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 짐승 (1)
프타스 어시스턴트(Ptah's Assistant), 블랙 슈트(Black Suit)를 합쳐 만든 거대한 검은 손이 올리버의 의지에 따라 쿼터스태프를 투척했다.
송장인형-늑대인간을 꿰뚫어 기동력이 봉인 당한 레드후드는 이번만큼은 피하지 못했고,
흑마법이 덧씌워진 쿼터스태프는 레드후드를 적중시킨 상태로, 허공에 검은 선을 그리며 날아가 그대로 울창한 숲 위로 떨어졌다.
콰과과과과과광!!
사선 형태로 날아가 숲 아래 떨어진 쿼터스태프는 흡사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땅을 뒤엎고, 수십 그루의 나무를 쓰러트렸다.
올리버는 파손된 송장인형-늑대인간을 축소화 마법으로 줄인 뒤 품 안에 넣고, 블랙 슈트를 날개 형태로 바꿔 글라이더처럼 바람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탁.
땅 위로 내려가자 깊게 파인 대지와 뿌리째 뽑힌 수풀, 지저분하게 꺾인 거목, 사람 머리보다 높게 피어오른 흙먼지 등이 눈에 들어왔다.
쿼터스태프의 위력이 한층 여실히 느낄 수 있는 풍경.
사방이 먼지로 자욱해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 됐다.
그 풍경 속에서 올리버는 한 지점을 정확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단하시군요.”
올리버가 감정 입자로 주변의 흙먼지를 치우며 말했다.
흙먼지가 거둬지자 한쪽 팔이 찢긴 늑대. 레드후드와 바닥에 떨어진 쿼터스태프가 보였다.
“그 짧은 순간 한쪽 팔을 내밀고, 거기에 흑마법을 투여해 방어하다니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올리버가 감탄했다.
로드 갱인 호그에게서 노획한 일마리넨 공방의 공간이동 아이템을 이용한 이번 기습은, 단순히 늑대-크리처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공간이동 마법 특유의 기습성과 변칙성을 이용해 레드후드를 한 번에 제압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올리버가 없다면 레드후드가 송장인형-늑대인간을 파괴할 거라 예상했고, 그 타이밍에 맞춰 아이템을 발동. 대응할 틈도 없이 공격하면 쉽사리 제압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
실제로 올리버의 예상대로 거의 흘러가기도 했다.
그런데 레드후드는 그 짧은 찰나 한쪽 팔을 희생해 피해를 최소화해 도망칠 여력을 만들었다.
그것도 겁에 질린 상태에서. 보통 정신력이 아니면 사람도 힘든 대응이었다.
“······흑마법 캄(Calm)······. 걸어줬으니까.”
사람과 짐승. 그 중간 사이라고 할법한 걸걸한 목소리로 레드후드가 멈칫멈칫 말했다.
“대화를 나누고 싶었거든요.”
진심이었다. 올리버가 공격 직전 정신을 안정화하는 캄(Calm)을 건 이유는 레드후드와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보통 짐승들은 올리버의 얼굴을 보자마자 경기를 일으켰고, 개중에 일부는 자해하거나, 몸에 문제가 생기는 개체가 있었다.
대화가 가능한 짐승을 만났는데, 그렇게 되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
‘대화만 가능한 건 아닌가 보네.’
올리버가 두 쪽으로 찢겼다 다시 이어 붙는 레드후드의 왼팔을 보며 생각했다.
쿼터스태프를 막느라고 찢긴 그의 팔 단면도 사이에서 기생충이 나와 서로 연결, 살점과 신경을 이어 붙이고 있었다.
아물아물아물.
아무래도 질병계열 흑마법으로 기생충의 성질을 조작해, 숙주와 공생관계를 가지게끔 변형시킨 것 같았다.
“상당한 실력을 갖추신 분인가 보군요.”
“······?”
“레드후드 님을 만드신 흑마법사요. 레드후드 님도 그렇고, 기생충도 그렇고. 생물의 본질을 이 정도로 뒤틀긴 쉽지 않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올리버가 그동안 자신이 습득한 흑마법 서적, 연구 일지를 토대로 말했다.
