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 과도한 장비 (3)
‘말도 안 돼······.’
분쇄됐다 다시 합쳐진 마력 실드에 팔이 붙잡힌 호그가 생각했다. 왜냐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였으니까.
강력한 충격에 술식이 붕괴하고, 그로 인해 결합력을 잃은 마력을 다시 합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마력 입자 하나하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마력통제력이 있는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영역.
허나,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붕괴한 술식을 복구하는 걸 넘어, 방어용에서 구속용으로 그 성질을 변화시켰다는 점이었다.
지금 이 마력 실드는 그냥 마력 실드가 아닌, 대상을 구속할 수 있는 구속구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기존 실드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형태.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겉보기에 그다지 화려해 보이지 않았지만, 이런 술식 구사 능력은 단순히 강하다 약하다는 걸 떠난 한 단계 고차원적인 기술이었다.
마력과 술식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와 활용 능력이 필요한.
어지간한 마스터는 명함도 내밀 수 없었다.
학파의 계열을 맡은 원마스터(One Master)나, 그 정도 실력자들과 비교해야 이야기가 성립됐다.
그 사실이 호그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란다 해결사계의 살아있는 전설 셰이머스가 쓰러졌다는 소식보다, 82명의 드루이드가 한 명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보다 더.
아마, 호그가 마탑 출신이기 때문일 터였다.
“신기한 물건이네요.”
호그가 마력 실드에 정신을 팔린 틈을 타, 올리버가 호그의 마법 아이템을 잠깐 가져와 감탄했다.
회중시계처럼 생긴 공간 마법 아이템으로, 올리버는 자신의 영상기록 아이템과 비교해 봤다.
“역시 디자인이 비슷하네요. 일마리넨 공방에서 만든 물건인가요?”
호그는 순순히 대답했다.
“······그래. 회중시계 표면에 박힌 문양을 보면 알 수 있지.”
올리버가 뒤늦게 회중시계 겉에 새겨진 고풍스러운 망치 모양 로고를 발견했다. 회중시계 내부의 섬세한 마력에 눈을 빼앗겨 겉을 소홀히 하고 말았다.
“대단하시네요. 이곳 물건은 구하기도 힘들다던데요.”
올리버가 자신의 영상기록 아이템을 들어 보였다. 과거 크라임 펌의 경매 물건을 되찾아주는 조건으로 간신히 얻었던 물건이었다.
“당연하지. 상류층만을 대상으로 제작하는 물건이니까. 그런 물건은 돈만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돈은 기본인 거고.”
진심. 역시, 마탑 출신이라 그런지 이쪽 관련해 아는 게 많은 눈치였다.
“이 아이템도 지원받은 겁니까?”
“그전에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 줘.”
호그가 올리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자기 용건을 먼저 꺼냈다. 포획된 사람이 할 수 없는 발언. 그러나 아까 전보다 적개심이나 투쟁심이 한풀 꺾인 상태였다.
“말씀하시죠.”
“그 마력과 술식 통제 능력······. 어떻게 구사한 거지? 보통이 아닌데?”
호그가 열등감과 질투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물었다. 약관의 나이에 이런 수준의 마법을 쓰는 불합리한 존재에게 답을 듣고 싶어.
“배웠습니다.”
“배웠다고?”
“예.”
올리버가 멀린과의 대련을 떠올리며 설명했다.
그는 기본 마법에 적절한 술식 변형을 가미하는 것만으로 놀라운 힘을 발휘하였고, 올리버는 이를 보고 배워 흉내 냈다.
상황에 따른 적절한 술식 변화의 기예를.
생각보다 까다로웠지만, 영상기록 아이템을 몇 번 돌려 확인해 따라 하자 곧 이론을 정립,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때마침 호그 님께서 나타나 주셔서 연습하기도 좋았고요.”
“인피갑주(人皮甲冑)를 입은 내가 연습 상대라······. 그거 참 좇같기 그지없군.”
호그가 분노, 비아냥이 아닌 진심으로 말했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차이를 실감했기에 화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좆같을 뿐이었다.
올리버가 이에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축하드립니다. 차이를 아셨다면 이제 메꾸면 되지 않습니까?”
“메꾼다니······? 뭘?”
