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29화 (529/633)

529. 빚쟁이 (2)

“후······. 실례했습니다. 데이브 씨. 제가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닌데, 못난 모습을 보여드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한바탕의 소란이 가라앉은 후, 차가워진 공기와 함께 이성을 되찾은 루시앙이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사과했다.

아직 흥분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목소리가 떨렸으나, 그와 별개로 그는 올리버에게 정말 미안한 감정과 창피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원수 같은 인간을 만났어도 손님 앞에서 이런 추태를 보여서는 안 됐는데.

올리버는 그런 루시앙의 사과를 받아들이며, 그 뒤편에 있는 이완을 살펴보았다.

얻어맞느라 엉망이 된 그는 쇠 그물에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있어, 빈말로도 좋은 상태라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고무적인 점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거였다.

“날 팔았군······. 믿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건 배신이야. 널 믿었다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늘씬하게 두들겨 맞은 이완이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를 잊지 않고 말했다.

그렇게 처맞았건만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의문을 가져야 할 수준. 그러나 올리버는 무덤덤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죄송하지만, 이완 님. 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쟁이. 솔직히 불어. 내가 널 숲에 혼자 버리고 갔다고 앙심 품은 거 맞잖아? 그게 그렇게 화났어?! 고작해야 탐욕에 눈이 먼 살인귀들이 가득한 숲에 주의란 주의는 다 끌고, 혼자 버려두고 도망친 것뿐인데!! ······그게 그리 불만이었어?!!”

이완이 소리쳤고,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불만이진 않지만, 불만을 품어도 이상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긴 하지. 나도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어.”

이완이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흡사, 만담과도 같은 광경. 그럼에도 이완은 억울하다는 듯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내 빚쟁이들한테 날 팔아먹을 수 있어? 이건 정말 아니지 않아?”

올리버가 스튜를 먹으며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이완 님. 전 정말 이완 님을 팔지도 배신하지도 않았습니다.”

“스튜를 먹으면서 말하니까 퍽 설득력 있구만.”

“배고파서요······. 그리고 전 이완 님이 여기 계신 분들에게 빚을 진 사실도 몰랐습니다.”

“내가 위대한 빚쟁이라 몇 번이나 말했는지 기억 안 나? 넌 늘 이런 식이야. 나한테 왜 이리도 관심이 없지? 지긋지긋해.”

이완이 섭섭하다는 듯이 투덜거렸고, 올리버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농담이야. 농담. 그러니까 그런 눈빛으로 날 보이지 마. 지금 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겁나니까 좀 도와줘.”

“예? 끝난 게 아니었습니까?”

스릉.

올리버가 되묻자마자 대답이라도 해주듯 타이밍 좋게 서늘한 소리가 울렸다.

소리가 울린 뒤를 돌아보자 올리버의 눈에 칼을 갈고 있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루시앙을 제외한 밀리유의 보스들로, 그들은 이완에게 해를 가할 의지를 빛내며 칼을 갈고 있었다.

“다 갈았군······. 자, 자. 줄부터 서지. 줄”

밀리유의 여러 보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피에르가 말했다.

인상 좋은 할아버지처럼 생긴 그는 처음 이완이 도망치려고 했을 때 대검을 번개처럼 내리쳐 퇴로를 막은 이로, 연식만큼이나 존중받는지 모두 그의 말에 따라 할 줄로 질서정연하게 섰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불안함을 느낀 올리버가 질문했다.

“어······. 루시앙 님. 그리고 피에르 님, 레오 님, 발레히 님, 나텅 님, 아론 님. 뭐 하시려는 건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정산하려는 거네. 젊은 친구.”

회색 철갑과 대검으로 무장한 피에르가 대답했다. 올리버가 의문을 빛냈다.

“정산하는 데 왜 칼을 드시는 거죠?”

“일단, 피와 살로 받을 생각이니까.”

“예?”

올리버가 이해되지 않아 되물었다. 그러자 뒤편에 있는 이완이 대신 설명해줬다.

“밀리유는 돈을 못 갚는 빚쟁이들의 신체 일부를 잘라. 크라임 펌과 차이가 있다면 장기를 파는 경제적인 이유보다, 자기들 돈을 떼먹을 수 없다는 경고, 위신, 본보기. 뭐 그런 고리타분한 이유 때문이지만······. 솔직히 말해 야만적이야.”

