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0. 악마와의 대화 (3)
“다 불태운 다음 무엇을 하실 겁니까?”
올리버가 물었다. 도시를 다 불태우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한순간 적막이 엷게 퍼지며 짧은 고요가 찾아왔다.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과거 천사의 아들을 만난 적 있습니다.”
나쁘지 않은 서두였는지 불타버린 자와 겁을 집어먹었던 요안나가 반응했다.
“어쩌다 보니 그와 싸웠습니다. 밤하늘을 빛으로 물들인 날개 달린 사람과요.”
올리버는 와인햄에서 만난 그를 떠올렸다. 이름이 보니파였던가?
“빛으로 이뤄진 날개를 가진 그는 강했습니다. 그리고 약간 좀 그렇더군요.”
[어째서지요?]
“너무 확신에 차 있으셔서요. 또, 제 소중한 사람을 칼로 찔렀고요.”
[소중한 사람?]
“아마도요······. 스승님에 이어 절 두 번째로 도와주신 분이거든요.”
올리버는 조셉 패밀리에서 마리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녀는 막 패밀리에 들어와 감독관에게 괴롭힘당하던 자신을 도와주었다.
처음 받아보는 조건 없는 도움. 그래서 올리버는 마리에게 글과 숫자를 가르쳐달라 청했다.
[그래서 어찌하셨습니까?]
“솔직히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냥 엄청 때렸습니다. 때리고 싶었거든요. 때리고, 때렸습니다.”
올리버는 그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건 참······.
“······기분 좋더군요. 거슬리는 존재를 내키는 대로 때리는 거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기분이 좋았다면서요?]
“누군가 말씀하시더군요. 분노, 증오, 복수는 중독적이라고. 해보니까 알 것 같았습니다.”
[즐거우니 중독적인 겁니다.]
“그분께선 제가 그러지 않길 바랍니다.”
[남이 원치 않아서 안 한다? 한심하군요.]
“맞습니다.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 잘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제 의지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해보니까······. 창피하더군요.”
올리버는 전의를 상실한 보니파를 구타하던 중 마주친 빈민 가족을 떠올렸다.
늙은 어미와 아비, 아이들.
그들은 겁에 잔뜩 질린 채 한쪽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지금 요안나처럼 자신을 두려워했기에.
당연했다. 기분에 내키는 대로 무의미하게 때리고 부쉈으니.
꼬질꼬질하고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가족을 보호하려 했다.
“······아주 창피하더군요.”
올리버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지껄였다. 그러나, 속으론 씁쓸함만을 느낄 뿐이었다.
인육 요리사 때와 엔조이먼트 드루이드 등 이후로도 화를 여러 차례 낸 적 있었기에. 자신은 참으로 제멋대로인 거 같았다.
[그러니 복수는 허무하다, 폭력은 나쁘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런 허망한 논리를 펼쳐 제가 그만두길 바라시는 겁니까?]
올리버가 침묵으로 긍정했다. 어떻게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여도 자신이 하는 말은 딱 그 수준이었으니.
올리버도 납득이 안 되는 말. 그러나 지금 올리버가 할 수 있는 말은 딱 그 정도뿐이었다.
[그거 참 잔혹한 말이군요. 당한 자들에겐 그저 과거 일이니 잊으라. 이들이 가벼운 마음을 절 부른 것 같습니까?]
악마가 어둠을 물리치며 시체의 산이 된 홍인 흑마법사들을 가리켰다.
스스로 장작불이 되고, 뒤틀린 기도문을 읊다 죽은 홍인 흑마법사들을.
[혹여, 그대와 멀리 떨어진 소외된 자들이라 그리 쉬이 말씀하시는 건 아닙니까?]
올리버가 악마 소환을 위해 제물이 된 홍인 흑마법사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맞습니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평소의 의문사가 아닌 명확한 문장으로. 여기서 의문사로 대답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제 첫 번째 친구는 뒷골목 해결사였습니다. 재개발 붐 때 수많은 사람을 고통과 슬픔에 몰아넣었던 사람이죠. 그는 종국엔 자기 일 때문에 가족과 한쪽 다리를 다쳐 모든 걸 잃고 거지가 됐습니다.”
