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 울창한 숲 (3)
“안녕하십니까, 루시앙 님. 오랜만입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군요.”
송장인형-늑대인간을 타고 나타난 올리버가 바닥에 쓰러진 루시앙을 보며 인사했다.
주변의 널브러진 시체를 보아하니 꽤 아슬아슬했던 거 같았다.
‘종이처럼 찢긴 갑옷, 질병에 오염된 사람들······. 인육 요리사 님과 비슷한 스타일인가?’
올리버가 주변을 살펴보며 추측했다. 시체의 상태를 보았을 때 방금까지 있던 흑마법사는 보통 실력자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점이 있지만······.’
올리버는 의문을 가지되 집착하지 않고 뒤로 미뤄, 송장인형-늑대인간을 조종. 엎드리게 해 그 위에서 내려왔다.
평소 송장인형의 컨트롤은 차일드에게 위임했기에, 이렇게 일일이 조종하는 건 처음이나 다름없었지만, 생각보다 썩 나쁘지 않았다.
마리오네트처럼 송장인형을 일일이 조종하는 게 제법 까다로우면서도 생각보다 할 만하다는 걸 배웠으니까. 조금만 요령을 익히면 실시간으로 여러 송장인형을 조종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럼, 좀 더 다양하게 쓸 수 있겠네.’
올리버가 자신을 평가하는 그때, 루시앙이 말을 걸었다.
“제논 씨? 혹시, 제논 씨입니까? 모습이 또 많이 변하셨군요.”
“예? 그게 무슨······.”
“머리카락요. 멋있습니다.”
처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올리버였으나, 곧 이해하며, 자신의 탈색된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인육 요리사를 쓰러트리고 루시앙과 다시 만난 건 이번이 처음. 새하얗게 탈색된 한쪽 머리와 오른팔의 붕대 등 올리버의 과거에 비해 약간 변한 상태였다.
“이런저런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 보입니다. 그래도 다행이군요······. 제 촉이 무뎌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가 봅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논 씨를 만나 반갑다는 뜻입니다.”
악의 없는 대답. 올리버가 적당히 대답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데이브로 왔습니다. 란다의 해결사로요.”
“그렇습니까? 그럼, 데이브 씨라고 부르도록 하죠······. 죄송하지만, 데이브 씨. 괜찮으시다면 저 좀 일어나게 도와주시겠습니까? 방금 죽을 뻔해 몸에 힘이 안 들어가는군요.”
루시앙은 능글맞게 손을 뻗어 일으켜 달라 도움을 청했다.
사실, 혼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루시앙은 일부러 부탁했다. 나름대로 생각한 바가 있어.
다행히 올리버는 루시앙의 예상대로 정중히 손을 잡아 일으켜 줬고, 이때, 보여준 반응속도, 행동, 눈빛, 분위기 등을 토대로, 루시앙은 올리버가 악의나 속셈이 없다고 판단 내렸다.
속이 시커먼 자들은 작은 행동에서도 티가 났으니.
올리버의 손을 붙잡아 벌떡 일어난 루시앙이 입을 열었다.
“오, 힘이 세군요. 절 단번에 일으켜 세우다니요.”
“운동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운동을 하시나요?”
루시앙이 고개를 갸웃댔다. 인육 요리사와의 전투 후유증이라 해도 삐쩍 마른 올리버가 운동을 할 것 같지 않았기에.
허나, 루시앙은 장사꾼. 그런 사소한 건 그냥 넘어갔다.
“운동을 열심히 하시나 봅니다. 어쨌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절 일부러 찾아오신 겁니까?”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눈치가 좀 좋은 편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나 더 추측해보죠.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같이 찾아줄 파트너를 찾으시는 거 아닙니까?”
루시앙이 나름 날카롭게 추측했다.
그가 올리버를 오래 알았다고 할 수 없었으나, 그의 소문이나 제인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는 있었다.
그는 여느 뛰어난 해결사들과 달리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특히, 손이 많이 가는 자세한 정보는 외부의 도움을 받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럴 경우. 호구 잡힐 수 있었지만, 금전에 생각보다 욕심이 없는 탓인지 그런 것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기를 찾아온 이유는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찾기 위한 정보. 즉, 협력자로 온 것일 가능성이 컸다.
“아, 죄송합니다. 그건 아닙니다. 같이 일할 분은 이미 있거든요.”
보기 좋게 빗나간 예상. 루시앙은 뺨을 긁적였다.