흑마법을 통해 짐승을 더 사납고 강하게, 벌레는 더 독하고, 질기게 만들긴 쉬워도, 지능을 높이거나 그 근본적 성질을 변형시키는 것은 아주 어려웠다.
화염의 화력을 올리긴 쉬워도, 화염을 차갑게 만들긴 힘든 이치랄까? 전혀 다른 메커니즘이 필요했다.
시도는 있었지만, 성공사례가 없는 것이 그 증거.
그런데 지금 올리버의 눈앞에 이리 성공사례가 나타났다. 참으로 흥미로웠다.
“그런데, 레드후드 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보군요.”
올리버는 상처에 소금이라도 닿은 듯 움찔거리며, 굴욕, 공포, 분노, 증오, 각오 등을 곱씹는 레드후드를 보며 말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으나 레드후드에겐 지성을 얻기 위한 실험이 썩 좋은 추억은 아닌 듯했다.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흑마법을 바탕으로 한 실험은 대부분 끔찍한 고통을 수반했으니.
“그래도 나쁘지 않지 않나요?”
올리버가 실로 오랜만의 학자로서의 태도를 견지했다. 뭐가 됐건, 눈앞에 있는 건 짐승이었으니까.
“레드후드 님께선 인간의 지성을 얻게 됐지 않습니까?”
“······.”
그 말에 레드후드는 모멸감과 굴욕감을 느끼며 침묵했다.
올리버는 결코 굴욕감을 줄 의도가 없었음에도 말이다.
누가 짐승에게 굴욕감을 준다는 말인가? 짐승인데.
오히려 올리버가 이리 말한 건 순수한 호기심과 감탄에 기반한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정작 당사자인 레드후드는 굴욕과 모욕만 느낄 뿐이지만.
사람과 짐승. 다른 시선에서 오는 차이. 그로 인한 갈등.
흥미롭게도 아까 전까지의 레드후드였다면 이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었을 터였다.
타고난 본능 탓에 올리버에게 이런 굴욕감조차 느낄 여유가 없었을 테니.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화하기 위해 올리버가 부여한 흑마법 캄(Calm) 덕분에 레드후드는 지금 올리버란 존재를 앞에 두고도 굴욕감이란, 자못 사치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레드후드는 이에 기반해 입을 열었다. 띄엄띄엄.
“그······. 말을······. 하기 위해······. 쫓은 건가?”
침묵하던 레드후드가 입을 열자 올리버는 곧장 반응했다.
“아뇨, 엄밀히 말하면 이거 때문은 아닙니다. 제가 레드후드 님을 쫓은 이유는 열쇠 때문이거든요.”
올리버의 대답에 레드후드는 납득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목적은 그것밖에 없었으니. 이런 존재가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탐내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또, 레드후드 님에게 여쭤보고 싶은 것도 하나 있습니다.”
“······?”
“레드후드 님께선 왜 절 겁내시는 거죠?”
올리버가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질문했다. 왜냐면 정말 몰랐으니까. 짐승들이 왜 자신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며 놀라는지.
“······모······르나?”
레드후드가 어렵사리 되물었다.
이 역시 합당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궁금한 건 레드후드 쪽이었으니.
도대체 너희는 뭐길래 사람 껍데기를 한 채 이 지상에 발붙이고 있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만약, 마녀의 실험을 받지 못해 한낮 짐승인 채로 있었다면 이런 의문도 품지도 않고 그냥 도망만 쳤겠지만,
인간을 먹어 그 지성과 야심을 얻고, 이리 마주해 질문까지 들으니, 공포에 억눌려 있던 따지고 싶은 욕망이 한껏 끓어올랐다.
어찌해 너희처럼 불합리한 존재가 있는 거냐고 말이다.
“너야······말로······뭐냐?”
“예?”
“넌······! 뭐냐고 물었다.”
올리버가 흥미롭게 레드후드를 바라봤다.
방금까지 대답한 것도 흥미로웠지만, 지금 질문은 더 흥미로웠다.
대답이란 수동적인 태도였으나, 질문이란 능동적인 태도였으니.
