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19화 (519/633)

519. 멸망한 땅의 주인 (2)

탁! 탁!

개발 반대 위원회의 원로 바솔로뮤.

그는 란다를 관통하는 거대하고 더러운 셈 강 앞에 서서 쿼터스태프를 두들겼다.

작은 소리와 함께 거대한 강줄기에 미세한 파문이 일더니, 강 아래에서 무엇인가 포착됐다. 아주 거대한 무언가.

놀랍게도 그것은 돌연변이였다. 환경오염이 심한 란다 강 주변에서 주로 나타난다고 하는 돌연변이.

그 크기가 꽤나 컸는데, 체감상 4에서 5미터는 될 것 같았으며, 생김새는 물왕도마뱀에 사람을 가미한 느낌이었다.

돌연변이 중에서도 뒤틀림이 심한 축.

하지만 올리버는 그러한 사실보다 이 돌연변이가 개발 반대 위원회 사람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사실이 더 신경 쓰였다.

이질적이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뭐라 설명하기 힘든 모순적인 느낌······. 하긴 당연한 걸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바솔로뮤가 부르니 나타난 것이겠지.

바솔로뮤는 아주 자연스럽게 거대한 물왕도마뱀-돌연변이 위에 올라탔다.

그의 등은 젖은 포장도로처럼 넓고 평평해 앉지는 못해도 가다가 미끄러질 것 같지는 않았다.

“올라타 주시겠습니까?”

정중한 바솔로뮤의 요청에 물왕도마뱀-돌연변이를 관찰하던 올리버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그 위에 올라탔다.

겉보기처럼 물왕도마뱀-돌연변이의 등 비늘은 단단하고 평평해 균형 잡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올리버가 올라타자마자 바솔로뮤는 물왕도마뱀-돌연변이에게 움직일 것을 명했고, 사람도 삼킬 것 같은 돌연변이는 얌전하게 갈색 강 위를 헤엄쳐 등 위에 태운 승객들을 강 건너편까지 옮겨주었다.

“어떻게 강너머로 오셨는지 궁금했는데, 이런 식으로 오셨군요.”

올리버가 거대한 셈 강의 폭을 확인하며 말했다.

이동하려면 배가 필수였지만, 개발 반대 위원회에서 배를 가지고 있진 않을 것 같았는데······. 중요하진 않지만, 가벼운 의문이 해소됐다.

바솔로뮤가 되물었다.

“신기하십니까?”

“솔직히 조금요······. 이 갈색 강 속에서도 살아남는 분이 있을 줄 몰랐거든요.”

실로 타당한 의견이었다. 셈 강은 거대도시 란다의 온갖 오물과 폐수가 한데 모이는 액체의 쓰레기장. 물고기는 사라진 지 오래며, 매년 재수 없게 강에 빠진 사람들은 목숨을 잃기 일쑤였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죽음의 강.

그런데, 아무리 돌연변이라 해도 멀쩡히 살아있고, 헤엄까지 친다?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올리버는 궁금했다. 이 돌연변이가 가진 특징일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원하신다면 대답해 드리지요.”

바솔로뮤는 제안했고, 올리버는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질문과 대답에서 중요한 건은 핵심. 당장 이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왕물도마뱀-돌연변이는 배보다 빠른 속도로 헤엄쳐 어느새 맞은편 Y구역 강가에 도착해주었다.

질척질척한 흙바닥과 널브러진 쓰레기 더미, 그 쓰레기 더미만도 못한 움막 등. Y구역은 올리버가 마지막 봤을 때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솔로뮤는 돌연변이 위에 사뿐히 내려왔고, 올리버도 뒤이어 내렸다.

바솔로뮤가 바로 길 안내를 하려는 찰나, 올리버는 그에게 양해를 구하곤 몸을 돌려 강 속으로 돌아가려는 돌연변이를 불러 세웠다.

“선생님.”

돌연변이의 이름을 몰라 올리버가 선생님이라고 아주 정중히 그를 불렀다.

예상치 못한 호칭이었는지 왕물도마뱀-돌연변이는 깜짝 놀란 채 고개를 홱하고 돌아봤고, 바솔로뮤도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자신을 등에 태워 데려다준 돌연변이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것이 최소한의 예의였으니까.

허나, 돌연변이는 사람과 도마뱀 그 중간 형태의 눈을 끔벅이더니, 어색한 듯 고개를 숙이곤 재빨리 강 아래로 들어가 버렸다.

