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 울창한 숲 (2)
늑대인간을 송장인형으로 만드는 생각은 확실히 좋은 생각이었다.
올리버의 예상대로 늑대인간 특유의 민첩한 몸놀림은 길이 얼마나 험하든 전혀 문제가 안 되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늑대 인간은 특유의 각력(脚力)과 긴 팔,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해 험한 장애물을 발판 삼아 더욱 빠른 속도를 냈으니까.
자동차로는 상상할 수 없는 움직임.
‘재밌네. 원래는 건물이 즐비한 도시에서 쓸 계획이었는데, 도시와 정반대인 숲에서 그 진가를 확인하다니······. 뭐, 예상 밖인 건 이거 외에도 많지만.’
올리버가 늑대인간을 아직까지 쫓아오는 좀비 떼를 보며 생각했다.
저 멀리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송장인형이 꺼낸 먹보주머니.
그 먹보주머니에서 튀어나온 좀비들은 설마설마했지만 아직까지 올리버를 쫓아오고 있었다.
물론, 늑대 인간의 기동성을 따라오지 못해 거리가 계속 벌어지고 있긴 했지만, 중요한 건 아직까지 쫓아 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냐면━
━쾅!!
저 좀비들이 자폭 좀비였기 때문이었다.
‘또 재수 없이 좀비를 마주친 사람이 폭사했구나.’
올리버가 저 멀리 뒤에서 일어난 폭발을 보고 생각했다. 이걸로 세 차례.
설마 좀비 내부에 있는 대량의 생명력이 연료가 아닌 화약일 줄이야.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올리버를 쫓아오는 좀비는 단순히 폭탄만 심어진 게 아닌 몸에 질병계열-흑마법도 지니고 있었다.
저 멀리 뒤편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녹색, 노란색 연기가 그 증거.
‘해독하기 어렵게 여러 개의 질병 흑마법을 섞었네. 숙련자야.’
올리버가 얼굴 모를 흑마법사를 평가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몇 살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올리버는 저 좀비를 만든 흑마법사가 조작계열 흑마법에 높은 이해도와 상당한 자본을 지녔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특별한 능력이 없는 일반 시체를 저렇게 자폭용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저게 가장 효과적이었으니.
일반적인 시체는 아무리 가공을 거친다고 해도, 그 화력에 한계가 있었지만, 시체를 통째로 폭탄으로 개조하면 화력을 비약적으로 올릴 수 있었다.
거가에 질병계열-흑마법까지 추가하면 그 치명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폭발의 화력을 버틴다 해도 질병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쇠약해질 가능성 컸으니.
그런데도 올리버는 이런 방식을 쓰는 조작계열 흑마법사를 잘 만나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흑마법사가 그 정도 자원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조작계열 흑마법은 무궁한 발전 가능성을 가졌지만, 그 대가로 시체와 생명력, 감정, 각종 기타 물품 등 많은 자원과 지식을 요구했으니, 그게 부족한 이들은 저런 식으로 시체를 사용할 수 없었다.
반대로 말하면 이번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노리는 자들은 평소 올리버가 봐온 뒷골목 흑마법사보다 수준이 높다는 걸 의미했다.
최소한 수백 구의 시체와 그 이상의 생명력을 공격 한 번에 소모할 정도의 재력은 가진.
사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현재 갈로스 왕가조차 흑마법사들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 실정이라 하였으니.
올리버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런 좀비 떼를 대동한 채 뮈라 패밀리의 보스, 루시앙을 찾아가면 그가 올리버와 손을 잡아 줄지 안 잡아 줄지.
하긴, 뭐든 상관없을 거 같기는 했다.
손을 잡아 준다면 같이 일할 수 있는 믿을 만한 협력자를 얻는 거였고, 아니다 해도 여기서는 협력자를 얻기 힘들다는 사실은 알 수 있는 거였으니. 아는 게 전혀 없는 올리버로서는 뭐든 나쁘지 않았다.
‘물론, 그전에 루시앙 님이 무사해야겠지만.’
올리버가 흑마법사의 눈을 발동. 아직 먼 거리에 있는 루시앙을 보며 생각했다.
몰락한 귀족이자, 인육 요리사 건으로 안면이 생긴 밀리유의 보스 중 하나인 그는 지금 비정상적일 정도의 생명력을 가진 기이한 짐승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었다.
***
“하-! 돌겠구만!”
고인이 된 인육 요리사와 갈로스의 뒷세계를 양분한 밀리유의 보스 중 하나, 루시앙 뮈라가 소리쳤다.