악마는 침묵했다.
“지금 제 스승님은 과거 홍인(紅人)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인체 실험을 자행하셨습니다. 본인조차 말하길 꺼릴 정도로요.”
악마는 침묵했다.
“제 첫 번째 친구는 이후 이름 없는 사제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죄를 반성하며 지금은 거지와 가난한 자를 돕고 있습니다. 저 역시 도움을 받았고요······. 스승님 역시 본인의 일을 후회하며 홍인을 제자로 두고 여러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 역시 도움을 받았고요”
[죄인들이 죄를 뉘우치고 선행을 베풀 수도 있으니 넘어가라는 겁니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받을지, 만약 그들이 없었으면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을 피해자일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면 무슨 뜻입니까?]
“저도 모릅니다!”
올리버는 소리쳤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엉망진창인 몸으로 간신히 쿼터스태프에 의지해.
그 모습을 본 요안나는 몹시도 놀랐다. 올리버가 소리를 지른 적이 있던가?
“······죄송합니다. 저는 아둔하고, 이기적이라 그런 것까진 아직 모릅니다.”
올리버는 떠올렸다. 자신이 자신을 안다고 생각했던 때를. 노라의 슬픔에 공감하긴커녕 오히려 공감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슬픔을 느꼈던 때를.
자신은 어리석었고, 이기적이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말이다.
“······제가 아는 건 당신께서 하려는 행위는 모든 걸 불태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잿더미와 먼지. 전 그게 좀 그렇습니다.”
[뻔뻔하군요. 자신도 모르면서 절 막으시다니.]
“예, 제가 생각해도 뻔뻔합니다. 허나, 틀리는 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도 옳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계속해 탐구할 겁니다. 제가 맞는지 틀렸는지 알기 위해서요.”
[뻔뻔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재밌지만요.]
“한 고아원 원장님께 배운 겁니다. 전 좋은 말이라 생각합니다.”
올리버가 대답하며 저도 모르게 요안나를 봤다. 요안나와 눈이 마주쳤다.
[만약 그대의 말이 틀린 거라면 어찌할 겁니까?]
“글쎄요······. 바로 잡도록 노력해야지요.”
[감당하지 못할 말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전 그 말을 기억할 겁니다.]
“그거 잘됐군요.”
올리버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악마는 침묵했고, 올리버는 작은 만족감을 느꼈다.
악마의 말문을 막은 게 기쁜 게 아니었다. 그저 자기 생각을 끝까지 이야기한 게 기쁠 뿐이었다.
아직도 뭐 하나 명확하지 않은 모호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고 이야기했다는 게 썩 기뻤다.
광산을 떠나 흑마법을 배우고. 패밀리를 떠나 세상을 둘러보며 배운 것이 헛되지 않은 거였다.
악마가 번개처럼 불타는 눈으로 바라봤다.
[재밌는 대화였습니다. 눈앞의 죄악을 외면하고, 그저 가까이 있는 사람을 위해 절 막은 건 똑같지만요.]
올리버가 요안나를 봤다. 눈이 두 번째로 마주쳤다.
“그것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요안나 님 역시 절 도와주신 분이거든요.”
올리버가 처음 요안나와 대화했던 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녀는 사람과 사는 법을 배우라고 말하며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또, 샌드위치도 맛있었고요.”
아르크 고아원을 떠났을 때 받았던 샌드위치를 떠올리며 올리버가 말했다. 악마는 무슨 말인지 아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신기했다.
‘어떻게 아는 거지?’
올리버가 그리 생각하며 시험관에 보관한 감정, 생명력, 마력을 모조리 쥐어짜 인공 영혼을 만들었다.
이례적인 규모. 이를 증명하듯 손에서 강력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평소였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할 수준이었지만, 올리버는 이를 통제하며 거대한 인공영혼을 만들었다.
비록, 그 규모가 커 섬세함은 다소 떨어졌지만, 규모가 이를 덮어주었다.
