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12화 (512/633)

512. 역기습 (3)

란다에 의해 죽어가는 수많은 소도시 중 하나인 노프턴. 

그곳 외곽에서 때아닌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뒷골목에서 쉬이 볼 수 있는 갱들의 전쟁이 아닌, 마탑 마법사와 전통 학파 마법사들의 전쟁으로, 사실 이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호사가의 입에 오르내린 주제였다. 

과연, 마법사 집단 중 누가 최강일까? 새로운 시대에 맞춰 태어난 마탑의 마법사? 아니면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 학파의 마법사? 

이는 꽤 어려운 주제였다. 

마법과 산업의 시대를 연 것은 다름 아닌 마탑의 젊은 피였지만, 역사와 전통을 가진 것은 전통 학파. 

어느 쪽이든 말이 됐기에 수많은 사람이 이야기 나눴음에도 쉬이 결론 나지 않았다. 

이걸 알 방법은 오직 하나. 실제로 싸우는 것뿐. 

허나, 이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온갖 현실적인 이유로 두 집단의 싸움을 모두 말릴 테니. 

미친 상황이 아니고선 불가능.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곳 노프턴에서 간접적으로 알 기회가 생겼다. 

더 강한 쪽은 마탑이었다. 

“크아아아악!!” 

스카디 학파의 마법사가 비명을 질렀다. 

허공에서 나타난 데릭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고, 그 폭발을 추진력 삼아 순식간에 접근. 팔을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잘린 팔은 빙글빙글 회전하며 허공으로 날아갔고, 혈향과 살이 타는 지독한 냄새가 공기 중에 퍼져나갔다. 

“시끄러.” 

데릭 레드힐은 비명을 지르는 스카디 학파 마법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을 날려버릴 폭발이 일어나 죽지 않을 정도로만 상대를 불태웠다. 

“이런 개자식이······!” 

동료가 당한 걸 본 또 다른 스카디 학파 마법사 둘이 발밑에 빙판을 만들어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접근해 왔다. 

분명 위협적인 속도. 마법 실력도 나쁜 편이 아니었으나, 데릭은 당황하긴커녕 장검을 고쳐잡아 거대한 화염을 일으켰다. 

노란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화염의 장막이 스카디 학파의 시야를 가렸고, 데릭은 화염 속으로 몸을 던져 자신을 완전히 숨겼다. 

화염에 내성이 있는 아그니 학파의 마법사라도 무모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었지만, 데릭은 향상된 마력 통제능력을 이용해 화염의 열기를 제어한 채, 빈틈을 보인 스카다 학파 마법사에게 돌진했다. 

“크윽!” 

화염을 뚫고 나타난 데릭에게 당황한 스카디 학파 마법사가 들고 있던 얼음 무기로 방어했으나, 열(熱)을 집중시킨 데릭의 시뻘건 칼날은 얼음 무기와 상대를 같이 베어버렸다. 

공기를 불태우는 소리와 사람이 베어진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렸고, 데릭은 뒤이어 접근해오던 또 다른 마법사를 향해 화염을 응축시킨 초승달과 같은 검격을 날려 제압했다. 

공격 타이밍, 마법의 연계, 자신감. 무엇 하나라도 부족하면 실행할 수 없는 저돌적인 공격이었건만, 데릭은 이를 너무나도 쉽게 해냈다. 

같은 동기들이 봤다면 감탄할 정도. 그러나 데릭은 놀라지 않았다. 

케빈의 실전 같은 가르침을 받았고, 이런 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괴물과 두 번이나 대련해봤기에. 오히려 어려워하는 게 이상했다. 

‘제논······.’ 

데릭은 올리버의 마탑 이름을 떠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설마 도시 전체를 훑어보는 걸로 적이 어디 있는지 찾아내다니. 괴물 같은 놈이란 건 알았지만, 새삼 얼마나 괴물인지 알 수 있었다. 

앞으로 걸어가자 데릭은 또다시 길을 막은 스카디 학파 마법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빌어먹을······. 도대체 너희들 몇 명이나 온 거냐?” 

데릭은 스카디 학파 마법사들에게 그리 묻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뛰어갔다. 

날아오는 얼음의 창. 물리력과 냉기 두 가지 속성을 가진 공격이었지만, 데릭은 마력으로 강화한 육체로 이를 피하고, 검으로 베어내며 거리를 좁혔다. 

