 정도로 서늘한 침묵이 도래했다.

구경꾼이 있다면, 모두 숨을 죽이며 가만히 지켜볼 것 같은 순간.

그러나 올리버는 그러는 대신 품 안에서 대량의 감정을 추출해 몸에 블랙 슈트를 둘렀다.

바로, 그때였다.

무너지는 흙 방벽과 거기에 박힌 실드가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파괴돼 가루가 되었다.

압도적인 충격량에 산산조각이 난 것.

섬광에 잠시 눈은 감았지만, 여전히 흑마법사의 눈을 뜨고 있는 올리버는 흙 방벽 안에서 튀어나온 다수의 생명체를 포착했다.

레드후드가 만든 인공생명체인 늑대-크리처 여덟 마리와 털을 매개로 만든 레드후드의 분신체 열 마리였다.

심상치 않은 숫자.

올리버는 눈을 떠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늑대-크리처를 먼저 봤다.

지금까지의 크리처와 달리 덩치는 보통의 늑대와 같았으나, 속도는 훨씬 빨라고, 무엇보다 이빨에 걸쭉한 액체 형태의 질병계열 흑마법이 걸려 있었다.

이미 두 차례나 실패해 전략을 수정한 것.

레드후드는 강력한 힘과 날카로운 이빨 대신, 빠른 속도와 치명적인 독으로 올리버를 제압할 속셈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올리버 역시 이미 두 번이나 봤다는 거였고, 두 번이면 흉내 내기 충분한 횟수였다.

[미믹-울프(Mimic-Wolf)]

올리버는 몸에 걸친 블랙슈트를 일부 떼어내 땅 위에 버리듯 흩뿌렸다.

그와 동시에 찢긴 실 뭉텅이 같던 블랙 슈트는 창조계열 술식으로 재탄생. 헝겊을 뒤집어쓴 듯한 늑대로 변하였다.

그것도 자그마치 여덟 마리나.

“······!!”

레드후드와 그 분신체들이 놀란 감정이 빛냈다.

그도 그럴 게, 창조계열 흑마법은 순수한 흑마법 실력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상력, 창의력, 의지 등 창조계열은 뭐라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기질, 특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술사의 특성이 가장 잘 반영된 흑마법이라 할 수 있었다. 마치, 거울처럼.

아마, 팬의 크리처가 하나같이 동심과 기괴함이 뒤섞인 모습을 한 것도 그 때문일 터였다.

필체와 같은 고유의 특성.

그런데, 그런 걸 올리버가 흉내 냈다. 재능만 있다고 가능한 게 아니었건만.

‘하지만 그렇기에 나한테 딱 맞아.’

올리버가 확신했다.

창의력, 상상력, 의지 등을 반영하는 창조계열 흑마법은 그 특성 탓에 올리버가 쓰기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반대로 접근하면 됐다.

남의 창의력과 상상력, 의지를 흉내 내 말이다.

흉내 내고 따라 하는 건 올리버의 특기였으니. 바로 지금처럼.

“부탁드립니다.”

올리버의 부탁에 미믹-울프는 정면으로 돌진해 오는 늑대-크리처에게 돌진했다.

“아우우우우우우!!”

“캬햐햐햐하항!!”

“크르르르르르르르르······!”

여덟 마리와 여덟 마리. 도합, 열여섯 마리의 늑대가 공기가 찢어지는 울음소리를 내며 서로 맞부딪혔다.

진짜 짐승들이 싸우는 것같이 격렬했는데, 차이가 있다면 서로 물고, 부딪힐 때 무수한 충격파가 발생해 공기와 땅을 뒤흔들었다는 점이었다.

감정을 압축하고 압축한 인공생명체였으니 당연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크리처 외에도 레드후드가 자신의 털을 매개로 만든 분신체가 사방으로 움직였다.

처음 행동을 개시한 것은 하늘 위로 도약한 두 마리의 분신체로 각각 감정과 마력을 끌어올려 올리버의 머리 위로 포격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흑탄(黑彈)과 염탄(炎彈)을 쏟아냈다.