올리버는 망설임 없이 인공영혼을 이용해 블랙 슈트를 만들어 온몸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요란한 망토를 두르고, 다리는 말의 그것으로 변형시켰다. 무엇보다 쿼터스태프와 핏빛 단검을 흑마법으로 한데 묶어 창을 만들었다.
올리버의 피로 물든 핏빛 창날을 가진 창으로.
생각보다 보기에 훨씬 그럴듯했다. 아주 좋았다.
[그 정도로 절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해봐야 알 수 있는 거죠.”
올리버는 그렇게 대답했다. 별수 없었다. 필거렛이 하나 남긴 했지만, 아까 전에 소용없다는 걸 알았으니. 확률은 낮을지언정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그나마 가능성이 높다고, 실패할 게 뻔한 길을 갈 순 없었다.
올리버는 몸을 낮췄고, 불타버린 자는 똑같이 서 있었다.
파앙!
올리버가 대지를 박차 돌진하기 직전 몸에 두른 블랙 슈트를 폭발시켜 강렬한 빛을 발산했다.
인공 영혼을 이용한 폭발로, 찰나긴 하나 악마의 불빛을 한순간 집어삼켰다. 올리버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몸을 극한까지 앞으로 기울여 돌진했다.
첫 번째 발을 내딛자 주변의 풍경이 흔들리더니, 두 번째에는 횡으로 길게 늘어졌고, 세 번째에는 모든 게 실처럼 가느다래지더니, 거기에 발끝으로 가속을 더 하자 모든 게 사라졌다.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앞에 있는 불타버린 자뿐.
올리버는 그곳을 향해 핏빛 창날을 있는 힘껏 내질렀다. 압도적인 속도로.
푹━!
꿰뚫렸다.
길게 자란 악마의 팔이 올리버의 가슴을.
시커멓게 탄화한 악마의 팔이 균열을 일으키며 길게 늘어나 올리버의 창보다 더 길어져 한 박자 더 빠르게 가슴을 찔러 넣었다.
침묵하는 올리버. 그런 올리버를 보며 불타버린 자가 말했다. 웃는 거 같았다.
[처음부터 노린 겁니까?]
그 말과 함께 불타버린 자의 팔에 꿰뚫린 올리버의 블랙 슈트가 해체되며 그 안을 가득 메운 올리버의 그림자가 수백 개의 촉수로 변해 팔을 시작으로 불타버린 자의 몸 전체를 휘감았다.
영원한 아이 팬의 기술 낚시 아귀였다.
푹.
그림자에 묶인 불타버린 자 등 뒤에서 무엇인가 꿰뚫고 들어왔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배후를 잡은 올리버가 오른손으로 등 뒤를 찔러 꿰뚫은 거였다.
등을 꿰뚫고 들어간 오른손에서 살이 타는 끔찍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고, 끔찍한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끄으······!”
마치 지옥 불에 손을 넣은 듯한 감각.
형용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올리버는 간신히 의식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올리버는 자신의 생명력을 추출해 불타버린 오른손에 집중했고, 동시에 불타버린 자의 감정? 생명력? 형용하기 힘든 힘을 추출했다.
맨손으로 마그마를 잡는 게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고 요동쳤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그림자에 붙잡힌 불타버린 자가 가만히 있다는 것으로, 올리버는 잠깐 궁금해졌다.
상대방을 속일 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낚시 아귀의 힘 때문에 불타버린 자가 못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불타버린 자가 올리버를 배려해 주는 건지.
그러나 올리버는 이 의문을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손안에 들어오는 엄청난 에너지와 작열통 그리고 불타버린 자가 말을 걸어왔기에.
그가 사방에서 메아리치는 음성이 아닌, 육성(肉聲)으로 물었다.
아주 감미롭고 고통스러운 소리였다.
“존귀한 존재여. 노력은 가상하나, 결국, 그대께서 절 막는 건 홍인들의 고통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지(無知)지요.”
“압니다.”
