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21화 (521/633)

521. 멸망한 땅의 주인 (4)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난입한 이완이 소리쳤다.

자신과 같이 갈로스로 가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털자고 말이다.

그의 힘찬 외침은 세월에 의해 퇴색된 복도에 공허히 울렸고, 올리버와 바솔로뮤는 침묵할 뿐이었다.

“빌어먹을, 반응이 왜 이래? 하고 싶은 말 없어? ‘오, 좋아요. 당장 따라갈게요.’, ‘좋은 사업 끼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완 님밖에 없어요.’ 뭐, 그런 거 말이야.”

무덤덤한 올리버의 반응에 이완이 섭섭한 감정을 내비쳤다. 하긴, 기껏 기운 내 이야기해줬건만 이런 반응은 약간 실례일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뭐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오, 물론이지. 이제야 너 다운 반응이네. 뭐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든 물어보라고.”

“그 배터링 램(Battering Ram) 사람의 머리를 재료로 공간에 균열을 일으키는 흑마법 아이템입니까?”

“역시 알아보는구만! 정식명칭은 대가리 분쇄기. 사람 머리를 이용해 공간에 균열을 일으키고, 또, 한번 사용할 때마다 머리가 박살 나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지.”

이완이 대가리 분쇄기 끝에 달린 짜부라진 머리를 보여줬다.

“편리하지만 한번 사용할 때마다 머리를 갈아 끼워줘야 해 번거롭고, 소모품(머리) 역시 상당한 실력자여야지만 해 비용이 제법 나가는- 빌어먹을! 누가 그런 걸 물어보랬어?!”

엉뚱한 질문을 하는 올리버에게 이완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더 화가 나는 건 이 와중에 자신이 친절히 설명해줬다는 거였다.

“내 성실함과 직업 정신이 원망스럽군. 이런 걸 일일이 대답해주다니.”

“음······. 성실하다는 건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여하튼 죄송합니다. 뭐든 여쭤보라고 하셔서요.”

“뭐든 물어보라 했지만, 내가 말한 뭐든은 그게 아니야! 보통 대화 흐름이란 게 있잖아? 인육 요리사의 유산이 뭐냐? 돈은 얼마나 될 거 같으냐? 뭐 그런 상식적이고, 속물적인 거 말이야.”

“······인육 요리사 님의 유산이란 게 뭐죠?”

올리버가 이완이 가르쳐준 대로 질문했다.

보통 사람이 했다면 놀리는 거라고 생각할 테지만, 상대는 올리버. 이완은 열불이 뻗치는 걸 참으며 대답해줬다.

“후······. 말 그대로 아카이브의 손에 죽은 인육 요리사가 남긴 재산이지. 너도 잘 알 텐데. 거기 있었으니까.”

올리버는 멈칫했다.

올리버가 갈로스로 간 게 딱히 비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알려진 사실도 아니었다.

왜냐면 공식적으로 올리버는 서류상으로만 있었기 때문. 세간의 시선은 인육 요리사를 쓰러트렸다고 알려진 멀린과 도시를 구하는데 일조한 테렌스, 야렐리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상태였다.

그런데 이를 이완이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다니. 조금 놀라웠다. 예상치 못한 날카로움이랄까?

“지금 엄청 실례되는 생각을 하는 거 같은데?”

“······아닙니다.”

올리버가 거짓말했고, 이완이 이를 꿰뚫어 보았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어도 한 대 때려주는 거였는데, 약하니까 참아 줄게······. 어쨌건, 요점은 너랑 같이 사업하고 싶다는 거야. 인육 요리사의 막대한 유산을 같이 털어먹자고. 고맙다고 해도 돼.”

“질문 하나 또 드려도 되겠습니까?”

“고맙다고 말하라니까······. 뭔데?”

“인육 요리사님의 유산이라는 게 정말 있습니까?”

이완이 거짓된 감정을 빛내진 않았지만, 올리버는 혹시 몰라 확인했다.

그도 그럴 게 인육 요리사가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에서 모든 재산을 압류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 액수가 상상을 초월해 세간에 적잖은 충격을 줘 기억하고 있었다.

“인육 요리사의 재산이 일부 압류된 건 맞지만, 모두는 아니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갈로스의 뒷세계를 반이나 장악했던 그 탐욕스러운 녀석이 허접한 공무원들에게 모든 재산을 들킬 만큼 허술하게 관리했을 거 같아? 어림도 없지.”

