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13화 (513/633)

513. 모순 (1)

발밑에 형성된 마법진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진 올리버. 

그 모습을 본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탑에서 온 야렐리와 데릭, 언너는 물론이고, 릴리스와 같은 편인 전통 스카디 학파 마법사들조차 말이다. 

다들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치, 꿈이라도 꾸듯. 

“끄아아아악!!” 

비명소리가 울리며 모두 꿈에서 깼다. 

비명을 지른 것은 다름 아닌 빅토르로, 데릭이 단검으로 그의 손을 찔러버린 것이었다. 

덩치 차이가 심해 보통이라면 쉽지 않았겠지만, 올리버에 당해 냉기로 온몸이 꽁꽁 언 빅토르는 반항하지 못한 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데릭이 찔러 넣은 단검을 휘휘 저으며 질문했다. 

“야, 덩치.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딜 데려간 거야?” 

감정이 섞인 목소리와 감정이 섞인 칼날에 빅토르는 계속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이 개자식이······!”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나 봐?” 

데릭이 칼날을 쑤시다 못해 열기(熱氣)까지 추가했다. 공기 중에 고기 타는 냄새가 퍼졌고, 빅토르의 비명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의 동료들이 움직이려 했지만 채 발을 떼기도 전에 그들의 다리가 어떠한 낌새도 없이 쩌저적 얼어붙었다. 

야렐리가 마안(魔眼)의 힘을 사용한 것으로,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어찌나 차갑고 매서운지 얼음을 다루는 스카디 학파 마법사들은 그렇다 할 반항 한 번 못하고 기가 꺾였다. 

분위기를 완전히 휘어잡은 야렐리.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사실에 어떠한 감흥도 느끼지 못한 채 빅토르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주 차분하고 차갑게. 

“그를 어디로 데려갔지?” 

빅토르는 비명도 욕설도 내뱉지 않고 침묵했다. 데릭의 위협보다 더 큰 공포를 느꼈기 때문으로, 본능이 그에게 정말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자신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는 빅토르는 침묵했고, 그렇게 얼음보다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기를 잠시, 야렐리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했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 숨이 붙어야 대답을 들을 수 있지.” 

데릭과 야렐리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뒤에는 마탑의 마법사들이 있었다. 

그것도 각 학파의 주류 라인에 속한 마법사들이. 

*** 

“음······.” 

올리버가 침음성을 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거대하지만, 무너졌고, 지저분하며, 버려진 듯한 지하도. 아무리 살펴봐도 F구역의 오염구역이었다. 

분명, 란다 밖 소도시. 스카디 학파와 싸우던 중이었건만, 갑자기 오염구역······. 정확히는 오염구역을 마력으로 구현한 곳이라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었다. 

“혹시, 릴리스의 작품인가요?” 

올리버가 오염구역 한쪽에 앉아 있는 여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빛날 정도로 새하얀 피부, 진짜 금처럼 반짝이는 머리카락, 조각한 듯 가느다란 몸 등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에게······. 뭐, 외관보다 내부가 더 말이 안 되긴 했지만. 

금발의 여성. 릴리스가 답했다. 

“예, 멋있죠?”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멋있네요······. 마탑이 연구 중이던 프로젝트긴 하지만요.” 

“어머, 아시네요?” 

릴리스가 예의를 가장한 조소를 날렸다. 아름다운 외모와 합쳐져 그녀의 도발은 더욱 큰 힘을 발휘했지만, 상대가 올리버라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저 대화를 이어갈 뿐이었다. 

“들었거든요. 도난당한 프로젝트가 대충 뭔지요. 세계수를 이용한 마법의 장거리 전개, 세계수에 깃든 마력의 에너지화, 세계수의 기억을 현실로 구현하는 술식, 신체 일부를 이용한 생물의 육신 재구현 등등요······. 전부 흥미로운 주제라, 기억하고 있습니다.” 

“배가 아프시겠군요. 연구 중인 프로젝트를 저희가 덥석 낚아채 완성해서요.” 

올리버가 고개를 저었다. 

“놀라긴 했지만, 배가 아프진 않습니다.” 

“그래요?” 

“예. 해당 술식을 완성한 건 진심으로 놀랍지만, 이미, 퍼펫 님께서 연구하던 내용이었을 테니까요. 배가 아프진 않습니다. 누가 됐건 완성했으면 된 거지요.” 

올리버가 갑자기 퍼펫이란 단어를 꺼냈다. 

몇 단계의 대화와 탐색을 훌쩍 뛰어넘은 추론. 허나, 올리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면 릴리스의 육신은 다름 아닌 퍼펫의 작품이었으니까. 

“아닌가요?” 

올리버가 릴리스를 보며 물었고, 그녀가 답했다. 

“맞아요······. 어떻게 아신 거죠?” 

“퍼펫 님의 송장인형을 이미 세 차례나 봐서요. 송장인형은 사람의 손길 한 땀 한 땀 들어가야 하는지라, 자세히 살펴보면 누가 만든 건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퍼펫 님이라 생각한 겁니다.” 

