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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511화 (511/633)

511. 역기습 (2)

“눈치챈 겁니까?” 

올리버의 인사에 강철 헬멧과 마공학 갑옷을 입은 남자가 반응했다. 

이곳 노프턴의 지부장 일라이였다. 

“헬멧과 마공학 갑옷까지 입었는데, 눈썰미가 좋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제가 외관보다는 감정으로 사람을 파악하거든요.” 

“그건 좀 소름 끼치는군요.”

“버릇입니다. 이제는 좀 구별되지만, 옛날에는 사람을 외관으로 구분하기 어려워서요.” 

일라이는 강철 헬멧 아래로 인상을 찌푸렸다. 딱히, 듣기 거북한 말도 아니건만, 묘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크라임 펌은 왜 배신하는 겁니까?” 

“이 와중에 그런 게 궁금하신 겁니까?” 

“예. 란다로 돌아갔을 때 고든 님에게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은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뭐가 됐건 도움을 받은 입장이니까요.” 

“란다로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걸 전제로 말씀하시는군요.” 

“아,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죽는 걸 전제로 계획을 짜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마법사나 흑마법사가 얼마나 오만한지는 호텔을 운영하며 배웠으니까요. 하지만, 당신 동료분들은 죽었죠. 당신도 다르지 않을 거고요.” 

그 말에 근거가 되듯 마공학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한 갱들이 칙칙칙 엔진을 움직이며, 무기와 장비의 출력을 높였다.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운 강철의 군단. 

그때, 올리버가 검지를 들어 보였다. 

“아마, 안 죽었을 겁니다. 제 동료분들요.” 

“그게, 무슨-” 

“-지부장님.” 

때마침 투명 망토를 두른 갱 하나가 강철 군대 사이에서 나와 귓속말을 했다. 

아마, 성공적으로 암살했다고 생각한 데릭, 야렐리, 언너가 알고 보니 시체를 이용해 만든 더미(Dummy)라는 보고일 거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냥 시체였다고?” 

“예······. 내부에 마력과 생명력을 불어넣은 가짜였습니다.” 

난감함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부하의 모습에 일라이가 올리버를 봤다. 

“처음부터 저희가 배신한 걸 눈치챈 겁니까?” 

“배신을 눈치챘다기보다는, 배신시켰을 거라 예상한 겁니다.” 

올리버가 호그를 꿰뚫은 공간 마법 사격을 떠올렸다. 

허공에 맺어진 녹색 마법진. 그 마법진에서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고, 동시에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 생겼다. 

가는 길뿐 아니라, 도착한 도시에도 반드시 거기에 걸맞은 준비를 했을 거라는. 

“그래서 여러분들도 배신했을 거라 생각해, 거기에 맞게 미리 움직인 거뿐입니다.”

“이거 민망하군요. 가급적 진실을 말해 흑마법사의 눈을 속이는 훈련과 감정을 속이는 값비싼 흑마법 아이템이 모두 헛수고가 돼서요······. 다른 동료분들은?” 

“호텔을 몰래 빠져나가 스카디 학파 마법사들에게 가고 있을 겁니다.” 

도시를 돌아다니는 와중 흑마법사의 눈을 최대로 발동해 도시 전체를 훑어본 올리버가 답했다. 

말도 안 되는 범위에 실제로, 정신력과 체력 소모가 크긴 했지만, 거기에 걸맞은 성과는 있었다. 

야렐리와 마력 운용이 비슷한 얼음계열 마법사와 공간 사격 마법이 나타났을 때 본 마력을 찾을 수 있었으니.

참고로 그들의 위치는 일라이가 준 자료와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다행히 미리 수색해 봐 알아맞힐 수 있었죠. 아마, 지금쯤 인근에 도착했을 겁니다.” 

“하! 란다에서 단숨에 명성을 떨친 괴물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단순히 힘만 센 건 아니었군요. 어수룩한 척 굴면서 세력을 형성했다는 게 허언이 아니었어!!” 

그 외침과 동시에 마공학 망치에 갑옷으로 무장한 일라이의 부하 갱 하나가 무기의 출력을 최대로 높이며 돌진해 왔다. 

강력한 출력에 건물이 무너질 듯 요동쳤다. 이에 대응해 올리버는 마력이 담긴 쿼터스태프를 가볍게 투척해 이를 맞받아쳤다. 

━━━━! 

호그와 맞상대했을 때와 비슷한 충격파가 발생하며, 형용할 수 없는 굉음이 울렸다. 

깨치는 유리창들. 보통의 갱이라면 이 충격파에 놀라 경직했겠지만, 일라이의 부하들은 오히려 마공학 무기가 먹힌다고 생각해서인지 강철을 두른 그대로 올리버에게 일제히 돌격해왔다. 

압도적인 물량과 무게로 짓뭉개려는 속셈.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장비가 부실하다면 저런 밀집 돌격은 마법의 먹이일 뿐이지만, 강력한 마공학 무기로 무장한 상태라면 이야기는 달랐으니. 

이에 대응해 올리버는 방어나 공격마법을 펼치는 대신 품에서 축소화한 마공학 망치를 꺼내 보였다. 

