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97화 (497/633)

497. 바쁜 복귀 (2)

편히 말해달라는 올리버의 요청에 언너가 용기 내 말했다. 자신들을 받아달라고. 

아마, 그녀가 말한 자신들이란 언너 본인을 포함한 오르쇼어, 커털린, 언드라시, 팔. 이렇게 다섯 자매일 터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요청에 올리버는 몇 초간 침묵하였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언너의 감정은 조금씩 초조와 불안으로 물들어갔다. 

그녀의 감정이 초조와 불안에 완전히 물들기 직전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예상치 못한 말씀인지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해합니다.” 

언너가 답했다. 더 강한 흑마법사에게 귀순하는 게 그리 흔한 게 아니었지만, 눈앞의 흑마법사라면 왠지 이럴 것 같았다.

애당초 그런 사람이라 귀순하기로 정한 거였으니까. 

“질문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제가 아는 거라면 전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진심. 올리버가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물었다. 맛있었다.

“첫 번째 드리고 싶은 질문은 왜 제게 그런 요청을 하시냐는 겁니다. 이미, 마탑에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걸로는 안심할 수 없으니까요. 마탑이 저희를 받아주긴 했지만, 과연 언제까지 저희를 보호해주겠습니까?” 

올리버는 침묵했다. 생각 안 해본 문제였는데, 들어보니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다.

상당한 조건을 내걸고 마탑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게 영원토록 지속할지는 미지수였다. 이상하게도 약속이란 몇몇 사람에겐 가변적이었으니. 

“그랜드 마스터께서 저희를 잘 보살펴주고 계시지만, 죄송하게도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나이도 꽤 되시고, 뭣보다 저희 자매들은 길바닥 여성 출신이라 남자의 호의가 얼마나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거든요.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이해합니다. 모두 각자 입장이란 게 있으니까요. 근데, 저도 남자인데, 괜찮습니까?” 

“데이브 님께서는 단순한 보호를 넘어 저희에게 가르침을 주실 거라 믿으니까요. 파이터 크루에 대해 들었습니다. 데이브 님께서 대가 없이 그들을 가르쳐줬다고요.” 

“그건 또 어떻게 아신 겁니까?” 

“마탑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왜죠?” 

올리버가 억울하다는 듯 되물었다. 나름 비밀이었는데. 

“글쎄요······. 뒷골목의 최고 해결사이자, 한 구역을 지배하는 사업가가 마탑의 평직원으로 있으면 온갖 소문이 나는 게 자연스러우니까요?” 

“······아.” 

언너의 반문에 올리버가 탄성을 냈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원래 독보적인 존재는 관심을 끌고, 관심은 수많은 소문을 낳지요······. 덕분에 저희는 데이브 님께서 그냥저냥이던 뒷골목 다크호스들을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실력이 아닌 거 같더군요.” 

“파이터 크루 분들이 열심히 잘 따라와 주신 덕분입니다.” 

“저와 제 자매 역시 잘 따라갈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한 대가······. 아니, 데이브 님께 봉사할 자신도 있습니다.” 

적극적인 언너의 태도. 흑마법사 특유의 지배와 착취 관계상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었으나, 감정 상태로 볼 때 그런 거 같지는 않았다. 

언너는 구체적으로 거래할 카드가 있는 거 같았다. 

이를 증명하듯 그녀는 당당히 말했다. 

“데이브 님께서 저희를 필요로 할 일이 있으실 겁니다. 그때, 저희가 쓸모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만약, 만족하지 않으신다면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 

앞에 했던 말처럼 언너는 여전히 진심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인육 요리사의 허기와 불타버린 자의 화상, 신대륙에서의 피로가 풀리지 않았음에도 올리버는 지금 대화에 적잖은 흥미를 느꼈다. 

“제가 언너 씨의 도움을 필요로 할 일이란 게 구체적으로 뭐죠?” 

