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 울창한 숲 (1)
“아귀다툼이요?”
올리버가 질문했다.
이에 이완은 누런 이가 훤히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혹시, 내가 구체적으로 어디 갈 건지 이야기한 적 있어? 갈로스는 땅이 더럽게 넓잖아?”
“아뇨,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 당연히 이야기하지 않았지! 왜냐면 나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으니까.”
연이어 나온 예상치 못한 대답에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털자고 한 건 이완. 그런데 이완이 어딜 가야 할지 모르다니, 말이 안 되지 않은가?
“말이 안 되긴 뭐가 말이 안 돼? 내가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이완이 뻔뻔하게 소리쳤고, 올리버는 납득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게, 이완은 사람의 신체를 흑마법으로 가공해 아이템을 만드는 흑마법사 장인.
문제는 그가 뛰어난 장인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훌륭한 장사꾼은 아니라는 거였다.
장사꾼에겐 성실함과 신용이 필수였지만, 올리버가 여태껏 봐온 이완은 장사꾼보다는 백수, 건달, 사기꾼, 도박중독자, 허풍선, 빚쟁이에 더 가까웠다.
“씨발, 말이 심하네.”
여하튼 이런 이완이 소문 이상의 디테일한 정보를 모으는 것은 무리. 그렇다고 이를 대신해 줄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홀로 다니는 방랑자였으니까.
“그래서 내가 머리를 좀 썼지. 난 똑똑하니까. 인육 요리사의 유산이 어디 있는지 모르면, 그걸 찾는 놈들은 뒤쫓으면 되는 거잖아?”
올리버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이완은 말 그대로 장소가 아닌 사람을 쫓았다. 뭐가 됐건,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줄 테니 말이다.
허나,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 수 있죠?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쫓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지를요.”
합리적인 의문에, 이완은 자신이 든 대가리 분쇄기를 톡톡 쳤다. 뭉개진 머리가 조개처럼 파르르 떨렸다.
“이놈 덕분이지. 원하는 조건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대충 비슷한 곳에 균열을 내주거든. 가령, 갈로스에서 탐욕에 물든 채 싸우는 놈들이라던가. 물론, 빗나갈 때도 있긴 하지만, 괜찮은 편이지.”
설명을 들은 올리버는 감탄하며 대가리 분쇄기를 봤다.
단순히 공간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 외에도 그런 기능이 있다니, 실로 충격적이었다.
정확한 조건과 수치에 따라 정해진 기능만 발휘하는 마법 아이템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완의 자랑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또, 이런 것도 가능하지.”
대가리 분쇄기의 머리를 갈아 끼우는 이완이 저 멀리 나무 사이로 달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그들은 털 망토와 가죽 갑옷을 입었으며, 손에는 제각기 석궁, 창, 검, 철퇴 등이 들려있었다.
아무리 봐도 폭력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밀리유인가?’
올리버가 달려오는 사람들의 마력과 생명력을 통해 추측해 봤다.
모두 상당한 수준의 마력 사용자였으며, 진한 생명력도 품고 있었다. 거기에 무기를 든 자세도 익숙해 보였고.
몰락한 귀족, 전사의 후예인 밀리유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하긴, 밀리유 역시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노리고 있다고 했으니, 여기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그런데 이완 님께선 지금 뭘 하려는 거지?’
대가리 분쇄기에 머리를 다 갈아 끼운 이완은 다시 자세를 잡더니, 대가리 분쇄기를 뒤로 당겨 앞으로 쭉 내질렀다.
쩡!!
대가리 분쇄기가 허공을 때리자 아까 전과 같은 형용하기 힘든 굉음이 숲 전체에 울렸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균열이 옆이 아닌, 앞으로 뻗어나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밀리유를 덮쳤다는 점이었다.
“꺼억······!”
“이, 이게 뭐야?!”
“끄으으읍-!!”
허공에 뻗어나간 균열로 인해 밀리유의 몸에도 균열이 생겼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광경에 밀리유의 안색은 새하얗게 변했고, 저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 역시 자기들끼리 싸움을 중단하며 아예 이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올리버 역시 시선을 빼앗길 광경이었으니 당연했다.