“아까 전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원하신다면 마법을 가르쳐드리겠다고요······. 자랑처럼 들릴 수 있지만, 가르치는데 아주 조금 재주가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지금 보여드린 기술을 포함해 마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물론, 기본기부터 다시 다듬은 후의 이야기겠지만요. 어떠십니까?”
올리버가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본 호그는 나이프를 휘두르는 대신 그 손을 말없이 바라봤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무한한 자유와 부가 보장되지만 그만큼 치열해진 마법과 산업의 시대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을.
거짓말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눈앞에 있는 놈은 이런 종류의 거짓말을 할 것 같지 않았다.
방금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그런 믿음이 생겼다.
그러자 호그는 공포와 결이 다른 압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돈이나 힘이 많은 상대에게서 느낄 수 없는 압도감을. 사람의 기질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다른 생물을 마주한 듯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압도감을 느꼈다.
“······의뢰-”
-퍽!
고민한 끝에 호그가 입을 열자 허공에서 번쩍 빛이 번뜩이더니, 얼음으로 이뤄진 탄환이 날아와 호그의 등을 꿰뚫었다.
공간 사격에 얼음마법.
호그의 등을 파고든 얼음 탄환은 내부에서 대량의 냉기를 폭발시키며, 호그의 몸을 급속도로 냉동시켰다.
순식간에 얼어붙어 돌처럼 변한 피와 근육, 살.
그렇게 호그는 미처 손쓰기도 전에 하나의 얼음덩어리가 되어 버려 부서지고 말았다.
“······.”
올리버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참으로 이상했다.
뒷세계에서 목숨을 잃는 갱은 하루에도 최소 수십 명은 족히 될 터이고, 올리버도 그러한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건만, 약간 안타깝다는 기분이 들었다.
정보를 얻지 못한 탓인가 싶었지만, 그보다는 개인적인 감정이 더 큰 것 같았다.
던칸의 필거렛을 피움으로써 느끼는 감정 말이다.
“흐음······.”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올리버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뒤로하고 호그의 등 뒤를 노린 허공 위에 나타난 녹색 공간 사격 마법진을 봤다.
아직 그 자리 그대로 있었는데, 올리버는 두 가지 의문이 생겼다.
첫 번째는 어떻게 이곳에 마법진을 형성할 수 있었는지였다.
공간 마법진은 말 그대로 공간을 넘게 해주는 마법진. 술사가 근처에 있거나 혹은 아이템을 통해 이곳 시야를 확보해야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는 공간마법을 사용하는 술사도, 이곳을 감시하는 마법 아이템도 보이지 않았다.
있는 거라고는 울창한 숲과 저 멀리 있는 데릭과 야렐리, 언너뿐.
그리고 두 번째 의문은 호그는 단숨에 살해했음에도 자신은 왜 쏘지 않느냐는 점이었다.
허공에 뜬 녹색 마법진은 말없이 있을 뿐, 올리버에게 어떠한 공격도 하지 않았다.
올리버는 그런 마법진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봤을 때,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끝나셨나요?”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언너. 그녀는 피로 이뤄진 날개로 빠르게 날아왔다.
그녀는 올리버 근처에 도달하자 등에 단 피의 날개를 해제해 착지했다.
“음······. 일단, 끝나긴 끝났습니다. 언너 씨 쪽도 끝나셨나 보군요.”
“예, 그런데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갑자기 얼음 탄환이 날아와 생포한 갱들을 사살했나요?”
정확한 추측에 언너가 한순간 멈칫했다.
“혹시, 제논 님도요?”
“예······, ‘님’자는 빼고 그냥 제논이라고 불러주세요.”
“알겠습니다······. 어쨌건, 말씀하신 대로 생포한 갱들 모두 살해당했습니다. 한 발에 한 명씩. 사격 실력과 공간마법의 전개, 얼음 마법의 수준을 고려해보면 상당한 실력자로 예측됩니다. 위험성은 그 이상이고요. ”
올리버는 동의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 마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금 그 공격으로 이 수수께끼 상대가 얼마나 뛰어난 마법사인지 쉬이 예측할 수 있었다.
언너의 말대로 위험성은 그 이상이었고. 어디 있는지 모르는 상대가 공간마법을 이용해 치명적인 탄환을 날릴 수 있다면 실력 여부를 떠나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대로 작전 수행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가는 도중 공간 저격에 당할 수 있었으니.
“다만, 당장은 문제없을 겁니다.”