[배라즈 오브 퓨리(Barrage of Fury)]

[플레임 샤워(Flame Shower)]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분노의 포격과 화염 소나기는 늑대-크리처들과 올리버의 머리 위로 떨어져 주변에 강렬한 폭발을 연달아 일으켰다.

퍼버버버버버벙━━━!!

거대한 폭발이 대지를 뒤흔들며 폭연(爆煙)과 화염이 어지러이 뒤섞여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폭발의 충격과 열기에 주변에 있던 나무와 바위마저 부서지고 재가 됐다.

당연히 포격 범위 안에 있는 크리처들 역시 모두 소멸했다.

“크르르르르······. 괴물!!”

좌측으로 우회하던 레드후드의 분신체가 포격 속에서도 멀쩡한 올리버를 보며 소리쳤다.

흑마법사의 눈으로 쏟아지는 탄환의 술식을 분석. 예상 탄착 지점을 예측해 피하고 거기에 비스듬히 실드를 전개해 공격을 막은 거였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라도 아차 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기교였으나, 올리버는 이를 당당히 성공시켰다. 강력한 술식의 도움 없이.

레드후드는 이에 경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상한 듯 마력을 끌어올려, 포격으로 생긴 화염에 통제력을 가져왔고,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분신체가 대기 마법을 사용해 거대한 돌풍을 일으켰다.

화염은 돌풍과 같이 회전하며 그 범위와 화력을 높였다.

요동치는 화염의 폭풍.

의도대로 거대한 돌풍이 더해진 화염은 포격 범위 전부를 집어삼켰고, 그 와중에도 다시 레드후드의 분신체가 점프해 포격을 가했다.

지상과 상공에서 빈틈없이 가해지는 공격.

거대한 화염 속에 무수한 탄환이 떨어져 폭발하였는데, 그 모습은 들끊는 마그마처럼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보레시티(Voracity)]

주변의 숲조차 열기로 불태워버리는 화염의 폭풍 속에서 올리버가 영창했다.

올리버가 몸에 두른 블랙슈트 곳곳에서 이빨 없는 입술이 다수 돋아났고, 그대로 주변의 화염을 빨아먹기 시작했다.

츕. 츕. 츕. 츕.

소름 끼치는 소리가 작게 울리며, 울창한 숲 전체를 태워버릴 것 같은 시뻘건 화염의 바다와 포격의 폭발이 소름 끼치게 생긴 입술 사이로 들어갔다.

화염의 크기와 위력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광경.

허나, 올리버의 몸에 돋아난 입술은 이게 현실이라는 듯 보란 듯이 화염의 바다를 다 빨아먹고는 그 범위를 넓혀, 올리버를 포위한 레드후드의 분신체들까지 흡수하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했는지 분신체들은 당황하며 비틀거렸다.

분신체가 겉보기에는 진짜와 다른 바 없이 생겼으나, 결국에는 감정으로 이뤄진 에너지 덩어리. 에너지를 흡수하는 보레시티의 공격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털썩. 털썩. 분신체가 하나둘 무릎 꿇으며 쓰러지는 그때━

━━━━━피웅!!

분신체가 아닌 진짜 레드후드가 음속을 넘는 초음속의 속도로 날아와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키며 올리버와 충돌했다.

레드후드의 한쪽 팔에는 녹색 자연의 힘으로 이뤄진 어금니 멧돼지가 건틀릿처럼 달려있었고,

그걸로 올리버를 후려치자 강력한 충격에 공기가 한 점에 압축되는가 싶더니 일그러지듯 폭발.

레드후드와 올리버 사이의 땅이 갈라지며, 강력한 후폭풍이 발생해 올리버를 저편으로 날려 버렸다.

고온의 불바다와 포격도 견딘 블랙슈트가 밀려난 것.