호그와의 싸움에서 노획한 것으로, 올리버는 그 짧은 시간 사이 마공학 망치를 원래 크기로 되돌린 다음, 무기 자체에 깃든 마력에 자신의 몸에 깃든 마력을 추가 주입했다. 

마력이 추가 주입되자 마공학 망치는 과부하를 일으켰고, 올리버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마력의 성질도 변화시켰다. 

단시간 내 이뤄진 과격한 변화. 마공학 무기는 푸른 증기와 전류를 내뿜으며 무서울 정도로 요동쳤다. 

칙!! 칙!! 칙!! 

“겁먹지 마! 출력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저러면 과부하로 꺼져!!” 

“오, 정답입니다.” 

부하들을 독려하기 위해 일라이의 외침에, 올리버가 눈치 없이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게, 처음 보는 갱이 자신이 노리는 바를 정확히 맞췄으니, 어찌 감탄하지 않는단 말인가? 

올리버는 과열시키고, 전격으로 성질까지 변환시킨 망치를 있는 힘껏 왼손으로 휘둘렀다. 

사람이 아닌 상대의 마공학 무기를 향해. 

엔진이 미친 듯이 회전하고, 전격이 흉흉하게 번뜩이는 모습에 갱은 멈칫거렸고, 당연히 마공학 무기는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쾅━! 

부딪히는 쇳덩어리와 쇳덩어리. 

엄청난 충격파가 발생할 거라 예상해 모두 멈칫했지만, 생각보다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신 올리버의 망치와 갱의 망치가 전격을 나눠 가지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치지지지지직!!! 

거기에 퍼지지 못한 충격파와 전류가 한데 합쳐져 투명한 원구형 파동을 형성했다. 

손가락만 톡 대도 터질 것 같은 비눗방울과 같은 모습을. 

바로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올리버는 마력을 추가로 주입했고, 한계까지 팽창한 전류의 파동은 폭발하며 사방으로 전류를 방출했다. 

방사형으로 이뤄진 전류와 충격의 콜라보. 

갱들의 눈앞으로 흉흉한 청색 전류가 덮쳐왔으며, 그들은 반사적으로 들고 있는 마공학 무기를 앞세웠다. 이는 커다란 실책이었다. 

충격파와 함께 퍼져 나간 대량의 전류는 애당초 사람이 아닌, 마공학 무기를 노린 거였으니까. 

올리버가 든 망치를 시발점으로 각 마공학 무기가 전류로 연결됐고, 전류가 연결된 마공학 무기는 똑같이 출력이 높아지며 성질변화를 일으켜, 주변으로 전류를 발산해 서로 연결됐다. 

순식간에 형성된 전류의 거미줄. 

마공학 무기들은 사용자의 통제에서 벗어나 미친 듯이 움직이며, 급격하게 달아올랐다. 이제 과열로 인해 엔진이 정지- 

“-뜨, 뜨거워!!” 

한 갱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올리버와 처음 합을 맞춘 갱으로, 그는 급속도로 오르는 마공학 무기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손을 놓아버렸다. 

“아······. 놓으면 안 되는데.” 

올리버가 그리 말했다. 마음 같아선 반대 손으로 잡고 싶었으나, 화상을 입은 손이라 불가능. 

그 탓에 올리버의 바로 앞에서 과열될 대로 과열된 마공학 무기가 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고, 한계까지 출력이 올라간 마공학 무기는 그대로 터져버렸다. 

사람을 순식간에 불태우고 산산조각내는 청홍색 폭발을 일으키며. 허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전격으로 이어져 있던 마공학 무기는 폭발 충격량을 공유하며, 도화선으로 이어진 다이너마이트처럼 연쇄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요동치는 전류와 삐걱대는 태엽, 한계까지 당겨지는 계기판. 

정교한 무기는 값비싼 폭탄으로 변해 빠르게 연이어 폭발했고, 그 폭발은 거대한 하나의 폭발로 합쳐져 호텔의 한 층을 통째로 날려 먹었다. 

“크허어어억······!” 

붉고 푸른 화염, 지독한 탄내, 자욱한 연기, 건물을 뒤흔드는 충격, 유리와 시멘트 파편 가운데서 간신히 살아남은 일라이가 멈춘 숨을 몰아쉬며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다행히 부하들을 앞세운 덕분에 상대적으로 뒤에 있던 그는 전류 폭발에 휘말리지 않고,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이 걸치고 있는 마공학 무기는 모든 기능이 정지해 그저 무거운 쇳덩어리로 변해 있었지만, 그래도 희망적이었다. 

이 정도 폭발이라면 저 괴물 같은 놈도 무사하지는 못할 터이니. 

일라이가 희망적인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강력한 마법사나 흑마법사라도 본질은 인간. 육체는 인간의 그것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간혹, 인간의 육체를 벗어나 놈들도 있다곤 했으나, 데이브에게선 그런 이야긴 없었다. 

그런데 저 폭발 한가운데 있었다? 죽는 게 당연했고, 설사, 살아있다 해도 무사하진 못할 터였다. 