그러자 노렸다는 듯이 땅을 타고 새하얀 얼음이 접근해 왔다. 

전형적인 스카디 학파의 전투법. 너무 구식이고, 정직했다. 

데릭은 마력 싸움을 하는 대신 점프해 두 다리를 허공에 띄운 다음, 그 상태로 후방에 강력한 불을 일으켜, 이를 추진체 삼아 돌진. 상대와의 거리를 확 좁혔다. 

예상치 못한 현란한 동작에 스카디 학파 마법사들이 당황했다. 

“전통 학파는 무슨······!” 

데릭은 시대에 뒤처진 자들에게 냉소를 지으며 검을 찔러넣었다. 전통이란 이름 아래 발전을 게을리한 자들에겐 마땅한 대우였다. 

푹! 

몸이 꿰뚫리는 고통과 불타는 고통을 동시에 느낀 상대는 비명을 질렀으나, 이는 준비단계에 불과했다. 

데릭은 그 상태로 케빈에게 배운 술식을 전개했다. 

마력을 주입하는 화염이 아닌, 화염 스스로가 마력을 잡아먹는 화염 마법을. 

기존의 술식과 전혀 다른 화염마법을 전개하자 스카디 학파 마법사는 하나의 살아있는 장작이 되어 거대한 화염을 일으켰다. 

사용한 데릭마저 깜짝 놀랄 정도로. 

화르르르르륵━━!! 

2층 건물 높이만큼 커진 화염은 이미 공간을 선점한 얼음마저도 단숨에 녹여버릴 엄청난 화력을 자랑했다. 

마법사 한 명을 통째로 갈아 넣은 화염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지만. 

‘그렇다 해도 이 녀석 보통 수준이 아니네. 이만한 화력을 만들 마력을 가지고 있다니. ······스카디 학파가 이정도 인원을 파견할 정도로 세계수에 관심이 많던가?’ 

이브(Eve)를 확보하기 위해 투입한 마법사들의 수준을 보고 데릭이 의문을 품었으나, 곧 이 생각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스스로 마력을 먹어 치우는 화염이 데릭의 화염까지 먹어치우려고 했기에. 

계속 딴생각을 하면 데릭조차 장작이 될 터였다.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이런 술식을 생각한 거야!!’ 

데릭은 속으로 그리 불평하면서도,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 화염을 컨트롤했다. 

아차하는 순간 끝장이었지만, 이 게걸스러운 화염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뭐가 됐건 화력 하나는 최고였으니까. 

[웨이브 오브 플레임(Waves Of Flame)] 

데릭은 마법사를 통째로 장작 삼은 화염을 전방에 날려 보냈다. 

대지를 불태우며 전진하는 화염의 파도에 스카디 학파 마법사들은 빙벽(氷壁)과 냉기(冷氣)를 날려 진화(鎭火)를 시도했으나 소용없었다. 

압도적인 화력은 미미한 얼음과 냉기를 녹여버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펄세이션 오브 워터(Pulsation Of Water)] 

저 밑바닥에서 들리는 영창. 

땅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맨홀이 폭발하듯 하늘 위로 날아가며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쳐올랐다. 

스카디 학파의 계열 중 하나인 수류마법으로, 강력하지만 물이라는 매개체가 필요한 탓에 얼음 마법의 하위로 분류된 마법이었다. 

지금 하수도에서 대량의 물이 솟구쳐 올라 데릭의 화염을 꺼트렸다. 

치이이이이이익······!! 

마력을 스스로 먹는 강력한 화염이라지만 결국 화염인 탓에 대량의 물이 사방에서 덮쳐오자 증기를 내뿜으며 꺼져갔다. 

허나,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수류마법에 물이 필요한 것도 맞았지만, 물이 많다면 얼음마법도 그만큼 쓰기 쉬운 환경이 된다는 게 중요한 거였다. 

“이런, 젠장!” 

온몸에 물을 뒤집어쓰고, 발이 물에 잠긴 데릭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수증기로 사방의 시야가 막힌 그때, 얼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물에 젖은 데릭을 산 채로 얼려버릴 속셈. 

눈치는 챘지만, 온몸이 젖은 탓에 도망치기 어려웠다. 하늘을 난다면 또 모를까. 

“잠시 실례할게요.” 

