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07화 (507/633)

507. 과도한 장비 (1)

빅 휠의 아지트로 들어간 올리버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빅 휠의 리더 호그 님 맞으십니까?”

올리버가 굳은 채 서 있는 근육질 남성에게 물었다.

50대에, 각이 잡힌 스포츠머리, 거칠게 기른 턱수염으로 볼 땐 그가 빅 휠의 리더인 호그인 거 같았다. 다행히 예상은 적중했다.

“넌 누구지?”

“아, 실례했습니다. 자기소개를 깜빡했군요. 마탑-원소학파 소속의 직원 제논 브라이트입니다.”

올리버가 한쪽 손으로 주섬주섬 명함을 꺼내 남자에게 내밀었다. 새하얀 달걀껍데기처럼 하얗고 빳빳한 명함을.

호그는 그 명함을 말없이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그리움, 미련, 질투 등의 감정을 조용히 빛내며 말이다.

“······우리가 습격한 게 너였구만?”

“절 아시나요?”

“당연히 알지. 마탑 직원이자 해결사, 란다에 떠오르는 거물인데. 생김새가 내가 들은 거랑 좀 다르긴 하지만······. 빌어먹을 페이가 세서 위험할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역시 시간이 없어도 알아봤어야 했어.”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란다의······. 거물요?”

“모르는 척하는 건가?”

“정말 무슨 말씀인지 모릅니다.”

“소문대로 음험하군. 셰이머스를 죽여 그의 위상을 빼앗고, 욕심 없는 척하며 남들 모르게 세를 구축해 한 구역을 통째로 먹은 놈이······.”

올리버는 말문이 막혔다. 뭐랄까? 전부 사실이긴 한데, 미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하긴, 부자 애인을 두고도 모자라 매춘부 수십 명의 기둥서방 노릇까지 하는 놈이면 그 정도 뻔뻔함은 있어야겠지······. 보복하러 온 건가?”

올리버는 왼손 검지를 들어 잠시 시간을 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부자 애인은 뭐고, 매춘부 기둥서방은 또 뭐란 말인가? 가끔씩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음······.”

올리버는 침음성을 내며 생각을 정리했다.

저 알 수 없는 소문부터 물어볼지, 아니면 일 이야기부터 물어볼지 고민됐기에······. 짧지만 긴 고민 끝에 올리버는 사(私)보다 공(公)을 우선하기로 했다.

“보복하러 온 게 아닙니다. 거래를 제안하러 온 거죠.”

“······거래?”

“예. 거래요. 개인적으로도 공적으로도 궁금한 게 있거든요······. 누구에게 사주와 지원을 받은 건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올리버가 이곳에 온 이유를 꺼냈다.

그도 그럴 게, 빅 휠이 지원받은 장비는 상상을 초월했기다.

기관단총과 기관총, 바이크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에 본 마공학 갑옷은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야렐리가 말하길 현재 개발 중인 핸드메이드 기종으로, 일단, 셀랜드에서는 만들지 못하는 물건이라고 했다. 생산국에서도 상당한 통제를 받고 있고.

그런 물건을 넘겨준 게 누군지만 알아내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이번 일 외에도 다른 일에도.

그렇기에 데릭과 야렐리도 이곳으로 오길 찬성한 거였다.

허나, 설명을 들은 호그는 비웃을 뿐이었다.

“하! 이거 소문이랑 다르군. 드루이드 수백 명을 벌목하듯 죽였다길래 수틀리면 바로 주먹부터 휘두를 줄 알았는데······. 아주 신사였구만, 그래.”

“칭찬은 감사하지만, 오해입니다. 드루이드를 수백 명이나 죽인 적은 없습니다. 딱 82명만 죽였거든요. 나름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사도 아니고요.”

“음······. 듣던 것보다 더 또라이 같은 새끼군.”

“죄송합니다······. 어쨌건 저와 거래해 주시겠습니까? 비록, 저희를 습격하셨지만, 호그 님 쪽도 사정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습니다. 비소속 갱들에게 밀려나셨다고요.”

호그가 발끈했다.