올리버가 작열통으로 정신을 붙여 잡으며 대답했다. 눈, 코, 입, 귀. 일곱 개의 구멍에서 다시 피가 나오고 뇌를 비롯한 내장이 요동쳤다.
그 와중에도 올리버는 계속해 추출했다.
“아뇨. 그대는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될 겁니다. 뼈에 새기듯이.”
“······예언입니까?”
올리버가 계속해 추출했다.
“그렇습니다. 그대가 그걸 감당할지 궁금하군요.”
“제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알고 배운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거라고요.”
올리버는 살이 다 타 떨어지고 뼈까지 타는 감각을 맛봤다. 아직 부족했다.
“아주 잘 가르쳤군요. 아는 것은 고통입니다.”
“허나, 전 계속해 알아 갈 겁니다······. 그러니까 제게 시간을 더 주십시오. 그럼, 좀 더 나은 답을 찾겠습니다.”
“약속······할 수 있습니까?”
“약속합니다.”
악마가 질문했고, 올리버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는 미소 짓는 거 같았다.
“좋습니다. 기다려 드리죠. 어떤 선택을 할지. 과연 제가 인정할 존재가 될지 기다리겠습니다.”
허언이 아닌 진심. 그때 올리버가 손에 쥔 힘이 한계지점에 도달했다. 그제야 올리버는 뒤늦게 당연히 가져야 할 의문을 가졌다.
“왜 제게 이토록 관심을 가지는 거죠?”
빙글. 불타버린 자가 자기 머리를 붙잡은 그림자를 가볍게 뿌리치며 고개를 180도 돌렸다. 역시, 봐준 거였다.
“알게 될 겁니다. 그대가 원하든 원치 않든. 위대한 존재여.”
알 수 없는 불길한 대답. 올리버가 화답했다.
“불타올라라.”
올리버가 명하자 불타버린 자의 몸속에 있던 오른손에서 거대한 화염 폭발이 일어났다.
세상을 새하얗게 탈색시킬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쳤다.
도시를 소멸시키고, 바라보는 자는 소금기둥으로 증발시킬 거대한 재앙이 말이다.
***
하얀 화염이 불타버린 자 안에서 터지며 그의 몸 곳곳에 난 갈라진 틈새를 통해 뿜어져 나왔다.
새하얀 화염은 이미 타들어 갈 대로 타들어 간 불타버린 자의 육신을 다시 불태웠고, 그 강력한 힘으로 육체에 균열을 일으키고, 겉을 깨부쉈다.
점차 바스러지는 악마의 육신.
이윽고 장작 같은 몸에는 거대한 균열이 일며 새하얀 화염이 뿜어져 나와 땅에서 하늘로 치는 불벼락처럼 거대한 불기둥을 솟구쳤다.
화염은 어둠을 불태우고, 세상을 자신의 색으로 탈색시켰다.
백화(白化)된 세상.
재조차 남기지 않는 화염은 찰나와 같이 짧으면서도 영원과 같이 길었다. 허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끝이 있는 법.
새하얀 화염은 점차 사그라들었으며, 새하얗게 탈색됐던 세상도 차츰 원래의 색을 되찾아 갔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것 같고, 실제로도 남기지 않는 화염은 거짓말처럼 사라졌으며, 그 속에서 올리버가 비틀비틀 간신히 서 있었다.
재앙과도 같은 그 화염 속에서 살아남은 것. 놀랍게도 오른쪽 머리가 탈색되고, 몸 군데군데 경미한 화상을 입은 것 외에는 어떠한 피해도 없었다.
오른팔은 처음 그대로 불탄 상태를 유지했지만. 불기둥의 위력을 본 자라면 그마저도 기적이라 할 터였다. 그건 올리버도 마찬가지.
그러나 올리버는 그 기적을 인지할 수도, 기뻐할 수도 없었다.
불타버린 자가 입과 몸에 난 상처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서 있었기에.
그는 갈라진 바위 틈새 같은 입으로 말했다.
“조금 아팠습니다.”
“······오, 맙소사.”
올리버는 그 한마디를 남기곤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