“흑마법사 사회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언너가 다짜고짜 서두를 뗐다. 흑마법사 사회가 요동치고 있다고 말이다. 

“네 개의 손가락 중 하나는 죽고, 다른 하나는 다쳤으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네 개의 손가락이라면······?”

“검은손을 대표하는 손가락들이죠. 영생의 퍼펫, 유괴범 피리 부는 사나이, 영원한 아이 팬, 인육 요리사 말씀입니다. 흑마법사 사회에서 길게는 수백 년 짧게는 수십 년간 군림한 괴물들이죠.” 

괴물. 올리버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퍼펫만 봐도 수백 년을 살며 혼자서 좀비로 이뤄진 군대를 다뤘으며, 

인육 요리사는 셀랜드 최대 조직인 크라임 펌 조차 싸우길 꺼리는 존재였고, 

팬 역시 무수한 크리처를 다뤄 흑마법사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성기사조차 농락하였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현상금이 엄청나다는 것 빼고는 잘 모르지만······.’ 

어쨌건, 그런 그들 중 인육 요리사는 공식적으로 멀린에게 살해당한 상태였으며, 팬 역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손가락은 하나하나 강력하고 사악한 흑마법사지만, 한편으로는 그들 덕분에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춘 것도 사실입니다. 자잘한 분쟁은 그치지 않았지만, 반대로 거대한 분쟁은 없었죠. 괴물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버티고 있어 가능했습니다.” 

“이제는 아니라는 겁니까?” 

“예, 거대한 공백이 생겼으니까요. 그동안 손가락의 위명에 눌려 있던 무수한 야심가들이 일어설 거고, 그중 몇몇은 데이브 님을 노릴 수도 있습니다.” 

“?? ······저를요?” 

올리버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뻔뻔하게도 말이다. 

“왜냐면 인육 요리사가 쓰러졌을 때 데이브 님께서 거기 있으셨고, 팬은 데이브 님과 싸우셨으니까요.” 

“인육 요리사 님을 쓰러트린 건 어르신이고, 팬 님을 상대한 건 엄밀히 말해 성기사님들을 도운 것뿐입니다.” 

“그런 건 야심가들에게 사소한 문제일 뿐입니다······. 중요한 건 데이브 님이 거기 있었다는 거고, 또 다치셨다는 거죠. 부상은 많이 심하십니까?” 

“조금 아프긴 합니다.” 

올리버가 오른팔을 보며 정말 자신이 공격받을지 생각해봤다. 

과거, 퍼펫이 비슷한 경고를 한 적 있긴 했다. 마법사든, 흑마버사든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날 거라고. 

명성을 높이기 위해, 실험용 데이터를 뽑기 위해. 

실제로 마텔에서 올리버를 유인하기 위해 로스번을 납치하기도 했다. 

‘흑마법사는 딱히 습격이 없었지만······. 아니지, 퍼펫 님이 날 비호해 줬다고 인육 요리사 님께서 말씀해주셨지. 지금은 아니고.’ 

그렇다면 흑마법사의 습격 가능성도 충분히 높아졌다는 걸 뜻했다. 조금 번거로울지도.

올리버의 기색을 읽었는지 언너가 힘주어 설득했다. 

“저희를 거둬주신다면 거기에 관한 많은 정보를 가져오겠습니다. 비록, 저희의 세가 약해지긴 했으나, 흑마법사 사회 깊숙이 아는 게 많고, 정보를 구하는 법도 압니다. 또, 마탑에서도 데이브 님을 보조할 자신이 있습니다.” 

“마탑에서도요?” 

“예. 데이브 님께선 모르시겠지만, 마탑에서 데이브 님을 마냥 곱지 않은 시선으로만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또 남의 일처럼 반응했다. 정말 남의 일처럼 느꼈으니까. 