“아······.”

올리버가 납득하며 탄성을 냈다. 확실히 모두 찾았다고 신문에서 말하긴 했지만, 그걸 직접 본 것은 아니었으니.

란다에서 올리버가 배운 것 중 하나는 신문과 진실이 다를 수 있다는 거였다.

“인육 요리사는 갈로스 곳곳에 자기 비자금을 숨겨놨어. 갈로스는 돈도 많고, 땅도 넓은 나라니까.”

“그리고 그 재산을 찾기 위해 수많은 세력이 지금 싸우고 있지요.”

가만히 듣고 있던 바솔로뮤가 끼어들었다. 목소리와 억양, 감정 상태로 볼 때 뭔가 아는 눈치였다. 신기했다. 그는 Z구역에만 있는데.

“수많은 세력요?”

“예······. 살아남은 인육 요리사의 잔당, 밀리유, 정부의 하청을 받은 용병, 트레져헌터 그리고 검은손에 소속된 흑마법사 등. 수많은 세력이 싸우고 있습니다.”

“검은손이라면 퍼펫 님과 팬 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놈들 말고, 다른 놈들. 인육 요리사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야심가들이야.”

“야심가들이라면······?”

“검은손에 속하지만, 손가락이란 명칭을 얻지 못한 비교적 어정쩡한 놈들이지.”

올리버는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했다.

흑마법사로 이뤄진 범죄조직 검은손은 하나의 조직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자세히 파고들면 하나의 조직이라 말하기 뭣한 구석이 있었다.

명확한 우두머리가 없고, 지휘체계도 갖추지 않았으니.

하나의 조직이라기보다는 다수의 흑마법사 조직의 연합체 혹은 연맹에 더 가까웠다.

그중 가장 강한 흑마법사를 손가락이라 불렀을 뿐이고.

‘영생의 퍼펫, 인육 요리사, 영원한 아이 팬, 유괴범 피리 부는 사나이.’

올리버가 오랜만에 검은손을 대표하는 네 명의 흑마법사를 떠올렸다.

공교롭게도 올리버는 이미 그중 셋을 만나봤으며, 또, 그중 한 명은 죽고, 다른 한 명은 악마에 의해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적잖은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이완이 바로 이점을 지적했다.

“그래서 지금 갈로스에 난리가 났지.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포식자로 군림하던 자들이 사라졌으니, 어찌 날뛰고 싶지 않겠어?”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꼭 인육 요리사 님과 팬 님 덕분에 평화가 유지됐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들리는 게 아니라, 그게 맞아.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호기심을 가지며 되물었다. 손가락에 의해 평화가 유지됐다니. 아이러니했다.

“이상하고 모순적이게 들릴 수 있지만 엄연한 사실이야. 손가락이 있기에 다른 흑마법사가 기를 못 폈거든. 사자가 있으면 다른 짐승들이 눈치를 보는 것과 비슷하지.”

“재밌는 이야기군요. 전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요.”

“어른들은 아이에게 불편한 진실을 잘 이야기해주지 않는 법이니까. 흑백, 선악 단순하게 가르치지. 그게 쉽고 편하니까.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엄연한 사실이야. 특히, 인육 요리사가 이런 일을 아주 잘했지. 영역 인식이 강했거든.”

올리버가 인육 요리사를 떠올렸다.

사람은 사람을 먹는다고 주장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갈로스의 수도 라빌리를 생지옥으로 만든 그를.

흑마법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재밌게도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 여동생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 인물이기도 했다. 온몸이 꿰뚫리는 와중에도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악을 써댔으니까.

“물론, 좋은 의도로 그랬단 건 절대 아니야. 그놈은 깡패에 호랑말코 같은 새끼니까. 그럴 리가 없지. 그저 자기 밥그릇을 지킨 것뿐이야.”

“밥그릇이라면 갈로스 말씀입니까?”

“그래, 근방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한 갈로스에 자리 잡은 덕분에 인육 요리사가 성기사 못지않게 흑마법사들을 억눌렀거든. 갈로스 본토의 흑마법사는 물론, 주변 국가의 흑마법사까지.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직접 저녁밥으로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고요?”

바솔로뮤가 대답해줬다.