불만에 찬 그의 고함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울창한 숲에 메아리쳤다.
푸드드득 소리를 내며 새들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알 수 없는 적에게 병력의 반이 당한 상황에서 썩 영리한 행동이라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은 얼핏 이성적으로 보여도 감정적이었으니.
그건 밀리유에서도 이성적이고 온건한 것으로 정평이나 장사꾼이라 불리는 루시앙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얼마나 남았나?”
마력으로 가공한 은빛 갑옷을 입은 루시앙이 물었다. 그의 물음에 루시앙처럼 갑옷으로 중무장한 부하가 답했다.
“이제 23명 남았습니다. 보스.”
“······데려온 인원이 50명, 절반이 넘게 당했군. 대손해야.”
루시앙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기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대손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끌고 온 병력은 자신의 조직인 뮈라 패밀리에서도 실력을 갈고닦은 정예 중의 중예.
하나하나 기르는 데 몇 년은 걸린 놈들이었다.
거기에 그놈들 맞춰준 특제 무기와 갑옷, 각종 아이템까지 고려하면 그 피해는 더더욱 계산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정예 병력의 절반 이상을 잃고, 막대한 장비도 잃었음에도 누구에게 당하였는지 알 수 없었기에.
몰락 귀족, 전사보다 장사꾼으로 자기 정체성을 잡은 루시앙의 자존심마저 상할 정도였다.
“나답지 않게 너무 방심했군.”
“보스······.”
“판단력이 흐려진 거야. 인육 요리사가 죽고, 수도 재개발 사업에까지 참여해 한밑천 잡아서 말이야. 나답지 않게 너무 과신했어.”
루시앙은 무력하게 당하고 있는 분노와 알 수 없는 적에 대한 두려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당혹 속에서도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인육 요리사의 그늘이 너무 짙어 한순간 눈이 먼 거였다.
인육 요리사의 위명에 억눌렸다 해도, 흑마법사들은 충분히 위협적인 존재인데 말이다.
오죽하면 왕실조차 감당이 안 돼 밀리유에게 손을 내밀 정도일까?
그런 상황일진데, 승부수를 띄운답시고 열쇠를 찾기 위해 이런 숲까지 단독으로 쫓아오다니. 패착, 이런 패착도 없었다.
‘촉이 오긴 왔는데.’
루시앙은 결정을 내리기 전 자신이 느낀 그 감각을 떠올렸다.
좋은 결과를 낼 거 같다는 특유의 감을.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진정한 무기.
그런데 나이가 든 탓인지 이번에는 빗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침울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루시앙은 불안해하는 자신의 부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복귀 준비해.”
“복귀······. 말씀입니까?”
“그래, 내가 잘못 판단했다. 이 교활한 흑마법사를 우리만으로 쫓는 건 무리야. 왕실에서 보내준 성기사가 곧 온다고 하니, 일단, 복귀해서 재정비한다.”
루시앙은 보통의 밀리유 보스라면 하지 않을 결정을 내렸다.
자신의 실수와 모자람,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
그도 그럴 게, 사업가에 정체성이 맞춰진 연합 왕국의 크라임 펌과 달리 밀리유는 귀족과 전사, 도적에 그 뿌리를 뒀기 때문이었다.
그런 밀리유가 인육 요리사도 아닌 일개 흑마법사에게 후퇴하는 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자칫 나약해 보이는 인상을 줘 부하들의 존경심을 잃을 수도 있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루시앙의 부하들은 실망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루시앙의 명을 받들었다.
애당초 루시앙은 그런 거추장스러운 것을 버리고 사업에 집중하는 성격이었기에, 또, 여기 있는 부하들 모두 전사로서 루시앙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겁쟁이가 아닌 합리적인 전략가라 판단해, 망설임 없이-
-부스럭.
지지부진한 추적과 보이지 않는 적에 위축된 뮈라 패밀리가 돌아가려는 그때, 수풀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예민한 상황이었기에 모두 들고 있는 무기를 겨누며 수풀을 경계했다.
“누구냐?!”
“자, 자, 자, 잠시만요!”
수풀 속에서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곳 울창한 숲은 인육 요리사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소유한 깊고, 위험하기 그지없는 곳. 거기다 현재에는 그 위험이 몇 배로 높아진 상태였다.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차지하고 싶은 각 세력의 각축전이 된 곳이었기에.
그런데 이런 숲에 갑자기 웬 소녀가 나타났다. 수상해도 이 정도로 수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든 사람이란 이성적인 듯하면서도 감정적인 존재.