“과거가 불분명한데, 아카이브의 비호를 받고, 마법사라곤 하나 흑마법에 조예가 깊고, 그러면서도 수많은 활약을 통해 재능을 뽐내셨으니까요.” 

언너가 갑자기 올리버에게 아부했다. 하지만 아부가 아니었다. 현재 마탑에서 올리버의 위치를 가장 객관적으로 설명한 거였다. 

해결사로 란다에서 데뷔하였으나 마탑의 실험체니, 멀린의 제자이니 과거 배경이 불분명했고, 흑마법에도 조예가 깊은 주제 일련의 사건과 논문을 통해 실전과 이론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갖췄음을 입증했기에. 

올리버에 관한 각종 소문이 마탑에 퍼진 건 비단 해결사나 사업체만 세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위와 같은 이유도 있었다. 수수께끼 같은 배경에 독보적인 실력. 

“참고로, 일부 마법사들은 데이브 님의 논문을 이용해 자체적인 연구에 들어갈 계획이기도 합니다.” 

“[혈마법과 생명마법을 접목한 신체와 장기의 재구축과 이식]말씀입니까?” 

“예, 의료보다는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거 같지만요.” 

“좋네요.” 

올리버가 흔쾌히 반응했다. 왜냐면 그걸로 뭘 하든 정말 상관없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뭔가를 해주길 바랐다. 그래야 또 뭔가를 배울 수 있을 테니까. 

그 모습에서 언너는 이해할 수 없는 묘한 압도감을 느꼈다. 단순히 힘이 더 센 걸 넘는 좀 더 고차원적인 강함을. 

지식을 저토록 가벼이 여기는 흑마법사가 있던가? 

언너는 고민했고, 곧 고개를 저었다. 저건 단순히 지식을 가벼이 여기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무서울 정도로 탐욕스러운 거였지. 

손에 쥔 10을 나눠주고 나머지 1까지 가져가는 밑도 끝도 없는 탐욕. 

“······데이브 님이 마탑에 없을 때 몇몇 생명학파 마법사들이 마탑을 떠났습니다. 생명학파 개혁 때 문제가 드러나거나, 현 그랜드 마스터께 불만을 품고요. 또, X구역의 데이브 님께서 소유한 숲에 마탑 사람 중 몇몇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언너는 감탄하는 빛을 잠시 빛내더니, 마탑에 관한 각종 이야기를 해주었다. 올리버가 아는 게 있는가 하면, 모르는 새로운 소식도 있었다. 

“이게 저희가 가진 재주입니다. 아직 감시당하는 처지지만, 어떻게든 정보를 얻죠. 그 외에도 원하시는 게 있으면 최대한 봉사하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거둬주십시오.” 

언너는 다시 한번 부탁했다. 그녀의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자신과 자매들을 위해. 

아무래도 그녀는 인육 요리사의 죽음을 계기로, 어머니에서 벗어나 자매들과 미래를 그릴 생각인 듯했다. 나쁘지 않았다. 

“음······. 거두는 건 좀 그렇고, 협력하는 건 어떨까요?” 

“예?” 

올리버가 접시 위 디저트를 마저 먹으며 답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누굴 거둬줄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요. 그러니 서로 협력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언너 씨께선 언너 씨가 하실 수 있는 일로 절 도와주시고,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로 언너 씨를 도와드리는 거죠.” 

올리버가 말을 마치며 왼쪽 손을 자연스레 내밀었다. 언너는 잠시 머뭇거리다 올리버를 보더니 이내 그 손을 맞잡았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 

언너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후 올리버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필립에게 받은 B사의 특별 맞춤형 차량을 직접 운전하니, 놀랍게도 모든 차량이 친절하게 길을 양보해 줘 쉽고 빠르게 올 수 있었다. 

덜컥. 

올리버가 현관문을 열고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실로 오랜만에 돌아온 기분. 아니, 집안에 쌓인 먼지를 보니 기분만이 아니었다. 정말 오랜만에 집에 온 거였다. 

