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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516화 (516/633)

516. 모순 (4)

잉크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이 시커먼 인형(人形).

그 인형(人形)은 머리카락과 손톱이 몹시도 길었다.

분명 눈앞에 존재했지만, 이 세상 존재가 아닌 듯한 이질적이고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올리버는 과거 저 모습을 본 적 있었다.

조셉 패밀리를 떠나고 다시 재회한 마리가 딱 한 번 보여준 적 있었기에.

후웅━━쾅!!

세계수의 마력을 깨고 허공에서 나타난 마리는 릴리스와 올리버를 보자마자 손을 번쩍 들더니 섬광처럼 휘둘렀다.

검처럼 곧고 길게 뻗은 손톱은 눈으로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움직여 돌바닥 위에 깊은 자상을 남겼으나, 릴리스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재빠르게 피했다.

마법과 흑마법을 체계적으로 혼합한 극도의 기술.

덕분에 올리버는 릴리스의 주먹을 그만 맞을 수 있었다.

“마리······. 어떻게?”

갑작스러운 마리의 등장에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분명, 산하에 있는 지부 중 하나에 문제가 생겨 떠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신대륙에서 복귀한 직후에도 만나지 못했고.

그때 올리버는 문득 이곳 노프턴과 마리의 지부인 햄체스가 멀지 않다는 사실과 햄체스에서 란다로 돌아오기 위해선 이곳 노프턴을 경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밌는 우연이었지만, 올리버에겐 곧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마리와 릴리스가 서로의 목숨을 걸고 공방을 주고받았기 때문.

온몸이 밤바다처럼 검게 물든 마리는 올리버의 다친 얼굴을 보자마자, 이성이 흐릿해질 극단적인 분노를 내뿜더니, 사신처럼 조용히 하지만 눈으로도 좇아가기 힘든 속도로 움직여 릴리스에게 다시 덤벼들었다.

너무 빨라 흐릿한 검은색으로 보이던 마리는 릴리스 바로 앞에서 선명해지더니 손을 휘둘렀다.

화앙!!!

공기가 두 쪽으로 갈라지며 사방으로 후폭풍이 몰아닥쳤다.

엄청난 속도와 위력. 단순하지만 그만큼 공격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허나, 그 못지않게 릴리스도 재빠르게 상체를 숙여 마리의 피하고는 자세를 잡더니 회전을 먹인 펀치를 날렸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1초도 되지 않아 기관총처럼 꽂힌 수십 발의 주먹들.

강력한 육신과 그 육식에 덧씌운 감정과 마력을 고려해도 엄청난 속도였고, 위력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한 방 한 방에 마리의 육체는 짓뭉개져 온몸에 구멍이 생겼다.

그러나 올리버는 그 모습을 보고도 충격이나 슬픔,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이 굳어진 것은 릴리스였다.

얼굴과 몸이 짓뭉개져 다진 고기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 마리가 쓰러지긴커녕 오히려 회복했기에.

몸을 뒤덮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질이 실처럼 서로 엮여 말이다.

‘도대체 저게 뭐지?’

회복 불가능한 상처조차 가볍게 수복하는 마리를 보며 올리버가 생각했다.

흑마법과 비슷한 것 같았지만, 다소 결이 달랐다.

과거 올리버는 마리와 싸울 때 저 모습을 본 적 있었으나, 그 정체는 꿰뚫어 보지 못하였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실력이나 학식이 몰라보게 좋아진 지금조차 알 수 없었다.

‘대신, 비슷한 건 떠올라······. 불타버린 자.’

올리버가 신대륙에서 본 악마를 떠올렸다. 마리의 머리 위에 생긴 정체를 알 수 없는 손이 나타나자 더욱.

촤악!!

순식간에 몸이 으깨진 부상을 회복한 마리는 다시 손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 공격을 가했다.

체감상 원래 팔길이의 2, 3배는 길어진 듯한 손톱은 천장을 따라 벽, 바닥까지 깊은 자상을 남겼다.