“······?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올리버는 마법진이 있었던 허공을 바라봤다. 지금은 사라졌으나, 마력의 잔흔은 남아 있었다.
“느낌이 그렇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말. 허나, 언너는 그 말에 감히 따지지 않았다. 이미 몸을 의탁한 분. 어떤 말을 해도 믿고 따르는 게, 이 바닥의 도리였다.
언너가 스스로를 설득하는 사이, 올리버는 주변을 다시 살펴보곤, 꽁꽁 얼어 바스러진 호그를 살펴봤다.
과도한 냉동으로 부서진 그는 사람의 형상에서 돌무더기로 변했다. 유일하게 멀쩡한 거라곤 그가 걸치고 있던 인피갑주(人皮甲冑) 뿐.
올리버가 그 인피갑주를 챙기자, 언너가 아는 체 했다.
“인피갑주(人皮甲冑)군요. 그것도 상당한 상등품(上等品)요.”
“아시나요?”
“예. 자랑할 건 아니지만, 저희 패밀리도 흑마법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거든요.”
올리버는 바로 납득했다. 바토리 패밀리는 역사도 깊고, 힘도 강하며, 피의 영약이라는 엄청난 제품까지 제작했으니. 그쪽 시장에 대해 잘 아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사람을 천으로 가공해, 갑옷처럼 만든 거죠. 흑마법 아이템답게 재료에 의해 성능이 결정되고요. 창고에서 획득한 헤드 완드(Head Wand)처럼 상당한 물건입니다.”
“헤드 완드(Head Wand)는 뭐죠?”
“마법사나 흑마법사의 머리를 지팡이에 꽂아 만든 아이템입니다. 아이템을 매개로 마법이나 흑마법을 쓸 수 있죠.”
“아······.”
대충 뭔지 알 거 같았다. 아까 전, 데릭이 휩쓴 갱 중 하나가 들고 있던 물건이었다. 마법사(여) 머리가 달린 지팡이.
마공학 무기 가운데 섞여 있어 눈에 확 띄었다.
“빅 휠의 창고도 비슷합니다. 다수의 마공학 무기가 있고, 흑마법 아이템 심지어 Y구역의 불법 무기까지. 통일성 없는 희귀무기와 아이템이 뒤섞여 있죠. 그래서 누가 준 건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언너가 말꼬리를 흐리며 호그였던 걸 봤다.
원래는 호그의 도움을 받아 누가 지원을 해준 건지 알아내려 했지만, 이로써 알 수 없게 됐다.
하물며 피라도 있었다면 바토리 패밀리의 혈액 읽기를 통해 알아낼 수 있을 테지만, 저 얼어붙은 시체로는 불가능했다.
그렇게 아쉬워하는 그때 올리버가 품 안에서 피가 든 주사기를 꺼내 언너에게 건넸다.
아까 전 호그와 근접했을 때, 그의 목에 찔렀던 주사기였다.
“혹시 이거면 되겠습니까? 혹시, 몰라 미리 뽑아놓은 혈액입니다.”
주사기에 든 혈액의 양을 확인한 언너가 대답했다.
“오······. 양이 적어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알아낼 수 있을 듯합니다.”
***
혈액을 마신 언너. 올리버는 그런 언너와 함께 데릭과 야렐리가 있는 빅 휠의 아지트 창고로 갔다.
주차장과 가까운 창고는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말해주듯 그을린 땅과 그 위를 덮은 빙판이 있었으며, 데릭과 야렐리는 그 위에서 엄폐물과 마력감지 능력에 의지해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갑자기 허공에서 탄환이 날아오지 않을까 대비하는 것. 아주 현명한 태도였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언너를 이끌고 나타난 올리버가 물었다. 처음 대답한 것은 데릭이었다.
“당연히 괜찮지. 고작 갱들을 상대로.”
데릭이 고작 갱이라 칭했으나, 주변의 부서진 나무와 뒤엎어진 땅, 깨진 빙산 파편을 볼 때 싸움이 얼마나 거칠었는지 알 수 있었다.
갱이라 해도 최신 군용 무기인 마공학 무기로 무장한 이들이었으니.
그러나, 그와 별개로 데릭은 특별히 지치거나, 다친 흔적은 없었다. 그만큼 노련하게 잘 대응했다는 증거라 할 수 있었다.
“야렐리 씨는 괜찮으십니까?”
