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 새로운 일상 (1)
“후우······.”
포션과 약초를 때려 박은 욕조 속에서 올리버가 길게 숨을 토했다.
욕조에 들어간 재료만 해도 족히 수억 란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진 지금의 올리버조차 놀라게 한 액수였지만, 역시 비싸면 그 값을 하는지 몸을 담그자마자 뼛속까지 깃든 한기(寒氣)가 눈 녹듯 사라졌다.
‘······이걸로 두 번째인가?’
올리버가 처음 이 욕탕에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엔 기절한 탓에 어떻게 욕탕에 들어간 건지도 몰랐는데, 그래도 지금은 기절하지 않고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필거렛을 피워 기절한 그때에 비하면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그래도 멀었지만.’
끼익······.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름 아닌 멀린을 보조하는 나무인형-골렘으로, 그것은 수건과 붕대, 갈아입을 새 옷을 가져왔다.
“감사합니다.”
나무인형-골렘을 바라보며 올리버가 인사했고, 나무인형-골렘은 똑같이 올리버에게 인사하곤 밖으로 나갔다.
마네킹 같은 단순한 외형임에도 행동은 고차원적이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과 집안일, 경비까지 할 수 있었으니.
‘음······.’
뭔가를 고민하는 올리버는 속으로 침음성을 내더니, 욕탕 밖으로 나와 수건으로 몸에 묻은 물기를 닦고, 오른팔에 붕대를 두른 후, 옷까지 갈아입은 뒤 밖에 있는 휴게실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캐주얼한 차림의 멀린이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구만.”
“배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어르신께서는 괜찮으십니까?”
같은 얼음 땅에 있던 멀린에게 물었다. 멀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괜찮아. 나이를 먹긴 했지만, 내가 쓴 마법에 당할 만큼 노쇠하진 않았거든.”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올리버가 수억짜리 욕탕에 들어간 것은 다름 아닌 만년설의 한기에 당했기 때문. 멀린도 범위 내에 있긴 했지만, 문제는 없을 터였다.
공간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가 자기 마법에 당하진 않았을 테니.
‘그건 참 대단했지.’
올리버는 백화(白火)가 속한 공간만 잡아채 으스러트린 멀린을 떠올렸다.
그건 아주 인상적인 광경이라 할 수 있었다.
대상이 속한 공간을 붙잡아 시간이 멈춘 듯 정지시킨 다음 무력화시키다니. 일반적인 마법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현재의 공간 마법이 ‘포털마법’과 ‘소환마법’ 이 두 종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말이다.
“팔 좀 보여줄 수 있겠나?”
상념에 빠진 올리버에게 멀린이 대뜸 말했다. 올리버가 되묻자 그가 다시 말했다.
“오른팔 좀 보여줄 수 있겠냐고 물었어······. 불을 내뿜는 팔은 보기 흔한 게 아니잖나?”
“아, 예. 잠시만요.”
정신을 차린 올리버가 웃옷을 벗었다. 붕대를 손가락 끝부터 어깨까지 싸맸기에 보여주려면 웃옷을 벗어야 했다.
붕대를 풀자 그 아래 우그러든 피부와 장작처럼 갈라지고 시커멓게 불탄 팔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척 봐도 처참한 모습. 그러나 멀린은 조금의 표정도 구기지 않았다.
“······이게 악마에게 당한 거라고?”
“예······. 아뇨. 당했다는 표현은 조금 아닌 거 같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말. 멀린이 화내지 않고 되물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악의를 가졌다기보다 그냥 인사한 건데 제가 감당 못 한 거거든요.”
다시 나온 말 같지도 않은 말. 허나, 사실이었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으며 그 모습을 드러낸 불타버린 자는 나오자마자 올리버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숙여 정중히 인사했고, 그런 다음 장난스럽게 올리버의 손을 잡아 손등에 자기 이마를 댔다.
그때 올리버의 팔이 불탔고.
“그러니까 당했다는 표현은 그분에게 조금 억울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런가?”