‘하긴······. 원래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신대륙에서 오래 보냈으니 당연한가?’ 

올리버는 여느 때처럼 입고 있던 옷을 벗은 다음 좀 더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으며 바로 청소 준비를 했다. 

바로 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청소하는 편이 좀 더 편히 쉴 수 있을 거 같았다. 

올리버는 쿼터스태프를 한쪽에 세워두곤, 한쪽 팔로만 청소를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궁금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마법을 이용해 청소하면 더 빠를 텐데 굳이 손으로 하는 이유가 있나? 그것도 한쪽 팔로만?” 

“글쎄요. 마법보다는 손으로 하는 게 좀 더 개운한 느낌이 들어서요? 왼쪽 팔로만 청소하는 건 오른쪽 팔을 다쳤기 때문입니다.” 

“저런······. 아니면 메이드를 고용하거나, 청소 업체에 맡기는 건 어때? 내가 준 돈이면 그 정도는 괜찮을 텐데.” 

“집 지하실 작업장 때문에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멀리 떠날 때는 해체해두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뭣보다, 다른 사람이 집에 들어오는 걸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괜찮나?” 

“뭐, 어르신께서는 스승님이니까요.” 

빠르게 움직여 청소를 끝마친 올리버가 멀린이 앉아 있는 방향을 보며 답했다. 

청소 도중 갑자기 나타난 그는 제 안방인 것처럼 의자에 앉아 있었다.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앞서 말한 대로 멀린은 스승인 데다, 과거 올리버 역시 그의 대저택을 멋대로 방문한 적이 있어 불만은 전혀 없었다. 

조금 바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도 그럴 게 란다로 오자마자 포레스트를 만나고, 언너와 정식으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집을 청소하고, 멀린까지 만났으니. 

“늙은이가 너무 눈치 없게 귀찮게 했나?” 

“아뇨, 그건 아닙니다. 어르신 사실, 어르신을 만나고 싶었거든요. 커피 드시겠습니까?” 

청소 도구를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놓은 올리버가 멀린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그의 감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멀린의 두터운 마력벽은 이전보다 더 두꺼워진 상태라 볼 수 없었다. 마치, 대비라도 한 것 같았다. 

“자네는 마실 건가?” 

“아뇨, 이미 카페에서 먹고 와서요. 또, 개인적으로 커피는 이제부터 줄일까 합니다. 요즘 잠이 잘 안 와서요.” 

“······그렇군.” 

멀린이 올리버의 오른팔을 보며 바로 납득했다. 극심한 화상으로 인해 잠자는 것도 힘들 테니. 

실제로도 올리버는 화상 때문에 쉽사리 잠들지 못해 약간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난 마시고 싶으니 한 잔 부탁하지······. 신대륙에서 많은 일이 있었다더니 사실인가 보군.”

올리버가 한 손으로 커피를 타 멀리 앞에 정중히 내려놓았다. 

“조금요······. 필립 중장님께 들으신 겁니까?” 

“필립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내 눈과 귀는 어디든 있으니까······. 커피 맛있구만.” 

“감사합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기쁘네요.” 

멀린이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자, 그럼 좋은 커피를 대접받은 보답을 해야겠지? 신대륙에 오자마자 귀찮게 하는 늙은이를 왜 만나고 싶나?” 

올리버는 예의 바르게 서서 고민했다. 하고 싶은 질문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가령, 왜 신대륙으로 자신이 오자마자 만나러 온 것인지. 혹은 존귀한 존재가 뭔지, 악마라 무엇인지 말이다. 

늘 그렇듯 수많은 질문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 올리버는 여태까지 질문을 많이 했고, 덕분에 요령이 붙어 가장 급한 용건부터 꺼낼 수 있었다. 

“어르신. 괜찮으시다면 저와 대련 한번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올리버가 다짜고짜 아카이브에게 대련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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