‘어르신의 공간마법보다 투박하긴 하지만, 비슷해.’
올리버가 신대륙에서 돌아온 직후, 멀린과의 대련을 떠올렸다.
그때, 멀린은 공간에 균열을 가해 올리버의 오른팔 화염만 무효화시켰다.
그런 기교를 흑마법 아이템으로 성공하다니······.
돌진해 오던 밀리유들은 균열이 간 공간에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이완은 다시 대가리 분쇄기를 휘둘렀다.
쩡!!
두 번째 굉음이 울리자 공간이 산산이 조각나며 그 안에 묶여 있던 밀리유 역시 유리 조각처럼 박살 났다.
“······!!!”
엄청난 광경에 지켜보던 이들 모두 충격에 빠졌고, 올리버와 이완에 대한 경계심이 한껏 높아졌다.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느닷없이 나타나 사람을 말 그대로 박살 냈으니. 심지어 인육 요리사의 유산까지 묶여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올리버는 이쪽으로 완전히 총구를 돌린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보며 이완에게 질문했다.
“이완 님······. 이제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예?”
올리버가 되물으며 이완을 봤다.
그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깨진 균열 사이로 들어갔다. 그것도 혼자서.
“난 무서우니까. 잠시 자리를 비울래.”
“예?”
“뒷일은 모두 너한테 맡길 테니 잘 처리하라고.”
“예?”
“I'll be back.”
“예?”
거듭되는 올리버의 물음에도 불구, 이완은 엄지를 세우며 다시 복구되는 공간 저 너머로 사라졌다.
휘이이이잉.
숲에 부는 스산한 바람.
올리버는 그렇게 완벽하게 유기됐다. 바닥 건너 외국 어딘지도 모를 숲속 한가운데 홀로.
정말 예상치 못한 전개였기에 올리버는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건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수많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버리고 도망갔어.”
“빌어먹을 그걸 누가 몰라. 그러니까 왜 버리고 갔냐고?”
“글쎄다······. 어떡하지?”
“일단, 저 녀석 확보하자. 뭐 하는 잡놈들인지 알아야겠어.”
“찬성. 아까 쓴 아이템. 보통 물건이 아니야. 어쩌면 소문대로 빈시티(Bean City)에서 온 걸지도 몰라.”
갑작스러운 등장과 이완의 돌발 행동 탓인지 아무도 올리버를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는 거 같았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오해.
올리버는 그 오해를 풀기 위해 두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다들 갑자기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적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투두두두둥!!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단하고 질긴 활시위가 튕기는 소리가 울리며 마력을 머금은 석궁 화살이 올리버에게 날아들었다.
마력을 머금은 탓인지 보통의 석궁 화살보다 더 빨랐으나,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 덕분에 좋아진 동체 시력으로 이에 반응. 곧바로 흑마법을 발동했다.
[블랙 실드(Black Shield)]
올리버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시험관에서 감정을 추출, 얇고 네모난 막(幕)을 만들어 날아오는 석궁 화살을 막아냈다.
석궁 화살이 날아오는 속도를 고려하면 실로 경이로운 시전 속도.
그러나, 상대도 이를 예측한 것인지 석궁 화살 몇몇 개에 폭발 마법을 심어져 있었고, 해당 석궁 화살이 블랙 실드와 부딪히자 폭발을 일어났다.
콰과광!!
연쇄적으로 일어난 폭발.
뒤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허름한 망토를 두른 흑마법사들이 달려왔다.
‘질병계열 흑마법사들인가?’
올리버가 폭발 속에서 담담히 분석했다.
망토를 두른 흑마법사들은 특이하게도 맨발이었으며, 발의 형태가 사람보다는 개나 늑대의 그것에 더 가까웠다.
거기에 발등과 손등, 언뜻언뜻 보이는 뺨에는 수북한 털이 나있었고, 뭣보다 팔까지 이용해 네발로 뛰어오는 모습은 사람보다 짐승에 더 가까웠다.