수풀 사이를 해치고 한 소녀가 나오자 모두 멈칫했다.
붉은 망토를 쓴 도자기 인형처럼 작고 귀여운 소녀의 외모에 현혹돼 말이다.
“도와주세요. 아저씨들.”
밝은 금발에 새하얀 피부의 소녀가 절뚝절뚝 다친 상태로 도움을 요청했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은 본능적 부성애를 자극.
엉성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눈과 뇌는 그 모습에 현혹돼 한순간 경계심을 늦추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촤악!!
귀여운 소녀의 모습과 분위기에 홀려 저도 모르게 다가간 밀리유 둘의 상체가 뜯겨 하체와 분리됐다.
“······!!”
갑옷을 입은 성인 남성을 말 그대로 찢어 죽인 것은 다름 아닌 소녀의 팔로,
가느다랗던 그녀의 팔은 털이 북실북실 난 거대한 짐승의 팔로 변해 있었다.
진부한 표현일 수 있었으나, 통나무처럼 굵고, 칼날보다 날카롭고 긴 발톱은 척 보는 것만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사람은 물론, 특수 제련한 강철조차 종잇장처럼 찢을 것 같았기에······. 아니, 같았기에 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강철 갑옷으로 무장한 밀리유를 그저 팔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찢어발기고 있었다.
쏴아악!!
짐승의 양팔을 가진 소녀는 아까 전 천사 같은 얼굴을 벗어 짐승과 같은 표정을 지은 채, 어느새 짐승의 그것으로 변한 다리로 종횡무진 질주.
21명밖에 남지 않은 밀리유를 도륙하기 시작했다.
루시앙은 본능적으로 그가 자신들을 유인하고 습격해 사냥한 흑마법사임을 알 수 있었다.
놈은 루시앙이 무리한 추적을 포기하고 깔끔하게 물러나려 하자 과감하게도 모습을 바꿔 기습을 노린 것인데, 이는 루시앙에게는 불행히도 옳은 판단이었다.
소녀의 모습을 뒤집어쓴 괴물은 찰나와 같은 방심을 유도해 정확히 의표를 찔러 주도권을 가져가더니, 짐승의 팔과 다리로 사방을 휘저으며 승기를 가져갔다.
루시앙의 부하들 역시 정예이기에 저항하긴 했으나, 벌써 반수 이상이 당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모습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와 갑옷마저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는 강력한 힘.
이 두 개의 조합은 심플하지만 재앙과 같은 위력을 냈으니.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이 흑마법사는 강력한 육체의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이 좋아, 기회를 노리며 불의의 일격을 가한 루시앙의 공격을 재빠르게 회피했다.
촤앙!!
마력을 머금은 루시앙의 장검이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가르자 전방의 거대한 나무 수십 그루가 쓰러졌다.
극도로 단련한 검술과 마력 통제 능력이 합쳐진 결과물.
소녀의 모습을 한 괴물은 허공에서 손톱을 휘둘러 루시앙과 손을 섞어보았다.
까가가가강!!
이 짧은 순간 괴물은 루시앙의 실력을 간파, 계속 싸우기를 포기하며 나무가 쓰러질 때 발생한 흙먼지 속으로 몸을 숨겨 그 기척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압도적인 힘과 속도를 가졌음에도, 조심성과 수준 높은 은닉술을 가지다니.
진짜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방어대형!”
루시앙은 몸을 숨긴 적에 대응하기 위해 대열이 엉망이 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려 대형을 재구축했다.
마력 방패를 든 부하들이 벽을 형성했고, 창과 할버드, 석궁으로 무장한 이들은 방패병의 뒤에 숨어 여차할 경우 반격할 태세를 갖췄다.
대형을 재구축하자마자 루시앙은 목에 건 성법 아이템을 발동, 성스러운 빛으로 주변을 감쌌다.
[홀리 라이트(Holy Light)]
노란빛 성스러운 빛이 사방을 감싸자 물에 때가 벗겨지듯 검은 기운이 씻겨지며 그 아래 몸을 숨기고 있던 빨간 망토를 두른 늑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늑대인간?”
루시앙은 놀랐다. 늑대인간이라니.
본능적으로 저 빨간 망토가 모습을 바꿔주는 걸 간파했다.
허나,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루시앙은 공격을 명령을 내렸다. 확인하는 건 죽여서 해도 됐으니 말이다.
“공격 대형!!”
루시앙의 부름에 맞춰 방패병들이 자신의 마력을 방패에 투입.
