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 불탄 도시 (1)
“일어나세요. 용사여.”
심연에 빠져있던 올리버가 정신을 차릴 때쯤 누군가 말을 걸었다. 일어나세요. 용사여. 라고.
“중장님. 제발······.”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뒤이어 웬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그때, 오른쪽 팔에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와 올리버의 뇌를 쑤셨다.
“끄읍······.”
통증 덕분에 올리버는 폐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엄청나게 아프지만 말이다.
“일어났다. 내가 살린 거야!”
만족하는 남성의 목소리. 어딘가 귀에 익었다. 필립이었다.
왕국의 신사이자, 군의 중장, 순수마력학파의 명예 그랜드 마스터. 왕실 마법사관학교 교장이자, 왕실 마법연구부의 실장, 로어 가문의 수장인 필립 로어.
올리버가 힘겹게 눈을 떴다.
천근처럼 무거운 눈꺼풀, 뻑뻑한 눈, 새하얀 천장, 몸을 엄습해오는 통증과 탈력감, 오른팔에서 전해지는 끔찍한 통증. 온갖 감각이 사정없이 밀고 들어왔다.
그 와중 올리버는 자신의 옆에 앉은 필립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이대에 어울리지 않는 강건한 체격을 가진 사자 같은 노인을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필립 중장님.”
“안녕하네. 자넨 괜찮나?”
“어······. 예, 괜찮습니다.”
“그거 대단하구만. 한쪽 팔에 흑염룡이 깃들어 안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 말에 올리버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오른팔을 봤다. 붕대가 칭칭 감긴 팔을.
눈으로 오른팔을 보자 피로와 통증으로 뒤죽박죽이던 뇌가 재정립하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떠올렸다.
한층 선명해진 기억과 통증. 올리버는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런 올리버를 바라보며 필립이 다시 물었다.
“혹시 몰라 다시 묻는 건데 괜찮나?”
“조금······. 아픈 것 같습니다.”
“진짜 아픈가 보군. 하긴, 보통 화상이 아니니까.”
“보통 화상이요?”
“성법으로도 치료가 안 되는 화상이거든. 뭐, 그 덕분에 파테르교에서 자넬 빼내 올 수 있었던 거지만. 진통제를 투여했는데도 아픈가?”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댔다. 빼 오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지······. 일단, 대답부터 했다.
“진통제는 잘 모르겠지만, 아픕니다.”
“그렇구만.”
필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의 빛을 띠었다. 뭔가 볼일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와 별개로 개인적인 걱정도 해줬다. 고마웠다.
“필립 중장님······.”
“음?”
“흑염룡이라는 거······. 마법사식 개그입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필립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허! 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자기 등 뒤에 있는 여성 종군마법사들에게 말했다.
“봤지? 이게 남자다운 거야. 고통마저 즐기는 거지. 동의어로는 미친놈이 있고. 마음에 들어.”
필립 이상으로 어이없어하는 여성 종군마법사들. 그때, 올리버가 다시 필립을 불렀다.
“필립 중장님.”
“나중에 대답해 줄 테니까 쉰 소리 그만하고 일단 쉬어. 의사 부르러 갔으니 곧 올 거야.”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다른 것 때문입니다······. 기사님은 괜찮으십니까? 요안나 님이요.”
이 역시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필립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건-”
-똑. 똑.
필립이 대답하려는 찰나,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필립 등 뒤에 있던 여성 마법사 둘이 경계태세를 갖추며 문을 열었고, 문 너머에는 사제복을 입은 남자 둘이 서 있었다.
“이런······. 빨리 오셨구려.”
두 사제를 보며 필립이 불쾌함과 경계심을 빛냈다. 사제가 미소 지었다.
“신의 종은 게으름을 부리지 않는 법이죠.”
***
갑자기 찾아온 두 사제. 그들은 장황한 말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올리버는 피로와 통증 탓에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대충 요약하자면 올리버의 안부를 묻기 위해 온 것 같았다. 겸사겸사 물어볼 것도 있고.
피로 탓인지, 몽롱한 의식 탓인지 올리버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으나, 필립은 그런 올리버를 대신해 불쾌함을 내비쳐주었다.
“막 일어난 환자에게 다짜고짜 질문하겠다니······. 조금 급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제님.”
“그 점에 관해서는 죄송합니다. 중장님······. 허나,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양해를 구합니다. 지금 도시 상황을 아시지 않습니까?”
도시 상황? 올리버는 머리가 멍한 상태임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불타버린 자가 도시를 불태워 버리겠다고 하였다. 자신은 막는 것에 실패했고.
결국, 도시가 불탄 걸까? 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도시를 완전히 태워버렸으면 자신이 병실에 누워 있는 것도, 필립이 무사히 있는 것도 말이 안 됐으니. 악마가 하고자 했으면 모두 불타 죽었을 거였다.