허나, 더 흥미로운 점은 레드후드가 아직까지 올리버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올리버를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짐승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그런데도 저것은 질문하고 있었다. 사람을 먹음으로 그 지성과 특성을 얻었다지만, 그것은 단편적인 것에 불과했다.
식인이란 편법을 통해 얻은 것은 명확한 그 한계가 있는 법. 레드후드가 두려움에도 능동적 태도를 견지한 건, 레드후드의 의지가 작용한 거였다. 한낱 짐승의 의지가.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짐승이 사람과 같은 의지를 냈다니.
잡아서 분석해보고 싶을 정도로 흥미가 생겼다.
오싹······!!
올리버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레드후드는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며 뒤로 빠르게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등을 보이고 도망치지 않은 이유는 오직 하나, 섣불리 도망치면 자칫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레드후드는 뒤로 물러만 났다. 살기 위해.
과거 본 짐승들을 통해, 레드후드의 심정을 눈치챈 올리버는 멀쩡한 왼손바닥을 보이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쿼터스태프를 주우며 다시 입을 열었다.
“겁먹지 마십시오. 해할 생각 없습니다.”
올리버가 과거 처음 동물들을 대했을 때처럼 말했다.
그때는 이리 설명해도 동물들이 듣질 않아 포기했지만, 레드후드는 좀 달랐으니 한번 설명해 봤다.
딱. 딱. 딱. 딱.
별반 차이는 없었지만.
‘역시 짐승은 짐승인가?’
올리버가 심히 겁에 질린 채 몸을 웅크리고, 귀를 젖힌 채 이빨을 딱딱 부딪치는 레드후드를 보며 생각했다.
똑같았다. 고아원에 바글바글하던 쥐와 광산에서 아이들을 향해 짖던 개와 너무나도 똑같았다.
올리버는 보며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던. 괜찮다고 해도 늘 반응이 똑같았고, 그런 탓인지 올리버도 더 이상 동물에게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툭.
레드후드가 벌벌 떠는 손으로 뭔가를 던졌다.
낡디낡은 무쇠 열쇠.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인육 요리사의 유산이 있는 고성(古城)에 들어가기 위한 열쇠임을 눈치챘다.
“······.”
올리버를 외면한 채 열쇠를 던진 레드후드.
그는 방금까지 보여줬던 속셈, 향상 욕구, 분노, 굴욕, 증오, 타산, 의지를 모두 꺾으며 올리버에게 열쇠를 던져줬다.
이걸 줄 테니, 더 이상 자신에게 상관하지 말고 떠나달라고 말이다. 공포에 모든 것이 집어삼켜진 것.
그 모습을 보자 올리버는 알 수 있었다.
이 상태로는 왜 자신에게 겁을 먹은 것인지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긴 힘들 거란 걸.
올리버는 고민했다. 이대로 계속해 대화를 이어갈지, 아니면 던져준 열쇠만 챙기고 떠날지.
공적으로는 열쇠만 챙겨도 문제는 없었다. 애당초, 여기 온 이유가 열쇠를 얻기 위해서였으니.
허나, 사적으로는 열쇠만 챙기기 아쉬움이 컸다.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짐승을 어디 만나기란 쉽단 말인가?
자신에 대해 자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한 올리버에게 이 기회는 꽤 아쉬웠다. 아주 아주 꽤 많이······.
그러나 올리버는 긴 고민 끝에 그냥 물러나기로 했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궁금하긴 했으나, 어차피 이 상태로는 제대로 된 대답도 듣기 힘들고, 과할 정도로 두려워하고 있었으니.
물론, 억지로 듣는 방법도 없는 게 아니었으나, 레드후드가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건 좀 아닌 거 같았다.
구체적인 이유는 올리버도 알 수 없었으나.
여하튼 올리버는 아쉬움을 삼키며, 열쇠만 얻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역시, 짐승은 짐승인가?”
아쉬움이 너무 커진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주우려 손을 뻗었다.
바로, 그때 검은빛 섬광이 번뜩이며 다수의 투사체(投射體)가 연속해 날아와 올리버를 타격, 거대한 폭발이 연이어 터졌다.