쑥스러움, 창피함, 기쁨 등의 감정을 빛낸 것으로 보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인사를 마친 올리버가 몸을 돌려 바솔로뮤를 봤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솔로뮤 님. 이제 다시 가도록 하죠.”

***

“강 주변은 변화가 없는데, 안은 좀 많이 바뀌었네요.”

바솔로뮤의 안내를 따라 Y구역의 지나쳐온 올리버가 말했다.

Y구역은 Z구역과 함께 란다 시(市)조차 공식적으로 통치를 포기한 마굴(魔窟).

그 증거로 반쯤 손 놓은 X구역에는 그래도 시의원이라도 있었지만, Y, Z구역에는 그 시의원조차 없었다. 시(市)의 손이 닿지 않는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

덕분에 Y구역의 풍경은 란다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결이 달랐다.

불법 중측된 총기 공방이라던가, 시체를 이용한 무기 광고판, 돌연변이 조련소, 좀비 병사 광고판, 시체 매입소, 약재로 말리는 인간의 장기, 쇠사슬에 묶인 사람 등등 Y구역은 X구역 보다도 훨씬 낙후되고, 야만적인 풍경을 가졌다.

임무와 개인적 용건으로 두세 번 정도 방문한 적 있는 올리버 역시 그 광경을 두 눈 똑똑히 보았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본 Y구역의 풍경은 작지만. 꽤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특유의 야만성과 폭력성은 유지했지만, 금이빨이나 목걸이를 한 갱이라던가, 불법 클럽, 값비싼 고급 차량 등 급격하게 쌓아 올린 부(遊)의 흔적이 엿보였다.

“듣기로는 최근 장사가 잘되었다 합니다.”

“아시는 게 있습니까?”

“저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아, 말 되는군요······. 그럼, 누가 덕분에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지 아시나요?”

올리버가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레 물어봤다.

사실 Y구역의 이 정도 부의 축적은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왜냐면 이미 그런 흔적을 보았으니까.

이브(Eve)를 설득하기 위한 임무 중 만난 로드 갱이 대표적 예시로, 그들이 보유한 무기 중에 Y구역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가 꽤 있었다.

가령, 작살 총이라든가, 폐수 발사기, 작살 대포, 폭탄 창, 너클 건, 화염 방사기 같은.

참고로 포레스트가 말하길 로드 갱뿐 아니라 란다 밖으로 밀려난 비소속 갱들 전반에서 이와 비슷한 무장이 관측됐다고 했다.

‘각종 마공학 무기와 흑마법 아이템도 같이······.’

그래서 올리버가 물어본 거였다. 연관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마공학 무기와 흑마법 아이템, Y구역의 사제(私製) 무기를 도대체 누가 구매해서 뿌리는 건지 알기 위해.

그 정체와 저의가 궁금했다. 이러는 이유는 오직 하나 란다를 위협하는 것 외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바솔로뮤가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누군지 모릅니다.”

“아,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아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상했다는 듯 반응했다.

그도 그럴 게, 전혀 다른 루트의 물건을 세 개나 동시 공급하는 사람의 정체를 쉬이 알아내지 못할 거라 무의식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물어본 것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만약, 누군지 바솔로뮤가 안다면 행운인 거고, 모른다 해도 손해는 없는 거였으니.

그때, 바솔로뮤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원하신다면 알아봐 드릴 수 있습니다.”

“예? 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먼저 물어본 올리버가 막상 알아봐 주겠다고 하자 굳이 사양했다. 바솔로뮤가 그 점을 짚었다.

“궁금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뭐······. 궁금하긴 하지만, 굳이 여러분을 귀찮게 해드리고 싶은 건 아니라서요.”

“어렵지도, 딱히 귀찮지도 않습니다. 약간의 돈을 주면 알아서 찾을 테니까요.”

애매한 이유로 올리버가 거절하자 바솔로뮤가 조금의 망설임 없이 자연스레 말했다.

아까 전 올리버도 이에 관해 물어볼 때 자연스레 물어보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리 준비한 대사를 꺼낸 것에 불과. 지금 바솔로뮤의 말은 그 경우가 달랐다.

미리 준비한 게 아닌, 그냥 평소 습관 같은 발언이었다. 몸에 밴 정말 자연스러운 반응.