“중장님께서야 말로 왜 저희를 막으시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올리버가 생각하는 사이, 사제가 웃는 얼굴로 필립을 위협했다. 그러자 필립 역시 미소 지으며 반박했다.
“오해라니. 그게 무슨 뜻이요?”
“······.”
“데이브 혹은 제논. 이 친구는 마탑 소속 마법사며, 내가 개인적으로 고용한 고용인이요. 그리고 다쳤지. 내가 이 친구 몸 상태를 걱정하는 게 무슨 오해를 산다는 말이오?”
“아,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그런 뜻이란 게 또 무슨 뜻이요?”
“······.”
“뭣보다 방금 도시 상황이라 하였소? 잘 말해주었소. 난 그 도시 상황을 제대로 모르거든. 거대한 대화재가 일어나 도시의 사 분의 일이 불타고, 수많은 사람이 불타 죽었는데 아는 게 거의 없소. 왕자님까지 위험할 뻔했는데. 그쪽에서 어떤 정보도 공유해주지 않아서······. 아무리 파테르교의 권한이긴 하지만 조금 너무하단 생각이 들지 않소?”
필립은 논리와 언변, 자신의 외모를 이용해 올리버에게 질문하러 온 사제들을 역으로 추궁했다.
그가 내뿜는 감정과 행동으로 볼 때 필립 그는 개인적으로도 파테르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팽팽해진 공기.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필립 중장님.”
“왜 그러나?”
“전 괜찮습니다. 사제님들 질문에 대답 드리겠습니다.”
“······정말 괜찮나?”
“예.”
필립은 한 번 더 물어봤고 올리버가 대답하자 그는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순순히 물러나 주었다. 올리버를 믿고 배려해 준 것.
필립이 일행을 데리고 떠나자, 병실 내에는 올리버와 사제 둘만이 남게 되었다.
올리버가 자처해 필립을 물려줄지 몰랐는지, 사제 둘은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봤으나, 곧 마음을 가다듬고 올리버에게 정식으로 인사했다. 올리버 역시 인사를 받으며 정식으로 인사했다.
“친절하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프신데 불구하고 들이닥친 점 다시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도시에 큰일이 있는 거 같은데, 무슨 일 있었던 겁니까?”
올리버가 질문했다. 올리버 역시 궁금한 게 있어 그들을 들인 거였다.
“기억이 안 나십니까?”
“중간에 기절해서요. 머리도 뒤죽박죽이네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폐광산에 들어가고 너무 많은 일이 있어 올리버의 머리는 뒤죽박죽이었다.
팬을 만났고, 악마를 만났고, 필거렛을 핌으로 한순간 던칸의 삶도 살았다. 그러다 기절했고.
‘······쿠키는 먹었나?’
올리버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충분히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당장은 아니라는 소리.
사제들은 그런 올리버에게 의심을 빛내면서도 마냥 의심하지 못했다. 척 보기에도 올리버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기에.
근육이라곤 전혀 없는 사제1이 말했다. 그는 평생 책만 읽은 듯했다.
“그럼, 짧게 묻겠습니다.”
“예.”
“어쩌다 기절하셨는지 기억나십니까?”
“불타버린 자와 싸우다 기절했습니다.”
올리버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게 그대가 만난 악마입니까?”
“예.”
사제가 서로를 바라봤다. 그가 다시 물었다.
“······외관을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올리버는 팔이 욱신거리는 감각을 느끼며 대답했다.
“음······. 불타버린 사람 같았습니다. 아주 강했고요.”
“강했다고요?”
“예.”
올리버는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실제로 불타버린 자는 몹시도 강했으니까.
한 번의 호흡으로 핑크맨을 불태워 죽였고, 성법마저 무시하며, 안광과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산 채로 소금기둥으로 만들고 터트려 죽였다. 흑마법이 통하지 않은 건 말할 것도 없었고.
솔직히 강하다란 표현을 써도 될지 의문이었다.
강하다는 건 그래도 싸움이 성립되는 존재에게 쓰는 말인데, 올리버는 그마저도 아니었다.
‘애당초 봐주지 않았다면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도 않았을 테니.’
어쨌건 올리버는 아주 짧고 간결하게 악마의 힘과 모든 힘이 통하지 않은 걸 설명해줬다.
“성기사님의 성법도 안 통했고, 저도 저항했으나 소용없었습니다.”
“그렇군요······. 데이브 씨. 한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중요한 거니 잘 들어주십시오.”
“······? 말씀하십시오.”
“당신께서 보신 건 악마가 아닙니다.”
“······예?”
올리버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만큼 귀를 의심하는 말이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당신께서 보신 건 악마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전 악마를 봤습니다.”
