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96화 (496/633)

496. 바쁜 복귀 (1)

“음,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있으실 줄 몰랐는데······. 무슨 일 있으십니까?”

란다행 여객선에서 내린 올리버가 항구 근처 카페 앞 야외 테이블에 앉은 포레스트에게 다가가 물었다.

“기다리고 있네.”

“오······. 누구를 기다리고 계시죠?”

“바로, 자네······. 모습이 꽤 달라졌구만.”

포레스트가 올리버를 바라보며 답했다. 그의 말대로 올리버의 모습은 꽤 달라진 상태였다.

삐쩍 마른 거야 떠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검었던 머리 한쪽이 새하얗게 탈색됐으며, 오른팔 역시 붕대를 칭칭 감아 척 봐도 심상치 않은 상태였다.

헤임달이 알려준 대로······. 역시 나와보길 잘한 것 같았다.

“헤임달요?”

“그쪽에서 자네가 다쳤다고 알려줬거든. 감시한 건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고.”

“예.”

올리버는 쉽게 납득하며 포레스트 맞은편에 앉았다. 아마, 판도라가 가르쳐 준 것일 터. 나쁘지 않았다. 원래 포레스트를 만나러 갈 예정이었으니까.

“어째 자넨 란다 밖으로 나갈 때마다 어디 하나 다쳐서 오는 거 같구만, 그래.”

“그건 아닙니다. 멀쩡할 때도 있거든요.”

올리버는 남의 일 이야기하듯 말했다. 허세가 아닌 진심. 그래서 더 문제였다.

“참 걱정이야.”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걱정해야지. 자넨 내가 거래하는 최고 해결사이자, 우리 사업의 핵심인데. 자네 없이 지금 사업이 존속이나 할 수나 있겠나?”

조금의 과장도 없는 사실이었다. 현재 재개발 사업을 이끄는 가장 큰 두 축은 조가 이끄는 파이터 크루와 마리가 이끄는 선택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외에도 포레스트가 고용한 해결사와 용병, 중간에 합류한 X구역 유지(有志)가 있긴 했지만, 앞의 두 조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대부분 수준 높은 흑마법사에 탄탄한 조직력도 갖췄으니.

그리고 그런 두 조직이 그렇다 할 문제 없이 뭉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올리버 때문이었다.

“말년에 사업이 망해 길바닥에 나앉는 건 사양이거든. 돈 없는 늙은이만큼 슬픈 것도 없지.”

포레스트가 평소 그답지 않은 밉살스럽게 말했다. 허나,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 미안한 기분도 들었다.

왜냐면 그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게 눈으로 보였기에. 단순한 동업자가 다쳐 유감인 걸 넘어 친구로서 올리버를 걱정하는 거였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들은 포레스트는 답답한 속을 풀듯 커피를 마셨다.

“만족할 만한 조언은 듣고 왔나?”

“예······. 완전히 개운해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대답을 듣고 온 거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만. 자네처럼 까탈스럽고 욕심 많은 친구를 그나마 만족하게 하는 조언을 듣고 왔다니.”

포레스트가 종업원을 불러 커피를 한 잔 더 추가하며, 올리버가 마실 커피와 디저트도 주문했다.

올리버가 그 모습을 보고는 커피 한 잔과 케이크를 추가 주문했다.

“다 마시고 추가하는 게 낫지 않나?”

“제께 아니라서요.”

“?? ······뭐 그렇다 치고. 팔은 괜찮나? 화상을 크게 입었다 하던데.”

“아······.”

올리버가 자신의 오른팔을 봤다.

“화상을 좀 입긴 했습니다.”

“그래 보이긴 하는구만.”

올리버를 관찰한 포레스트가 그리 대답했다. 화상은 커다란 통증을 유발하는 게 상식.

올리버의 파리한 안색과 눈 밑의 다크서클로 봤을 때, 얼마나 통증에 시달리는지 대강 알 수 있었다.

“치료는 가능한가?

“조금 특수한 화상이라 쉽게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사업에 악영향을 줄까요?”

“보통은. 뒷골목 사업이란 게 우두머리가 약해졌다고 판단하면 온갖 놈들이 나타나 도전하는 곳이니까. 하지만 자넨 걱정하지 마.”

“다행이긴 한데, 어째서지요?”

“저번에 삐쩍 말라 돌아왔을 때 다들 우습게 보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봤으니 이번에는 쉽게 그러지 못할 거야. 이쪽도 학습이라는 걸 하거든.”