이완이 속삭이듯 낮게 중얼거렸다. 문제는 모두가 들었다는 거였다.

“······일단, 나이가 많은 나부터 징수하도록 하지.”

가장 연장자인 피에르가 인내심의 바닥을 보이며 바로 행동으로 옮기려 했다. 올리버가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피에르 님.”

“젊은 친구. 비켜주시게.”

“제가 이곳 문화를 잘 몰라 감히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니지만, 이왕 징수할 거면 뼈와 살 대신 돈으로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완 님께서 얼마나 빚을 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망토 안쪽에 내가 얼마나 떼먹었는지 기록해 놓은 장부가 있어. 그걸 꺼내서 확인하면 될 거야. 내 자랑이거든.”

“이완 님. 제가 볼 때 지금 상황에서 부적절한 대답인 거 같습니다.”

다시 펼쳐진 올리버와 이완의 만담. 피에르가 좋은 할아버지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인내심을 발휘. 올리버에게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젊은 친구. 당연히 돈도 돌려받을 생각이야. 다리 힘줄을 잘라 우리가 운영하는 공방에서 한 십 년간 무보수로 일하게 할 생각이거든, 피와 살은 우릴 우습게 본 것에 대한 정산일 뿐이야.”

“아······.”

“뭘 납득하면 자빠졌어. 그리고 무보수로 일하라니. 그건 선 넘었지!”

탄성을 내뱉는 올리버에게 이완이 소리쳤고, 피에르에게도 소리쳤다.

그 말에 피에르는 다시 뼈와 살을 징수하려 했으나, 올리버가 또 슬며시 길을 막았다.

“음······. 그래도 피를 보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 없을까요?”

푸근한 할아버지 인상의 피에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뭐 하는 건가?”

“서로에게 더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가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이완 님께서 여러분께 실수를 한 건 알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제 동업자시거든요.”

이완이 소리쳤다.

“좋은 말이구만! 맞아, 바로 빚을 갚을 테니, 평화롭게 해결해보자고.”

“갚을 돈이 있습니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루시앙이 누구보다 빠르게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게, 이완이 빌린 액수는 원금만 해도 한 개인이 진 것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했고, 복리로 불어난 이자를 고려하면 천문학적이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지금 바로 원금에 이자까지 일시불(一時拂)로 갚는다면 살과 뼈를 징수하는 건 다시 한번 고려해 볼 수 있었다.

몰락한 귀족의 후예인 밀리유에게 있어 대외적인 위신은 중요한 거였지만, 그것도 액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으니.

“당연히 나는 없지.”

“자르죠.”

당당한 이완의 대답에 루시앙이 누구보다 빠르게 결론을 냈다.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것. 역시,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동으로 갚게 해야 할 것 같았다.

피에르의 큼지막한 단검이 살을 파고들려는 찰나, 이완이 비장의 수라도 되는 듯 소리쳤다.

“하지만 데이브가 대신 갚아줄 거야! 재개발로 한몫 단단히 잡았으니, 그 정도는 푼돈일 테니까!!”

이완은 기어이 올리버를 팔아먹었다. 재개발로 돈을 번 건 사업체지, 올리버가 아니었건만. 허나,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올리버를 봤고, 올리버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저었다.

“전 대신 갚을 생각이 없습니다.”

“잘라!”

“야 이 나쁜 놈아!!”

***

피에르의 칼날이 이완의 살갗을 파고들자 이완이 발버둥을 치며 소리쳤다.

“잠깐! 잠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바로 거절할 수가 있어?! 믿었다고!! 믿었다고!! 내 호구 돌려줘!!”

“죄송합니다. 이완 님. 포레스트 님께서 이완 님이랑 같이 갈 때, 절대 돈을 빌려주지도, 빚을 대신 갚아주지도 말라 하셨거든요.”

그랬다. 올리버의 이완과 함께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차지하러 간다고 했을 때, 포레스트는 유산에 관한 것을 제외하곤, 절대 금전과 관련된 일에 상관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조금이라도 휘말리면 열심히 쌓은 재산이 한순간 날아갈 것이 자명했기에.