방패를 매개로 거대한 마력 벽을 형성해 늑대인간을 포위했고, 석궁과 창을 든 병사들은 갑옷을 입고 있는 상태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민첩하게 움직여 늑대인간을 공격하려 했다.
거대한 덩치가 위협적이긴 했으나, 오히려 지금은 타격 부위가 많다는 것.
상대를 충분히 몰아넣었다는 걸 확인한 루시앙은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였는데, 바로, 그때 늑대인간이 망토 안에 있는 시험관에서 감정을 추출해 자신의 두 팔에 질병계열 흑마법을 부여했다.
[하이퍼트로픽(Hypertrophic)]
[컴프레션(Compression)]
[네일 케라틴(Nail Keratin)]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가뜩이나 거대하던 늑대인간의 팔은 한층 비대해지는가 싶더니, 압축돼 증기를 내뿜었고, 동시에 늑대인간의 손톱에는 각질이 생겨나 더욱 단단하고 길어졌다.
그렇게 흑마법을 발동하자마자 늑대인간은 양팔을 크게 휘둘러 방패를 매개로 펼쳐진 마력실드를 단숨에 찢어발겼다.
카가강━!!
둔탁한 소리. 실드는 유리처럼 깨지며 방패병들의 선혈이 허공에 흩날렸다.
그러나 루시앙의 부하들 역시 베테랑.
눈앞에서 두꺼운 마력 실드가 깨지고 동료들이 당했음에도 망설이지 않고 빈틈을 노려 찌르려고 했다.
[태인티드 블러드(Tainted Blood)]
이에 늑대인간은 팔을 휘두른 반동을 이용해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몸동작으로 허공에서 회전.
서커스 기예와 같은 동작으로 모든 공격을 피하더니, 자신의 손톱으로 몸에 작은 상처를 내 그 피를 사방에 후두둑 뿌렸다.
각종 질병과 기생충이 깃든 늑대인간의 피가 루시앙의 부하들에게 닿았고, 피가 닿자마자 다들 몸에 반점과 수포 등 이상 상태를 호소하며 쓰러졌다.
단순한 감정뿐 아니라, 피와 기생충을 재료로 사용한 덕분에 즉각적인 효과를 낸 것.
허나, 루시앙만은 피를 칼날로 모조리 쳐내며 접근해, 마력을 날카롭게 압축한 장검을 휘둘러 늑대인간의 목을 노렸다.
타이밍상 절대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공격.
캉!!
그러나 늑대인간은 강철보다도 단단한 이빨로 이를 물어 막았다.
까드드드드득······뜩!!
늑대인간은 막는 것을 넘어 치악력으로 특수 제련한 장검을 부러트리곤 손을 휘둘렀다.
생사를 가르는 찰나의 순간 루시앙은 스스로 무기를 버려 공격을 피하곤, 부하들이 떨어트린 무기를 주워 대항했다.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위한 난격(亂擊)이 오갔으며, 수십 개의 날카로운 궤적이 허공을 색칠하듯 뒤덮었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강철이 부딪히는 굉음, 스파크 등이 허공에 생겼다가 사라지길 수십 차례였지만, 승패는 쉽게 갈리지 않았다.
분명, 신체능력은 늑대인간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으나 루시앙은 전사로서의 경험과 기교를 이용해 아슬아슬하게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였다.
‘성기사는 아직 멀었나?’
루시앙의 머릿속에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그 모습에 뭔가를 눈치챈 늑대인간은 양손을 휘두르는 척, 양팔을 높이 들더니 땅을 내리쳤다.
쾅!
살짝 흔들리는 땅과 위로 솟아오른 흙먼지.
늑대인간은 사람도 한입에 삼킬 거대한 입을 벌려 충격파를 쏴 루시앙을 맞췄다.
물리력을 가진 울음소리는 루시앙의 안팎을 타격해 그를 쓰러트렸고, 그 위로 늑대인간이 덮쳐와 흉흉한 손톱이 달린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갑옷과 함께 배가 찢겨 내장이 밖으로 흘러나오려는 찰나, 저 멀리서 하울링이 울렸다.
아우우우우우우우우━━━!!
늑대인간은 귀를 쫑긋 세우더니. 하울링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획 돌렸고, 잠시 후, 털을 살짝 곤두세우더니, 다 잡은 루시앙을 버린 채 떠나버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살아남게 된 루시앙.
잠시 후, 그런 루시앙 앞에 흉흉하게 개조한 늑대인간을 탄 올리버가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루시앙 님. 오랜만입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