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93화 (493/633)

493. 불탄 도시 (2)

“후우······.”

화재가 마침내 진압된 퍼스트 스텝 도로 위. 올리버는 차를 운전하며 심호흡을 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화상을 입은 오른팔에 지속적인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프타스 어시스턴트(Ptah's Assistant)를 의수(義手) 삼아 운전하는 게 생각보다 까다로웠기 때문이었다.

정밀 작업을 위한 마법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쓰는 건 또 처음. 익숙해지는데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아, 익숙해졌다.”

올리버가 그리 말하며 필립이 선물해준 B사에 특별 맞춤형 차량을 아까 전보다 더욱 부드럽게 몰았다.

과거 레이크 빌리지에서 받은 것보다 업그레이드된 것으로, 방탄에, 기관총이 두 개 달려 있고, 거기에 박격포와 섬광탄, 타이어에는 거대한 칼날이 튀어나오는 기능까지 갖춰진 물건이었다.

말 그대로 도로 위의 흉기. 연료를 3배나 더 먹는다지만 그건 사소한 문제였다.

‘참 친절하시지. 혹시, 자동차 하나 더 줄 수 있냐고 하니까 바로 즉석에서 선물해주시고.’

필립은 일하다 다친 올리버에게 개인적으로 필요한 게 없는지 물어봤고, 올리버는 차를 원한다고 했다. 가급적이면 저번에 받은 것과 비슷한 것으로. 필립이 물었다.

‘저번에 내가 준 건 어쩌고?’

‘망가지고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린 거야 그렇다 쳐도, 망가지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건 망가트리는 것도 일이야.’

‘기관총을 쏘며 하늘 위를 달리다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었지만, 필립은 어째서인지 믿지 않으며 대화를 종료했다. 진짜인데 말이다.

‘그건 그렇고 엄청나긴 하네.’

목적지에 다다르자 서행하는 올리버가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필립이 말한 대로 거리 곳곳에 집을 잃어 노숙자가 된 사람들이 즐비했다.

거주 구역과 산업구역을 중심으로 화재가 일어났다더니 실감이 됐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은 물론 누울 집마저 잃은 사람들로 거리는 붐볐으며, 덕분에 도시는 혼란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식민지 군병력과 종군마법사까지 동원하지 않았다면 올리버가 이렇게 차를 몰기도 힘들 거였다.

“저건 뭐야······.”

아직까지 얼굴에 시커먼 검댕이 묻은 남자가 올리버가 탄 차량을 보며 말했다.

소리가 큰 것은 아니었으나, 목소리에 담긴 감정 탓에 또렷이 들렸다.

확실히······. 자신은 화재로 한순간 부랑자가 됐는데, 기관총과 박격포가 달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감정이 안 좋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그 외에는 별다른 감흥을 못 느꼈지만. 악마가 보여준 도시의 이면 때문일까? 알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올리버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퍼스트 스텝 외곽에 있는 감옥. 올리버는 필립에게 부탁해 이곳에 갇힌 한 남자를 만나러 왔다.

그이 이름은 케니 미다스. 프로메테우스 사(社)를 설립한 창업자이자, 전(前) 최고 경영자 그리고 대화재의 배후로 지목된 남자였다.

***

저벅. 저벅.

딱. 딱.

올리버는 간수의 안내를 받으며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지하에 있는 복도라 그런지 공기가 눅눅했다.

“데이브 씨.”

“예.”

“면회 시간은 그리 많이 드릴 수 없습니다. 원칙상으로는 이런 개인적인 면회도 금지인지라.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간수의 말에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세간에 케니는 경영자 자리를 되찾기 위해 홍인 흑법사와 밀약을 맺어 도시 내에서 대규모 화재를 일으킨 불순분자로 알려졌으니. 애당초 필립의 입김이 아니었으면 만날 수조차 없었다.

올리버도 이점을 알기에 간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끼익. 두꺼운 면회실 문이 열렸다.

벽돌로 투박하게 지어진 습하고 퀴퀴한 공간 안. 그곳에 무기력해 보이는 한 남자가 있었다.

머리가 정수리까지 벗겨지고, 수염이 아무렇게나 자랐으며, 얼굴과 몸 곳곳에 고문의 흔적이 있는.

신문에서 보던 것과 너무 달라진 모습이었다.

20년은 늙었달까? 단순히 외형만이 아니었다. 감정, 생명력 역시 크게 깎이고 풍화됐다.

에디스가 말한 뻔뻔한 도박사의 모습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면 올리버가 못 느끼는 걸 수도 있고. 여하튼, 올리버는 예를 갖춰 그에게 인사했다. 그것이 예의였으니까.