하늘 위에서 무엇인가 빠르게 날아와 데릭을 붙잡았다. 

피로 이뤄진 날개를 등에 단 언너로, 그녀는 가냘픈 외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괴력을 발휘, 데릭을 잡은 채 하늘 위로 빠르게 도망쳤다. 

덕분에 데릭은 치명적인 냉기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큰 길목을 맡겠다고 했죠?” 

“방심한 거야!” 

“네 그러시겠-” 

-촤악! 

언너가 대답하는 와중 수증기를 꿰뚫으며 거대한 얼음 창이 날아와 그녀의 날개를 찢어버렸다. 

한쪽 날개를 잃은 언너는 비행 능력을 잃으며 얼어붙은 땅 아래로 천천히 내려앉았고, 그 틈을 타 스카디 학파 마법사들이 빙판을 타고 빠르게 접근해 왔다. 

[아이스 샷(Ice Shot)] 

[스노우스톰(Snowstorm)] 

[아이시클(Icicle)] 

세 방향에서 날아오는 얼음 탄환과 눈 폭풍, 얼음송곳. 

언너는 한쪽만 남은 피의 날개를 해제하곤, 이를 한쪽 손에 둘러 혈마법을 사용했다. 

[혈복도(血蝠刀)] 

언너가 혈액을 두른 팔을 휘두르자 살의와 마력을 머금은 대량의 혈액이 박쥐 모양의 무수한 칼날로 변해 사방으로 날아갔다. 

혈액으로 이뤄진 칼날 박쥐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날아오는 모든 공격을 영격해 충격파를 일으키며 접근해 온 적 마법사들을 베어버렸다. 

좌자자자자작!! 

토막 나는 팔다리, 찢어진 복부와 목. 

언너는 놀라운 통제력을 발휘해 박쥐들이 혈액을 흡수하도록 했고, 더욱 많아진 혈액을 이용해 다시 혈마법을 발동했다. 

[혈화(血火)] 

피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더니 기름처럼 불이 붙었다. 피처럼 붉고 끈적이는 점성을 가진 지독한 불이. 

보는 것만으로 흉흉한 화염은 강력한 열기로 수증기를 증발시키며, 전방의 시야를 확보해줬다. 

전방에는 당연히 스카디 학파 마법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수도의 물을 끌어 올려 만든 대량의 얼음 위에서 진을 구축해 술식을 준비 중이었다. 

[모이라이 학파 : 기억 재구성] 

[생명학파 : 육체 구성] 

[스카디 학파 : 냉기의 축복] 

세 개의 마법이 뒤섞인 복잡한 술식이 현실로 구현되며, 빙판 위에 놓인 재료를 중심으로, 얼음이 뭉쳐 거대한 사람의 모습을 형상했다. 

보는 순간 언너와 데릭은 거인을 떠올렸다. 

공간학파의 마법으로만 소환이 가능한 이계의 생물. 

얼음으로 만들어진 거인은 그 모습이 조잡하고, 하반신이 없는 상반신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얼음 거인은 거대한 양팔을 들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피의 화염을 내리쳐 꺼트려 버렸다. 

피를 매개로 마력과 감정이 뒤섞인 화염을 말이다. 

“후읍······!” 

얼음 거인은 이로도 성이 차지 않는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냉기를 직접 뿜어 얼려버릴 속셈. 거인의 완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치명적이었으나, 언너와 데릭은 겁먹지 않고 마력을 끌어올려 맞받아칠 준비를 했다. 

얼음 거인과 화염 마법사, 혈마법사가 부딪히려는 찰나, 거대한 빙산이 솟아오르며 야렐리가 나타났다. 

그녀는 빙산이 생길 때의 추진력을 이용해 거인의 머리 위에 착지하더니, 마력을 부여해 통제권 싸움을 걸었다. 

쩌저저저적!! 

강력한 마력의 주입으로 금이 가는 얼음 거인. 야렐리의 공격이 먹히고 있다는 증거로, 

얼음 거인이 나타났을 때보다 더 놀라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데릭은 놀라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납득했다. 

인육 요리사와 싸우기 위해 갈로스로 간 야렐리는 영웅이라는 칭호와 함께 통제되지 않던 마안(魔眼)까지 완전히 개안해 왔으니. 

바라보는 것만으로 대상을 얼릴 수 있는 기적의 눈. 