멀린이 되물었다. 감정을 꿰뚫어 볼 수 없으나, 미묘한 표정과 말의 뉘앙스로 볼 때 어이없어하는 거 같았다.
“같은 게 아니라, 어이없는 거야. 팔을 불태워 먹었는데도 그따위 소리를 하니까. 정말 뇌를 열어서 확인하고픈 심정이야.”
“죄송합니다. 다만, 불타버린 자 님은 뭔가 오해를 많이 사시는 삶을 사신 듯해서요······. 또 저를 봐주시고, 예의도 지켜주셔서요.”
“예의?”
“예······. 절 존귀한 존재라고 하며, 정중히 대화해 주셨거든요. 그럼 저도 예의를 지켜야죠. 그게 예의니까요.”
뭔가 엄청난 이야길 올리버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 한결같은 태도 때문에 아무도 올리버는 뭐라 말 못 하는 거긴 했지만.
그래서일까? 멀린은 올리버의 오른팔을 마저 살피더니 물었다.
“악마에게 당한 화상이라 그런지 확실히 묘하군. 신경까지 불탄 거 같은데, 괴사할 기색은 없어.”
“예, 저도 그게 신기합니다.”
남의 팔 이야기하듯 올리버가 답했다.
“통증은 없나?”
“좀 있습니다.”
“자네가 좀 있다고 하면 진짜 아프다는 건데, 진통제는?”
“여러 가지를 써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흑마법이나 마법도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고요.”
“하긴, 불도 내뿜는 팔인데 그런 건 딱히 신기한 게 아니긴 하지.”
“동감입니다. 불이 나오는 건 저도 이번에 안 거지만요.”
“음······. 팔을 자르는 건 어떻나?”
멀린이 대뜸 끔찍한 소리를 했다. 허나,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었다.
“보아하니 이 팔은 치료할 수 없어 보이고, 통증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인 거 같은데.”
멀린이 올리버의 눈 밑에 내려앉은 다크서클과 아까 전 대련 때 제한적인 움직임을 떠올리며 말했다.
멀린의 말마따나 현재 올리버의 팔은 여러모로 마이너스 요소가 많았다. 물론, 그렇다 해도 팔을 자르는 건 너무 극단적이긴 했지만.
“새 팔을 붙이면 되지 않나? 자네 기술로 말이야.”
“[혈마법과 생명마법을 접목한 신체와 장기의 재구축과 이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자네 논문을 바탕으로 다른 마법사들이 연구할 만큼 뛰어난 거니까. 물론, 자네라면 이미 어느 정도 상용화 가능할 테고.”
올리버를 아는 멀린이 정확히 집어냈다. 상용화라는 표현은 다소 과할 수 있었지만, 작정하고 하면 새 팔을 만들어 달 수는 있었다.
“내키지 않아서요.”
“왜?”
멀린이 올리버의 팔에서 얼굴로 시선을 옮겨갔다.
“아프고,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불타버린 자. 즉, 악마가 남긴 상처니 뭔가 연구하면 흥미로운 걸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작열통, 그로 인해 행동에 제약받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올리버가 말했다. 광기라는 말이 절로 나올 태도. 그러나 광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 아프다고 쉽게 자르고 싶지 않아서요.”
“······뭐?”
“이상하게 들렸나요?”
“조금.”
“그렇군요. 그런데 진심입니다. 아프고 괴롭긴 하나 쉽게 자르고 싶진 않습니다. 이 상처는 제 삶의 역사니까요.”
“······무슨 말인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겠나?”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누굴 흉내 낸 거라서요.”
올리버가 캔트를 떠올렸다. 새 팔을 달아주겠다고 했을 때 거절한 캔트를. 그는 상처 역시 자신의 삶을 역사라 하며 짊어지겠다고 했고, 올리버는 그것을 흉내 낸 것에 불과했다. 뭔가 멋있어서 말이다.
대답을 들은 멀린은 허하고 웃었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의 연속이군. 하긴, 자넬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한 것부터가 잘못이지만.”
“칭찬이시죠?”
“경우에 따라······. 그럼, 통증이라도 좀 줄일 수 있게 도와줄까?”