“안녕하십니까? 케니 님.”

절망에 완전히 물든 케니는 망가진 인형처럼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살아 있는 시체란 말이 모자람이 없었다.

올리버는 어깨에 짊어진 슬링백에서 챙겨 온 음식과 포도주 한 병을 꺼냈다.

감옥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할 거란 조언을 듣고 가져온 거로, 케니는 그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영양 상태로 봤을 때 음식이 간절할 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케니에게 음식과 포도주병을 내밀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해 챙겨 온 선물. 어찌할지는 당사자가 정말 문제였다.

시간이 촉박함에도 올리버는 가만히 앉아 있었고, 이윽고 시간이 지나자 케니가 입을 열었다.

“······너 누구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데이브라 합니다. 이번 폐광산 홍인 흑마법사 토벌에 참여한 해결사입니다.”

“네가······?!”

케니가 반응을 보였다. 그는 근육이 빠진 팔을 움직여 올리버를 붙잡으려고 했다.

손을 묶은 거칠고 두꺼운 쇠사슬 탓에 절그럭 소리만 낼뿐이었지만.

“너어······!! 네가 내게 누명을 씌웠지?! 내가 홍인 흑마법사들이랑 붙었다고!! 내가 흑마법으로 테러를 일으켰다고!!”

그는 증오와 분노를 빛내며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다. 오죽하면 간수가 문을 열고 들어올 지경.

올리버는 손을 들며 괜찮다고 정중히 의사를 밝혔고, 간수는 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간수를 보자 흥분을 가라앉힌 케니. 그럼에도 감정이 주체되지 않는지 씨익씨익 숨을 몰아쉬었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 역시 대화재의 피해자였으나, 파테르교에서 그가 홍인 흑마법사와 내통해 대화재를 일으켰다고 주장해 체포됐으니.

‘똑똑해. 물이 붉게 변한 기현상과 개구리 떼를 교묘하게 섞어 케니와 홍인 흑마법사의 소행이라 했으니.’

다소 억지 같은 방법이었지만, 의외로 모두 그 말을 믿었다.

애당초 일반인은 징조(徵兆)에 대해 알지 못했으니, 흑마법과 결부시켜도 무방했다. 화재로 모든 것을 잃어 원망할 게 필요한 사람들에겐 더더욱.

올리버가 이런 종류의 일을 잘 알지 못했지만, 보통 수완은 아닌 거 같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이런 식의 임기응변으로 흘려버리다니.

참고로 체포된 케니의 재산을 모조리 압류해 도시 재건과 피해자를 위해 쓰일 거라고 했다.

프로메테우스 사(社)를 설립한 설립자답게 그 재산이 천문학적이라 거의 다 메울 수준이라고 했다.

흥분한 케니와 대비되게, 올리버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전 거기에 관해 잘 모릅니다.”

“뭐?”

“전 사흘 동안 기절해 있었거든요.”

“그걸 지금 말이-”

“-다만, 케니 님께서 악마와 거래한 것은 알고 있습니다.”

올리버가 몸을 슬쩍 앞으로 기울여 낮게 속삭였다. 화상을 입은 팔 탓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올라왔다.

불처럼 화를 내던 케니는 차갑게 굳으며, 그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뭐?”

“홍인, 압착기, 포도주.”

올리버는 악마란 직접적인 단어 대신 우회적인 표현을 썼다. 아는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게.

불행히도 케니는 잘 알아들었다. 너무 잘 말이다. 혹시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였다.

얼굴이 파리해진 케니는 눈동자처럼 다리가 흔들리더니 이윽고 주저앉으며 웅얼거렸다.

“어, 어떻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냥 확인하러 온 거거든요. 맞나 보네요.”

의문을 반 정도 해결한 올리버가 다소 무관심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계속해 식은땀을 흘리는 케니. 그는 땀을 흘리느라 목이 탔는지 마실 것을 찾다 결국 올리버가 가져온 포도주병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적포도주가 들어 있었다.

“케엑······!”

제대로 된 포도주였지만, 적포도주의 맛을 본 케니는 사레가 들리며 머금고 있던 포도주를 바닥에 토했다.

맛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

세상이 끝날 것 같던 절망에 빠져있던 그는 새로운 형태의 두려움과 공포에 잠식됐다. 단순히 죽는 것 이상의.

감정이 격해진 케니는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나,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올리버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그냥 진짜인지 확인하고, 왜 그러셨는지 묻고 싶어서요?”

끔찍한 진실을 안 사람치고 올리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너무 담담해 눈앞에 있는 게 사람보다는 무기물처럼 느껴졌다.