“포레스트······. 이래서 눈치 빠른 인간은 싫다니- 아악! 말하는 중이잖아!”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피에르는 날을 더욱 아프게 쑤셔 넣었다. 그제야 위기를 느낀 것인지 이완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좋아, 내가 진지하게 사과하면 어떨까? ······아악! 아프다!!”

딱히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올리버는 이완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그때, 셔츠 칼라 안쪽에 부착된 초소형 통신 기기에서 이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브는 올리버에게 뭐라 말했고, 이야기를 다 들은 올리버는 왼손을 뻗어 피에르의 칼날을 잡아 세웠다.

예상 이상으로 적극적인 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것도 꽤 심각하게.

당연한 반응이었다. 마이페이스 기질이 강한 올리버와 이완 때문에 얼핏 지금 상황이 심각해 보이지 않았으나, 이완에 대한 밀리유의 분노는 다들 진심이었다.

빌려준 액수가 엄청난 것은 둘째치더라도, 한 조직의 수장인 자신들을 속이다시피 돈을 빌리고, 떼먹은 건 그 자체로 엄청난 망신. 단순히 금전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피해였다.

그런데 이를 설명했음에도 이완은 반성하는 기색 없이 저 좋을 대로 지껄였고, 올리버 역시 선을 넘으며 이를 막아섰다.

그것도 자신들의 영역 한복판에서.

거대 도시에서 가장 이름을 알리고 있으며, 새로운 물주로 부상한 제인의 친구, 루시앙의 소개, 매너 있는 모습과 놀라운 식견에 처음 우호적으로 접근하던 밀리유도 차츰 신경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아까까지만 하더라고 인상 좋은 할아버지와 같던 피에르가 위압감이 느껴지는 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 하는 건가? 젊은 친구.”

“저희와 협력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올리버가 대답 대신 제안했다.

“이완 님이 빚을 지고 도망친 대가로 여러분과 같이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완 님의 빚은 저희 몫으로 떨어질 보상으로 대신 갚도록 하겠습니다.”

이완의 몫뿐 아니라 자신의 몫까지 떼 빚을 상환하겠다고 올리버가 제안했다.

아직 손에 쥐지도 못한 공수표나 다름없는 발언이었으나, 그것도 사람에 따라 다른 법. 루시앙은 이를 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인육 요리사가 일으킨 난 때, 올리버가 보여준 활약과 검은손의 손가락 퍼펫과 동등하게 대화 나누던 모습을 아직까지 기억했기에.

루시앙이 물었다.

“금전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한 것 아닙니까?”

“인육 요리사님의 유산과 관련해서는 예외라서요. 그러니, 이쯤에서 용서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다들 여기 오신 이유가 이완 님의 뼈와 살을 자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육 요리사님의 유산 때문에 온 거지 않습니까? 유산을 차지하는 게 금전적으로든, 위신적으로든 더 낫지 않겠습니까?”

올리버는 감정을 배제한 채 현 상황에서 가장 좋은 선택이 뭔지 상기, 우선순위를 정리했다. 그 말에 루시앙을 비롯한 밀리유는 설득되는 한편, 몰이해란 감정을 빛냈다.

인육 요리사의 유산은 말이 유산이었지, 실제 그 가치는 단순히 유산으로 규정할 수 없었다.

돈에 미친 인육 요리사가 얼마나 막대한 재화를 쌓았는지 추정도 안 됐으며, 각종 아이템과 특이체(特異體), 약재, 흑마법 서적, 연구 등등. 돈으로도 쉽사리 환산할 수 없는 것이 한가득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갈로스 왕실뿐 아니라, 다른 타국에서도 용병을 보냈다는 소문이 들린 게 이를 증명.

거기다 사라진 인육 요리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징성까지 가지고 있었다.

괜히, 온갖 불나방이 따라붙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올리버는 그걸 이완의 빚 대신으로 치르겠다고 말했다. 아주 평범하게.

“이해가 안 되는군. 젊은 친구······.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가? 그런다고 저 빚쟁이가 고맙다고 아이템이라도 줄 거 같나?”

이미 한번 데어 본 경험이 있는 피에르가 이완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꾸로 매달린 이완이 맞장구쳤다.