“아닙니다.”
단호한 사제의 대답.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댔다. 이야기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사제가 계속해 입을 열었다.
“데이브 씨께선 지난 사흘 동안 의식을 잃었습니다.”
“사흘요?”
“예. 성기사 요안나 님께서 당신을 업고 나온 후, 지금까지요. 당신께서 기절해 있는 동안 요안나 님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셨습니다.”
“무슨 말을 했죠?”
“영원한 아이 팬이 사악한 저주의 의식을 했다고 말입니다.”
올리버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악한 저주의 의식이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었다.
“그럼, 제가 본 건 도대체-”
“-꿈이겠지요.”
묵묵히 서 있던 사제2가 끼어들었다. 가느다란 몸을 가진 사제1과 달리 사제2는 성기사 못지않게 몸이 두꺼웠고, 생명력도 넘쳤다.
“사흘 동안 기절했으니 꿈과 현실을 헷갈릴 수도 있죠.”
올리버가 말없이 불타버린 자신의 오른쪽 팔을 들어 보였다.
“······그건 팬에 의해 입은 상처라 하더군요.”
“죄송하지만, 전 아둔하고, 지금 머리도 몽롱한 상태지만 꿈과 현실은 구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요. 지금 중요한 건 성기사가 그리 말했다는 거고, 저희 파테르교도 그렇게 판단했다는 거지요.”
올리버는 그제야 사제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악마가 나타났다는 것 자체를 숨길 작정이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중요한 사실을 왜 숨기려는 건지.
“그 이야기를 하려고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예. 또 거기에 관해 드릴 부탁도 있습니다.”
“뭐죠?”
“당신께서 보신 것, 혹은 봤다고 생각한 꿈을 모두 함구해주셨으면 합니다.”
“왜 그래야 하죠? 그냥 꿈일 뿐인데.”
“혼란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혼란요?”
“예. 아까 전 이 도시에 큰일이 있었냐고 물으셨지요?”
“예.”
“아주 큰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폐광산에 들어간 날을 시작으로 도시 곳곳의 물이 붉게 변하더니, 개구리 떼가 창궐하는 기현상(奇現象)이 발생. 종국에 거대한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사람이 밀집한 거주지와 산업구역을 중심으로요.”
사제2가 한 박자 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덕분에 이 도시에는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罹災民)이 발생해 말 그대로 혼란한 상황입니다. 거기에 각종 음모론이 날뛰어 사람들의 혼란과 공포를 부추기고 있고요. 그런 와중에 누군가 악마를 봤다? 이 도시는 지옥이 될 겁니다.”
오호, 그럴듯한 말이었다. 특히, 전부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공짜는 아닙니다. 당신께서 얼마나 이번 임무에 노력했는지 들었습니다. 거기에 걸맞은 보상을 드릴 겁니다. 다만.”
“다만?”
“만약, 함부로 꿈 이야기를 하신다면 혼란을 조장하고, 파테르교를 음해한다고 생각해 저희도 거기에 걸맞은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점 정중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저희 부탁을 수락해주시겠습니까?”
올리버가 사제의 눈과 감정을 봤다. 말이 부탁이었지, 반은 협박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올리버를 어떻게 하고픈.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저도 부탁 하나 드릴 수 있겠습니까?”
“부탁······이요? 뭐죠?”
“기사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요안나 기사님요. 무사하신지 궁금해서요.”
“그게 왜 궁금하시죠?”
“제 임무가 성기사님을 보조하는 거니까요.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올리버가 정론을 이야기했다. 폐광산 임무에 들어간 이유는 다름 아닌 성기사를 보조하기 위한 거였으니까.
예상치 못한 말에 사제 둘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뚜벅. 뚜벅. 뚜벅. 뚜벅.
한 사제가 대리석으로 이뤄진 새하얀 복도를 걸었다.
그는 성황청(聖皇廳)에서 일하는 사제로, 거대한 조각상을 지나 한 금으로 장식된 문 앞에 도착했다.
사제는 멈춰서 몸 정돈을 한 다음 문을 두들기려 했다. 바로, 그때, 문 너머로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이미 자신을 온 걸 눈치챈 목소리. 그러나 놀랍진 않았다. 이 문 너머에 있는 분은 파테르교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리더 중 한 분이었으니.
“전하(殿下).”
사제가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악마와 이교도 신들을 몰아내는 천사를 표현한 거대한 벽화와 그 벽화를 배경 삼아 앉아 있는 거구의 대머리 사내를 볼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로데릭 보르. 현 파테르교의 추기사제이자, 성황청의 재정을 책임지는 재무관. 그리고 전(前) 성기사였다.