하지만 오히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아까 전 대량의 화염을 흡수하지 못해 블랙슈트를 강화하지 못했다면 방금 그 일격에 블랙슈트가 박살 나고 말았을 테니까.

그럼, 꽤 아팠을 터였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아프지만.’

올리버가 붕대를 두른 오른팔을 보며 생각했다.

멀린의 배려로 그나마 버틸 만했지만, 방금 그 일격 탓에 뼈마디가 울렸다.

그 통증 탓에 불타버린 팔은 요동쳤고, 그로 인해 붕대 안의 정령 역시 피해를 입었다.

“캬하하하하학!!”

올리버가 불타버린 오른팔에 한 눈이 팔린 사이 레드후드는 자신의 분신체 넷과 함께 올리버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들은 제각기 자연의 힘으로 구현한 엄니 멧돼지와 늑대, 사슴, 곰, 독수리를 몸에 둘러 사방에서 덮쳐왔다.

“자연의 힘이 특기셨군요.”

말이라고는 할 틈이 없는 그 찰나와 같은 짧은 순간, 레드후드의 진짜 무기를 간파한 올리버가 감탄하며 말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였다. 레드후드의 정체는 자연 중 하나인 짐승.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가장 잘 교감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 증거로, 지금 올리버를 공격하는 이들 외에도 저 뒤편에서 여섯 마리의 분신체가 정령과 교감하며 대규모 주술을 준비 중이었다.

‘저걸 보려면······.’

올리버는 블랙슈트에 돋아난 보레시티에게 부탁해 아까 전 삼킨 화염을 도로 토하게 했다.

보레시티는 이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결국 따라줬고, 올리버의 전 방향으로 마그마처럼 시뻘건 화염을 쏟아내 레드후드와 그 분신체를 휩쓸었다.

통제 불가능한 화염의 물살.

허나, 레드후드와 그 분신체들은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정면으로 들이박았다.

콰화화화화화화화황!!

보레시티에 의해 흡수됐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대량의 화염은 그 압도적인 열기 외에도 물살과 같은 물리력까지 갖췄지만,

자연의 힘을 섬세하게 압축한 레드후드와 그 분신체의 공격 역시 만만치 않아 진홍빛 화염의 불살은 몇 갈래로 쪼갰다.

화염의 열기와 압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강해지며, 레드후드와 분신체들이 두른 자연의 힘을 태우고 허물었으나, 곧 그 양이 바닥을 보이며 점차 약해졌다.

올리버가 이룬 성과라고는 날아와 공격하려던 레드후드와 그 분신체들을 약간 밀어낸 것뿐이었다.

그마저도 잠시 땅 위로 착지해 다시 공격하면 그만이었고.

그러나 올리버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올리버는 대지에 흑마법을 투여해 땅을 늪지대로 만들었다.

푸욱······!

레드후드와 그 분신체들이 바닥에 닿자마자 흙으로 이뤄진 바닥은 질척질척한 늪처럼 변해 그들의 발을 집어삼켰다.

물론,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아 레드후드 정도라면 바로 반응해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늪에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이 추가되자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크윽······?!”

피부를 타고 투입되는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에 레드후드는 통증을 느끼며 당혹감을 빛냈다.

레드후드 역시 본인의 피를 질병-약화계열 흑마법 재료로 쓸 만큼 질병에 내성이 있는 몸이었으니.

그래서 올리버도 나름 신경 써서 준비했다.

처음 올리버에게서 도망치려 했을 때 사용한 피 안개에 깃든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을 토대로, 상극의 반응을 일으키는 질병으로만 준비해서 말이다.

다행히 효과는 있어, 레드후드와 그 분신체는 고통을 호소했고.

고통을 호소하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올리버는 미니언과 미믹-울프를 창조할 뿐 아니라, 손수 쿼터스태프를 휘둘러 레드후드의 분신체를 제거했다.

