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05화 (505/633)

505. 로드 갱 (1)

부아아아아아아아앙!!

란다에서 벗어난 도로 위. 한 대형차가 달리고 있었다.

대형차는 엔진 소리만큼이나 외관 역시 남달랐다.

몇 겹에 걸친 두꺼운 장갑(裝甲), 특수 코팅된 거대한 바퀴, 묵직한 몸체, 여러 장치를 단 듯한 흔적······. 흡사, 차량을 불법 개조해 무기처럼 쓰는 로드 갱(Road Gang)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두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하나는 로드 갱(Road Gang)들의 불법개조 차량처럼 조잡하지 않고 오히려 귀티가 난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라디오에서 거친 퇴폐 음악 대신 인기 라디오 드라마인 <유산과 결혼>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순간 프랭크의 외숙모는 쓰러졌다. 충격으로 오랫동안 앓았던 지병이 단숨에 악화한 것! 주변에 있던 그녀의 친척들과 그녀의 상속인이자 조카인 프랭크는 그녀를 부축했다.]

라디오에서 드라마 내레이션이 나와 상황을 설명해줬다. 드디어 길고 긴 이야기가 절정에 달한 것.

자동차 안에 있는 올리버와 데릭 레드힐, 야렐리 아이스아이, 에르제베트 언너는 모두 무뚝뚝한 표정으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청취했다.

[결국, 프랭크의 외숙모는 3일 후 죽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녀의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생각한다면 이 역시 신의 자비. 허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너무 아픈 나머지 자신의 뜻을 거부하고 멋대로 약혼한 조카의 상속권을 빼앗는 것을 까먹고 말았다. 장례를 마친 프랭크는 열차를 타고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 있는 시골 마을로 내려갔다.]

우적. 우적. 우적······. 올리버가 칼로리바를 먹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프랭크가 자신의 약혼녀 제인을 만나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페어펙스. 외숙모님께서 돌아가셨어.]

[페어펙스은 되물었다.]

[정말요?]

[그래. 외숙모가 돌아가셨어······. 외숙모가 돌아가셨다고! 우린 결혼할 수 있어!!]

[프랭크는 자신을 길러준 외숙모의 부고 사실을 기쁘게 외치며 자신의 사랑을 끌어안았다. 페어펙스 역시 기쁘게 웃으며 자신의 사랑을 끌어안았다. 유산을 이용해 둘의 사랑을 막은 존재가 지금 사라졌으니. 프랭크와 페어팩스. 그 둘을 서로 안으며 계속해 빙빙 돌았고, 그들이 있는 자리에는 웃음소리만이 메아리쳤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궁금한 게 있어. 물어봐도 될까?”

라디오 드라마가 끝으로 달려갈 때 조수석에 앉은 데릭이 입을 열었다.

“우적, 우적······. 뭐가 궁금하시죠?”

“원래 물어보려던 건 은밀한 임무에 왜 이런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거였거든. 멀리서도 눈에 띄는. 근데, 생각이 바뀌었어.”

“······?”

“왜 이런 라디오 드라마를 튼 거야?”

데릭이 질문했고, 뒷좌석에 앉은 야렐리와 언너도 같은 의문을 표했다. 그녀들 역시 궁금한 거였다.

“글쎄요? 여성분들이 타셨으니까요?”

“그게 무슨 뜻이죠?”

침묵하던 야렐리가 되물었다. 갈로스에서의 활약으로 영웅이 된 그녀는 못 본 사이 몰라보게 성장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안경을 벗은 점이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아는 분들이 이 라디오 드라마를 좋아하셔서요. 재미없었나요?”

올리버가 천사의 집 종업원들을 떠올리며 답했다. 그녀들은 휴식시간 때마다 라디오 앞에 옹기종기 모여 라디오 드라마를 들었고, 올리버도 그때마다 겸사겸사 들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 그렇군요······. 언너 씨는 어떠세요?”

뒷좌석 야렐리 옆에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던 언너가 대답했다. 바토리의 수양딸이자 제자, 현재 살아남은 바토리 패밀리의 리더가 말이다.

“글쎄요. 저도 별로······.”

“아, 그러신가요? 전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데릭과 야렐리, 언너 모두가 흠칫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라.

“나름 재밌는 거 같고, 뭔가 배울 수 있는 거 같거든요. 드라마란 게 어느 정도 현실을 바탕으로 만드는 거지 않습니까?”

따지고 들어가면 따질 게 많은 이야기였지만, 아무도 따지지 않았다. 상대는 올리버였으니. 대신, 어떤 걸 배웠는지 물어봤다.

“글쎄요······. 젊은 남자는 부모가 물려줄 유산 외에는 희망이 없고, 부모는 유산을 들먹이는 것 외에는 자식에게 존경을 받을 수 없으며, 돈 없는 여자는 결혼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차 안에는 다시 침묵이 흘렀다. 너무나도 무겁고 긴 침묵이.

뒤따라오던 트럭이 옆을 지나칠 때쯤 야렐리가 입을 열었다.

“다른 채널 트는 게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네.”