그는 여느 때처럼 엄청난 양의 서류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신대륙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해결사가 깨어났고, 우리 쪽 부탁을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그 해결사란 다름 아닌 란다 T구역의 해결사 데이브 라이트를 뜻했다.
근래 일어난 굵직한 사건에 한 발씩 걸친 해결사.
상당히 중요한 사안이었지만, 로데릭은 놀라지도 기뻐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위대한 일을 위한 하나의 발자취일 뿐이었으니, 일희일비할 수 없었다. 그래도 잘 풀렸으니 다행이긴 했다.
로데릭은 서류를 계속해 작성했다. 사제가 다가와 귓속말했다.
“전하(殿下). 한마디 올려도 되겠나이까?”
“말하게.”
로데릭은 막대한 업무량, 바쁜 상황임에도 인상을 구기지 않고 조언을 허락해줬다.
충성심이란 때때로 물질적 보상보다 한마디 말에서 더 얻을 수 있었기에.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殿下)······. 불확실한 부탁보다는 확실하게 해치우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사제가 낮게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데이브를 해치우자는 것. 충성으로 하는 말일 테지만, 참 우스운 말이었다. 성기사 출신도 아닌 일반 사제가 사람을 죽이자고 권하다니. 역시, 용기(勇氣)는 무지(無知)에서 나왔다.
“그럴 필요 없네. 해결사 데이브에 관해서는 조사했어. 의뢰 성공률 100퍼센트에, 신용도 확실하더군. 부탁을 들어준다 했으면 지킬 거야.”
그 말은 사실이었다. 갈라하우트에게서 보고 받은 후, 로데릭은 적절한 시간을 두고 여러 루트를 통해 해결사 데이브 라이트에 관해 차근차근 조사했다.
몇 년 전 갑자기 란다에 나타난 수수께끼의 해결사.
마탑 소속이니, 마탑의 실험체니 과거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는 그는 뛰어난 실력과 놀라운 일 처리 솜씨, 확고한 신용, 그런 주제 까다롭지 않은 것으로 단숨에 명성을 떨쳤다.
기본적인 평가는 속을 알 수 없는 자라는 게 지배적. 그도 그럴 게 하루아침을 객사할 수 있는 뒷세계에 들어와 놓고 그렇다 할 야심도, 물욕도, 행보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나, 또 그런 주제에 부유층 여성을 애인으로 두고, 매음굴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호색한이란 이야기도 있었고.
거기다 최근에는 다소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란다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린 드루이드를 해치우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야심을 내비쳤다고 말이다.
그는 놀라운 수완을 이용해 개발 반대 위원회라는 조직과 담판을 벌여 X구역을 재개발하며, 외부에서 키운 조직을 끌고 와, 파이터 크루라는 조직과 합쳐 자신만의 조직과 세력권을 단숨에 확보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엔조이먼트를 홀로 기습해 제압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나머지 기타 세력이 스스로 굴복하는 수완까지 보여줬고.
아무 생각 없는 일개 해결사에서, 놀라운 인내력과 계책을 가진 야심가까지. 뭐 하나 일관성이 없는 모순적인 존재였다.
“그렇다면 더더욱 해치울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꼭 암살이 아니더라도, 저희는 그놈을 체포할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 사이비 종교 단체 말입니다. 그거라면 지금 놈을 비호하는 로어 가문의 늙은 사자도 같이 제압할 수 있습니다.”
사제가 말한 건 데이브가 놓고 간 B사에 특별 맞춤형 차량을 뜻했다.
확실히 그거라면 데이브는 물론 필립 로어까지 엮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그랬다간 왕실, 마탑, 란다와도 마찰이 불가피하지. 심지어 그 늙은이와도······. 아직은 무리할 필요 없어.”
“그래도-”
“-걱정할 거 없네. 정보의 생명은 타이밍. 이 순간만 넘기면 흑마법사의 발언 따위는 별 소용없으니, 지금만 넘기면 돼. 설사 아니라 해도 그때 가서 일을 진행하면 되고. 이해했나?”
로드릭의 확고한 말에 사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 전하(殿下).”
“그보다 보니파는 어떻지?”
“그는 아직 치료 중입니다. 고대의 문헌을 뒤져가며 부상을 치료-”
로드릭이 서류 작업을 멈췄다.
“아. 그거 말고. 기도문 계속 읊어주고 있나?”
“아······. 예, 전하(殿下). 고귀한 희생에 관한 기도문을 계속해 읽어주고 있습니다. 희생은 실로 아름답고 숭고하며, 때때로 어쩔 수 없다는 걸요.”
로드릭이 다시 서류 작업을 시작했다.
“좋군. 계속 읊어주도록 해. 스스로 고귀해질 수 있게끔 말이야. 악마와 맞서기 위해서는 진정한 천사의 아들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