미니언의 묵직한 탄환이 분신체의 미간을 꿰뚫었으며, 미믹-울프의 이빨이 분신체의 목을 물어뜯고, 올리버의 쿼터스태프가 몸통을 으깨버렸다.

상정한 것 이상의 데미지가 쌓이자 분신체들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고, 이제 본체만 남게 되었다.

올리버와 진짜 레드후드는 눈을 마주쳤고, 올리버는 그 눈을 통해 레드후드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극도로 고조된 공포, 그 속에서도 잊지 않은 목표, 그리고 버리지 않은 희망.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내지르기 위해 당긴 그 찰나, 대지가 쪼개지는 듯한 묵직하고 깊은 소리가 땅 아래에서 들렸다.

착각인가 싶었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거대한 나무뿌리가 솟구쳐 올라 늪에 빠진 레드후드를 건져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올리버가 전방의 레드후드와 그 분신체 4마리를 상대하는 동안, 저 후방의 분신체 여섯이 자연의 힘을 사용해 인근 숲의 통제력을 장악한 거였다.

그들은 높은 자연 교감 능력을 이용해 서로의 힘을 공유, 공명해 자연의 힘을 최대 효율로 발휘했고,

덕분에 올리버를 둘러싼 나뭇가지와 흙 한 줌조차 올리버를 겨누는 무기가 됐다.

과거 사기가 들통나 도주하려던 셰이머스가 사용한 것과 비슷한 술식이었는데, 차이가 있다면 그 수준이 훨씬 높다는 점이었다.

그저 힘을 때려 박아 덩치만 키운 게 아닌 높은 교감 능력과 섬세한 술식을 통해 이 일대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감탄이 나올 지경.

과장을 조금 보태면 올리버는 지금 레드후드의 손아귀에 있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레드후드는 방심하지 않고, 품 안에서 말린 고기 완자를 꺼내 체력을 보충하더니, 털을 뽑아 다수의 분신체를 더 만들었다.

분신체들은 저마다 흑마법과 마법을 사용해 자기 몸을 거대화시키고, 전격과 화염을 몸에 둘러 어떠한 공격도 할 수 있는 준비를 했다.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조차 방심하지 않고, 모든 힘을 발휘해 철저하게 공격하겠다는 것.

아무래도 가급적 흑마법만 사용하겠다는 결심을 꺾어야 할 것 같았다.

왜냐면 상대나, 상황이나 가급적이 아니었으니.

“이브.”

올리버가 셔츠 칼라 안쪽에 부착된 통신기기를 통해 이브를 불렀고, 이브는 곧바로 대답했다.

[예. 데이브.]

이브가 대답하자마자 레드후드는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사방을 옥죄는 거대한 나무와 뿌리, 칼날보다 날카로운 나뭇잎, 흙으로 만든 거대한 주먹, 분신체를 날려 보내 올리버를 집중공격했다.

피할 곳이라고 전혀 없는 위기 상황.

올리버의 그림자가 요동쳤으나, 올리버는 그 그림자를 억지로 진정시키곤 이브에게 물었다.

“부탁한 건 준비됐나요?”

[네, 준비했습니다.]

짧고 명료한 이브의 대답을 듣자마자 올리버는 품 안에 있는 시험관에서 자연의 힘을 추출.

그대로 레드후드가 장악한 대지에 투여해 통제권 싸움을 거는 동시에 저 아래 있는 세계수에 접촉했다.

자연의 힘이 세계수에 닿자 올리버와 이브는 교감할 수 있었고,

이브는 미리 준비한 정제된 이미지를 투영해주며, 세계수에 깃든 막대한 마력을 올리버에게 쥐여줬다.

저 밑에서 올라오는 심상치 않은 심상과 마력에 레드후드는 깜짝 놀라 더욱 공격을 서둘렀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한 발짝 늦고 말았다.

올리버가 이브가 준 세계수의 심상 속 이미지를 보고 술식을 구축해 영창했다.

[모이라이 학파 & 공간학파: 이데아(idea) 구축 : X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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