“통증을요? 방법을 아십니까?”
올리버가 놀라 되물었다. 올리버 역시 통증을 줄이기 위해 임시로나마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통증의 유일한 장점이라곤 무슨 짓을 해도 평등하게 아프다는 것뿐이었다.
“방법을 안다기보다는 시도해 볼만한 걸 아는 거지.”
“그게 뭐죠?”
“정령에게 부탁하는 것.”
멀린이 대답과 동시에 허공에서 책을 꺼내 서늘한 마력을 내뿜었다.
멀린과 성질이 다른 마력. 선대(先代) 아카이브의 마력으로 추정됐다.
하늘빛 서늘한 마력은 허공에 흩어지는가 싶더니, 곧 술사의 의지에 기반해 마법진을 형성. 반짝이는 얼음 결정이 나오는가 싶더니, 얼음 결정끼리 서로 뭉쳐져 나이 든 남성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당당하고, 서늘한 노신사. 과거 엔조이먼트가 소환한 화염의 귀부인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올리버는 너무 놀라 남성의 형태를 한 정령을 말없이 바라봤다.
과거 엔조이먼트가 소환한 화염의 귀부인과 케빈이 소환한 샐러맨더는 올리버를 보고 사라지거나 주춤했건만, 이 정령은 그렇지 않았다.
“얼음 노인. 부탁드리오.”
얼음 노인이라 불린 정령은 소환자의 부탁에 반응했다. 그는 두 손을 움직여 냉기로 이뤄진 가느다란 얼음 사슬을 생성해, 올리버가 두른 붕대를 한 가닥씩 감쌌다.
춤추는 것 같은 섬세한 움직임으로, 붕대와 쇠사슬은 하나가 됐다.
쇠사슬과 하나가 된 붕대는 자의식을 가진 듯 허공에 둥둥 뜨더니 기계처럼 오밀조밀 움직여 올리버의 팔을 완전히 포위. 착하고 빈틈없이 감싸버렸다.
차아아아······. 열이 식는 소리가 울리며, 올리버의 팔에 기분 좋은 서늘한 감각이 느껴지더니, 통증이 약간이나마 가라앉았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게.
“어떻나?”
멀린이 물음에 올리버는 오른손을 아주 천천히 쥐었다 펴봤다.
“······아주 편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이구만.”
“정령님도 감사합니다. 성함이 얼음 노인 님?”
올리버가 멀린이 소환한 정령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놀랍고도 기쁘게도 정령은 올리버를 빤히 바라보다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하곤 점차 투명해져 사라졌다.
“자네가 마음에 드나 보군. 얼음의 정령은 기본적으로 쌀쌀맞은 편인데, 인사도 안 받아줄 만큼.”
“그거 기쁜 이야기네요. 정령을 본적이 거의 없지만, 대부분 절 안 좋아하는 줄 알았거든요. 주춤거리거나 사라져서요.”
올리버가 케빈의 샐런맨더와 엔조이먼트가 소환한 화염의 여인을 떠올렸다.
그들은 대부분 올리버를 보면 당혹한 감정을 빛냈고, 얼음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차이가 있다면 그는 사라지지 않고 멀린의 부탁을 들어줬다는 거고.
“아카이브라 그런 걸까요?”
올리버가 물었고, 멀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아카이브는 아카이브니까.”
“그렇군요······.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덕분에 잠을 잘 잘 수 있겠습니다.”
올리버가 손을 쥐었다 펴며 인사했다. 안 아픈 건 아니었지만, 아까 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다.
“이제 일어나 보겠습니다.”
“가려고 하나?”
“예······. 아, 혹시 제가 도와 드릴 게 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그저 의외라서. 이것저것 물어볼 줄 알았거든.”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긴 합니다.”
올리버가 긍정했다. 왜냐면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으니까. 강력한 힘을 가진 악마가 왜 인사했는지, 악마가 존귀한 존재라 칭한 이유가 무엇인지, 혹시, 개발 반대 위원회에서 말한 위대한 자와 통하는 게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여쭤볼 생각은 없습니다. 아직은 말입니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멀린의 눈이 커졌다.