“맞습니다. 인육 요리사의 부재로 그의 조직과 영향력은 사실상 붕괴하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갈로스의 뒷세계에 거대한 공백이 생겼습니다. 덕분에 음지와 양지의 세력.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흑마법사들이 인육 요리사의 유산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제2의 인육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 말이죠.”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육 요리사를 쓰러트린 직후 해당 이야기를 들어서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디테일하게 파고드니 그 느낌이 조금 달랐다.

인육 요리사의 공백으로 혼란이 발생할 줄은 알았지만, 인육 요리사가 억제제 역할까지 했을 줄이야.

“······좀 흥미롭네요.”

“세상에 이유 없이 생기는 건 없고, 존재하는 한 역할이 없는 건 없지······.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갈 거지?”

이완이 올리버에게 제안했다. 정신을 조금만 놓았으면 지장까지 찍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음, 글쎄요······.”

올리버가 고민했다. 솔직히 평소였다면 거절했을 제안이었다.

인육 요리사의 유산이 엄청난 값어치를 지닌 것도 알겠고, 올리버 역시 돈이 좋긴 했지만, 평소 그만한 돈이 필요한 일이 없었으니까.

다만, 이번에는 경우가 좀 달랐다.

“······인육 요리사 님의 유산에 악마의 서적도 있습니까?”

“아까 전도 그렇고. 이제 좀 대화가 통하는구만······. 확실한 건 아니지만, 소문이 있긴 해. 인육 요리사의 유산 중에 엄청난 재화만 있는 게 아니라, 그가 수집한 특이체(特異體), 흑마법 서적, 악마의 서적 등이 있다고 말이야.”

“확실한 건 아니라는 거군요.”

“확실하다면 내 눈으로 직접 봤다는 건데, 그럼, 널 안 찾아왔지. 제정신이야?”

일리 있는 말이었다. 애당초 이런 종류의 일은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했다.

“······발견한 악마의 서적은 모두 제게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 악마의 서적 외에는 내가 가져도 되겠네? 아이템이나 특이한 원료, 재화 같은 거 말이야.”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잠시 고민했다.

“음······.”

“고민하지 마. 불안하잖아.”

“아이템이나 특이한 원료는 이완 님이 가지시되 재화는 공평하게 5대5로 나누면 어떻겠습니까?”

“아, 왜. 싫어. 왜?”

“저도 급한 건 아니지만, 돈이 필요하긴 하거든요.”

올리버가 며칠 전 마리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선택하는 사람들 지부가 재정난으로 허덕이고 있다는 이야기로,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필거렛은 과거 선택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수입이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불법적인 사업. 트집 잡힐 가능성이 커 마리는 란다에 정착하자마자 모든 생산을 중단하였다. 다름 아닌, 올리버의 부탁으로.

‘이후, 재개발 사업으로 다시 재정을 확충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한 상태지. 선택하는 사람들의 규모가 너무 커져서.’

그래서 올리버는 만약에 얻게 될 인육 요리사의 재화를 반씩 나누자고 했다. 물론, 올리버가 보유한 재산도 이제 상당한 편이지만, 굳이 벌 수 있는 돈을 안 버는 것도 이상했다.

“날 실망시키는군. 호구 같던 그 녀석은 어디 가고, 이렇게 약삭빨라진 놈이 된 거야. 돌려줘 내 호구!”

“죄송합니다. 당장 돈이 필요 없으면 양보해 드릴 텐데, 저도 돈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내가 만약에 싫다고 한다면?”

“음······. 저 혼자 갈로스로 가지 않을까 합니다. 아는 분이 있는데 잘하면 저랑 같이 일해주실 것 같아서요.”

올리버는 갈로스에서 만난 밀리유 루시앙 뮈라를 떠올렸다.

갈로스의 크라임 펌인 밀리유에 소속된 뮈라 패밀리의 두목으로, 올리버와 안면이 있었다. 만약, 밀리유가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두고 분쟁을 치르고 있다면 그 역시 참가했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 말을 들은 이완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듯이.

“이봐, 이건 아니지. 내가 좋은 정보도 줬는데, 이건 배신이지.”

“죄송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시기 전에 제가 뭔가 약속한 건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씨발, 논리적인데.”

“정말 죄송합니다. 돈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올리버가 선택하는 사람들의 재정 상황과 뭐가 됐건, 사업체의 공동 대표를 맡게 된 자신의 처지를 상기하며 대답했다.

