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 리매치 (2)
날아오는 한 장의 종이. 올리버는 몸에 두른 감정 로브를 이용해 막으려 했고, 곧 실수였다는 걸 깨달았다.
쿵······!
아까 전과 다른 묵직한 소리가 울리며 올리버가 뒤로 날아갔다.
베기 위해서가 아닌 밀어내기 위한 종이로, 덕분에 베는 공격에 대응하려던 올리버는 쉽게 뒤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오른팔에서 올라오는 끔찍한 통증은 덤이고.
“싸움의 두 번째 규칙. 상대는 나무토막이 아니다. 늘 똑같이 대응하지 않지.”
당연하지만 쉬이 잊는 사실. 참으로 맞는 말이었다.
왜냐면 올리버 역시 똑같이 대응하지 않았으니까.
“미니언. 포위해서 공격하세요.”
올리버는 뒤로 날아가는 와중 망토 아래 숨어 있던 미니언 30기 날려 보냈다.
올리버가 처음 만든 크리처, 미니언(Minion).
원래는 방심한 상대에게 불의의 일격, 혹은 접근해 온 상대에게 예상치 못한 일격을 주기 위해 만든 크리처였지만, 지금은 사용법을 약간 변경했다.
신대륙에서 만난 퍼펫의 제자 클로드가 사용한 소형 골렘을 참고해, 미니언으로 편대를 짜 멀린을 포위 공격하기로 한 것이다.
치명상을 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주의는 끌 수 있을 테니. 허나, 그러한 기대는 멀린이 손바닥을 휙 내젓자 산산이 부서졌다.
부웅······!!
손바닥에 머금어진 마력은 멀린의 통제 아래 있는 공기 중의 마력과 반응해 강력한 바람을 형성했고, 그 때문에 접근하던 미니언은 뒤로 맥없이 밀려났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강렬한 바람을 타고 날아간 굵은 눈송이가 미니언에 달라붙어 곰팡이처럼 퍼지더니 완전히 뒤덮어버렸다.
툭. 투두둑, 툭······.
허무하게 바닥 위로 떨어진 미니언. 올리버는 그 모습을 보고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최소한 타격은 못 줘도 빈틈은 만들어 줄 거라 기대했건만 너무 허무하게 파훼 됐다.
“상대가 장소를 선점하게 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사방의 모든 게 적이고, 흉기야.”
“그렇군요.”
올리버가 대답하며 몸 안에 저장한 마력을 발에 집중시켰다. 발에 몰린 마력이 지면으로 퍼져나갔다.
멀린의 조언대로 장소를 이용할 생각. 그런데, 얼음의 땅은 침묵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멀린 역시 마력을 부여해 통제권을 행사했기 때문이었다.
구구구구구.
두 개의 마력이 뒤엉켜 서로 고삐를 잡으려 하자 얼음 땅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수백 가닥의 마력이 섬세하면서도 거칠게 박투를 주고받았고, 이윽고 한쪽으로 형세가 기울었다.
“나도 통제권 싸움에 일가견이 있거든.”
그 말을 증명하듯 멀린은 곧바로 올리버의 마력을 제압하곤 땅의 통제권을 가져오더니, 올리버의 주변에 타원형 형태의 빙산을 다수 솟구치게 했다.
콰과광━! 쾅과과과━━!!
작게는 3미터, 크게는 5미터의 타원형 빙산이 눈먼 총알처럼 마구잡이로 솟구쳐올라 올리버를 무분별하게 강타하고 위협했다.
마력의 흐름과 감정을 통해 상대방의 공격 위치를 예상하는 올리버에겐 오히려 이게 위협적.
올리버는 몸에 블랙 슈트를 두르며 뛰어난 신체 능력을 발휘해 공격을 피하려고 했다.
인육 요리사의 손바닥 살점을 먹어 얻은 반사신경과 육체능력이라면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니었다.
욱씬!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격하게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불타버린 오른팔에서 끔찍한 통증이 올라왔기에.
덕분에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 마력의 흐름을 최대한 읽어 솟아오르는 빙산을 최소한의 동작으로 피하는 것으로 회피 방법을 바꿨다.
통제권을 빼앗아오는 게 가장 편하고 효과적이긴 했지만, 그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었다.
“싸움의 세 번째 규칙.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멀린의 가르침을 작열통과 함께 뼈에 새기며 땅 밑 마력이 폭발할 때마다 몸을 틀어 빙산을 계속해 피했다.
솔직히 말해 쉽지는 않았다. 강철보다 단단한 빙산은 사람을 위축시켰고, 빙산이 올라올 때마다 피할 공간도 줄어 들어갔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버는 빙산을 모두 피했다.