“이유가 뭔가? 아니, 별 뜻은 없고 늘 이것저것 질문하던 친구가 이러니 궁금해서.”
멀린의 질문을 곱씹은 올리버가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려고요.”
“초심?”
“예, 어르신의 조언대로 초심으로 돌아가니 한결 나아졌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초심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 초심이 뭔지 물어볼 수 있겠나?”
“제가 직접 찾아보는 겁니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배우는 건 진짜가 아닌 가공된 것이니까요······. 어르신께서 스승으로서 처음 가르쳐 주신 거죠.”
멀린의 눈이 더 커졌다.
“허······. 역시 시간은 젊은이의 편이라니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지.”
“칭찬 감사합니다. 다만, 혼자서 안 될 땐 도움을 청할 것 같습니다.”
“마음대로. 도움을 청하는 것도 젊은이의 특권이니······. 돌아가서 뭘 할 건가?”
“일단, 유머책을 1시간 읽고, 한숨 푹 잘 겁니다. 최근에 잠을 도통 못 잤거든요. 그리고 누굴 좀 만날 생각입니다.”
“누구? 여자야.”
“예, 어떻게 아셨습니까?”
“진짜?”
멀린이 놀라 되물었다. 그럴 줄은 절대 몰랐다는 듯이.
***
하늘도 땅도 없는 허공 세계 룻 넷(Root Net).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밤하늘처럼 검은 광활(廣闊)과 그 광활 속을 가로지르는 마력뿐이었다.
그곳에서 올리버는 외쳤다.
“이브(Eve).”
올리버의 외침은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울렸다.
돌아오는 것은 오직 침묵뿐. 올리버가 다시 외쳤다.
“이브(Eve).”
그러나 역시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 물론이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었다.
올리버가 부른다고 이브(Eve)가 나타나야 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 있는 것이라곤 각자의 자유 의지뿐.
다만, 왠지 모를 찜찜함이 엄습해왔다.
그도 그럴 게 이브(Eve)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레이크 빌리지 때로, 올리버는 이브의 도움을 받아 테어도어를 필두로 한 생명학파의 음모를 막을 수 있었다.
아마 이브(Eve) 도움이 없었다면 막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거였다.
대규모의 안개 결계에 눈이 가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으며, 외부와의 연락도 끊겨 고립됐으니.
이브의 도움이 있기에 테어도어의 계획을 알아차리고, 주변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적절히 대응, 멀린이 와줄 수 있었다.
실로 큰 도움. 허나, 올리버는 그런 이브(Eve)에게 감사를 표하긴커녕 찾아가 보지도 않았다.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말이다.
“그것 때문에 안 와주시는 건가?”
밤하늘처럼 검은 허공 세계에서 올리버가 혼잣말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지도.
일을 도와주는 과정에 다치기까지 했는데 최소한의 보상은커녕 인사조차 받지 못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아쉽긴 했지만, 차라리 그거면 다행이다 싶었다. 최소한 그렇다면 이브(Eve)는 안전하다는 거였으니.
문제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브(Eve)의 감정은 상하지 않았으나, 나올 수 없는 상황. 그거라면 상정할 수 있는 상황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설마······.’
올리버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세계수에 들어간 이브(Eve)를 누가 납치하고 구속할 수 있단 말인가?
세계수에 최고 권위자인 드루이드도 갓 태어난 이브(Eve)에게 떼거지로 덤벼 간신히 포획할 수 있었는데, 어느 정도 성장하고, 자유로운 이브를······? 너무 과한 생각이었다.
올리버는 다시 허공에서 이브를 부르곤 접속을 끊었다.
“볼일이 끝났나?”
현실로 돌아온 올리버에게 수림(樹林)을 배경 삼은 포레스트가 말을 걸었다.
“음······. 일단은 끝났습니다.”
“만족스럽게 끝나진 않았다는 거군.”
“비슷합니다. 그건 그렇고 여기 세계수까지 자랄 줄이야. 좀 놀랍네요.”
올리버가 주변의 수림을 살펴보며 말했다.