“아, 좀 민망하군요······. 그런데 어디 있죠? 제 눈에는 데이브 씨와······. 예술적이게 개조된 늑대인간만 보이는데요?”
굴레와 의자가 몸에 고정된 늑대인간이 허연 콧김을 내뿜었다.
“절 여기 놔둔 다음 갑자기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가 어딘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썩 좋은 동업자는 아니군요. 같이 일하는 사람을 내버려 두고 떠나다니······. 실례가 안 된다면 차라리 저랑 손잡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때마침 제가 손이 절실한 상황인지라.”
“제안은 감사하지만, 그분께 제가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서 함부로 결정할 수 없네요.”
올리버는 과거 이완이 엔조이먼트의 손에서 캔트를 구해준 일을 떠올렸다.
루시앙은 안타까움과 함께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이쪽 바닥에 전혀 맞지 않은 태도였으니.
“뭐, 그래도 그런 성격이시라 제가 동업 제안을 한 거긴 하지만요. 음······. 저도 혼자서 온 건 아니라 전부 알려드릴 수 없지만, 최소한의 정보는 알려드리도록 하지요. 여기가 어딘지, 어떤 상황인지.”
“정말입니까?”
“예, 어차피 기본적인 정보라 딱히 비밀도 아니고, 또, 저번에 저희를 도와주셨으니까.”
루시앙은 과거 인육 요리사가 라빌리에서 난을 일으켰을 때, 올리버가 나타나 제인의 덤으로 도와준 일화를 떠올렸다.
그 외에도 혹시 모를 보험인 셈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도움을 주면 올리버의 성격상 한번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테니. 그러나, 굳이 그런 거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상황이 급해 정리 못 하고 온 게 있는데, 도움을 받게 됐으니, 여기서 정리하고 가야 할 것 같네요.”
올리버는 자신이 왔던 길을 가리켰다.
루시앙은 반사적으로 올리버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봐 눈에 마력을 집중. 저 멀리서 다가오는 백여 마리의 좀비 떼를 볼 수 있었다.
“좀비군요. 그것도 베이의.”
“누군지 아십니까?”
“예, 폭탄장수 베이. 이곳 갈로스에서 제법 유명한 흑마법사입니다. 주로 우리 같은 범법자나, 반사회 단체에 자폭용 좀비를 팔죠. 설마 저 녀석도 여기 참가했을 줄이야.”
루시앙이 약간의 당혹, 걱정의 감정을 빛냈다. 그 이유를 묻자 다소 놀라운 대답이 나왔다.
“소문이긴 하지만 퍼펫의 제자라 합니다.”
“퍼펫이라면······. 영생의 퍼펫 님 말씀입니까?”
“예. 송장인형을 다룰 줄 아는 놈들은 대부분 자기가 퍼펫의 제자라 주장하지만, 베이의 경우 인육 요리사 생전에도 눈치를 덜 보던 편이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퍼펫도 인육 요리사의 유산에 관심이 있다 하더니, 진짜일 줄이야······.”
루시앙은 다시 한번 우려의 감정을 빛냈다.
그도 그럴 게 영생의 퍼펫은 인육 요리사와 같은 손가락.
거기다 조작계열 흑마법의 특성상 인육 요리사보다 더 까다로울지도 모르는 상대였다.
조작계열 흑마법은 많은 자원과 지식을 요구했지만, 반대로 말하면 자원과 지식이 충족되면 그에 비례하는 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거기다 들은 바에 따르면 조직의 규모만큼은 퍼펫이 인육 요리사보다 위.
그런 그가 제자까지 동원해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노린다? 솔직히 말해 주인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경쟁이 되려나?’
올리버가 과거 오염구역에서 퍼펫을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오염구역을 청소하러 온 해결사들을 이용하려고 했고, 그 과정은 상당히 치밀했다.
오염구역에 미리 숨겨둔 좀비 군대를 이용해 사람들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뒤, 미리 잠입시킨 송장인형으로 여론을 형성해 분열을 조장. 모든 사람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 했다.
비록, 중간에 올리버가 이를 알아채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올리버는 자신이 이겼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뭐가 됐건 올리버는 퍼펫의 의도에 따라 오염구역 지하로 내려가야 했으니.
‘그리고 거기서 처음으로 퍼펫 님과 싸웠지.’
올리버는 시체를 점토처럼 자유로이 다루는 퍼펫의 모습과 지옥의 입구를 여는 아가리, 그가 연구하던 인공영혼을 떠올렸다.