데릭이 곧바로 버튼을 눌러 채널을 변경했다. 치지직 잡음이 울리더니 잠시 후, 음악 채널이 나왔다. 때마침 유명 라디오 가수인 샬롯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마법이나 자연의 힘을 쓰지 않음에도, 누구보다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기적의 가수.

원래는 유명 음악가의 숨겨진 애인이었다던데, 스캔들이 터진 후, 그 이슈를 이용해 단숨에 유명해졌다고 했다.

엄청난 모험심과 행동력.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문이었다. 그 정도 재능이면 스캔들 없이도 유명해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꽤 잘 알고 있네?”

데릭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그 제논이 이런 이야기를 아는 건 너무 이상했다.

“누군가 그런 것도 알아야 한다더군요. 삶의 여유를 배우고, 멋진 신사가 되기 위해서요. 그래서 가끔씩 라디오 드라마나, 노래, 패션 잡지도 봅니다.”

다들 올리버를 보며 의문을 빛냈다. 사람이 그나마 파악됐다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이런 모습을 보여 사람을 당황하게 했으니.

그러나 의문인 것은 올리버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으시면 저도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뭔데?”

“다른 게 아니라 이번 임무에 어떻게 참여하신 거죠?”

“혹시, 문제 있나요?”

야렐리가 짧게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엔 어째 서운함이 깃들어 있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좀 의외라서요. 이번 임무는 비밀리에 진행하던 거라 아는 사람을 늘릴 줄 몰랐거든요.”

맞는 말이었다. 지금 마탑은 겉으로 도난당한 프로젝트와 금고를 뚫은 기술을 회수하는 것에 집중했지만, 이번 임무의 진짜 목적은 마탑 침입의 배후로 의심되는 이브(Eve)를 몰래 추적해 정체를 밝히고, 설득(확보)하는 거였다.

그런데 야렐리와 데릭, 언너에게 해당 사실을 이야기해 주고, 왜 합류시킨 건지 의문이었다.

첫 번째로 대답한 건 데릭이었다.

“나도 몰라. 큰아버지께서 말씀해주셨고, 맡아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셔서 수락한 것뿐이야. 한 건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뒤이어 야렐리도 입을 열었다.

“저도 비슷해요. 마탑 차원에서 중요한 일이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해요.”

흐음. 석연치 않은 대답에 올리버가 고개만 끄덕였다.

“······그쪽은 어쩌다 참가했지?”

데릭의 시선이 언너에게 꽂혔다. 그는 조용히 의심을 빛냈다.

“그쪽과 비슷해요. 그랜드 마스터께서 말씀하면서 제안하셨어요.”

그랜드 마스터라 하면 멀린.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지만, 또 이상한 일은 아니라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반해 데릭과 야렐리는 언너에게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신분을 세탁했음에도, 어디선가 이야기가 샜는지 언너와 그 자매에 대한 수상한 소문이 마탑에 감돌고 있었다.

뭣보다, 야릴리는 자세히는 아니지만, 과거 언너를 직접 마주한 적이 있었고.

올리버는 개인적으로 이런 상황이 안타깝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데릭과 야렐리만 저러는 게 아닌, 마탑 전반의 분위기가 이랬으니.

다행히 언너도 그런 마탑 분위기에 익숙해진 건지 불쾌해하지 않고 당당히 대응했다.

“방해되진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래 보여도 제 몸 하나 지킬 능력은 되고, 세계수도 조금은 다룰 수 있거든요.”

그 말에 데릭과 야렐리가 시선을 거뒀다.

실제로, 언너는 수상쩍은 소문과 별개로 혈마법에 관한 높은 학식으로 그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있었으니, 계속 의심만 할 수 없었다.

거기다 세계수까지 다룰 수 있다면 이번 임무에서 야렐리나 데릭보다 더 가치 있을지도 몰랐다.

세계수를 다룰 수 있는 마법사는 소수며, 그 소수 중 전투력을 가진 마법사는 더 소수였으니.

그렇게 일단락된 대화. 올리버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아까 전부터 신경 쓰이던 것을 질문했다.

“혹시, 지금 차 멀미하거나, 할 것 같은 분 있나요?”

뜬금없는 질문에 모두 고개를 갸웃댔다.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아, 다름이 아니라 운전이 다소 거칠어질 것 같아서요.”

또다시 나오는 수수께끼 같은 말. 그러나, 곧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왜냐면 올리버의 차 앞쪽과 뒤쪽에 불법 개조한 트럭이 나란히 붙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같이 탄 일행들이 놀랐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운전해 어느새 포위했기에. 올리버도 감정을 꿰뚫어 보는 흑마법사의 눈이 없었다면 한 박자 늦게 눈치챘을 터였다.

부아아앙 올리버의 엔진 소리와 쿠라라라랑 거리는 트럭 엔진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도로 위를 가로질렀다.

엔진소리를 들은 데릭은 뭔가 눈치챘다.

“이 거친 엔진 소리······. 불법개조 차량, 로드 갱(Road Gang)이야.”

로드 갱(Road Gang). 혹은 도로 약탈자, 이름 그대로 도시 밖의 갱들이었다.