콰과과과과광!!
단순히 폭발력만 가진 투사체(投射體)가 아니었다.
레드후드가 자신의 날카로운 손톱을 투사체(投射體)에 투영해, 폭발하기 직전 대상을 파고드는 물리력을 더했고, 거기다 같은 곳만 중첩해 노려, 혹시 모를 방어조차 꿰뚫어버리려 했다.
강력한 화력의 공격과 그 못지않게 치밀한 공격 수법.
그럼에도 불구 올리버는 실드를 볼록렌즈와 같은 형태로 전개해 이를 수월하게 막아냈다.
“크르르르르르!!”
“콰롸롸롸롸롸!!”
“캬햐햐향!!”
“캬라라라라라라라!!”
허나, 레드후드 역시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아까 전처럼 늑대-크리처를 네 마리 창조해. 올리버 정면, 좌우 측, 머리 위 네 방향에서 덮치게 했다.
자동차보다 큰 늑대가 일제히 네 방향에서 덮치는 모습은 상당한 압박감을 줬으나, 올리버는 당황하지 않고 실드를 네 방향으로 전개해 막아냈다.
갑자기 생겨난 검고 투명한 장막에 집채만 한 늑대들이 부딪혔고, 허공에 거대한 충격파가 동시 발생했다.
네 방향에서 동시에 일어난 충격파가 서로 공명하자 실드는 더욱 큰 충격을 받아 그대로 금이 쩍 생겼다.
노린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적잖은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만든 실드에 금이 생기며 그대로 붕괴.
깨진 실드 사이로 늑대 크리처의 이빨이 비집고 들어와 올리버를 노렸으나, 올리버는 곧바로 흑마법을 발동해 이에 대응했다.
[오브젝티브 헤이트(Objective Hate)]
[블랙 실드(Black Shield)]
깨진 실드 파편은 먼지처럼 사라지는 대신 탄환이 돼, 자신을 파괴한 늑대-크리처에게 제각기 꽂혔다.
눈과 코, 입안 등 예민한 부위에 파편이 박히자 인공생명체 크리처들은 통증 탓에 순간 멈칫했고,
올리버는 파편에 감정을 추가해 블랙 실드를 다시 펼쳐 늑대-크리처를 말 그대로 토막 냈다.
방어에 이은 기습적인 공격에 크리처들은 토막이나 연기처럼 사라졌다. 바로 그 찰나, 올리버는 흐릿해지는 크리처 너머로 강력한 마력과 술식을 포착할 수 있었다.
촤━━━앙!
번쩍이는 번개가 소멸하는 크리처의 꿰뚫으며 돌진했고, 뒤이어 전류가 거대한 쇠를 타고 스쳐 지나가듯 소름 끼치는 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처음 투사한 화기계열 흑마법은 물론, 늑대-크리처도 방금 이 한 방을 위한 준비에 불과한 것.
아마, 웬만한 실력자라도 방금 그 일격에 적잖은 상처를 입었을 터였다.
보통 흑마법을 쓰는 늑대가 마법. 그것도 전격을 몸에 둘러 돌진하는 수준 높은 마법을 쓸 거라 예상하지 못할 테니.
다행히 올리버는 웬만한 실력자가 아닌 듯했다.
번개가 돌진해 오는 그 짧은 순간 몸을 틀고, 쿼터스태프를 비스듬히 들어 막아냈으니.
올리버는 뒤를 돌아보며, 몸에 아직 번개를 두른 레드후드를 보며 물었다.
“왜 갑자기 싸우시려는 거죠?”
“난······. 짐승이 아니야.”
늑대······. 아니, 레드후드가 그리 대답하며, 자신이 던진 열쇠를 말린 고기 완자 한 뭉치와 같이 입에 쑤셔 넣었다.
어떠한 각오를 다진 것.
목구멍으로 열쇠와 말린 고기 완자, 각오가 들어가자 레드후드의 몸에 흑마법뿐 아니라, 여러 마력과 자연의 기운까지 발광하며 깃들었고, 바닥을 박차며 충격파와 함께 그 모습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