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 꼬마? (1)
“죽여.”
명령과 동시에 올리버와 일행을 포위한 흑마법사들이 일제히 감정을 추출, 흑마법으로 가공해 공격을 날렸다.
[해잇 불릿(Hate Bullet)]
사방에서 쏟아지는 증오의 탄환.
흑마법 자체는 기본적인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일반적인 흑마법보다 훨씬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사용한 재료가 남다른 덕분. 그렇다 해도 흑마법은 흑마법이었다.
[디바인 프로텍션(Divine Protection)]
바닥으로 내려오자마자 포진을 짠 성기사들이 각자의 무구와 방패를 포개며 외쳤다.
그 부름에 맞춰 성기사를 주변으로 은은한 노란빛 방어막이 형성됐으며, 방어막은 곧 서로 겹쳐 거대한 방어막으로 확장했다.
즈즈즈즈즈즈!
증오의 탄환은 노란빛 보호막에 닿자마자 증발하듯 소멸했다.
까딱.
굽히지 않는 무릎은 당황하지 않고 손가락을 까딱여 크리처들에게 명령내렸다.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홍인 크리처는 이빨과 손톱을 내밀며 달려들었고, 장난감 병정은 장난감 총에 착검해 돌격, 귀여운 곰 인형은 겉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피 묻은 발톱을 꺼내 휘둘렀으며, 유니콘은 뿔을 내세워 돌진, 공룡 인형은 무시무시한 이빨을 내세웠다.
각기 다른 형태의 굉음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고, 그 소리가 고조될수록 굳건하던 보호막은 점차 흔들리더니 이윽고 실금이 쩌적 생겼다.
과거 본 적 있는 광경. 올리버와 요안나가 눈을 마주쳤다.
[퓨리파이(Purify)]
적의 공격이 최고조에 달하는 그 순간 요안나를 포함한 모든 성기사가 일제히 외쳤다.
외침이 울리자 은은하게 빛나던 노란빛 방어막은 불붙은 성냥이 떨어진 기름창고처럼 활활 불타올라 사방으로 단숨에 퍼져나갔다.
━━━━━━!!!!
아름답지만, 위력적인 노란빛 화염은 성법에도 어느 정도 내성을 보이던 팬의 크리처마저 불태워 숯검댕이로 만들었으며, 멈추지 않고 확장돼 근처 홍인 흑마법사까지 불태우려 했다.
[블레이드 오브 해이트리드(Blade Of Hatred)]
노란빛 화염이 홍인 흑마법사들을 집어삼키려 하자 굽히지 않는 무릎이 영창했다. 그러자 영혼과 순수한 증오로 이뤄진 대검이 화염을 반으로 가르며 날아왔다.
성기사들은 당황하며 이에 대응하려 했으나, 시간이 부족했다.
[블랙 슈트(Black Suit)]
바로 그때 올리버가 몸에 블랙 슈트를 두르고 앞으로 나가 정면으로 날아오는 대검을 맞받아쳤다.
예상대로 높은 물리력을 지녀 정면에서 막는 것은 불가능.
그러나 올리버는 당황하지 않고 대검과 접촉한 쿼터스태프에 온 신경을 집중, 흑마법과 육체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날아오는 대검의 궤도를 틀어버렸다.
개발반대 위원회의 원로 바솔로뮤를 상대했을 때처럼.
푸쉭━━!!!
방향이 틀린 거대한 증오의 대검은 아슬아슬하게 일행을 벗어나 애꿎은 창자 터널을 꿰뚫어버렸다.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창자-크리처. 발밑은 불안정하게 요동치며, 사방에서 소화액이 뿜어져 나와 안에 든 모두에게 위협을 가했다.
“············.”
모두가 소화액을 피하기 위해 소란을 떪에도 굽히지 않는 무릎은 당황하지 않고 말없이 올리버를 바라봤다.
올리버 역시 그를 봤다. 흑마법 실력 자체는 보통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영혼을 다루는 특성과 그의 감정이 인상적이었기에.
“모두 산개. 크리처가 더 나오기 전에 해치━ 크아아악!!”
핑크맨 팀장 중 하나가 재빠르게 상황을 판단해 지시 내리는 도중 갑자기 명령은 비명으로 바뀌었다.
다름 아닌 그의 발밑에서 광대가 세 마리 튀어나와 장난감 낫을 휘둘러 다리를 절단 냈기 때문이었다.
피해 인원은 총 다섯.
습격한 크리처가 셋인 점을 고려하면 그나마 적은 피해였다.
아마, 보통 용병이나 해결사였다면 이 기습에 모두 당했을 테지만, 그나마 핑크맨이라 제대로 반응한 거였다.
그렇다 해도 당한 것은 당한 것이었고, 현재로서는 다섯 명도 큰 피해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우힛힛힛힛힛힛━!”