이 숲은 다름 아닌 엔조이먼트와의 싸움 도중 생긴 인공 숲으로, 놀랍게도 싸움 당시 생긴 나무 외에도 현재 새로운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린랜드에서만 자란다는 약초와 희귀 버섯, 기르기 까다로운 꽃 그리고 세계수였다.
“약초와 버섯은 약사님께서 제공해 주신 거라고요?”
올리버의 물음에 포레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키운 노하우와 지분을 대가로 자기가 확보한 종자를 시원하게 넘겨주셨지. 대단한 분이더군. 솔직히 소도시에 있는 분이라 얼마나 도움이 될지 걱정했거든.”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란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주변의 시골이나 소도시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긴 했다. 특히, 부유층이.
허나, 한편으로 이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도 잘 알았다. 란다는 주변 마을과 소도시를 집어삼켜 급성장한 도시.
다른 도시에 비해, 아니, 세상 모든 도시와 비교해도 란다가 가장 위대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연합 왕국의 수도조차 란다에 비하면 전구 앞의 촛불이라 할까?
‘경제적인 수도는 란다긴 하지만.’
올리버가 한쪽을 봤다. 그곳엔 피켓을 든 송장인형-셰이머스와 바토리가 서 있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역시, 대단하세요.”
“말로 때우지 마라!”
“우리의 투쟁. 귀 기울여라.”
송장인형-셰이머스와 바토리. 정확히는 그 송장인형 안에 들어간 써드와 퍼스트가 소리쳤다.
올리버가 신대륙으로 간 사이 그들은 무슨 이상한 시뻘건 책을 읽고 저러한 피켓을 준비하였다고 했다.
참고로 피켓에는 근로 시간 단축과 인원 보충이라는 생소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 숲으로 이제 사업할 수 있습니까?”
“무시하지 마라!”
차일드가 소리쳤으나, 포레스트는 돈 많은 이답게 그 말을 무시했다.
“이 숲으로 바로 돈 벌 생각은 없어.”
“어째서지요.”
“무시하지 말라 그랬다!”
다시 소리치는 차일드.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와 포레스트는 계속해 대화를 이어갔다.
“씨발.”
“왜 바로 돈 벌 생각이 없으신 거죠?”
“오해는 하지는 말고. 돈에 관심 없다는 뜻이 아니니까.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뿐이지. 일단, 당장 이걸로 돈 벌기에는 너무 시험 단계거든.”
올리버는 주변을 다시 둘러보자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식물과 꽃이 눈에 들어와 눈치채지 못했지만, 다시 살펴보니 문제가 보였다.
사업적으로 쓰기에는 식물의 그 수량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종자의 양이 미미했으니까. 뭐, 그렇다고 약사 선생을 흉보는 건 아니야. 애당초 드루이드가 취급하는 식물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올리버가 동의했다. 블랙마켓에서도 드루이드가 취급하는 식물은 쉬이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식물의 성능이 뛰어나고 귀하다면 더더욱.
설사 가끔 나온다 해도 그 수량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그건 크게 문제가 안 돼. 중요한 건 종자를 이 숲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는 거니. 수는 늘리면 돼. 문제는 시간과 인력이지.”
“더 이상! 일 못 한다! 근로 시간 줄여라!”
“써드란 친구 말도 틀린 건 아니야.”
“진짜?”
주장이 받아들여지자 써드는 놀랐고, 퍼스트도 들고 있던 피켓을 놓쳐 떨어트렸다. 포레스트가 설명했다.
“저 친구가 쓴 드루이드의 지식을 읽어봤는데, 혼자서 수를 늘리는 건 한계가 있는 거 같아.”
“그렇습니까?”
“그래. 드루이드들이 다루는 약초는 그 효과가 엄청난 대신 손이 많이 가거든. 그것도 자연의 힘을 다루는 드루이드의 손이.”
그랬다. 그린랜드의 특산물인 약초와 버섯, 나무 등은 뛰어난 질을 자랑했지만 그만큼 고급 인력의 손도 많이 요구했다.