한평생 송장인형만 만들어봐야지만 할 수 있는 말을, 얼굴에 주름 하나 없는 올리버가 지껄였다. 

아주 오만하기 그지없는 발언. 그러나, 릴리스는 따지지 않았다. 

왜냐면 올리버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존재였으니까. 아니, 자격이란 단어조차 우스웠다. 

오만이니, 자격이니······. 세상 무엇이든 정할 수 있는 존재에겐 그런 개념을 덧붙일 수 없었다. 

그저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것뿐······. 아니면, 인지하지 않았거나. 

“왜 그러시죠?” 

생각에 빠진 릴리스에게 올리버가 물었다. 그녀가 다시 대꾸했다. 

“아뇨, 웃겨서요······. 송장인형은 사람의 손길이라니. 재밌는 말이라서요.”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댔다. 하루 1시간씩 꾸준히 투자해 유머 감각을 키웠다고 자부했건만, 그 말이 어디가 웃긴지 이해가 안 됐다. 

설마 자신도 모르게 농담을 하는 경지에 이른 걸까? 아니면, 아직 이해가 부족한 걸까? 

올리버가 고민하는 그때, 릴리스가 질문했다. 

“근데, 어떻게 아신 거죠? 퍼펫이 마탑 프로젝트와 비슷한 연구를 이미 한 번 한 걸요.” 

“그냥요.” 

올리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성의 없는 대답을 했다. 하지만, 이건 진심이었다. 

“수백 년 동안 연구만 하신 분이니, 왠지 이런 연구도 했을 것 같아서요. 어지간한 조직이나 나라보다 오래 사신 분이지 않습니까?” 

“수백 년을 살았다고 흑마법사가 마법사의 학문을 연구한다고요?” 

“예. 마탑 사람들은 싫어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마법사나 흑마법사나 제가 볼 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합니다. 어느 정도 정진하면 수렴되는 부분이 있달까요? 뭣보다······.” 

올리버가 릴리스에게서 시선을 때 주변을 살펴봤다. 

세계수의 기억과 세계수에 깃든 마력을 이용해 완벽하게 구현한 ‘가상의 세계’ 혹은 ‘마력의 세계’를 말이다. 아니지, ‘세계수의 세계’인가? 

“······마탑에서 연구 중이긴 했으나, 말 그대로 연구 단계. 프로젝트를 훔쳤다고 이걸 단숨에 완성하는 건 말이 안 되지요. 그러니-” 

“-퍼펫이 이와 비슷한 연구를 이미 했을 거다! ······이 말씀인가요?” 

주변을 둘러보던 올리버의 시야 앞으로 릴리스가 갑자기 나타났다. 

공간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멀린처럼, 인지를 초월한 악마처럼 제약 없는 자유로운 이동. 

놀라운 광경이었지만, 올리버는 곧 그 원리를 파악했다. 

이 공간은 다름 아닌 릴리스가 구현한 공간. 즉, 그녀의 손바닥 안이라 할 수 있었다. 이곳이라면 릴리스가 자유롭게 공간을 뛰어넘어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이 말도 안 되게 거대하고, 섬세한 술식을 구현하고 유지할 정도로 그녀의 공간 마법에 대한 이해는 깊었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혹시, 틀렸나요?” 

금발의 여성이 올리버의 눈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바라봤다. 한참을 바라보다 여성이 답했다. 

“아뇨, 맞아요. 퍼펫은 이미 세계수에 관해 독자적인 연구에 들어갔었죠. 드루이드 원로를 해치우는 무리수를 감행하면서까지요. 죽을 뻔했지만 성공했죠······. 퍼펫에 대해 잘 아시네요?” 

“세 번 정도 만나봤거든요. 아이스크림도 같이 먹었고요.” 

“아하! 그래요?” 

“예······. 무슨 문제 있습니까?” 

올리버가 릴리스의 노골적인 반응과 요란한 감정 변화를 보며 물었다. 

그녀는 올리버에 대한 여러 감정을 빛냈다. 서운함, 분노, 의문, 기대, 약간의 애정, 그 애정을 부정하는 감정 등. 

어찌나 강렬한지 올리버조차 약간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와 동시에 판도라와 이브가 떠올랐다. 

헤임달의 도움으로 학습을 통해 안정화된 판도라(Pandora)와 드루이드에게 사로잡혀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이브(Eve)가. 

왜냐면 릴리스는 그 둘을 섞어 놓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학습을 했으나, 불안정한······. 실로 모순적인 상태라 할 수 있었다. 

릴리스가 답했다. 

“문제는 없어요. 퍼펫을 만나고,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는 게 불법도 아니고요······. 아니, 불법인가? 그치만, 그건 인간의 법. 전혀 문제 될 게 없죠. 다만, 이상해서요. 퍼펫 같은 건 싫어하는 줄 알았거든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올리버의 질문에 릴리스가 손뼉을 쳤다. 

