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02화 (502/633)

502. 새로운 일상 (2)

올리버는 마일로를 떠올렸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머피의 두 번째 의뢰를 받았을 때로. 당시 머피는 마법주 공장을 짓는 동안 올리버에게 경비를 맡아달라 의뢰했다. 

올리버는 수락했고, 그 과정에서 머피의 이모인 매기와 막냇동생인 마일로를 처음 만날 수 있었다. 

만났다고 해봐야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였지만. 

여하튼, 그는 올리버가 마법사를 쓰러트린 일화를 듣곤 자기도 흑마법을 배우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지극히 즉흥적인 감정에 기반한 지극히 즉흥적인 행동. 

이를 증명하듯 마일로는 이후로 나타나지도, 흑마법을 가르쳐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한데, 갑자기 대뜸 나타나 다시 흑마법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 

올리버가 물었다. 

‘흑마법을요?’ 

‘예, 처음 만났을 때 가르쳐 달라고 했잖아요?’ 

‘기억납니다. 이후 말씀하지 않으셔서 관심이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마일로가 멈칫했다. 

‘아······. 그건, 그······. 형 사업 좀 돕는다고요. 저희는 가족 사업을 하거든요.’ 

올리버는 이해했다. 실제로, 란다의 수많은 조직은 가족 단위로 사업을 운영했고 킴벨 패밀리도 그중 하나였다. 

몇몇 시대의 흐름에 맞춰 기업형으로도 조직을 운영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아직까지도 족벌 경영이 대세였다. 뒷세계에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것은 가족이었으니까. 

‘지금은 사업을 안 돕나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냥 지금은 좀 한가한 거죠······.’ 

진심. 다만, 숨기는 게 있었다. 그때, 중개인이자, 재개발 사업 경영을 도맡은 포레스트가 귓속말해줬다. 

‘마일로는 막내라 그런지 킴벨 패밀리에서 명확히 맡은 업무가 없어. 주로 잔심부름을 하지.’ 

‘아······. 어떻게 아시는 거죠?’ 

‘뭐가 됐건 난 중개인이지 않나? 당연히 알아야지.’ 

올리버는 납득했다. 중개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정보였고, 포레스트는 적잖은 기간 동안 파이터 크루와 크라임 펌의 인력 알선도 도맡았다. 안다고 해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은 올리버는 마일로에게 직접 물어봐 확인했고, 마일로는 당황하고 흥분해 처음에는 아니라고 잡아뗐으나 곧 그 사실을 인정했다. 

형들이 자기를 너무 애새끼처럼 보고 제대로 된 일을 맡기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래서 여기 온 겁니다. 나도 내 몫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특히, 최근에 무력이 필요한데 아직 우린 그게 좀 그렇거든요.’ 

포레스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킴벨 패밀리는 마법주 사업을 시작으로 현재 크라임 펌 이사들에게 뒤지지 않는 재력을 쌓았으나, 그와 별개로 무력은 심심한 감이 있었다. 

기존 세력과 마찰을 피하기 위한 조직 정책 탓으로, 그로 인해 파이터 크루를 가장 많이 고용한 이들이기도 했다. 

오히려 의문은 다른 곳에 있었다. 

‘무력이 필요한 이유가 뭐죠? 너무 갑작스러운 것 같아서······. 아, 갈로스로 사업을 확장하셔서 그렇습니까?’ 

‘예? 아, 그것도 맞기는 하지만 꼭 그건 아닌데······. 지금 상황 모르세요?’ 

마일로가 의아한 듯 되물었고, 올리버는 포레스트를 바라봤다. 포레스트가 한숨을 쉬며 설명해줬다. 

‘흐음······. 한꺼번에 말하면 머리 아플까 봐 좀 있다 이야기해주려 했는데, 아무래도 날이 아닌가 보군.’ 

‘무슨 말씀이시죠?’ 

‘말 그대로일세. 요즘 뒷세계가 좀 소란스럽거든. 크라임 펌도 긴장할 만큼.’ 

포레스트가 설명해줬다. 근래 뒷세계가 소란스럽다고 말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인육 요리사가 쓰러졌기 때문으로, 갈로스의 뒷세계를 양분한 괴물이 사라지자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밀리유와 여러 흑마법사가 날뛰고 있다고 하였다. 

‘갈로스는 바다 건너 외국이지 않습니까?’ 

‘그만큼 소란스럽다는 증거지. 파도가 크면 물이 그만큼 멀리 튀기는 것과 같은 이치야. 바다 건너 외국에도 닿을 만큼······. 거기다 또 다른 손가락까지 다쳤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어 혼란에 힘을 보태고 있어.’ 

그 손가락이 누군지 알 거 같아 올리버는 말을 아꼈다. 

‘그래서 다들 군비를 증강하고 있는 거야. 혼란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거기다 우리도 한몫했고.’ 

‘저희요?’ 