수많은 홍인을 바쳐 성공한 케니가 보기에도 어딘가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품었던 절망과 분노, 증오와 원망조차 꺼트릴······.

그러자 케니는 눈앞에 있는 데이브란 흑마법사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그대의 이름······. 알고 있소.”

“예?”

“······란다 T구역의 해결사이지 않소. 그 부와 폭력의 도시에서 단숨에 이름을 떨친.”

올리버는 그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딱히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어서.

케니는 계속 말했다.

“옛날에 에디스가 그대를 한번 이야기했지.”

“······.”

“······안 놀라는 거요?”

“케니 님께서 에디스 님과 친······. 안면이 있는 사이라는 건 압니다. 이 도시에 온 이유도 에디스 님 일을 돕기 위해서거든요.”

올리버가 적당히 둘러댔다. 공식적으로는 이게 맞았으니.

케니는 몰랐는지 오히려 놀란 반응을 보였다.

“어, 어쨌건 난 그대가 뛰어난 흑마법사인 걸 알고 있소, 악······. 그쪽 서적에도 관심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대부분 실력 있는 흑마법사는 그러니까.”

경험에서 나온 듯한 말. 무리도 아니었다.

일반인이면서 악마와 거래한 의식을 진행했다면 그만큼 더 노력했다는 걸 테니.

케니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짓누르는 압박감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입을 열었다.

“그대와 거래하고 싶소.”

“예?”

“거래하고 싶다 하였소. 해결사인 그대에게 정식으로.”

케니는 아까 전 뱉은 적포도주를 다시 마시며 말했다. 감정 상태로 볼 땐 진심이었다.

“저는-”

“-내가 아는 악마의 지식을 모두 주겠소. 프로메테우스 사(社)와 관련된 비밀도! 절대······.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외다.”

이 말 역시 진심이었다. 단순히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닌 정말 믿는 카드가 있는 거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올리버는 그렇다 할 관심이 안 갔다. 악마에 관한 지식이 탐나긴 했지만, 굳이? 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관심이 가는 건 이미 모든 걸 잃은 케니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필사적인지였다. 이미 재산을 모조리 빼앗기고, 곧 공개 처형당할 텐데.

설마, 자신을 빼달라는 걸까?

“아니야! 비록 내가 이 꼴이 됐지만 난 그 정도로 멍청해지진 않았어! 날 모욕하지 마시오······!”

케니가 흥분해 소리쳤다. 마지막 존엄을 지키듯.

“허억······. 허억······. 그런 바보 같은 의뢰를 할 만큼 난 멍청하지 않소.”

“그럼?”

“······내 딸을 구해달라는 거요.”

“딸요?”

“그래, 내 딸······. 지금 수도에서 공부하고 있소. 사진이-”

케니가 반사적으로 자기 목에 손을 댔다. 목걸이가 있는 듯. 허나, 그곳엔 목걸이가 없었다. 경찰에 붙잡혔을 때 빼앗겼다.

그 사실을 떠올린 케니는 다시 한번 절망하고 분노했다. 그러나 그는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이성을 유지했다. 어떻게든 동아줄을 잡기 위해.

“내 딸의 이름은 세라요! 세라 미다스!! 지금 수도의 대학에서-”

“-신기하네요.”

올리버가 딸을 생각하는 아비의 감정을 보며 말했다. 예쁜 감정이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신기할 따름이었다.

“뭐가······?”

“아니, 그냥······. 마석을 위해 아내분도 바치신 분께서 따님을 그리 생각하는 게 신기해서요.”

굳어 있던 케니의 표정은 이제 균열이 생겼다. 그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고, 들켜서 안 되는 치부를 들켰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신기한 것뿐입니다. 따님을 그리 사랑하신다는 게 신기해서요. 아내분은 마석이랑 바꾸셨는데······. 이유가 뭐죠?”

올리버가 정말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도구를 사용하는 까마귀를 보듯.

그런 올리버의 태도를 간접적으로 느꼈는지 케니는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내리치듯 탁자 위에 두 손을 올렸다.

요동치는 분노와 억울함, 지금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상반된 감정이 충돌한 반응이었다.

“그······! 그대가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오?!”

케니가 작게 소리쳤다. 터지려는 폭탄을 억누르듯.

“그대가 가난을 아시오?! 배고픔, 추위가 뭔지 아냐고······!”

올리버가 아무 말도 못 했다.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은 예상치 못했기에. 정정해줘야 하나 싶었지만, 일단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그대 소문 들었소! 맨몸으로 란다로 와 승승장구한! 모두 돈 가방을 들고 일을 맡기기 위해 줄을 선다고! 단 몇 개월 만에 란다에서 집을 사고, 부자 애인도 만든 걸!”