우연과 우연이 겹친 끝에 올리버는 간신히 퍼펫을 쓰러트려 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앞서 그랬던 것처럼 이 역시 이겼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당시 올리버가 싸운 퍼펫은 그의 손가락 한 마디 수준이었으니까. 증거는 없었지만, 올리버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지금의 올리버가 퍼펫과 다시 싸우면 이길 수 있을지.
현재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와 팬과도 싸워봤으니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론 확언하기 어려웠다.
느낌? 감? 여하튼 알 수 없는 이유로.
“음, 데이브 씨······. 일단, 후퇴하는 게 어떻습니까? 인육 요리사의 유산 근처에도 못 갔는데, 벌써 퍼펫 쪽과 문제를 일으키는 건 썩 좋지 못한 것 같은데요.”
육안(肉眼)으로 보일 정도로 다가온 좀비를 보며 루시앙이 제안했다.
늑대인간과의 전투에서 휘하 병력을 잃은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
그러나, 그 말은 오히려 올리버에게 다른 사실을 일깨워줬다.
이대로 피하기만 하면 인육 요리사의 유산 근처에도 가지 못할 거란 사실을.
당연한 거였다. 모두가 필사적인 와중 올리버가 그렇지 못하다면 그게 맞는 거였으니.
평소였다면 그런 선택도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올리버 역시 알고 싶은 게 있었기에.
그렇게 상황을 인지, 각오를 다진 올리버는 시험관에서 감정을 추출했다.
“데이브 씨?”
“죄송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해결하고 가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아까도 따돌리려고 했지만, 계속 쫓아왔거든요. 공간마법으로 이 장소를 떠나는 게 아니면 계속해 쫓아올 겁니다.”
올리버의 대답에 루시앙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말의 내용이 아닌, 목소리에서 의지를 엿봤기에. 그 역시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거였다.
그렇게 올리버가 움직이려는 찰나, 후방에서 강력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 빠르게 접근하더니, 올리버가 채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수십 정의 총기가 동시에 공기를 두들기는 소리가 퍼지며 성법을 머금은 총알이 레이저처럼 쏟아졌다.
1초에 수백 발 쏟아지는 총알은 노란빛 궤적을 그리며 어느새 신체를 변형해 사냥개처럼 돌진해 오는 좀비들을 타격했다.
성법이 담긴 총탄이라니, 처음 보는 형태의 공격방식이었으나 아주 효과적이었다.
노란빛 성법을 머금은 총탄은 좀비를 관통하고 쓰러트리는 걸 넘어, 타격 지점과 그 주변 부위까지 재로 만들어 좀비들을 순식간에 무(無)로 돌려보냈다.
흡사, 연필로 그린 그림을 지우개로 지우는 수준. 숫자, 병력이라는 개념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사태가 심상치 않은 걸 눈치챈 것인지, 좀비를 조종하는 술사는 그 짧은 순간 좀비들을 자폭시켜 독 연기를 퍼트리려 했으나, 그마저도 성법이 깃든 총알이 지나가자 정화되고 말았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휘이이이잉······.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총성이 멎으며, 헛도는 소리가 울렸다. 허나, 문제는 없었다.
이미, 좀비들은 모두 재가 돼 전부 사라진 후였으니까.
2, 3초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안에 중대규모의 좀비들이 소멸했다. 그 광경에 감탄한 올리버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전신에 철갑과 철코트를 두르고, 한쪽 팔에 거대한 개틀링 기관총을 착용한 강철의 사내가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성기사님 입니까?”
이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건만 올리버는 구태여 질문해 다시 확인했다.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노리는 이들투성이인 이곳에 성기사가 있는 게 놀랍고, 또 밀리유인 루시앙과도 아는 눈치인 게 놀라워.
루시앙이 그런 올리버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성기사님 맞으십니다. 감사하게도 왕실에서 지원을 보내주셨거든요. 설명하면 조금 길어지는데, 일단, 저희와 같이 가 들어보시겠습니까?”
루시앙의 제안에 올리버는 말없이 철가면 성기사를 바라봤다.
성기사가 밀리유와 함께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긴 했지만, 흑마법사와 있는 건 그보다 몇 배로 이상한 일.
성기사가 허락할지 의문이었는데, 놀랍게도 성기사와 올리버와 눈을 마주치자, 그 속마음을 읽었는지 들고 있던 개틀링 기관총을 빛 입자로 바꿔 없앤 뒤 올리버에게 직접 제안했다.
“온다면 환영하겠소.”
놀랍게도 성기사는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