‘그래······. 파이터 크루가 하청 조직에서 온전한 하나의 조직이 되어버렸지 않나? 크라임 펌에서 이제 우릴 완전히 믿을 수 없게 됐지.’ 

그랬다. 서로 간의 밸런스를 위해 과도한 군비 확장은 지양하고 외부 인력을 쓰는 등. 긴장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 최선인 크라임 펌이었지만, 파이터 크루가 X구역에 하나의 완전한 조직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노선을 달리하게 됐다. 

자신들에게서만 수익을 얻는 하청 조직과 다른 곳에서도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완전한 조직은 그 입장과 의미가 천지 차이였으니. 

그래서 크라임 펌의 각 조직은 현재 자체적으로 군비를 확장해, 무장 수준을 높여 스스로를 지키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뭐랄까······. 좀 죄송하네요.’ 

‘아아. 그렇게 안 미안해도 돼요.’ 

마일로가 끼어들었다. 겉으로는 가벼웠지만, 속은 상당히 진중하고 명확한 목적의식이 깃들어 있었다. 

‘이 바닥이 원래 센 놈이 먹는 게 당연한 건데 미안한 게 뭐 있겠어요······. 또, 이게 아니더라도 어차피 다들 무력을 키우고 싶어 하고 있었어요. 파이터 크루는 그저 명분에 불과하고요.’ 

얼핏 가벼워 보이는 말투였으나, 말 한마디 한마디 맥을 짚고 있었다. 

‘요즘 다른 도시의 크라임 펌 이사들과도 트러블이 나고 있고, 보안국의 규모도 점점 커져 다들 불안불안한 상태거든요······. 어차피 이 도시에서 골머리 썩히고 있던 비소속 갱단은 파이터 크루 덕분에 싹 다 청소했으니.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 꽤 잘 아시네요?’ 

‘이거 왜 이러세요? 잔심부름만 했다 해도 전 킴벨 가문 사람인데. 그러니 저도 좀 가르쳐주세요. 형처럼 도와주면 보답할 테니까요. 그 증거로 여기 돈도 모아 왔어요.’ 

‘알겠습니다.’ 

마일로가 두툼한 돈 봉투를 꺼내기도 전에 올리버가 수락했다. 

너무나도 쉽게. 주변 사람들은 물론 부탁한 당사자조차 당황하는 감정을 빛내며 멈칫했다. 

‘진짜요······?’ 

‘예.’ 

‘와우······, 이렇게 쉽게 수락해 줄 줄 몰랐는데요?’ 

‘배우고 싶다고 하셨으니까요. 다만, 제가 일이 있어 당장은 가르쳐드리긴 힘들 것 같습니다. 가볼 곳도 있고요.’

‘오, 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감지덕지죠······. 근데 가볼 곳이라뇨?’ 

‘마탑입니다.’ 

올리버가 그리 대답함과 동시에 회상에서 깨어났다. 

현실로 돌아온 올리버의 눈엔 마탑의 풍경이 들어왔다. 

거대한 부지와 학파별로 특색을 살려 세워진 타워들.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똑같으면서도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마탑 내 있는 산책로. 그곳 벤치에 모여 어수선하게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올리버가 생각했다. 

“소문이 사실이야?” 

“어, 우리 사촌 형이 마탑 행정부에서 일하잖아? 그쪽을 통해 들은 건데 소문이 사실이래. 우리 마탑에서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털렸대.”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 그렇잖아? 프로젝트가 털리다니······. 거기 보안과 경비가 얼만데.” 

“미친 소리 같긴 한데, 경비 놈들 제대로 근무를 안 섰다 하더라. 설마 이곳에 오는 놈이 있겠냐고 방심했대.” 

“미친······. 아니다. 하긴 그런 놈들이니까 경비 노릇이나 하고 있겠지. 그놈들 망했네.” 

“망해도 한참 망했지.” 

“근데, 보안 시스템 있잖아? 세계수를 이용한 보안 시스템.” 

질문을 듣자 대답하던 학생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바로, 그게 핵심이야. 세계수에 유동성 패턴을 걸어 드루이드도 해제하는데 최소 40분은 걸리게 할 보안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그게 2분도 안 돼 뚫렸대. 덕분에 지원이 와도 이미 털린 후였고.” 

“그게 가능한 거야? 억지로 열려고 하면 계속 술식이 꼬여 푸는 데 한나절은 걸리잖아?” 

“나도 몰라, 가능한가 보지. 그래서 지금 마탑 내에서 첩자가 있는 게 아니냐고 하며, 얼마 전에 대대적인 수색-” 

“-야. 야.” 

벤치에 앉은 학생 중 하나가 열변을 토하는 학생의 옆구리를 찔렀다. 

일순간 멈춘 대화. 방해받은 학생은 뭐냐고 짜증스럽게 물었고, 옆구리를 찌른 학생은 올리버가 있는 방향을 살짝 가리켰다. 

이야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너무 빤히 바라보고 만 것. 