푹!!
솟아오른 빙산에서 대뜸 얼음송곳이 튀어나와 올리버의 등을 꿰뚫었다.
올리버가 뒤를 돌아봤고 무분별하게 퍼진 광역 술식 사이에 조용히 자리 잡은 아주 섬세한 술식을 볼 수 있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포병 속에 숨은 저격수.
멀린은 광역 술식 속에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할 술식을 숨겨두곤 적절한 타이밍에 발동시켰다.
다행인 점은 올리버 역시 대응을 준비했다는 거였다.
찌지지직!
감정 로브와 블랙 슈트를 부른 올리버의 몸은 실뭉치처럼 풀어지더니 수백 개의 가느다란 촉수로 변했다.
그 촉수들은 사방으로 뻗어 멀린이 만든 빙산을 붙잡곤, 그대로 지면에서 뽑아내 멀린을 향해 빙산을 던져 날려 보냈다.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가리는 수십 개의 얼음덩어리.
멀린은 감탄하면서도 당황하진 않고 왼손에 마력을 모았다. 웬만한 마법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량의 마력을.
마력이 모이자 그의 손에 청색 스파크가 튀기더니, 날아오는 얼음을 향해 손을 뻗어 번개를 날려 보냈다.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영창이 울리자 멀린의 손가락을 통해 수십 개의 번개 줄기가 뻗어져 나갔다.
멀린의 의지가 담긴 번개 줄기는 낭비 없이 얼음 덩어리를 정밀 타격했고, 얼음은 번개와 반응해 폭죽처럼 빛을 내뿜더니, 바위와 유리가 뒤섞인 둔탁하고도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산산이 깨쳤다.
유릿가루 같은 얼음 조각이 허공에 비산하며,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했다.
“방금 그 흑마법은 뭔가?”
“낚시 아귀. 신대륙에서 배운 기술입니다. 상대를 속이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흑마법이죠.”
어느새 멀린의 코앞까지 다가온 그림자 속에서 올리버가 튀어나왔다.
올리버는 그림자 밖으로 나오자마자 프타스 어시스턴트(Ptah's Assistant)와 감정 로브를 하나로 합친 거대한 검은 손을 만들어 멀린을 향해 쭉 뻗었다.
일단, 잡아 추출을 시도하면 승기가 엿보일 거라 판단해.
허나, 멀린은 거대한 검은 손에도 위축 없이 빙벽(氷壁)을 세워 바로 대응했다.
땅을 흔들며 솟아난 거대한 얼음 성벽. 안에 깃든 마력 양으로 볼 때 빙산과 동일한 강도임을 예상할 수 있었으나, 올리버의 검은 손도 5미터가 넘는 오거를 단숨에 제압한 전적이 있었다.
올리버는 망설이지 않고 검은 손을 계속해 뻗어 빙벽을 정면에서 부숴버렸다.
“힘 좋구만.”
빙벽이 눈먼지를 일으키며 부서지자마자 멀린은 종이를 다수 던져 올리버의 검은 손을 찢어발겼다.
검은 손이 강력하긴 했지만, 하나의 선에 마력을 집중해 예기(銳氣)를 극도로 끌어올린 종이엔 베일 수밖에 없었다. 허나, 올리버는 개의치 않았다.
너덜너덜 찢어진 검은손을 그 상태로 재구성해 히드라의 머리처럼 여러 개의 손을 만들면 됐기에.
올리버는 감정과 마력을 통제하며, 머릿속 이미지를 투영했다.
그러자 너덜너덜 찢긴 검은 손은 크고 작은 십수 개의 손으로 변해 일부는 멀린의 마력과 생명력을 추출하고, 다른 일부는 멀린을 물리적으로 붙잡기 위해 뻗어져 나갔다.
“쿨럭!”
멀린을 붙잡으려는 찰나 올리버가 기침했다. 호흡기에서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감각을 느껴졌다.
처음에는 뭔지 알 수 없었으나, 주변을 살펴보자 곧 알 수 있었다.
아까 전 부서진 빙산의 파편 중 일부가 올리버의 호흡기로 들어와 내부에 타격을 준 거였다.
당황한 올리버는 입을 틀어막았으며, 그로 인해 한순간 동작이 멈췄다.
멀린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공간을 접어 뒤로 단숨에 이동해 거리를 벌린 뒤, 건물과 맞먹는 거대한 빙산을 사방에서 솟구치게 해 올리버를 포위하는 동시에 자신과 물리적으로 분단시켰다.
