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 강림 (2)
과거 고아원 시절, 올리버는 여자가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본 적 있었다.
흔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간혹 있긴 했다.
집도, 가족도,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여성 중 몇몇이 고아원에 찾아와 아이를 낳곤 했으니.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도움받을 곳이 없어서, 혹은 낳은 아이를 고아원에 바로 맡기기 위해서.
고아원 원장도 이를 거절하진 않았다. 출산을 도와주는 건 번거롭긴 했지만, 평판이라든가, 새로운 지원금이라던가 이득이 있었으니까.
그 외에도 산모가 죽을 경우, 그녀가 가진 옷가지와 소지품, 이빨과 머리카락 등 짭짤한 부수입을 챙길 수 있었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거래.
하지만 그렇다 해도 출산을 도와주는 건 역시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간혹 고아원 직원들이 부족할 때면, 올리버가 그 일을 돕기도 했다.
올리버는 분명 기분 나쁘고 재수 없는 아이긴 했지만 동시에 기이하리만치 차분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시킨 일을 수행하였기에.
덕분에 올리버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직접 담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렇다 할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그것은 메마른 땅에 싹이 트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도움을 청하는 애원도, 아이를 낳을 때 지르는 비명도, 피도, 아기의 울음소리도 올리버에겐 무감각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일을 잘 도와줄 수 있었던 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버가 간혹 출산에 관심을 가질 때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성이 낳은 아이를 품을 때로, 그때 여성들이 내뿜는 감정은 정말 순수하고 맑고 따뜻했다. 고아원에선 절대 볼 수 없었던 감정.
당시의 올리버는 이를 정의할 단어를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붙일 수 있었다.
아마, 신성(神聖)하다는 게 적당할 터였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그 과정과 거기서 발생하는 감정이 말이다.
그건 신성(神聖)한 거였다.
허나, 지금 올리버의 눈에 펼쳐지고 있는 것은 정반대였다.
불경하고, 모독적이었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출산과 엇비슷했지만, 저건 생명이 아닌 죽음을 출산하고 있었다.
“아아아······!! 아아아악······!!!”
배만 부르고 나머지는 쭈글쭈글 삐쩍 마른 홍인(紅人) 소녀가 갈라지고 부르튼 입술로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라비틀어진 사지(四肢)를 휘두르며 발버둥 쳤지만, 무엇인가에 붙잡힌 듯, 두 팔다리는 자유를 잃고 출산에 적합한 자세로 억지로 교정됐다.
“커헉······! ······!!”
풍선처럼 커지던 비명은 한계에 다다르자 펑 하고 터지며 선혈을 토했고, 홍인 소녀는 망가진 성대로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다 입이 찢어졌다.
“우에에에엑!!”
핑크맨 하나가 눈앞의 광경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토사물을 쏟아냈다.
결코, 그의 비위가 약한 게 아니었다. 여기 있는 이들 모두 자신의 조직에서 엘리트 취급을 받는 자였으니.
그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이 정도를 넘어선 것뿐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꼼짝없이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는 거였다. 올리버를 포함해 말이다.
“그르르르르륵······!”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던 홍인 소녀는 더 이상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입에 피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이미 벌려진 다리는 인체 구조를 무시한 채 한계까지 벌려졌으며, 무서울 정도로 부푼 배는 꿀렁꿀렁 요동치며 안에 있는 무언가가 나오려고 했다.
푸홧━!!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발이었다.
혼탁한 핏덩어리와 살점이 뒤섞인 발.
발은 아주 천천히 나왔으며, 발목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데 몇십 초 가까이 걸렸다.
“······.”
현실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에 모두 얼어붙으며 아무것도 못 했고, 홍인 소녀는 몸을 한계까지 젖히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뚜둑.
그러다 결국 척추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 홍인 소녀는 죽지도, 기절하지도, 고통에서도 벗어나지도 못한 채 여전히 흐릿한 무엇인가에 붙잡혀 있었다.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의식(儀式)이 끝날 때까지 소녀에게 안식은 없음을, 의식이 끝난 후에도 안식이 없음을. 소녀에게 남은 거라곤 고통뿐이었다. 아주 끔찍하고 모독적인 고통.
원 형태로 소녀를 둘러싸 기도하던 홍인들은 더욱 빠르게 불경한 기도문을 읊었으며, 모닥불은 사납게 요동쳐 사방으로 열풍(熱風)을 내뿜었다.