“그럼 다행이네요.”

“그러니 치료와 안정에 일단 신경 써. 마리 아가씨와 조 그 친구만으로도 사업은 잘 굴러가고 있으니까.”

올리버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재개발 사업 초창기 가장 큰 경쟁자였던 엔조이먼트를 반나절도 안 돼 뿌리 뽑아 확고한 입지를 다진 건 올리버였으나, 그 외에 일상적인 업무와 자잘한 뒤처리는 조와 마리가 맡아 깔끔히 처리해줬다. 믿을 수 있었다.

“자네 다친 건 내가 미리 말해두지. 갑자기 다친 자넬 보면 난리 칠 테니.”

“감사합니다.”

“당연히 감사해야지. 생각만 해도 벌써 피곤한데.”

“혹시, 제 머리는 괜찮습니까?”

올리버가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대뜸 물었다. 포레스트는 슬쩍 봤다.

“전통적인 마법사 헤어스타일이군. 두 가지 이상 색을 뒤섞은.”

“예, 그렇다더군요.”

“음······. 원래 촌스러워야 하는데, 썩 나빠 보이진 않아. 흑마법사보다는 마법사 티가 난다고 할까? 왜? 촌스럽다고 하면 염색할 생각인가?”

“그건 아닙니다.”

올리버가 캔트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과거 올리버는 캔트에게 살과 피, 뼈로 이뤄진 진짜 새 팔을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한 바 있었으나, 그는 모든 상처가 자기 삶의 역사라며 거절했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 그러나 왠지 멋진 대답이었고, 올리버 역시 일단 흉내 내 보기로 했다.

포레스트가 작게 웃었다.

“싱겁기는······. 이만 일어나 보겠네.”

포레스트가 팁을 포함한 커피 값을 테이블 위에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요?”

“나도 사업하느라 바쁜 몸이거든. 여기저기서 부르는 데도 많고, 조사해야 할 것도 많지······. 뭣보다 자네 지금 만나야 할 사람 있지 않나?”

포레스트가 자신과 올리버 옆에 놓인 주인 없는 커피와 케이크를 슬쩍 봤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올리버의 태도를 보고 눈치챈 듯했다.

“자세한 건 묻지 않지. 프라이버시는 소중한 거니까. 일단 푹 쉬고, 늦어도 닷새 후에는 얼굴이라도 비춰 줘. 여러 사람 걱정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포레스트 님. 감사합니다.”

포레스트는 올리버의 인사를 받고는 저 멀리 서 있던 알과 함께 떠났다.

정말 올리버의 상태만 확인하려던 것. 올리버는 포레스트의 배려심에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앉으셔도 됩니다.”

포레스트가 사라진 후,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그 발언에 카페 한쪽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앉아 있던 에르제베트 언너가 조용히 다가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과거 바토리의 제자이자 수양딸, 현 바토리 패밀리의 리더. 그리고 이제는 마탑 소속이 된 언너.

그녀가 올리버에게 정중히 예를 갖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세요. 언너 씨. 오랜만이네요.”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인육 요리사를 상대하기 위해 갈로스로 떠나기 전쯤이었으니, 진짜 오랜만인 셈이었다. 동시에 의문이었다.

“언너 씨는 여기 왜 계신 거죠?”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요.”

“제가 오늘 올 줄은 어떻게 아신 거죠?”

“방금 가신 포레스트란 분의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언너가 소매 안에 숨어 있던 작은 생쥐를 보여줬다. 자그마한 갈색 생쥐는 혈마법의 불그스름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저희가 가공한 피를 먹여 키운 생쥐입니다. 이런 식으로 동물을 사역할 수 있죠.”

그 말을 증명하듯 언너의 지시에 따라 생쥐가 소매 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

“신기하네요. 혈마법을 그렇게도 사용할 수도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

“전투 외적으로 더 유용한 기술이라서요. 이 도시에 쥐를 잡아먹는 괴물 쥐가 있어서 쉽진 않았습니다.”

“괴물 쥐요?”

올리버는 과거 신문에서 보았던 기사를 떠올리며 되물었다. 근래 란다의 쥐들이 줄고 있다 하였는데, 그 이유가 다름 아닌 괴물 쥐 때문이란 기사였다. 현재 란다의 흔해 빠진 헛소문으로 치부됐다.