꽤 난감했다. 단순히 밀리고 있어 난감하다는 게 아니었다. 애당초 이기기 위한 싸움도 아니었고. 다만, 이 정도로 주도권을 빼앗길 줄은 몰랐다.
한순간 고화력의 술식을 때려 박으면 어떻게든 주도권을 가져와 보다 나은 흐름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놀랍게도 멀린은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이지만 탄탄한 마법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대응해 올리버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환경을 이용한 우위 선점과 기술의 연계를 이용해 말이다. 실로, 놀라운 실력이었다. 마법을 포함한 대응 방법과 반사신경 전투에 관한 전반이 말이다.
‘그래도 수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올리버가 간신히 확보한 멀린의 마력과 생명력을 쥐며 생각했다. 비록 한 줌에 불과하고, 감정은 마력의 벽에 막혀 아예 빼낼 수도 없었지만, 뿌듯하기 그지없는 성과였다.
짝. 짝. 짝.
[대단하군.]
사방을 둘러싼 빙벽 사이로 멀린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
[마력과 생명력을 빼앗길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칭찬 감사합니다. 솔직히 감정까지 추출하고 싶긴 했지만 그건 안 되네요.”
[노인네 속마음을 가지려고 하면 안 되지. 남사스럽잖나?]
멀린이 농담하듯 말했다.
[어찌 됐건 대단해. 전투 중 추출하는 게 쉬운 게 아닌데 말이야. 아차 하면 반격을 허용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콜록······. 잘 아시는군요.”
[난 아카이브니까.]
멀린이 무적의 카드처럼 말했다. 납득이 안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건 그렇고 계속할 건가?]
“예?”
[이미 승부가 났다고 생각해서. 난 이대로 시간만 끌어도 이길 거 같거든.]
올리버는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호흡기 속에 얼음 조각이 들어와 지금 올리버에게 지속적인 데미지를 주고 있었다. 당장은 치명적이지 않았지만, 시간을 계속해 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터.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멀린의 통제하에 놓인 주변 환경 역시 올리버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계속해 내리는 눈은 올리버의 시야를 방해할 뿐 아니라 몸에 달라붙어 납처럼 무게를 더했으며, 점점 더 차가워진 기온은 올리버가 몸에 두른 블랙 슈트와 로브까지 점차 얼려가고 있었다.
일반적인 추위가 아닌 마력이 뒤섞인 추위이기에 가능한 영역.
거기다 사방을 둘러싼 건물을 아득히 넘는 빙산 역시 올리버를 고립시켜 독 안에 든 쥐로 만들었다.
멀린의 말대로 가만히 있어도 올리버의 패배였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
감정마저 얼리는 냉기.
통제권을 빼앗긴 대지.
사방이 올리버를 견제하고 위협했다.
“죄송하지만, 어르신······. 조금 더 해봐도 되나요?”
“물론, 되지. 다치는 건 내가 아니라 자네일 테니.”
올리버는 다시 ‘예?’라고 되물을 뻔했으나, 멀린은 그러기 전에 행동으로 보여줬다.
동서남북 사방에 세워진 빙벽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조여 들어와 올리버를 압박했기 때문.
빙벽이 조여오자 주변의 냉기 역시 더욱 심해졌다.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다행히 인육 요리사의 살점을 먹어 강해진 올리버의 육신은 그 냉기에 저항해 움직여 줬고, 올리버는 쿼터스태프를 바닥에 내리찍고는 품 안에서 나뭇가지와 자연의 힘이 깃든 시험관을 꺼냈다.
콰과과과과과!
눈먼지를 일으키며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빙산들.
그러나 올리버는 당황하지 않고 한 손으로 자연의 힘을 추출하는 동시에 멀린에게서 추출한 생명력, 마력 그리고 몸에 두른 감정 로브에서 감정을 뽑아 한데 뒤섞었다.
‘검붉은 나뭇가지가 아닌 게 아쉽네. 생각만큼 큰 효과는 낼 수 없겠어.’
올리버는 이 일이 끝나고 검붉은 나뭇가지를 챙기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으며, 한데 뒤섞은 재료를 그대로 얼음으로 이뤄진 대지 위에 박아넣었다.
[흑마법-창조계열 : 콜드 우드(Cold Wood)]
[흑마법 : 패러사이트(Parasite)]
[드루이드의 주술 : 급성장]
***
올리버는 팬과의 싸움에서 사용했던 술식을 변형해 비슷하지만 한 단계 발전한 술식을 발동시켰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감정과 자연의 힘이 아닌, 인공영혼과 자연의 힘을 조합한 술식으로, 이러한 술식을 펼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팬을 사용했던 술식을 그대로 사용하기보다 한 단계 발전한 술식을 사용하고 싶어서였고,
두 번째는 나무와 냉기라는 상극(相剋)을 억지로 이어 붙이는 걸 넘어 시너지를 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공영혼을 재료로 창조계열 흑마법을 발동시킨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조합 역시 창조계열이라면 충분한 접착제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해. 그리고 올리버의 이런 기대는 보답 받았다.