“하! ······내 부하들이 이야기했나?”

“어······. 비슷하긴 합니다.”

“이상하군. 내 부하들이 그렇게 입 싼 놈들이 아닌데?”

“음······. 어쨌건, 제 말의 요점은 저와 새롭게 거래하자는 겁니다. 저희의 습격을 명하고, 여러분께 그 장비를 건네준 사람만 말씀해주십시오. 그럼, 걸맞은 대가를 치르고 이대로 떠나겠습니다. 어떠십니까?”

올리버가 품 안에서 막대형 기기를 꺼냈다. 도로 위에서 습격한 갱들의 관자놀이와 어깨, 가슴에 부착된 것으로, 영상기록 장치로 추정됐다.

“보복하지 않고. 돈도 주고, 그냥 떠나 주겠다고? 자비롭게?”

“자비로운 게 아니라, 이게 합리적이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저희도 사정이 있어 굳이 싸우고 싶지 않고, 정보도 자발적으로 듣는 게 가장 좋으니까요.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사과한다라? ······이미, 우리 아지트를 부수고, 내 부하를 차로 치었는데?”

올리버가 한쪽을 봤다. 아까 전 차로 친 갱이 내장을 흘린 채 누워있었고, 소란을 들은 다른 갱들은 마공학 무기와 흑마법 아이템을 손에 쥔 채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협상을 위해선 임팩트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요.”

“마탑 놈들처럼 재수가 없구만. 지좆대로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올리버는 역시나 라고 생각했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호그는 마탑과 나름대로 인연이 있는 거 같았다.

어느새 이쪽으로 몰려온 빅 휠의 멤버들이 올리버를 포위했다.

일반 화기로 무장한 이들도 있었지만, 간부로 보이는 이들 중 몇몇은 기계 건틀릿과 마법 총기, 마법사(여) 머리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하나하나 고가의 물건. 개중에는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도 있었다.

“제안은 거절하지. 널 조지는 대가로 엄청난 걸 받기로 했거든. 그런데, 쫄아서 그만뒀다고 하면 앞으로 우린 뭘 먹고 살겠어? 이 바닥은 깡다구인데?”

호그는 말과 달리 감정을 앞세워 결정했다. 문제는 그게 단순히 자신의 의지가 아닌 것 같다는 점이었고. 몸에 걸친 흑마법 아이템과 관련 있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올리버는 그를 설득해봤다.

“일거리가 필요하시면 드리겠습니다.”

“······뭐?”

“저희 쪽에 아직 운송을 맡은 사람이 없어서요······. 로드 갱의 원래 수입 중 운송도 있으니, 괜찮으시다면 어떠십니까? 저희 사업으로 간접적이나마 피해를 보셨으니, 그 정도는-”

“-내가 어지간히 우습게 보였나 보군!!”

호그가 발끈했다.

“예?”

“고작 그런 부스러기나 주며 의뢰인을 팔라고 하다니. 왜?! 네놈 명성에 주눅 들어 몇 마디 살살 달래주면 알아서 꼬리를 말 줄 알았나?”

“아뇨, 저는-”

“-거절하지! 부스러기만 먹고 살 생각이 없거든! 애들아! 일생일대의 기회다! 쳐라!”

리더의 명령에 부서진 건물을 포위한 빅 휠의 단원들이 올리버에게 달려들었다.

기계 건틀릿이 절그럭 소리를 내며 푸른 증기를 내뿜었고, 마법 총기는 마력광을 발광, 장대에 꽂힌 마법사(여)는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입에서 불을 뿜었다. 아그니 소학파의 마법사인 것으로 추정됐다.

“안타깝네요.”

홀로 포위된 올리버가 나직이 말했다. 그와 동시에 하늘 위에서 거대한 트럭이 떨어졌다.

올리버를 습격한 불법 개조 트럭으로. 육중한 쇳덩어리가 갑작스레 떨어지자 땅이 흔들리며 거대한 화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끄어-!!”

“불! 불이!! 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올리버만 주시하고 있던 빅 휠의 단원들은 갑작스러운 재앙에 비명을 지르며 전열을 흩트렸다.