그렇다면 계약은 이행한 셈.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그렇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어! 날 여기 처박은 란다 놈들과 손을 끊고, 독자적인······!” 

“그게 이유입니까?”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목소리. 

방금까지 한 모든 손익 계산을 부정하는 물음에 일라이가 충격과 공포를 느끼며 삐걱삐걱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요동치는 그림자를 배경으로 얼굴 한쪽이 찢어진 올리버가 서 있었다. 

그는 자기 얼굴을 매만지더니, 허공에 마법진을 형성. 마력으로 이뤄진 기계 팔을 꺼내 찢어진 상처 부위를 꿰매버렸다. 

놀랍게도 그의 찢긴 얼굴 아래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아주아주 앳된 소년의 얼굴이. 그러나 등 뒤에서 요동치는 그림자 탓에 오히려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괴······물?” 

뒤집어쓰고 있던 가죽 가면을 수선한 올리버가 말했다. 

“아, 보셨나요? 이거 보시면 안 되는데······. 어떡하죠?” 

올리버는 고민에 빠졌고,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쇳덩어리가 된 무거운 망치를 번쩍 들었다. 

*** 

“아직 멀었나?” 

노프턴의 한 구석진 외곽. 한 남자가 말했다. 

그의 이름은 빅토르. 전통 스카디 학파의 마법사였다. 그는 지금 세계수 앞에 앉은 금발 여성을 다그쳤다. 

타고난 기골과 근엄한 얼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여성에겐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다그친다고 빨리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 아실 텐데요?” 

놀랍게도 그녀는 세계수에 접속한 상태로 빅토르의 말에 대꾸했다. 

세계수에 접속한 상태에서는 의식이 세계수에 들어가 아무런 대꾸도 못 해야 정상인데.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이었으나, 빅토르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가 사람이 아닌 이브(Eve)······. 정확히는 세계수의 인공정신 릴리스(Lilith)라는 걸 알았으니까. 

갑자기 세계에 나타난 세 개의 이브(Eve) 중 하나. 

이브(Eve)이면서도, 세계수와 전혀 관계가 없는 흑마법사 영생의 퍼펫에게 협조하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 

그런 탓일까? 그녀에게서는 스카디 학파에서도 수재라 불린 빅토르마저 오히려 위압감을 느꼈다.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매력을 지닌 위압감을 말이다. 

답답한 속마음. 그때, 통신기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빅토르······! 치직!! ······우리끼리 버티기 힘들다! ······칙! 배신자 놈들 생각보다 강해······!” 

통신 장치 너머로 들리는 흐릿한 목소리, 그 목소리는 이내 공기를 불태우는 화염의 흉흉한 소리와 공기를 얼리는 서늘한 소리,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에 지워졌다. 

뒤이어 들리는 것이라고는 비명과 숨 끊어지는 소리뿐. 

분명, 접근해오는 인원은 데릭과 야렐리, 언너라는 마탑 학생 둘과 직원 단 셋뿐이었다. 

또, 릴리스와 빅토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정도로 위협적인 놈들은 아니었고. 분명 계산에 따르면 지금 내보낸 마법사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고, 이는 빅토르에게 심히 굴욕감을 주었다. 마탑의 등장으로 점점 쇠퇴해지는 전통 학파를 보는 것 같았기에. 

그때, 릴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쿡쿡······. 정통학파가 노쇠했다는 게 아무래도 사실인가 보네요. 하긴, 그러니 아카이브가 마탑을 세워 독립시킨 거겠죠.” 

그 말에 빅터를 포함한 릴리스와 같은 공간에 있는 마법사들이 모두 눈을 부릅뜨고, 까드득 이를 깨물었다. 

란다에 파견한 지부들을 아카이브가 독립시킨 것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이자 굴욕. 이에 발끈한 빅토르가 소리쳤다. 

“이브(Eve)를 언제 완전히 구속할 수 있지!?” 

“글쎄요······? 이브(Eve)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서 쉽지 않지만, 곧 할 수 있을 겁니다. 그전에 마탑 인간들이 먼저 올 거 같지만요.” 

“그럼, 여유롭겠군. 내가 그놈들을 다 쓸어버리고 올 거니까.” 

빅토르는 그리 말하며 동료들을 모조리 데리고 갑작스레 침입해 온 마탑 놈들을 향해 움직였다. 

아무리 퍼펫이 주선했다지만, 감시는 붙여놔야 했는데, 과거의 영광과 상처에 머리가 피로 몰려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애당초 릴리스가 그리 유도한 거긴 했지만. 

혼자 남게 된 릴리스가 세계수와 접촉한 상태에서 말했다. 

“그가 널 구하러 왔네. 망치로 사람을 짓뭉개며 말이야······. 참 웃기지? 멋대로라니까?” 

릴리스가 세계수를 통해 올리버를 보고 있던 릴리스가 알 수 없는 살기와 원망, 질투, 서운함을 내뿜었다. 

그 감정에 반응한 것인지 아름다운 그녀의 금발은 한순간 푸른색과 붉은색, 자두색 등등 휘황찬란한 색깔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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