주로 불법적인 물건을 배달해주거나, 혹은 그 불법적인 물건을 약탈했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후자의 역할인 듯했다.

생각하기 무섭게 안전거리를 확보하던 앞뒤 트럭이 무서울 정도로 바짝 거리를 좁혔다.

갑자기 멈췄다간 큰일 날 듯했다.

“빅 휠. 이 근방에서 위세가 컸던 로드 갱이야.”

트럭에 개조 방식을 보고 데릭이 추측했다.

“‘컸던’이라면, 과거형 아닙니까?”

“과거가 맞으니까. 다른 갱들에게 밀려났거든. 특히, 란다에 있는 자잘한 갱들이 도시 밖으로 나와 그 위세가 많이 약해졌다나?”

란다의 자잘한 갱. 아마, 비소속 갱일 터였다.

크라임 펌과 파이터 크루의 전속계약, 올리버의 X구역 재개발 사업으로 란다에서 비소속 갱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졌으니.

포레스트가 말하길 의자 뺏기 게임처럼 밀려나고 밀려난 비소속 갱 중 상당수가 란다 밖 거리와 소도시로 밀려났다고 했다.

설마, 그게 이미 란다 밖에 있는 갱들에게 영향을 줬을 줄이야.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였지만, 이리 마주하니 또 느낌이 달랐다.

“그런데 밀려난 분들로는 안 보이는데요?”

올리버가 의문을 표했다. 장비의 상태와 대열을 보면 상대가 어떤 상황인지 대략 유추할 수 있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로드 갱들은 경쟁에서 밀린 조직 같지가 않았다.

트럭의 개조가 조잡하긴 했으나 관리가 잘 됐고, 엔진 역시 힘찼다. 뭣보다 내부에 탄 인원들의 사기도 높은 편이었다.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끼이익······.

그때였다. 개조한 트럭 적재함 문이 열리며 그 안에 있는 사람들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기관총과 바주카포를 든 다섯 명의 남성과 고글을 끼고 바닥에 용접한 기관총을 쥔 여성이. 그들은 눈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파티를 시작해-”

“-박격포.”

올리버가 소이탄 버튼을 누르며 외쳤다. 버튼을 누르자 차량 뒤쪽에 부착된 박격포 포구(砲口)가 튀어나와 전방을 향해 포탄을 쐈다.

퉁.

경쾌한 소리는 폭발음으로 바뀌었고, 검은 연기와 시뻘건 불길이 트럭 적재함을 가득 채웠다. 당연히 그 안에 타고 있던 갱들은 무사하지 못했다.

강렬한 불길에 갱들의 살이 밀랍처럼 녹으며, 비명소리가 울렸고, 몇몇은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발버둥 치다 도로 위에 떨어졌다.

덜컥!

그중 운이 나쁜 한 명은 올리버의 차량 앞에 떨어져 특수 코팅된 바퀴에 짓밟혀 커틀릿처럼 납작해졌다.

“······.”

올리버의 빠르고 적절한 대응에 놀란 데릭과 야렐리는 놀란 눈으로 올리버를 바라봤으나. 올리버는 그 눈빛에 대답하는 대신 거대한 크기를 앞세워 달려오는 뒤쪽 트럭을 상대하기로 했다. 이대로 가다간 짓밟히고 말 터였다.

철컥. 철컥. 촤악.

올리버가 왼손과 프타스 어시스턴트(Ptah's Assistant)를 바삐 움직여 핸들과 기어를 동시에 조작, 차량의 방향을 180도로 돌렸다.

“처음 해보는 건데 잘될지 모르겠네요.”

“네?”

그 순간 시야가 빠르게 움직이며 차량 내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렸다. 그리곤 어느새 뒤따라오던 차량과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됐다.

뒤로 달리는 올리버의 맞춤형 차와 짓밟기 위해 돌진해 오는 불법개조 트럭.

올리버는 센터패시아에 있는 버튼을 눌러 보닛 좌우측에 내장된 기관총을 밖으로 꺼냈다.

“기관총?”

“멋있죠?”

올리버가 발사 버튼을 눌렀다.

두두두두두두두━━!!

두 정의 기관총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회색 화약 연기가 총구 앞에 맺히며, 철판을 덧댄 트럭은 구멍이 나다 못해 산산조각이나 찢어발겨졌다. 운전수는 말할 것도 없고.

덕분에 올리버를 노리던 트럭은 단 몇 초 만에 균형을 잃고는 현란하게 넘어져 그대로 폭발. 흉흉한 화염과 흑색 연기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속. 올리버가 말했다.

“아직 끝이 아닌가 보네요.”

말하기 무섭게 검은색 연기와 화염을 뚫고 또 다른 개조 트럭이 괴물처럼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빠아아앙━!

귀를 찌르는 경적 소리. 이에 맞춰 도로 옆에서 기관차 엔진을 두 개 이어 붙인 듯한 공격적인 디자인의 바이크가 다수 출현해 올리버와 일행을 포위했다.

누가 봐도 미리 대기한 것.

올리버는 습격자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관찰하곤, 칼로리바를 하나 꺼내 입안에 쑤셔 넣었다.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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