물론 트럭이 떨어진 범위 밖에 있는 이들은 무사했지만, 그것도 데릭이 하늘 위에서 내려오자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대화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이랬으면 좋았잖아?!”

장검을 든 채 화마(火魔) 한가운데 떨어진 데릭은 그리 소리치며 검에 마력을 집중, 술식을 전개했다.

아그니 소학파 소속인 그는 화염을 자신의 수족처럼 조종해 자신의 검에 응축시켰고, 검이 붉게 달아오른 그때 허공을 크게 베었다.

그러자 여덟 갈래의 화염이 땅을 타고 양방향으로 갈라져 올리버를 포위한 갱들을 휩쓸어버렸다.

전에도 괜찮은 실력이었지만, 못 본 사이 훨씬 좋아졌다.

술식 전개가 자연스러워진 것은 물론 위력과 통제력까지 몰라보게 상승. 케빈의 가르침을 받은 흔적이 보였다.

“크아아악!!”

하늘에서 떨어진 트럭과 데릭이 만든 불바다 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그러자 땅이 솟구치는 묵직한 소리가 울리며 돌과 흙, 마력으로 빗어진 거대한 토벽(土壁)이 솟구쳤다.

마법사? 그건 아니었다. 갱 중 기계 무기. 정확히는 가이아 학파의 술식이 깃든 마공학 무기를 든 갱이었다.

살과 근육 모두 많은 거한의 사내로, 그는 해머 형태의 마공학 무기를 이용해 대지를 조종. 토벽을 세워 화염을 물리적으로 물리치고는 다시 기계 무기를 조작해 땅을 내리쳤다.

칙칙칙! 기계 무기의 엔진이 움직이며, 안에 깃든 마력과 술식이 뒤엉켜 폭발. 거한의 발밑에 돌기둥이 솟구쳐 올라 사용자를 높이 띄웠다. 추진력을 이용해 하늘 높이 솟아오른 거한의 사내는 곧바로 데릭을 노렸다.

데릭은 이에 주눅 들지 않고 들고 있는 장검에 다시 화염을 모아 칼날을 시뻘겋게 달궈 맞상대하려 했다.

그렇게 거한과 데릭이 맞부딪히려는 찰나, 하늘 위에서 붉은 날개를 가진 무엇인가가 빠르게 날아와 거한을 허공에서 잡아챘다.

다름 아닌 언너로, 혈마법으로 피 날개를 만든 그녀는 곱상한 외관과 가느다란 몸에 어울리지 않는 괴력을 발휘해 거한을 붙잡았다.

한 손으로는 목을, 다른 한 손으로는 망치를 쥔 손을.

예상치 못한 기습과 그보다 더 예상치 못한 상대를 본 거한은 당황하면서도 무기를 쥔 손을 움직여 저항하려 했지만, 언너가 손에 힘을 주자 팔이 우지끈 부러지며 망치를 놓쳤다.

상대의 무장이 해제되자 언너는 그를 허공 위로 던졌고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양손을 X자로 휘둘러 거한의 배를 찢어발겼다.

공중에서 흩뿌려지는 내장과 피.

언너는 혈마법을 발동해 피의 통제권을 전부 가져왔다. 단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혈창(血槍)]

혈액을 확보한 그녀는 피로 가느다란 창을 다수 만든 다음 투척, 데릭의 화염 속을 버틴 갱들을 조준 공격했다.

화염 속에서 살아남은 갱들은 제각기 이를 막으려 했으나, 피와 마력, 감정이 들어간 혈창(血槍)은 그 재료에 걸맞게 강력한 위력을 발휘. 갱들의 저항을 몸통과 함께 꿰뚫어버렸다.

언너는 이러한 결과를 예상했다는 듯 갱들의 몸이 꿰뚫리자마자 혈창(血槍)을 매개로 그들의 혈액을 빼앗아 왔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혈마법은 반은 마법이지만, 반은 흑마법. 재료가 많고, 그 질이 좋으면 사용할 수 있는 힘 역시 증대됐다.