점점 올라가는 내부의 온도.
털썩······. 털썩. 털썩.
핑크맨 하나가 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둘이 땀을 흘리며 쓰러졌다.
이로써 성기사뿐 아니라 핑크맨도 한 자릿수만 남게 되었다.
허나, 누구도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형용할 수 없는 미지의 공포와 흥미에 압도돼.
촤하하학━━!! 후두두두둑!
천천히 나오던 다리는 발목 지점을 지나 종아리 부분에서 폭발하듯 쑥 하고 튀어나와 피와 살점을 흩뿌렸다.
모두의 동공이 커졌고, 그 순간 미친 듯이 요동치던 모닥불이 팍! 하고 꺼져 사방을 어둠으로 완전히 뒤덮어버렸다.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열기(熱氣)를 머금은 공기와 다시 울리는 소녀의 비명, 홍인들의 기도뿐이었다.
무엇 하나 현실에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불경한 소리.
화르륵!
모닥불에 잠깐 불이 들어왔다.
완전히 나온 한쪽 다리와 반쯤 나온 머리가 보였다.
팍!
모닥불이 다시 꺼지며 어둠이 사방을 집어삼켰다.
비명과 기도문이 선명히 들려왔다.
화르륵!
모닥불에 잠깐 불이 들어왔다.
한쪽 다리와 머리, 한쪽 팔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팍!
모닥불이 다시 꺼지며 어둠이 사방을 집어삼켰다.
비명은 사라지고, 저주받은 기도문만이 선명하게 울렸다.
화르륵!
모닥불에 잠깐 불이 들어왔다.
핏덩어리와 살점으로 이뤄진 삐쩍 마른 남자가 서 있었다.
팍!
모닥불이 다시 꺼지며 어둠이 사방을 집어삼켰다.
저주받은 기도문은 공간을 울릴 정도로 커지더니 뚝 하고 끊겼다.
화르륵!
다시 불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번엔 모닥불이 아니었다.
핏덩어리와 살점으로 이뤄진 남자가 스스로 불타 주변의 어둠을 물리쳤다.
피와 살이 타는 악취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열기가 공기를 흔들며 내부를 뜨겁게 달구었다.
최악의 환경으로 치닫는 공간.
모두가 비틀거리고, 토사물을 쏟아내는 와중 올리버는 눈앞의 선 ‘악마’를 봤다.
달랐다. 스승인 조셉 때와 달랐다. 인육 요리사 때와도 달랐고.
그때 나온 악마들이 수면에 비친 그림자라면, 저건 일부긴 해도 실체를 가진 악마였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뚜두둑.
노란색, 주황색, 붉은색 화염이 점차 사그라지더니, 다 타버린 악마의 몸이 드러났다.
잔불이 남은 시커먼 피부와 말라비틀어지고 몸뚱이, 벼락을 맞은 듯한 갈라짐이 온몸을 뒤덮었다.
인간 형상을 한 장작.
장작은 은은한 빛을 뿜으며 가만히 서 있었으나, 이내, 녹아버리고 타버린 얼굴에 균열이 가 눈구멍과 입이 생겼다.
바스러져 구멍이 생긴 눈구멍에는 번개를 연상케 하는 불꽃이 깃들었으며, 갈라진 바위 틈새 같은 입에서는 짙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처음 입이 생기자마자 악마가 한 것은 공기를 들이켜-
후흡······.
-내뱉는 거였다.
후우.
그리고 남은 핑크맨은 모두 선 채로 불타 죽었다.
***
핑크맨은 불타 죽었다.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두.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인지(認知)를 아득히 넘어섰기에.
올리버는 자신의 바로 옆에 살아 있었던 리키를 보며 생각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어 난 건지.
소녀의 몸에서 악마가 나와 불타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숨을 내쉬는 순간 살을 태울 것과 같은 열풍(熱風)이 불어왔으며, 성기사들은 성법을 사용해 자신들의 육체와 정신을 안정시키곤, 전부 앞으로 뛰어가 거대한 빛의 성벽을 만들었다.
올리버와 핑크맨은 그 뒤로 몸을 숨겼고.
이때까지는 명확했다. 허나, 그 뒤로는 불명확했다. 너무나도 믿기지 않았기에.
공기를 뒤흔들던 열풍(熱風)은 황금빛 성벽을 녹이고, 불태웠다.
눈으로 지은 성벽에 뜨거운 물을 붓듯.