그렇다 해도 공격 자체는 단순해 릴리스는 앞서 보여준 재빠른 회피술로 피한 다음, 지연 없이 곧바로 공격을 가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리 역시 기형적이라고 할 정도로 재빠르고 유연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하고는 반격을 가했다.

색을 칠하듯 올리버가 있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베어내기 시작한 것. 릴리스 역시 거기에 맞춰 사방으로 피하더니 반격을 가했다.

한 호흡 만에 수십 번은 이뤄지는 공격과 회피, 반격은 이 공간만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주변의 공기를 일그러트리고, 저미며, 빨아들였다.

축적되는 충격에 마력으로 빗어진 공간 자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할 때쯤, 릴리스의 호흡이 찰나와 같이 아주 짧게 흔들렸다.

공간에 데미지가 축적됐기 때문일 터.

보통의 사람이라면 눈치도 못 챌 짧은 순간이었으나, 분명히 존재했고 마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촤악!

마리가 손을 휘두르자 릴리스의 한쪽 팔이 여섯 토막 났다.

퍼펫처럼 송장인형의 통증을 제거했을 테니, 아프진 않겠지만 팔이 잘리는 시각적인 충격은 익숙하지 않은지 릴리스는 반격, 회피도 하지 못한 채 일순간 행동이 정지했다.

목숨을 걸고 공방을 주고받는 난전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

마리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추가 공격을 넣으려 했다.

“마리.”

올리버가 마리를 불러 세웠다. 구체적인 근거는 없으나 방금 일격을 허용했다면 릴리스에게 영구적인 피해를 입힐 것을 직감했기에.

사신처럼 조용히 공격에만 집중하던 마리는 올리버의 부름에 행동을 멈췄고, 치명적인 일격을 입을 뻔한 릴리스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며 공간을 뛰어넘어 마리와 거리를 벌렸다.

다 잡은 먹잇감을 놓친 상황이었지만, 마리는 화를 내긴커녕 가면처럼 검게 물든 얼굴로 올리버를 불렀다.

“괜찮으신 겁니까?”

“전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가면처럼 변한 마리의 얼굴에 안도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멈춰진 난전. 이제 대화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그때, 바닥이 기울어졌다.

거리를 벌린 릴리스가 마력으로 구성한 해당 공간 자체를 조작해 바닥을 90도로 기울인 것.

술식을 조작해 가능할 줄은 알았지만, 실제로 보니 꽤 신기했다. 공간 자체가 움직인다는 게.

덕분에 바닥은 벽이 됐고, 올리버와 마리는 기우뚱거리다가 각각 쿼터스태프와 손톱을 바닥에 찍어 매달리는 상태가 되었다.

벽에 매달린 형국이 된 올리버는 이대로 내려가 착지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아래를 내려다봤지만, 벽이 있어야 할 공간에는 벽이 사라지고 대신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만 있을 뿐이었다.

너무 깊어 바닥은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연.

올리버는 릴리스의 다음 행동을 본능적으로 예측하곤 위를 올려다보았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릴리스는 해당 공간을 구성하는 세계수의 마력을 상당수 해제하더니, 잘려 나간 자신의 팔을 구축하는 재료로 사용했다.

벽돌과 철근, 콘크리트 조각, 각종 잡동사니 형태의 마력이 물결처럼 모여 물리법칙을 무시하듯 한 점에 수렴하더니, 릴리스의 팔로 재구축됐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여성의 팔이었지만, 올리버는 흑마법사의 눈을 통해 압축된 마력의 질량을 피부로 느끼듯 알 수 있었다.

뭐라 표현해야 좋을까? 거대한 건물을 압축하고 압축해 사람을 팔로 만든 느낌이랄까?

여하튼, 정상에서 아득히 벗어났다.