이런 문제에 올리버가 전문은 아니었지만, 포레스트나 에디스, 제인, 멀린, 내무부 장관 등 나름 란다의 상류층을 봤기에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아니, 솔직히 그 이상이었다. 그들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여유 있는 발언이.

물론, 올리버가 과도하게 생각한 걸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짚고 넘어갔다.

“바솔로뮤 님께선 돈이 많으신 편입니까?”

우뚝.

Z구역 입구에 진입한 바솔로뮤가 갑자기 멈춰 섰다. 겉보기에는 Y구역과 비슷했지만, 특유의 공기나 분위기가 한층 더 음울하고, 불안함을 자아냈다.

그리고 Z구역 입구 앞까지 가본 적은 있어도 안쪽으로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인 거 같았다.

“죄송합니다. 감히, 건방지게 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바솔로뮤가 사과했다. 올리버가 답했다.

“아뇨, 그런 뜻으로 여쭤본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 여쭤본 겁니다. 전 개발 반대 위원회 분들이 강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부유한지는 몰랐거든요······. 이런, 어째 말하고 보니 엄청 차별적인 발언 같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저희의 모습이 재물과 거리가 있는 건 사실이니······. 허나, 꽤 부유한 편입니다. 그건 더 이상 저희에게 중요한 게 아니지만요.”

“예?”

올리버가 되물었다. 란다에서 신분을 초월한 공통된 언어와 가치관은 단 하나, 돈.

이유와 정도에 차이만 있을 뿐 어찌 됐건 다들 돈을 우선순위에 뒀다.

사업가들과 자본가들은 돈 그 자체가 목적이며, 마탑의 마법사들은 안정적인 연구를 위해 돈을 원했고, 심지어 속죄를 위해 과거의 거지패를 이끌고, 현재 복지단체를 운영하는 캔트조차 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돈이 있어야 운영이든 뭐든 할 수 있었으니.

아니, 애당초 이런 말을 일일이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노릇이었다.

돈을 원하는 건 호흡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 마찬가지로 올리버 역시 돈을 좋아했다. 있으면 여러모로 편리하지 않은가?

헌데, 바솔로뮤는 정말 돈에 관심이 없었다.

올리버는 궁금해져서 질문했다.

“얼마나 부유하시죠?”

“아카이브 못지않게 부유할 거라 생각합니다.”

천 년 동안 축적된 아카이브의 재산 이상이라······. 바솔로뮤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쿼터스태프를 길게 잡아 Z구역에 세워진 허름한 건물 입구를 톡 쳤다.

낡아빠진 나무문은 살점을 뭉친 듯한 바솔로뮤의 쿼터스태프에 닿자마자 쩌저적 금이 가더니, 먼지가 가득 쌓인 금은보화를 토하며 무너져 내렸다.

농담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금은보화였다.

동화 속에서나 볼법한 금은보화. 노란 금화를 바탕으로, 상아로 만든 단검 칼집, 주먹만 한 루비, 왕관, 이국의 보석, 엄지만 한 에메랄드를 박은 목걸이까지. 다소 현실성이 없는 금은보화가 장난처럼 쏟아져 나왔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비현실적인 광경에 올리버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대단하군요. 진심으로요.”

“칭찬 감사드립니다.”

“건물 안에 금은보화가 가득 차 있는 건가요?”

계속해 쏟아져 나온 금은보화를 가리키며 올리버가 물었다.

“예.”

“음······. 혹시, 제가 이런 질문할 줄 알고 미리 준비한 겁니까?”

올리버는 말하고 나서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를 보는 게 아닌 이상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었다. 설사, 미래를 본다고 해도 굳이 이런 준비를 할 이유가 없었고.

올리버를 놀라게 하는 것 외에는 어떤 이점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질문을 정정했다.

“왜 보물을 건물에 넣어둔 건지 물어볼 수 있겠습니까?”

“앞서 말했듯이 저희에게 더 이상 재물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고요.”

올리버의 귀에 이건 비교도 안 되는 막대한 보물이 안쪽에 숨겨져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여기 눈앞에 있는 건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푼돈.

앞서 말했듯이 대단하였는데,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거 제가 드렸던 질문과 상관이 있는 겁니까? ······멸망한 땅의 주인 말입니다.”

바솔로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바로, 저희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도대체 정체가 뭐죠?”

“이 란다에 대재앙을 일으킨 어리석은 왕족이자, 귀족들입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