성기사, 핑크맨, 올리버 모두 그 광경을 봤고, 경악한 이들은 생존본능에 따라 제각기 방어 수단을 걸쳤다.
성기사는 성법으로 갑옷을 만들었고, 핑크맨은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 올리버는 블랙 슈트에 얼음 마법을 추가했다.
좀처럼 쓸만한 일이 없어 사용하지 않던 술법.
상당한 기술이라 자부했지만, 전부 소용없었다.
악마가 내뿜은 뜨거운 숨은 성기사들이 몸에 두른 빛의 갑옷마저 불태우고 녹였으며, 올리버의 얼음 갑옷마저 손쉽게 무력화시켰다.
성기사들은 제각기 뜨거운 열기에 폐가 타는 통증을 느끼며 무릎을 꿇었고, 마력으로 육체만 강화한 핑크맨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불 없이 불타 죽었다.
온몸의 수분과 지방이 증발하듯 말라비틀어지고, 피부는 시커멓게 변색 됐다.
썩은 것인지, 말라 비튼 것인지, 불탄 것인지 알 수 없는 기이한 형태.
모두가 침묵하며 뜨거워지는 열기에 괴로워하는 그때, 올리버는 볼 수 있었다.
갈라진 바위 틈새와 같은 입을 통해 호흡을 조절하는 악마를.
보는 것만으로 눈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털이 주뼛주뼛 섬에도 올리버는 악마가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을 배려해 호흡을 조절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실로 기이한 광경.
그러나 그 기이한 광경은 현실이었다. 차츰 낮아져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온도가 된 내부 공간이 그 증거.
여전히 뜨거웠지만,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었다.
“끄으으으······.”
무릎 꿇었던 성기사들이 하나둘 다시 일어났다.
몸 안과 밖을 훑는 끔찍한 열기가 정신을 좀먹음에도 성기사라는 그 직책이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들이 느낀 고통을 바로 앞에서 봤기에. 실로, 대단.
동시에 올리버는 악마에게도 감탄했다. 그저 숨을 쉰 것만으로, 사람을 선 채로 불태워 죽이며, 성기사를 무릎 꿇렸으니.
분명 성기사는 악마에게 맞서기 위한 존재일 터인데 전혀 상대가 안 됐다.
개미와 사람만큼이나 힘의 차이는 명확했다.
‘지금 소환된 악마가 유독 강한 걸까?’
올리버는 추측했고,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올리버가 느끼는 바로는 말을 탄 노인이나, 인육 요리사 때 본 악마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근거가 없는 감일 뿐이지만, 올리버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말은 즉, 다른 악마들도 숨 쉬는 것만으로 성기사를 죽일 수 있다는 것.
이해가 안 됐다. 올리버가 알고 있던 지식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확실한 건 두 개뿐이었다.
올리버가 잘못 알고 있든가, 아직 모르는 게 있든가.
‘이것도 포함된 걸까?’
올리버가 의문을 빛냈다.
왜 자신은 남들보다 덜 고통을 느끼는지. 솔직히 버틸만했다.
인육 요시라사의 살점을 먹은 덕분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불타버린 핑크맨과 작열통은 느끼지만, 화상(火傷)을 입지 않은 성기사의 모습을 볼 때, 악마가 내뿜는 이 열기는 물리적인 것을 벗어난 개념적인······. 좀 더 고차원적인 무언가였다.
몸이 조금 튼튼한 거로 버틸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척.
이름 모를 악마가 이쪽을 바라보며 자세를 바로 섰다.
호흡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존재가 예를 갖춘 것이었다.
올리버의 착각일 수 있었지만, 악마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두 눈이 마주쳤고, 악마는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발을 디딜 때마다 지면은 화르륵 불타오르다 사그라들며 검은 발자국을 남겼고, 주변의 풍경은 열기에 일렁거려 왜곡되었다.
성기사들은 감히 맞서 싸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을 뿐.
척.
올리버 앞에 악마가 멈춰 섰다.
그는 불타는 눈으로 올리버를 바라보더니 손을 자기 가슴에 대며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모두 숨을 멈췄다. 올리버만 빼고.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지만, 올리버 역시 똑같이 예를 갖춰 인사했다. 그것이 예의.
마음에 들었는지 악마는 갈라진 입으로 미소 짓더니. 장난스럽게 올리버의 오른손을 잡아 손등에 자신의 이마를 댔다.
그렇게 올리버의 오른팔이 불 없이 불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