마력의 과도한 압축에 당장 폭발에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팔 위를 덮은 수많은 술식이 이를 막아 줄 뿐 아니라, 팔의 위력과 효율을 최대로 높여줬다.

릴리스는 그 상태로 총구를 겨누듯 팔을 뒤로 당겼다.

목표는 마리.

놀라운 것은 마리도 겁먹긴커녕 맞상대하려고 한다는 사실이었다.

머리 위에 있던 손이 한층 더 선명해지더니, 마리는 길게 자란 머리카락으로 온몸을 덮어 육체를 강화. 손톱을 원래 크기로 되돌렸다.

공격 범위를 줄이고 대신 위력을 높인 것.

올리버도 예상하지 못한 싸움의 양상. 그러나 단 하나는 확실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대로 저 둘이 부딪히면 한 명은 무사하지 못했다.

‘그건 싫은데.’

다급한 상황 속에서 올리버는 판단했고, 싫은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움직였다.

원래는 이번 임무 중 가급적 마법만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가급적을 뛰어넘은 상황을 고려해 품 안에서 대량의 감정과 자연의 힘이 담긴 시험관을 꺼내 추출했다.

그와 동시에 올리버는 자신의 그림자에게 부탁했다.

“그림자.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시커먼 올리버의 그림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동그랗고 맑은 사백안을 떴고, 그사이 릴리스는 극한으로 압축한 팔과 중력, 다릿심을 이용해 아래로 돌진했다.

상식을 초월한 운동 에너지에 공기가 비명을 지르며, 릴리스는 하나의 유성이 되어 한줄기 선을 그리며 마리를 향해 추락했다.

마리는 한 마리의 검은 짐승으로 변해 손을 내질렀다.

[블레스(Bless)]

1초를 수백, 수천 번으로 쪼갠 듯 한없이 짧은 찰나, 올리버는 매달린 벽에 자연의 힘과 감정을 뒤섞어 주입했다.

투입된 감정은 공간을 구축하는 릴리스의 술식 틈새를 파고들었고, 자연의 힘은 술식의 근원이 되는 세계수 내부로 침식해 들어갔다.

원래라면 릴리스의 통제력이 강해 쉽지 않았을 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격에 치중한 나머지 공간 자체의 술식에는 빈틈이 생겨 파고들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어느새 코앞까지 가까워진 마리와 릴리스.

그때, 술식을 모조리 이해, 잠식한 올리버가 술식을 발동했고, 마리와 릴리스 사이로 마법진이 형성되더니 올리버가 그 위로 나타났다.

━━━━━━━━!!!

어떠한 말과 문자로도 표현하기 힘든 굉음이 쩌렁쩌렁 울리며 공기가 한 점으로 구겨지더니 충격파가 원구 형태로 퍼져나갔다.

눈으로도 선명하게 보이는 충격파는 그 자체로 재앙이었고, 그 재앙은 점점 넓게 퍼져 주변의 공간을 유지하는 술식을 파괴했다.

건물이 무너지고, 산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마력으로 이뤄진 공간이 붕괴하였으며, 위아래가 없는 허공의 된 그때, 양팔에 그림자를 두른 올리버가 마리와 릴리스의 공격을 막은 상태로 공간을 재구축했다.

술식의 연결점 파괴로 허공을 날아다니던 파편들은 거꾸로 시간이 흐르듯 움직여 원래 모습을 복구하였으며, 뒤틀린 공간도 원래 상태로 돌아와 마리와 올리버는 바닥에 매달리는 게 아닌 다시 서 있는 상태가 되었다.

“진짜 아프네요······. 특히 오른팔이요.”

올리버가 양편에 있는 릴리스와 마리를 보며 말했다.

“이 술식을 단번에 이해한 건가요······?”

릴리스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올리버가 이게 가능한 존재인 건 알았지만, 그래도 막상 당해보니 당혹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마탑의 연구와 퍼펫의 연구가 합쳐져 이론상으로는 완성된 기술이라지만, 세계수의 정수인 자신이기에 구현 가능했으니.