허나, 얻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력량과 마력 통제능력 등 마법에 관한 능력 전반이 상승했다. 

그를 증명하듯 야렐리는 얼음 거인의 통제권을 점차 가져와 이쪽을 바라보던 얼음 거인이 반대 방향으로 돌아보게 했다. 

스카디 학파 마법사들이 막으려 방해했지만, 야렐리는 마안과 마법을 이용해 이를 전부 방어. 

데릭과 언너는 그런 야렐리를 돕기 위해 뛰어갔다. 

발과 등에 화염을 일으켜 속도를 최대로 올린 데릭은 놀라운 추진력을 보이며 야렐리에게 정신이 팔린 스카디 학파를 향해 화염 섞인 검격을 날렸다. 

커다란 초승달 형태로 날아가는 화염. 

그때,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덩치가 얼음으로 만든 할버드를 휘둘러 데릭의 화염을 꺼트려 버리더니, 투척해 야렐리의 얼음 거인을 박살 냈다. 

단 두 번의 공격으로 알 수 있는 뛰어난 실력. 본능적으로 이 녀석이 리더임을 알 수 있었다. 

“흡!!” 

곰만큼 큰 덩치가 숨을 들이켜더니 양팔을 들어 그대로 얼음 위를 내리쳤다. 

[스월 스노우스톰(Swirl Snowstorm)] 

곰처럼 큰 덩치가 꽁꽁 언 얼음 위를 내리치자 그 충격과 함께 소용돌이 형태로 회전하는 강력한 눈 폭풍이 발생했다. 

단순히 눈이나 냉기를 머금은 걸 넘어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뒤섞인 위협적인 눈 폭풍이. 

눈 폭풍의 위협에 데릭, 야렐리, 언너 모두 주춤거렸고, 그때 놈은 얼음이 깨진 포장도로에 양손을 박아 넣어 책상을 뒤집듯 팔을 들어 올렸다. 

“이 미친 설마······! 

나쁜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 법. 놈의 덩치를 고려해도 말이 안 되는 괴력을 발휘해 땅을 뒤집어 버렸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문자 그대로 포장도로를 뒤집어 버렸다. 

마법이 아닌 순수한 육체의 힘만 사용해.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잠시 뇌가 정지했고, 이는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곰처럼 덩치가 큰 놈이 우악스러운 손을 뻗어 온 것이다. 

“내 이름은 빅토르! 죽어라 마탑의 애송아······!!” 

자세를 갖추지 못한 상태로 허공에 뜬 데릭은 회피와 방어가 불가능했다. 꼼짝없이 당하나 싶은 그때, 데릭의 오른쪽에서 전구가 깜빡이는 빛이 번쩍 떠지며 어떠한 손이 날아와 빅토르의 손을 대신 잡아주었다. 

“제 이름은 제논 브라이트입니다.” 

올리버였다. 마력으로 만든 기계 팔로 쿼터스태프와 회중시계를 든 올리버. 

그는 맨손으로 포장도로를 뒤엎은 사람의 손을 잡아 데릭을 도와주었다. 

“괜찮으십니까?” 

“아니, 쪽팔려.” 

*** 

바닥에 엎어진 데릭이 올리버를 올려다보며 쪽팔리다 답했다. 그리고 뒤이어 질문했다. 

“그보다 어떻게 갑자기 나타난 거야? 공간마법까지 쓸 줄 아는 거야?” 

“아뇨, 로드 갱에게서 얻은 노획물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올리버가 회중시계를 들어 보였다. 호그가 사용한 일마리넨 공방의 공간 마법 아이템. 

원래는 고정값을 저장해 특정 위치로 되돌아가는 아이템이었지만, 올리버는 아이템의 술식에 간섭해 그 방법을 약간 변경했다. 가령, 고정값이 아닌 특정 사람(데릭)의 어깨라든가 말이다. 

쉽진 않았지만 성공했고, 덕분에 이리 빨리 올 수 있었다. 

“진짜 또라이 같네.” 

데릭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대꾸했다. 그때, 제3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 새끼들이······!” 

다름 아닌 올리버와 손을 맞잡은 빅토르로, 그는 올리버와 데릭에게 몹시도 분노했다. 자신을 앞에 두고 팔자 좋게 이야기를 나누다니. 

무시당했다는 굴욕감. 빅토르는 손아귀에 힘을 줘 올리버의 손을 산산조각 내려했다. 