질병계열 흑마법으로 육체를 뒤틀어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올린 것으로 추정됐다.
“크르르르릉!!”
마치 늑대가 몰이 사냥을 하듯이 망토를 두른 흑마법사들은 올리버를 향해 일제히 돌진해왔다.
아무래도 대화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
판단이 서자 올리버는 손을 펴 사방에서 달려오는 흑마법사들의 적개심을 추출했다.
슈화하하아아아악―――!
전투 중에는 가급적 사용해서 안 되는 추출.
그 이유는 합의가 없는 추출은 대상이 저항해 빈틈이 발생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아차하면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올리버는 추출을 사용해 다가오는 흑마법사 수십 명의 감정을 동시에 뽑아냈다.
이번 임무에서는 흑마법만 쓰기로 마음먹었고, 또,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리펄션 쇼크(Repulsion Shock)]
올리버는 수십 명의 흑마법사에게서 추출해낸 적개심을 한 손에 압축. 그대로 쥐어짜 폭발시켰다.
폭발한 적개심은 후폭풍과 같은 충격파 형태로 퍼져. 올리버에게 적개심을 품으며 접근해 오는 흑마법사들의 감정을 직접적 타격했고, 대상에게 단순 물리적 쇼크를 넘은 정신적, 감정적 쇼크를 유발했다.
“우욱······!”
“끅······!!”
“······꺼억······?!”
이를 증명하듯 올리버에게 악의를 가지고 접근하던 흑마법사들은 모두 끔찍한 두통과 현기증, 메스꺼움을 느끼며 주춤거리거나 쓰러졌다.
그건 울창한 나무 사이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덕분에 공격은 일순간 멈췄고, 대화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한 올리버는 왼손에 쥔 쿼터스태프를 놓은 뒤, 검지를 총구처럼 내밀어 증오의 탄환을 쐈다.
퉁! 퉁! 퉁!
짧고 간결하며 묵직하게 울리는 총성.
총성이 한번 울릴 때마다 흑마법사들의 머리와 가슴이 관통되는 걸 넘어 수박 깨지듯 붉게 박살 났다.
화기계열 흑마법의 기본이자 정수인 증오의 탄환을 한 발 한 발 집중해 정확히 쐈기 때문.
올리버에게 접근한 흑마법사들은 저항하려 했으나, 아직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아 비틀비틀하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그 순간에도 한 명씩 한 명씩 선혈을 흩뿌리며 쓰러졌다.
이것이 화기계열 흑마법의 장점이었다.
배우기도 쉽고, 사용하기도 쉬우며, 효과 역시 확실했기에.
그 증거로 살상력은 낮지만 광범위한 그로기 타격을 줄 수 있는 리펄션 쇼크와 증오의 탄환을 섞어 사용한 것만으로 접근한 수십 명의 흑마법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었다.
“크르르르릉······케엥!”
올리버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며 으르렁대던 마지막 흑마법사가 단말마를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올리버는 제자리에서 손가락만 움직였을 뿐인데, 주변에 수십 구의 시체가 순식간에 생겨 땅을 붉게 물들였다.
방심한 흑마법사들의 의표를 정확히 찌른 덕분이었다.
상대의 감정을 역으로 이용해 행동 불능 상태로 만든 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증오의 탄환을 한 발 한 발 정확히 꽂아 넣음으로 말이다.
흑마법만 사용한다고 스스로 제약을 건 탓에 이번 올리버의 전투는 화려함도 압도적인 화력에서 오는 위압감은 없었으나, 그 대신 등골이 서늘해지는 효율성과 치명성이 돋보였다.
그 탓일까? 방금 쓰러트린 흑마법사들과 비슷한 기운을 내뿜는 흑마법사들은 곧바로 덤벼드는 대신 하울링을 내뱉으며 일제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아우우우우우우우우━━━!!
육신을 질병계열 흑마법으로 개조해 얼핏 호전적일 것만 같았지만, 그들은 생각 이상으로 깔끔하게 포기했다.