올리버가 야렐리에게 따로 물었다. 질문은 받은 야렐리는 예상치 못한 것인지 살짝 놀라다 곧 침착함을 되찾으며 대답했다.
“전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그럼, 확보한 장비 좀 볼 수 있을까요?”
바로 본론에 들어가는 올리버. 데릭과 야렐리가 안내해줬다.
전투로 인해 부서지고, 얼음으로 뒤덮인 창고 안에는 언너가 미리 설명한 대로, 군용 무기인 외골격 장갑을 시작으로, 마공학 무기, 소형골렘와 같은 첨단 마법 무기부터, Y구역의 불법 무기인 작살총, 폐수 발사기, 유독가스탄, 심지어 처음 보는 흑마법 아이템이 있었다.
다 합치니 그 양이 상당했다. 올리버는 그 무기를 훑어보다 헤드 완드(Head Wand)를 집어 들었다.
사람의 머리와 지팡이를 합친 흑마법 아이템을 말이다.
이유는 올리버도 몰랐다. 가장 특이하고 눈에 많이 가는 물건이라 그런 걸지도.
“이거······. 머리 부분은 물론, 지팡이 부분도 사람의 신체를 이용했네요. 척추뼈와 살점, 핏줄을요.”
올리버가 지팡이를 살펴보며 말했다. 겉을 깔끔히 마감처리해 얼핏 보면 눈치채기 어려웠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알 수 있었다.
지팡이에 담긴 혈액과 마력이 머리에 영양분을 공급해줬고, 그 덕분에 지팡이 위에 달린 머리는 조개처럼 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참으로 흥미로웠다. 이걸 살아있다 해야 할지 죽었다고 해야 할지.
단, 하나 확실한 건, 단순한 생김새와 달리 상당한 제작난이도를 가진 물건이라는 점이었다.
“아마, 빈시티(Bean City)에서 생산된 물건일 겁니다.”
“빈시티(Bean City)가 뭐죠?”
“해안가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입니다. 해적과 밀수업자, 흑마법사들의 도시죠.”
처음 듣는 소리에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흑마법사는 학문의 특성상 도시에 살긴 했지만, 아예, 흑마법사의 도시라 불리는 곳이 있을 줄이야······.
“처음 들어도 무리는 아닙니다. 셀랜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니까요.”
“그 말씀은 그 멀리 떨어진 도시의 물건이 지금 여기 이만큼 있다는 거군요.”
“예. 그 여자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발이 아주 넓은 것 같네요.”
“여자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가만히 듣고 있던 데릭이 질문했다. 언너가 답했다.
“호그의 혈액을 섭취해 그의 기억을 읽었습니다. 혈액의 양이 부족해 전부는 보지 못했지만, 경박하게 여러 색깔로 머리를 물들인 여자가 이 무기들을 가져다준 걸 봤습니다.”
올리버가 언너를 빤히 바라봤다. 하얗게 탈색된 머리와 검은색 머리가 뒤섞인 올리버가.
“······경박한가요?”
“검은색과 하얀색은 체스와 같은 고고함이 깃들어 있어 경박하지 않습니다.”
언너가 바토리를 모셔온 혓바닥을 이용해 자신의 말실수를 재빠르게 수습했다.
그럼에도 난감했는데, 그때, 야렐리가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다른 단서는 없나요? 이만한 무기와 아이템을 동시에 가져올 사람이면 보통이 아닐 텐데요.”
야렐리다운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마공학 무기와 빈시티의 흑마법 아이템은 연결점이라고는 없는 별개의 물건.
그런 물건을 동시에 공급할 수 있는 자라면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보통은 하나도 확보하기 힘든 거래 루트를, 동시에 보유했다는 거니.
문제는 그런 자가 누군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런 것에 관심 없는 올리버는 물론, 관심을 가져야 하는 데릭과 야렐리, 언너조차도 말이다.
왜냐면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나의 루트를 쥔 것만으로도 그것을 관리하고, 지켜내는 것에 대부분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으니.
그런데 그런 루트를 두 개나 보유했다? 그건 개인이 아닌 조직일 가능성이 컸다.
여자는 그 조직의 하수인일 가능성이 컸고.
야렐리가 여성의 인상착의를 아는지 물어봤고, 언너는 혈액의 양이 부족해 얼굴은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 올리버는 허리춤의 가죽케이스에서 고이 접힌 빅마우스를 꺼냈다.