짝 소리에 맞춰 손에 모인 섬세한 마력에 반응하더니, 해당 공간 전체가 실시간으로 변화했다. 

마치, 시간을 이동하듯, 공간을 이동하듯 풍경이 빠르게 바뀌었다. 

오염구역 지하실에서, 지상, 숲, 도시, 마을, 황무지 그러다 다시 어떠한 지하실로 변했다. 지하 실험실 말이다.

“므으으으으으······!!” 

웬 지하 실험실에는 수많은 임산부가 있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수술용 침대 위에 묶여 있었다. 잠시 후, 가운을 걸친 한 남성이 다가왔다. 

몹시도 큰 키에 창백한 피부, 매부리코, 도드라진 광대뼈, 해골 같은 인상의 40대 남성으로, 그는 한 임산부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드르륵. 드르륵. 음산한 바퀴 소리가 울렸다. 

“끄으······! 끄으으으흑!!” 

튀어나올 듯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지르는 임산부. 그녀가 도착한 곳은 한 수술실로, 창문을 통해 그림자가 비쳤다. 

남성의 그림자는 수술용 침대를 고정했고, 고정을 끝마치자마자 메스를 들어 보였다. 그 메스는- 

“-이게 뭐죠?” 

올리버가 고개를 돌려 릴리스를 바라봤다. 

“퍼펫이 수백 년에 걸쳐 한 수백, 수천, 수만 가지 실험 중 하나요. 하루 단위로 태아의 표본을 만들었죠.” 

“이걸 왜 보여주시는 거죠?” 

“이상하고, 모순돼서요?” 

고고해 보이던 릴리스가 과장된 몸짓을 보이며 걷기 시작했다. 

고개는 삐딱하게 까닥이고, 어깨는 으쓱이며, 양손은 활짝 편 채, 엉덩이는 좌우로 흔들었다. 

마치 아이처럼 장난스럽고 천진난만한 모습. 그러나 그 내면에는 엄청난 불만과 분노가 쌓여있었다. 올리버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알 수 없는 것투성이. 올리버는 알기 위해 대화를 이어갔다. 

“뭐가 이상하고 모순적이다는 거죠?” 

“얼굴 몇 번 본 꼬맹이를 구하겠답시고 혼자 마텔에 쳐들어가신 분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인체 실험을 자행한 퍼펫에겐 호의를 가지고 있는 거요. 이상하고, 모순적인 거 아닌가요?” 

“······.” 

올리버는 침묵했다. 뭐 릴리스가 그렇게 볼 수도 있긴 했다. 

“글쎄요. 로스번을 이야기하시는 거면, 그건 그냥 개인적인 거라······. 퍼펫 님도 제게는-” 

“-이것도 이상하죠. ” 

릴리스가 검지를 치켜들었다. 황금 같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푸른색, 자두색, 보라색, 빨간색, 분홍색으로 휘황찬란하게 변하였다. 

“로드 갱 나부랭이는 몇 번이나 좋게 설득하더니, 방금 전의 호텔 나부랭이는 거대한 쇠망치로 머리를 으깨 죽였잖아요. 쾅!” 

릴리스는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을 내리쳤다. 

“일라이 님은 제 얼굴을 봐서······. 호그 씨는 개인적으로 제가 필거렛을 통해-” 

“-뭐, 자연스러운 걸 수도 있죠. 사람이란 건 아주 가볍고, 변화무쌍해 거리,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존재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릴리스가 말꼬리를 흐리며 올리버를 다시 바라봤다. 그녀의 몸동작은 마치 춤처럼 경쾌하고 보기 좋았으나, 이상하게도 올리버는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당신은 자기 흥미만 관심 있는 분이니까요. 뭐가 있든, 뭐가 생기든,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개의치 않지요. 근데, 여기서도 모순이 생기네요.” 

“저기-” 

“-호기심 때문에 안정된 조직도 버리고 홀로 거리로 나가신 분이 어찌해 자신에 관해서는 그토록 소극적인 걸까요?” 

“소극적이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저는 잘······.” 

“세상 바깥 존재, 감정과 마력을 뒤섞으며, 수련 없이 자연의 힘을 다루고, 악마마저 존경과 예를 갖추며, 정령조차 두려워하고, 한때 대재앙으로 멸망한 땅의 주인들이 위대한 분이라 스스로 조아리게 하는 분이······. 왜 자신에 관해서는 제대로 알아보려 하지 않는 걸까요? 겉핥는 수준으로도. 옛날이었으면 다 버리고, 알아보려고 했을 텐데요.” 

분노, 슬픔, 기쁨. 그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아 가면이나 다름없던 올리버의 얼굴이 아주 미세하게 요동쳤다. 너무 미세해 웬만한 사람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 

허나, 릴리스는 그 가면 위로 비친 감정을 꿰뚫어 보며, 미소 지었다. 복수에 성공한 듯한 통쾌하고도 질척질척한 미소를 말이다. 

“그대는 누굴까요?” 

릴리스가 계속해 미소 지으며 물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