“절대 아니지.”

참으로 한결같은 태도. 그러나 한결같기는 올리버도 매한가지였다.

“딱히 감사나, 아이템을 바라고 한 게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이완 님께서 과거 도와주신 적이 있거든요.”

올리버가 이완이 캔트를 구해준 일을 떠올렸다.

제법 시간이 흐른 듯했으나, 올리버에겐 바로 어제처럼 생생했고, 그 일과 비교한다면 인육 요리사의 유산은 그리 아까운 게 아니었다. 악마의 책을 몇 권만 챙기면 족했다.

허나, 밀리유에겐 아니었다.

여기서 가장 오래 산 피에르, 가장 이른 나이에 출세한 레오, 여성이라는 불리한 조건에서 밀리유의 두목이 된 발레히, 효율성을 중시하는 나텅, 전사라 자부하는 아론 등. 각기 개성이 다른 이들 모두 올리버의 태도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미, 루시앙에게 나무꾼 데이브에 관한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었지만, 들은 것과 직접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그들은 올리버가 자신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미친놈이라는 걸 직감했다.

이완을 위해 제 몫을 떼주겠다니. 거짓말 같진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께름칙함을 느꼈다.

사람이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으니.

실력도 확실하고, 신용도 있어 보였지만, 과연 저 태도가 같이 일할 때 좋을까 싶은 그때,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열쇠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모두 움찔했다.

“인육 요리사님의 유산이 보관된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너나 할 것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올리버를 바라봤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곳 울창한 숲에 있다고 하는 인육 요리사의 유산은 한 고성(古城)에 보관 중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열쇠가 두 개 필요했다.

성문을 열기 위한 열쇠와 성으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

그게 없으면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결코 볼 수 없을 거라 하였는데, 문제는 그건 아무도 올리버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피에르를 비롯한 밀리유의 보스들이 루시앙을 바라봤으나, 루시앙은 고개를 저었다.

극비까지는 아니지만, 쉽게 가르쳐줄 수 있는 정보가 아니기에 루시앙도 이에 관해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루시앙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듯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쉽게 알 수 있는 정보는 아닌데.”

“정령이 알려줬습니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이브도 엄밀히 말하면 정령 중 하나라 할 수 있으니 거짓말은 아닐 터.

울창한 숲과 이곳에 난립한 세력을 조사하던 중 이브가 알게 된 소문을 아까 올리버에게 가르쳐줬다.

“또 여러분이 왜 이곳 외곽에 있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숲 중심부로 갈수록 결계라도 쳐진 듯 지형이 혼란스럽게 변하고, 알 수 없는 기현상이 생기기 때문 아닙니까?”

이브를 통해 현재 울창한 숲의 상황을 들은 올리버가 추가로 말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울창한 숲 중심부로 알 수 없는 기현상이 관측. 먼저 선두를 치고 나간 세력 중 일부가 전멸하거나, 실종된 일이 연거푸 발생하고 있었다.

그 탓에 여러 호전적인 세력이 모였음에도 중앙이 아닌 외곽에서 소규모 국지전만 벌이고 있었고.

이브의 말이 사실인지, 모두 침묵으로 긍정했다.

올리버가 다시 제안했다.

“이런 상황인데, 역시 협력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누가 열쇠를 가졌는지 아십니까?”

루시앙이 질문했다. 올리버가 고개를 저었다. 세계수를 인공정신이 이브조차 수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아직 그것은 찾지 못했다. 이곳 상황이 혼란스러운 것도 한몫.

“하지만, 루시앙 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뭔가 숨기고 계셔서요. 또, 열쇠란 단어가 나오자 뭔가 짚이는 게 있으셨고요.”

확신에 찬 대답. 루시앙을 비롯한 모두 눈을 마주쳐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감정을 꿰뚫어 보는 흑마법사의 눈은 그 실력을 대변해줬고, 루시앙의 속을 읽는 수준으로 꿰뚫어 본 모습에 다들 올리버가 어느 경지에 다다랐는지 예측할 수 있었다. 손을 잡아야 했다.

“레드 후드로 추정됩니다. 대륙 중앙에서 넘어온 늑대인간 흑마법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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