“꾸루루룩?”
빵 반죽처럼 부푼 빅마우스가 낯선 환경에 울음소리를 냈다. 상식 밖의 크기를 가진 빅마우스의 등장에 데릭이 움찔했다.
과거 빅마우스를 본 적 있는 야렐리와 언너는 당황하지 않았지만.
빅마우스가 야렐리를 알아본 건지 손을 흔들어 그녀에게 인사했다.
“꾸루루룩. 꾸룩.”
“뭐라고 하는 거죠?”
야렐리가 반사적으로 빅마우스의 인사를 받아주며 물었다.
“안경을 벗으니 더 예쁘다고 합니다.”
마공학 무기를 하나 살피던 올리버가 대답했다. 아까 전 호그가 사용했던 망치 형태의 기계무기로, 올리버는 해당 무기를 작동해 구성과 작동원리, 내부에 깃든 마력 흐름, 술식을 하나하나 눈에 새겼다.
“진짜로?”
데릭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거대한 주머니처럼 생긴 흑마법 아이템이 사람을 상대로 그런 말을 하는 게 말이 안 됐으니.
“진짜입니다. 제가 신세 지는 분들이 가르쳐 주셨거든요.”
올리버가 차일드 교육 때 겸사겸사 빅마우스에게도 매너와 대화법을 가르쳐준 천사의 집 종업원들을 떠올렸다.
미친 소리 같지만, 올리버는 차일드를 가르칠 때 겸사겸사 빅마우스도 배우게 했고, 천사의 집 종업원들은 당황하면서도 직업의식을 불태워 빅마우스에게도 매너를 가르쳤다. 빅마우스가 원하든 원치 않든.
“거기다 빅마우스는 다른 먹보주머니를 먹고 머리가 더 좋아지신 거 같거든요.”
“······동족은 왜 먹었는데?”
“제가 시켰으니까요?”
모두 말없이 동족포식을 강요한 올리버를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에는 충격과 경멸감이 깃들어 있었다.
올리버가 변명하듯 말했다.
“서로 합의했습니다.”
“꾸루룩.”
빅마우스가 고개를 저으며 ‘아니, 씨발.’이라고 울었다.
상황이 불리해진 올리버는 샛길로 빠지는 이야기를 원래 궤도로 되돌렸다.
“빅마우스. 일단, 여기 있는 물건들 다 삼켜주시겠어요? 하나도 남기지 말고요.”
몸통에 달린 여러 개의 눈으로 올리버를 노려보던 빅마우스는 투덜댐에도 올리버의 부탁대로 창고 안에 있는 아이템들을 삼키기 시작했다.
헤드 완드처럼 한입에 삼킬 수 있는 것은 물론, 외골격 장갑처럼 규격에 벗어난 물건까지도.
원래라면 입보다 큰 물건을 삼키긴 불가능했지만, 다수의 동족을 먹은 덕분인지 아가리가 뱀처럼 늘어나 웬만큼 커도 이제는 삼킬 수 있었다.
원래는 용량을 키울 의도로 한 거였지만, 의도치 않은 기능이 생긴 셈.
올리버는 동족과 싸워 서로 잡아먹게 한 자신의 선경지명에 뿌듯함을 느끼며 데릭과 야렐리, 언너에게 물었다.
“저희도 어찌할지 정하도록 하죠.”
“뭘 어찌해?”
“이 임무를 계속할 건지 말 건지요.”
당연한 제안이었다.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움직였건만, 상대는 자신들이 오는 행선지가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갱들까지 매수했다. 이쪽 계획은 처음부터 어그러진 셈.
거기다, 갱들을 고용한 데 쓴 비용과 그 갱들의 입막음에 보인 기술은, 상대가 여러 의미로 보통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이러니 질문을 한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올리버가 말한 건 이상했지만.
데릭이 의심을 빛냈다.
“넌 그만둘 생각이야?”
“아뇨, 저는 계속할 생각입니다.”
“근데, 저희는 빠지라고요?”
이번엔 야렐리였다. 그녀는 무시당했다는 섭섭함과 언짢음을 빛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제가 조금 무리한 계획을 세워서요.”
“······그 무리한 계획이 뭔데?”
“잘만 진행되면 도시에 가자마자 바로 목표와 접촉할 수 있는 계획입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