허나, 이완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나도 돈이 필요하다고. 내 꿈을 위해!”

“꿈요? 그게 뭐죠?”

“수백억 란다를 도박과 술, 유흥으로 하룻밤 만에 탕진하는 거.”

이완이 결연한 각오를 빛내며 대답했다. 놀랍게도 그는 진심이었고, 올리버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

이완의 꿈을 들은 후, 올리버는 이완과 몇 분간의 대화를 나눠 합의점을 찾았다.

원래 이런 일은 올리버가 아닌 포레스트의 몫이었지만, 빠른 의사 결정이 필요한 일이라 올리버가 하게 됐다.

다행히 그동안 포레스트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게 있는 덕분인지, 얼추 만족스러운 협상안이 나왔다.

이완의 좋지 못한 표정과 감정이 그 증거였다.

“좆같네.”

“칭찬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언제쯤 출발할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왕이면 최대한 빨리 가는 게 좋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가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찾았을지 모르니까.”

이완의 말에 올리버는 바솔로뮤의 안내에 따라가던 복도 쪽 방향을 봤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란 복도 끝에는 개발 반대 위원회와 비슷한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한 기운이 짙게 깔려있었다.

놀랍게도 올리버는 저걸 보면서 호기심을 느끼는 한편, 전에 없던 약간의 꺼림칙함을 느꼈다.

이유는 올리버도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없고, 할 일이 많기 때문일까?

“음······. 조금만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해야 할 일이 있고, 준비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준비?”

“예. 여러 흑마법사분이 있다고 하니, 나름대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나쁘지 않군. 좋아. 어치피 나도 해야 할 작업이 있으니까······. 거기다 인육 요리사의 유산이 알려진 건 아직 초창기. 아수라장에 일찍 가는 것보다 조금 정리됐을 때 가서 날로 먹는 것도 나쁘진 않지.”

생각보다 흔쾌히 허락해 준 이완. 올리버는 그런 이완에게 감사를 표한 다음 바솔로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솔로뮤 님······. 죄송하지만, 일이 생겨서 그러는데 먼저 실례 좀 해도 되겠습니까?”

기껏 안내했건만, 떠나겠다는 올리버. 바솔로뮤는 약간의 아쉬움을 빛내면서도 곧 그 감정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올리버는 곧바로 왔던 곳으로 홀로 되돌아갔다.

올리버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이완이 얄밉게 말했다.

“이런 내가 방해한 건가?”

“······아니.”

바솔로뮤가 잠깐의 침묵 후 대답했다. 그리고 올리버와 정반대인 가던 길을 갔다.

“정말?”

이완이 바솔로뮤를 뒤쫓아가며 다시 물었다. 귀찮을 법도 했지만, 바솔로뮤는 개의치 않았다.

“정말 우연치 않게 방해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자네들의 비밀을 이야기하려던 것 같은데 아니었나?”

바솔로뮤가 대답했다.

“그렇긴 하지······. 허나, 중간에 떠나신 거라면 애당초 우리에 대한 관심이 딱 거기까지니. 아쉬워할 건 아니지.”

“허허······. 대단하구만. 그토록 기다린 구원자가 자네들에게 관심이 없는데 말이야.”

붕대로 칭칭 덮인 바솔로뮤의 얼굴이 아쉬움으로 살짝 일그러졌다. 왜냐면 알고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데이브가 자신들에게 그다지 크게 관심이 없다는 걸. 그런데도 이곳으로 안내한 건 자신들의 욕심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애당초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은 우리. 이미 부당한 운명을 짊어지신 분께 그 이상을 바랄 순 없지.”

바솔로뮤는 무엇인가 체념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마음속 한구석에는 희망을 품었지만.

잠시 후, 바솔로뮤와 이완이 지하 깊숙이 있는 하나의 문 앞에 도착했다. 아주 허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문으로, 끼익 열자 검고 물컹물컹한. 흡사, 살점과 같은 뭐라 표현하기 힘든 뒤틀린 공간이 펼쳐졌다.

그 이질적이고 불안한 공간 속에는 온갖 뒤틀린 인간들이 있었고, 그들은 거대한 검붉은 나무를 문 형태로 조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구원을 바라 돼, 어떤 결과나 나와도 받아들이며, 우리 할 일을 하는 것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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