나무와 냉기. 함께 할 수 없는 두 개의 요소는 창조계열의 이름으로 한데 묶여 모순된 생명체를 만들었다.
냉기와 냉기 속에 깃든 차가운 마력을 먹어 단숨에 성장하는 차가운 나무를 말이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악!!
생명을 얻은 회색 나뭇가지는 얼음 땅에 뿌리내리며 사방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단단하고 차가운 얼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억센 뿌리를 이용해.
억센 뿌리는 얼음 덩어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안에 있는 차가운 마력을 양분 삼아 더욱 커졌고, 더욱 커진 뿌리는 빙산의 진격까지 멈춰 세웠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멀린의 방대한 마력을 먹은 크리처는 올리버의 의지대로 주변에 산발적으로 나무가 자라나게 했다.
흰색과 회색이 얼룩덜룩 뒤섞인, 죽었지만 살아 있는 차가운 나무를.
곳곳에서 자라난 차가운 나무에서는 푸른 잎사귀 대신 눈알이 돋아나 멀린이 어디 있는지 올리버에게 알려주었다.
“저기 계시네.”
멀린의 위치를 파악한 올리버가 품 안에서 포털마법이 깃든 종이를 쿼터스태프에 붙인 다음 그대로 하늘 위로 투척했다.
[블랙 재블린(Black Javelin)]
감정 로브를 일부 두른 쿼터스태프는 하늘 위로 높이 올라갔고, 그 높이가 절정에 달했을 때 올리버는 추가 영창했다.
[타겟팅(Targeting)]
[스트렝슨(Strengthen)]
[헤빌리(Heavily)]
[액셀러레이션(Acceleration)]
영창 하자 하늘 높이 날아오른 쿼터스태프에 목표물이 지정되며 한쪽으로 머리가 기울고, 무게와 강도가 상승하더니, 빙벽 너머의 멀린을 향해 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올리버는 차가운 나무를 통해 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다.
얼음벽을 세워 쿼터스태프를 막으려는 멀린을. 허나, 오늘 처음 땅이 멀린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땅에 대한 통제권을 멀린이 가졌다 해도, 그 땅에 뿌리내린 차가운 나무가 이를 물리적으로 막았기에.
그러는 사이에도 쿼터스태프는 인지하기도 힘든 속도로 날아와 어느새 멀린의 코앞에 도달했다.
쾅━━━!!!
공기를 뿌옇게 찢는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멀린이 책을 휘둘러 올리버의 쿼터스태프를 후려친 것으로, 놀랍게도 블랙 재블린에, 타겟팅, 스트렝슨, 헤빌리, 액셀러레이션. 다섯 개의 술식이 부여된 쿼터스태프는 책과 부딪히자마자 모든 술식이 박살 나며 핑그르르 허공을 날아 바닥에 꽂혔다.
도대체 뭐로 만든 책이길래 저리 튼튼한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당장은 못 물어보지만.’
올리버는 궁금증을 잠시 미루곤 차가운 나무에게 부탁을 했다.
차가운 나무는 땅을 찢고 뒤흔들며 요란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올리버는 품 안에서 포털 마법이 깃든 종이를 꺼냈다. 쿼터스태프에 붙인 것과 짝을 이루는 종이를.
종이를 던지자 허공에 보랏빛 포털이 생성됐으며, 올리버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뛰어들어가 빙벽 너머 멀린과 거리를 좁혔다.
“오늘날 두 번 놀라게 하는구만.”
“감사합니다. 그런데, 세 번일 수도 있습니다.”
올리버가 멀린과 자신 주변을 포위한 회색빛 나무들을 보며 말했다.
차가운 나무는 올리버의 부탁대로 반경에 거대한 회색 수림(樹林)을 만들어주었다.
이로써 장작은 준비 완료. 올리버는 몸 안에 저장된 마력과 몸에 두른 감정 로브를 모조리 사용해 탐화(貪化)를 만든 다음 외쳤다.
[냉림식화(冷林食火)]
영창이 울려 퍼지자 흑염(黑焰)이 차가운 나무를 먹어치우며 지평선 너머에서도 볼 수 있는 거대한 화염을 일으켜 얼음 땅 위를 뒤덮었다. 올리버와 멀린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