상대에 따라 유기적으로 대응하는 영민함과 유연함을 가졌다는 증거.
이에 반응해 다른 이들 역시 하나둘 눈치를 보며 일단 물러났다. 딱 한 명만 빼고.
‘송장인형이랑······. 먹보주머니?’
흑마법사의 눈을 집중해 울창한 숲 깊은 안쪽까지 꿰뚫어 본 올리버가 생각했다.
올리버의 활약을 보고 일단 공격하길 멈추는 다른 이들과 달리, 웬 송장인형 하나가 사람 크기의 먹보주머니를 두 개 꺼내 뭔가를 준비하였다.
바로 공격해 사전에 위험을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올리버는 뭘 할지 궁금해 방해하는 대신, 빅마우스를 꺼내 쓰러트린 수십 명의 흑마법사를 집어삼키게 했다.
“꾸루루루룩.”
갑자기 불려 나온 빅마우스는 낯선 환경에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곧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직감. 흑마법사의 시체를 한 번에 둘, 셋씩 집어삼켰다.
그러는 사이 송장인형은 꺼낸 먹보주머니 두 개에게 명령을 내려 백여 구의 좀비를 꺼냈다.
비정상적인 속도로 봤을 때 보통의 먹보주머니가 아닌 듯했으며, 나온 좀비들 역시 시체에 생명력을 투입한 수준은 아닌 거 같았다.
‘송장인형 수준은 아니지만, 뭔가 장치를 한 거네.’
올리버가 흑마법사의 눈으로 관찰하며 판단했다. 올리버 역시 송장인형이라면 꽤 만들어 봤으니.
물론, 크게 위협적인 건 아니었다. 질 높은 수준의 송장인형이 아니라면 이 거리에서도 화기계열 흑마법으로도 충분히 제압 가능했다.
그러나 올리버는 그러는 대신 반대 방향을 봤다.
아까 전 흑마법의 눈을 집중했을 때 포착한 익숙한 감정이 있는 방향을.
“일단, 여기가 어딘지 알아야겠죠?”
올리버가 빅마우스의 의견을 물었고, 빅마우스는 양손을 들며 몸통을 흔들었다.
“꾸?룩.”
“역시 저랑 같은 생각이군요. 그것 좀 꺼내 주시겠습니까?”
올리버의 부탁에 빅마우스는 곧바로 그것을 토해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올리버가 새로이 만든 송장인형으로, 조금 특이한 물건이었다.
왜냐면 사람이 아닌 늑대인간을 재료로 만든 것이기 때문.
‘갈로스에서 오거의 시체와 함께 챙긴 늑대인간······. 역시, 챙기길 잘했네.’
올리버가 검은 털을 가진 3미터의 거체를 가진 늑대인간을 보며 생각했다.
인육 요리사 때 노획한 것으로, 올리버는 당시 늑대인간이 보여준 놀라운 힘과 민첩성, 움직임을 고려해 이것을 탈것으로 개조하기로 마음먹었다.
철근과 나사, 대못으로 고정한 안장과 굴레가 이를 증명해줬다.
처음 해보는 작업인지라 그 형태가 다소 어설펐지만, 올리버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미 죽은 시체였고, 몰래몰래 탈 생각이었으니까.
올리버는 고개를 돌려 접근해 오는 백여 구의 좀비 떼를 확인한 후, 송장인형-늑대인간에게 생명력을 부여, 흑마법을 사용해 통제권을 획득했다.
크라라라라······!
생명력을 얻은 늑대 인간은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엎드렸고, 올리버는 그런 늑대인간 위에 올라타 달려갈 것을 지시했다.
“일단, 서두르지 말고 천천━”
━콰아아아앙!!!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송장인형-늑대인간은 본능에 기반, 바람을 가르며 숲속으로 뛰어갔다.
너무 빨라 올리버는 한순간 안장에서 떨어질 뻔했다.
“역시 탈것으로 만드는 건 좋은 생각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