덕분에 올리버는 학생들은 어색하게 눈을 마주쳤다. 

“······.” 

“······.” 

불편하게 내려앉은 침묵.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쿼터스태프를 쥔 왼손을 살짝 흔들어 인사했고, 학생들은 주뼛거리면서도 올리버의 인사에 화답해줬다. 

꽤 놀랐다. 그도 그럴 게 처음 마탑에 들어왔을 때는 대부분 올리버를 보고도 못 본 척 무시했기에. 

몇 번 임무를 수행해 사람들 관심을 받은 적도 있지만, 딱 관심뿐. 일부를 제외하면 개인적인 존중이나 인사는 주고받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인사하니 받아주었다. 아는 사람도 아닌데 꽤 신기했다. 올리버는 인사를 받아준 학생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다시 인사하고는 가던 길을 마저 갔다. 

‘정말 신기하네.’ 

*** 

“신기할 게 뭐가 있지?” 

마탑 내 있는 원소학파-타워. 그곳 교수연구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케빈 던바가 말했다. 

멀린의 제자이자, 마탑의 마스터, 교수인 그는 여느 때처럼 서류를 빠르게 읽고, 사인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넌 정식으로 마탑 직원이 된 데다, 여럿 굵직한 사건에서 활약했잖아? 레이크 빌리지, 인육 요리사······.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이 반응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실제로 네가 한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칭찬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매우 담백하게 반응했다. 혼자서 바토리를 쓰러트려 생명학파 산하의 연구실을 되찾고, 테어도어의 음모를 막았으며, 검은손의 인육 요리사와 그 동생까지 쓰러트려 놓고 말이다. 

심지어, 지금은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X구역에 당당히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칭찬 감사합니다’라니······.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놀라운 놈이었다. 특히, 이럴 땐 더더욱. 

말로 형용하기 힘든 저 태도······. 아니, 기질은 케빈이 볼 때 올리버가 소유한 재능보다도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압박하고 격차를 깨닫게 하는. 

“······그건 그렇고 신대륙에서 많이 일이 있었나 보군.” 

케빈이 하던 작업을 잠시 멈추며, 자기 오른쪽 머리와 팔을 가리켰다. 

새하얗게 탈색된 올리버의 한쪽 머리와 불타버린 팔을 가리킨 것으로, 올리버가 답했다. 

“아······. 예, 이것저것 일이 좀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많은 일이 있으셨던 것 같군요.” 

올리버가 케빈의 몸에 깃든 한층 순수하고 고강해진 마력과 안정적인 것을 넘어선 마력 흐름. 그 외 몸에서 은은히 내뿜는 정령의 기운을 느끼며 물었다. 

과거에는 미약했고 올리버도 정령의 기운을 제대로 알지 못해 넘겼지만, 이전보다 기운이 선명해진 데다, 올리버 역시 얼음 노인을 가까이서 본 덕분에 이번에는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눈이 더 좋아진 것도 한몫했고.’ 

케빈이 입을 열었다. 

“많은 일이라······. 있긴 있었지.” 

미묘한 뉘앙스. 물론, 이런 건 올리버의 전문 분야가 아니긴 했지만, 혹시, 몰라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 

케빈이 그답지 않게 침묵했다. 간혹 이렇게 침묵할 때가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그 결이 달랐다. 이번만큼은 착각이 아닌 듯했다. 

“실로, 오랜만에 지도를 받았어.” 

“지도(指導)? ······어르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덕분에 여러 정령과 계약할 수 있게 됐지. 이게 좋은 소식이야.” 

“······나쁜 소식은 뭐죠?” 

“펠릭스 기억나?” 

“예.”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펠릭스. 원소학파-가이아 소학파에 소속된 마탑 학생으로, 처음 만난 것은 케빈의 수업 때였다. 올리버는 케빈을 대신해 그들의 체력단련을 약간 도와줬다. 

의욕이 없던 학생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펠릭스만이 의욕을 냈기에 딱히 기억하지 않으려고 해도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는 케빈의 연구실 연구원으로 지원해 데릭과 함께 합격했고, 레이크 빌리지까지 같이 갔다. 

중간에 테어도어의 음모에 휘말려 마력과 생명력을 상당히 빨리긴 했지만. 

“혹시 죽거나, 영구적인 장애가 생겼습니까?” 

올리버가 끔찍한 소리를 무덤덤하게 했다. 뭐, 테어도어로 인해 입은 부상을 생각하면 이상한 건 아니었다. 

생명력과 마력을 크게 빼앗겨 몸은 쇠약해졌고, 평생을 걸쳐 쌓은 마력 역시 줄어들었으니. 

케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네가 제공해 준 약을 먹고 후유증을 거의 떨쳐냈거든.” 

“다행이네요. 그럼, 뭐가 나쁜 거죠?” 

“그놈이 도둑놈이란 게 문제지. 마탑 물품과 연구를 뒷구멍으로 빼돌려 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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