콰과과광━!!

언너가 남은 잔여 병력까지 쓸어버리자, 아지트 인근 창고와 주차장에서 빙산(氷山)이 솟구쳤다.

야렐리의 작품으로, 협상이 결렬되고, 올리버가 이목을 끌면 야렐리가 창고와 주차장을 기습하기로 했다.

스카디 학파의 냉기마법은 건물이나, 물건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상대방을 제압하기 적합했기에.

파방!

모두의 시선이 빙산에 쏠린 그때, 호그가 몸 안의 마력을 끌어모아 다리에 집중. 기습적으로 돌격해 올리버에게 나이프를 휘둘렀다.

빅 휠의 혈액을 먹어 정보를 파악한 언너의 말대로 호그의 나이프 실력은 상당했다. 한번의 휘두름에도 마력을 머금어 푸르게 빛나는 칼날이 세 방향에서 날아왔다.

좌측, 우측, 정면 이렇게······. 카가강!

“대단하시네요.”

올리버가 짧게 쥔 쿼터스태프로 가볍게 막으며 말했다.

“이런 애송이 새끼가!”

호그는 올리버의 감탄에 발끈하며 몸 안의 마력이 폭발할 정도로 빠르게 순환시켜, 칼날의 속도를 미친 듯이 끌어올렸다.

몸에 부담을 주는 방식이었지만, 칼날은 그만큼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비록, 이런 무모한 전투법 탓에 몸이 점점 나빠져 현재는 란다 밖으로 쫓겨난 비소속 갱들에게 밀릴 수준이었지만, 투쟁심 하나만큼은 상당했다.

까가강!! 캉! 까가가강━!!

호그는 팔에 마력을 집중. 세 개의 칼날을 거의 동시에 날려 올리버의 빈틈을 유도한 다음 강력한 찌르기 한 번, 난도질에 가까운 연속 공격을 펼쳤다.

비록 올리버가 그 자리에 서서 쿼터스태프와 마법실드로 가볍게 막아냈지만.

치이이익.

공격이 계속해 막히자 호그가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합세할까?”

“아뇨, 데릭 씨. 괜찮으시면 언너 씨와 함께 야렐리 씨 좀 도와드리러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강력한 마력이 느껴져서요.”

데릭이 야렐리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올리버의 말대로 강력한 마력이 포착됐다. 마공학 무기였다.

데릭은 올리버를 슬쩍 보더니 불평 없이 바로 이동했고, 언너도 획득한 대량의 혈액을 가지고 날아갔다.

“하! 나 정도는 지원 따위 필요 없다? 자신만만하구만!”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전 호그 씨를 우습게 보지 않습니다. 그러기엔 전 약하거든요.”

올리버가 불타버린 자를 떠올리며 해명했다. 그와 비교한다면 자신은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냥 저쪽이 더 중요하다 생각한 것뿐입니다. 배후를 물으러 온 것도 맞지만, 여러분이 가진 장비도 확보하기 위해서 온 거거든요······. 무엇보다.”

“아?”

“몸에 두르신 흑마법 아이템이 신경 쓰여서요. 뭐죠?”

호그는 질문을 듣자마자 자신의 웃옷을 찢어 대답을 대신했다.

그의 옷 아래에는 사람의 살점처럼 붉은빛과 분홍빛이 뒤섞인 가죽옷이 있었다.

끔찍하게도 가죽옷의 가슴과 배 등에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사람의 얼굴이 박혀있었다.

마치, 바토리의 면피(面皮) 조끼처럼 말이다.

“그거 마법사와 마력사용자를 재료로 만들었군요.”

올리버가 가죽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느끼며 물었다.

“아나? 덕분에 이런 것도 할 수 있지.”

호그가 답하자 인피갑주(人皮甲冑)가 그의 전신을 완전히 뒤덮었다. 갑주 군데군데엔 입이 돋아나더니 마력을 내뿜어 주변의 화염을 집어삼켰다.

호그는 그 화염으로 자신의 전신을 뒤덮으며 외쳤다.

“기분 좋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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