“헛소문이 아닙니다. 제가 기르는 생쥐들이 봤다 하더군요. 같은 쥐만 먹는 거대한 시궁쥐가 있다고 말이죠.”

“헤······. 신기하네요. 같은 동족만 잡아먹는 쥐라니요.”

“예, 아주 악의적인 생물이죠. 어떤 흑마법사의 사악한 작품이 아닐까 할 정도로······. 어쨌건 포레스트란 분을 감시한 게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악의를 가지고 포레스트 님을 감시하셨습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럼, 됐습니다.”

올리버가 허탈할 정도로 쉬이 대답하고는 커피와 디저트를 야금야금 먹었다. 숱한 실험 덕분에 배를 채워도 작열통은 심해지지 않은 수준으로 먹어, 허기는 잠시나마 달랠 수 있었다.

언너는 그런 올리버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팬과 싸워서 다쳤다더니 아무래도 사실인가 보군요.”

“예?”

“검은손 손가락인 영원한 아이 팬 말입니다. 아닌가요?”

“······사실입니다. 근데, 어떻게 아신 겁니까?”

“포레스트란 분 이야기를 엿들어 알고 있습니다.”

올리버가 포레스트가 떠난 방향을 봤다. 용건을 전부 이야기 안 한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것도 알고 있었을 줄이야. 왜 안 물어본 건지 의아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검은손 손가락과 싸운 것만으로 대단한 일일 텐데.

‘일단 쉬라고 배려해 준 건가?’

“아마, 곧 소문이 날 겁니다.”

언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께서 영원한 아이 팬과 싸워 적잖은 피해를 줬다는 걸요.”

엄밀히 말하면 올리버가 아닌 불타버린 자가 팬에게 큰 피해를 준 거였지만, 굳이 따지지 않기로 했다. 대신, 이야기를 맞춰봤다.

“그건 또 어떻게 아신 거죠?”

“흑마법사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정보망이 있습니다. 비록, 저희 바토리 패밀리가 몰락하긴 했어도 돈만 내면 이용할 수 있죠.”

“마탑의 감시를 받는데도요?”

올리버가 의문을 품었다. 그도 그럴 게 처음 언너와 그 자매를 소개해줬을 때 마탑의 고위층은 경계심과 의심을 빛냈으니.

아마, 테어도어로 인한 생명학파의 소란과 이를 뒷수습하기 위한 혈마법, 피의 영약 제조 지식 제공. 인육 요리사에 대한 정보제공. 거기에 가슴 한가운데 폭탄을 박는 안전장치까지 하지 않았다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였다.

당연히 이후로도 감시받은 것은 올리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뻔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감시를 피해 흑마법사만의 정보망을 이용한다? 의문일 따름이었다.

“저희도 많은 일을 하며 나름대로의 신뢰를 쌓았습니다. 당신께서 인육 요리사를 쓰러트리고, 한 구역을 지배하는 사업체를 세우며, 팬과 싸우는 동안요. 저희 역시 생존을 위해 필사적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여러분을 무시하려던 건······. 잠깐 뭐라고요?”

올리버가 말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댔다. 방금 분명-

“-역시 사실이었군요. 인육 요리사를 쓰러트린 거요.”

올리버는 잠시 말을 멈추다 물었다

“······그것도 정보망에서 알게 된 겁니까?”

“저희 쪽 그랜드 마스터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현재 언너가 소속된 곳은 생명학파 산하 혈마법 소학파. 그랜드 마스터라면 멀린을 뜻했다.

“정말 인육 요리사와 그 여동생을 쓰러트렸는지 물어봤고, 그분께서 사실대로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 둘을 쓰러트린 게 다름 아닌 데이브 님이라고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너가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 수많은 감정이 압축된 감정을 빛냈으나, 고맙다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좀 묘한 느낌이었다.

인육 요리사와 그 여동생 역시 바토리 때부터 이어온 악연이긴 했지만, 올리버는 그 바토리를 죽인 장본인. 두 번이나 사과했지만, 감사 인사를 받으니 좀 어색했다.

“물론, 데이브 님께서 저희 어머니를 죽이긴 하셨지요. 허나, 흑마법사들의 세계에서는 흔한 일인 것도 사실. 거기다 저희는 두 번이나 데이브 님을 죽이려다 실패했고 또 용서받았지요. 더 이상 원망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언너가 준비한 듯 잘 이야기하다가 머뭇거렸다. 올리버가 그녀의 감정을 꿰뚫어 봤다.

“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인지요?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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