비싼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
그걸 고려한다면 아무리 차일드를 굴린다 해도 한계는 명백했고, 효율도 좋지 않을 게 뻔했다.
“혹시, 드루이드의 시체는 구하셨습니까?”
“네 구 정도 확보했네.”
포레스가 귓속말로 말했다. 얼핏 적은 양 같았지만, 내부 분쟁을 끝마친 개혁파 드루이드들이 살아있는 엔조이먼트든, 죽어있는 엔조이먼트든 가리지 않고 확보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꽤나 수완을 발휘한 거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네 구 더 생긴 걸로는 별 의미가 없다는 거지. 결국, 차일드에게 대부분 업무를 맡겨야 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고.”
“진짜 싫다.”
올리버 포레스트의 말을 조용히 들으며 뭔가를 고민했다. 포레스트가 계속해 말했다.
“하지만 꼭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야. 일단, 숲에 이식한 덕분에 시(市)에서도 이 숲의 가능성을 알아봤거든. 당장 수익을 못 낸다 해도 시(市)에서 보조금을 지원해줄 가능성이 커. 탐욕스럽지만, 그만큼 쓸 줄 아니까.”
포레스트가 란다 시(市)에 신뢰와 믿음을 빛냈다.
“뭐, 시(市)에서 지원 안 해준다 해도 재개발로 벌어들일 수익이 있으니 당장 급한 건 없고. 요점은 초조해할 것 없다는 거야.”
“이해했습니다······. 저도 해결 방법을 한번 모색해 보겠습니다.
“그래 주면 든든하지.”
포레스트가 그리 말하며 올리버와 같이 숲 밖으로 나갔다. 물론, 올리버는 숲을 떠나기 전 차일드들에게 열심히 일하란 말도 잊지 않았다. 그것이 예의였으니까.
“진짜 씨발.”
구시렁대는 차일드를 뒤로하고 올리버와 포레트스는 밖으로 나갔다.
“그건 그렇고 타이밍이 참 묘하구만.”
“뭐가 말씀입니까?”
“마리 말이야. 자네가 올 때 맞춰 단 몇 시간 차이로 자리를 비울 줄이야.”
“아······. 저도 신기하긴 합니다. 어느 지부로 갔다고요?”
“햄체스. 웬 사이비 종교와 트러블이 났다더군. 아쉽나?”
“예······. 볼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약간 아쉽네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올리버가 붕대를 칭칭 두른 오른팔을 들어 보였다.
조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처음 올리버를 봤을 때 크게 걱정했는데, 마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올리버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왕이면 나중에 봐줬으면 했다. 그게 덜 소란스러울 테니까.
“그런가?”
“예······. 뭔가 이상한가요?”
“아니, 별로······. 응, 저건 뭐야?”
재개발 사업의 현장 지휘부인 파이터 크루 아지트에 도달했을 때 포레스트가 무엇인가를 보곤 중얼거렸다.
올리버 역시 포레스트의 시야를 따라갔고, 온몸에 명품을 덕지덕지 두른 한 소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아는 사이라니까! 나무꾼 데이브랑 말이야!!”
“이런 애새끼가 감히 누구 존함을······!”
“이래서 졸부 놈들은······. 확 거꾸로 매달아?!”
화를 내는 파이터 크루 단원과 선택하는 사람들. 올리버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다가가자 소란의 중심에 있던 소년이 소리쳤다.
“아······! 아······!! 나무꾼님! 나무꾼님! 저 기억하십니까?! 접니다! 저!!”
소년은 올리버를 보자 요란스럽게 말했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때 누구인지 몰랐으나 곧 누군지 떠올랐다.
“마일로 씨 아닙니까? 머피 킴벨 씨 동생분?”
“예, 맞습니다! 저희 마법주 사업 초창기 때 마법사 씹새들로부터 저희 도와주셨잖아요?!”
“예······. 기억납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신지요?”
“저 흑마법 좀 가르쳐 주십시오!”
마법주 사업으로 주류왕(酒類王)이란 칭호를 얻은 킴벨 패밀리의 수장. 머피 킴벨의 막냇동생 마일로가 소리치며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