이에 올리버가 담담히 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릴리스가 이미 완성한 술식에 끼어들어 제가 통제권을 가져올 수 있었거든요. 잠시만요.”

올리버는 몇 번이나 자신을 후려친 릴리스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듯이 평범히 말하곤 뒤돌아 마리를 봤다.

릴리스가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믿듯.

“음······.”

올리버는 온몸이 시커멓게 물든 마리를 살펴보며 침음성을 냈다.

그녀는 의도치 않았다지만 올리버를 공격했다는 사실에 놀란 듯 굳은 채 서 있었고, 덕분에 올리버는 마리의 상태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역시, 보통 흑마법이 아니었다. 육체를 강화했다지만, 질병계열 흑마법의 그것과 너무 판이했다.

특히, 마리의 머리 위에 있는 손은 불타버린 자와 비슷하다는 것 외에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릴리스. 혹시, 마리 위에 있는 손이 뭔지 아시나요?”

이브를 납치하고, 자신을 두들겨 팬 릴리스를 향해 올리버가 순수하게 의견을 구했다.

“손요······?”

“아······.”

릴리스의 대답을 듣자마자 올리버가 탄성을 냈다. 아무래도 릴리스에겐 이 손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

세계수의 정수(精髓)인 그녀에겐 보이지 않거나 혹은 올리버의 눈에만 보이는 거였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문제. 그 탓일까? 올리버는 처음 릴리스와 대면했을 때 들었던 난감한 질문이 생각났다.

휘익!

올리버가 난감한 질문을 깊이 파고들기 직전 쿼터스태프를 휘둘러 마리의 머리 위에 있는 손을 후려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손은 다행히도 쿼터스태프에 의해 연기처럼 그 형체를 잃으며 사라졌고, 마리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마리. 그녀는 강화된 육체의 반동 탓인지 한순간 균형을 잃었고, 올리버는 그녀를 받쳐주었다.

“아······.”

“괜찮습니까? 마리.”

“예······. 예! 괜찮습니다”

놀란 마리가 대답했다.

올리버는 마리를 부축해 세워준 후, 다시 릴리스를 돌아봤다.

세계수의 방대한 마력을 한 점에 담은 신기는 놀라운 기술이었지만,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닌지 그녀의 육신은 망가져 있었다.

몽둥이에 얻어맞은 인형처럼 몸 곳곳에 난 금이 그 증거.

올리버는 릴리스에게 다시 부탁했다.

“릴리스. 죄송하지만, 이브를 놔주고 그냥 가주실 수 있을까요? 많이 다치신 것 같은데요.”

“협박하는 건가요? 부탁하는 건가요?”

“둘 다 이긴 하지만, 부탁이 조금 더 큽니다.”

“흥, 위로가 좀 되네요.······ 근데, 저쪽은 싫은 눈치인데요.”

릴리스가 금이 간 몸을 추스르며 한쪽을 봤다.

그곳에는 약해진 술식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마법사들 한 무리가 있었다.

같이 온 데릭과 야렐리, 언너는 물론, 처음 보는 마법사까지.

분위기를 봐서는 마탑의 마법사인듯했는데, 약해졌다곤 하나 이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 것으로 볼 때 상당한 학식과 실력을 갖춘 자들인 듯했다.

이를 대변하듯 그들은 세계수에 갇힌 이브와 릴리스를 단번에 알아보곤 탐욕을 번뜩였다.

가장 앞에선 마법사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제논 씨. 이제부터-”

-팟!

이름 모를 마법사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올리버는 릴리스에게서 빼앗은 세계수와 공간에 대한 지배권을 발동. 갑자기 나타난 마법사들을 저 멀리 바깥으로 내보냈다.

이 술식을 구축하는 건 어려워도, 구축된 술식을 흑마법이란 편법으로 사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 릴리스가 올리버를 봤고, 올리버가 말했다.

“저쪽이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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