“저기-”

“-그 재능 덕분이겠지!”

케니가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목소리로 작게 소리쳤다. 그는 억울함과 후회를 빛냈고, 핏발이 선 눈에는 물기가 맺혔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얻은 그 재능! 그 재능으로 말이야! 그래서 그렇게 쉽게 성공한 거겠지!”

“······.”

“그런데 난 아니야! 아니라고! 아무런 재능도 없이 별 볼 일 없는 부모에게 자라, 원치도 않은 광부로 살았다고, 내가!!”

“······.”

“그대는 아시오? 가난하고 무능한 남편과 아버지가 얼마나 비참한지? 그건 사람이 아니야······. 사람 비슷한 벌레지!”

격한 감정과 진심. 퍽 인상적인 감정이었지만, 진통제 탓인지 올리버는 그렇다 할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아무래도 진통제 투약은 그만하는 게 좋을 듯했다. 오른팔의 통증은 전혀 줄여주지 못하고 머리만 멍하게 만드는 거 같았다.

“그래서 아내분을 제물로 바치신 겁니까?”

“안 바쳤으면 난 딸마저 잃었어!!”

결국, 폭발한 케니가 소리쳤다. 올리버가 한 박자 더 빠르게 방음 마법을 펼쳐 그의 목소리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내가 성공하지 못했으면 난 내 유일한 자식마저 잃었을 거라고!”

케니가 독기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그런데, 왕가가 내 약점을 찾아, 내 딸까지 잡아 걸고 넘어졌지! 협조하지 않으면 내 딸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내가 평생을 바친 걸 넘긴 거라고······.”

케니는 벗겨진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흐느꼈다. 딸만큼은 정말 사랑하는 듯했다.

“근데, 결국 이 꼴이야······. 내가 죽으면 내 딸은 어떻게 될지도 몰라. 최소한의 보호도 안 해주겠지······. 이보시오. 부탁이요. 내 딸을 좀 구해주시오. 그리고 내 비자금을, 내 유산을 딸에게 전-”

“-아, 죄송합니다.”

올리버가 손을 들으며 말을 끊었다.

“전 그저 케니 님께서 왜 그런 일을 했고, 아내분을 바치셨는지 궁금해서 온 것뿐이거든요······. 솔직히 전 궁금한 게 다 풀려서 그 의뢰 못 받을 것 같습니다. 뭣보다.”

“······?”

“전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중개인을 통해서만 일을 받거든요. 죄송합니다.”

올리버는 자신을 말을 증명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케니가 놀라 소리쳤다.

“내 지식! 프로메테우스 사(社)의 비밀이 궁금하지 않다는 거야?!!”

“궁금하긴 합니다. 다만, 그 정도로 궁금하진 않아서요. 또······.”

올리버가 말꼬리를 흐리다 어깨를 으쓱였다.

“······케니 님 의뢰는 다소 받기 좀 그래서요.”

올리버는 그 말을 남기며 자리를 떠났다. 홀로 면회실에 남은 케니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

“재갈을 물렸다고요?”

올리버가 호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물었다. 빳빳한 연미복으로 과장을 조금 보태면 갑옷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네가 갔다 온 후로 발작을 일으킨다고 해서. 내가 물리라고 했어.”

“대단하시군요······. 그런데 중장님께서 그런 권한도 있으십니까?”

올리버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의 신분과 직책이 높다는 것을 알지만, 어찌 됐건 군 소속, 근래 중앙 정치계에도 발을 담그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렇다 해도 식민지 감옥에까지 명령을 내리는 게 가능한가 싶었다.

“정상적인 지휘 체계로는 불가능하지만, 모든 시스템은 결국 사람으로 움직이거든. 그중 어떤 사람은 존재 자체가 지휘 체계이기도 하지. 바로 나 같은······. 그보다 옷은 다 입었나? 슬슬 시간이 다 돼가는데?”

“다 입었습니다.”

올리버가 탈의실 커튼을 열었다.

올리버는 필립이 준 옷을 제대로 갖춰 입었으며, 그뿐 아니라 머리까지 깔끔하게 정돈했다. 마치, 광고에 나오는 귀족 도련님처럼.

필립이 휘파람을 불었다.

“머리 손질해줄 사람을 불렀는데, 필요 없게 됐군. 어떻게 한 건가?”

“잘 가르쳐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저도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뭐?”

“절 만나고 싶으신 분이 도대체 누구시죠?”

“따라오면 알게 될 거야.”

필립이 말하며 올리버를 데리고 호텔 상층부로 올라갔다. 그리고 곧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나서 반갑네.”

연합 왕국의 둘째 왕자 알버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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