꽈아아악······! 

공간을 쥐어짜는 듯한 묵직한 소리가 울렸으나, 올리버의 표정은 무감각했다. 

오히려 놀란 것은 빅토르였다. 디디고 있는 바닥이 갈라질 정도로 힘을 줬건만, 아무 소용이 없어 당황한 것.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빼빼 마른 몸을 한 주제에 말이다. 

“너······. 아이템이라도 차고 있나?” 

“아뇨······. 빅토르 님께선 차고 있으시군요.” 

정곡을 찔린 빅토르는 대답 대신 얼음마법을 이용해 올리버의 손을 얼려버리려 했다. 

힘이 안 된다면, 독처럼 퍼지는 냉기로 제압하면 그만. 

그러나 올리버는 그 냉기에 깃든 술식을 해석하고 재구성해 자신의 육체에 갑옷처럼 둘렀다. 

원소학파를 통달해야지만 할 수 있는 원소와 육체의 결합. 

올리버는 이를 이용해 반대로 빅토르의 손을 얼리려 했고, 공포를 느낀 빅토르는 다급히 손을 떼며 거리를 벌렸다. 

이 녀석. 스카디 학파인 자신보다 얼음마법에 조예가 깊었다. 

“이거 거인의 힘줄로 만든 허리띠군요.” 

빅토르가 거리를 벌리자, 올리버는 웬 허리띠를 쥔 채 중얼거렸다. 

허리가 허전해진 빅토르는 자신의 몸을 매만지더니 소리쳤다. 

“어느새······!” 

“아까 전에 물러서실 때 잠깐 빌렸습니다.” 

“우린 그걸 훔쳤다고 표현하지.” 

데릭이 일어서며 딴지를 걸었다. 그의 등 뒤로 아까 전 날아간 야렐리와 언너도 어느새 와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은 눈치. 올리버가 그녀들에게 인사하려 할 때, 야렐리가 말했다. 

“훔친 거 맞아요.” 

“······예?” 

“허리띠요······. 데릭이 말한 대로 훔친 거 맞다고요.” 

야렐리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 전투 중에 할 수 있는 가벼운 농담이었지만, 올리버가 하는 말이었기에, 전혀 농담 같지가 않아 바로 잡아줄 필요성이 있었다. 

“제가 살던 곳에서는 빌린 거라고 했습니다.” 

“······.” 

“농담입니다.” 

“아······.” 

그제야 사람들이 탄성을 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방금 엄청 무서웠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빅토르는 다시 한번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분노하며 동료들과 같이 술식을 전개. 하수도의 물을 끌어당겨 거대한 빙하 산맥을 만든 뒤, 올리버에게 돌진시켰다. 

술식의 정밀함으로 싸울 수 없다면 물량으로 찍어 누를 속셈. 

나쁘지 않았다. 같은 계열의 마법사들이 협업하면 그 위력은 몇 배가 됐으니. 

이에 올리버는 몸 안에 저장된 마력을 사용해 바닥에서 얼음 가시를 솟구치게 했다. 

빅토르가 만든 빙하 산맥에 비하면 그 규모가 미약했으나, 대신 산맥과 술식의 약한 부분을 정확히 찌를 수 있는 정밀함을 갖추고 있었다. 

예상대로 올리버의 얼음송곳은 산맥을 격침시켰다. 

놀랍게도 빅토르는 그 압도적인 광경에도 굴하지 않고 무너지는 산맥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어떻게든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올리버는 몸 한쪽에 두른 얼음 갑옷을 손바닥에 모아 휘두르는 것으로 필사적으로 접근해 오던 빅토르를 날리는 동시에 얼려버렸다. 

압도적인 실력 차. 

빅토르가 분함과 분노, 억울함을 빛내며 소리쳤다. 

“크아아아악······!! 릴리스, 아직 멀었어?!!” 

가슴에 달린 통신장치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빅토르. 올리버가 반사적으로 질문했다. 

“릴리스란 분이 이 허리띠와 마공학 무기를 지원해주신 분인가요?” 

“예.” 

빅토르의 외침에 침묵하던 통신장치가 대답했다. 아주 아름다운 목소리. 

그와 함께 바닥 전체에 강력한 마력의 흐름이 퍼지더니, 올리버의 발밑에 마법진이 형성됐고, 올리버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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