바닥에서 튀어나온 광대들은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옷 안에서 풍선을 꺼내 흩어진 핑크맨들에게 날려 보냈다.
알록달록 귀여운 풍선은 둥실둥실 날아가 핑크맨 바로 코앞에서 펑하고 터졌고, 제각각 수류탄과 맞먹는 폭발, 독가스, 독거미, 저절로 움직이는 틀니 등을 내뿜었다.
“끄아아아악!”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장난스러운 공격에 핑크맨 일부가 당했다. 그러나 피해를 입지 않은 핑크맨들이 재빨리 부상인원과 자리를 교대, 장난감 낫을 휘두르는 광대들을 맞상대했다.
비록, 광대가 벽과 바닥, 천상을 통과해 성가시게 했지만, 이미 한번 본 핑크맨들은 이에 적절히 대응했고, 성기사들은 다친 핑크맨들을 치료하는 동시에 창자에서 튀어나오는 다른 홍인-크리처와 흑마법사를 상대했다.
“어디 한눈을 팔아!”
올리버가 성기사와 핑크맨에 가세하려는 찰나, 온몸이 검붉게 변한 홍인 흑마법사 넷이 제각기 토마호크와 창, 곤봉, 건스톡 워클럽을 쥔 채 올리버에게 덤벼들었다.
강화한 육체로 단숨에 찍어 누르려는 것으로, 그들은 빼빼 마른 올리버의 모습을 보고 근접전은 약하리라 판단한 거였다.
합리적인 추측이었지만, 아쉽게도 틀렸다.
쾅! 콰과━쾅!!
올리버는 블랙 슈트를 두른 그 상태로 달려오는 흑마법사들에게 돌진.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토마호크를 허공에서 낚아채 되돌려주고, 찌르는 창을 향해 쿼터스태프를 내질러 창대와 함께 갈비뼈를 부러트리며, 빈틈을 노린 곤봉은 주먹을 내질러 분쇄해줬다.
이 모든 게 한순간.
홍인 흑마법사들은 모두 놀랐으나, 그렇다 해도 멈추진 않았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한 상태였다.
[홀리 라이트(Holy Light)]
건스톡 워클럽을 든 거구의 홍인이 품에서 성법 아이템을 꺼내 대뜸 소리쳤다.
성기사에게서 얻은 노획물로 추정됐는데, 놀랍게도 흑마법사가 외치자 아이템이 작동해 성스러운 빛으로 사방을 감싸 올리버가 몸에 두른 블랙 슈트를 소멸시켰다.
몸에 두른 블랙 슈트가 사라지자 빼빼 마른 올리버의 맨몸이 밖으로 나왔다.
“죽어━”
━쩍!!
건스톡 워클럽을 든 홍인 흑마법사가 소리치며 무기를 휘두르는 타이밍에 맞춰, 맨몸이 된 올리버는 개발반대 위원회의 원로 바솔로뮤의 흉내를 내 쿼터스태프를 회전시키며 내질러 건스톡 워클럽을 쪼개고, 홍인 흑마법사의 입을 허물어버렸다.
이빨이 여기저기 흩뿌려지고 턱은 완전히 으스러져 엄청 아플 텐데도 홍인 흑마법사는 기절하지 않고 의문을 빛냈다.
깡깡 말라 살짝만 잡아도 부러진 것 같은 올리버가 어찌 이런 힘을 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렇다고 그는 단순히 의문만 빛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콱!
무기가 부러지고, 턱이 으스러진 상태에서도 억지로 힘을 끌어올려 올리버의 쿼터스태프를 꽉 붙잡았다.
의지로 힘을 쥐어짠 것.
충분히 뿌리칠 수 있었지만, 올리버는 그의 각오가 잠시 눈에 밟혀 1, 2초 움직이지 못했고, 그 찰나, 굽히지 않는 무릎이 영혼을 재료로 사용한 흑마법 발톱을 만들어 올리버에게 접근했다.
[리젠트먼트 클로(Resentment Claw)]
굽히지 않는 무릎이 양손에 두른 발톱을 휘둘렀다.
강렬한 증오와 원망이 영혼과 뒤섞여 수십 개의 칼날이 폭발하며 올리버를 덮쳤다.
영혼을 재료로 했기에 위력 하나만큼은 진짜로, 술사 본인의 손마저 갈라지고 뒤집힐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아니, 영혼을 무리하게 사용해서 저런 건가?’
칼날의 폭발 속에서 멀쩡히 서 있는 올리버가 생각했다.
굽히지 않는 무릎은 멀쩡한 올리버를 보고 적잖게 놀랐다······. 아니면 올리버가 만든 인공영혼에 놀랐든가.
턱을 희생해 쿼터스태프를 잡은 홍인 흑마법사는 칼날 폭발에 휘말려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쓰러졌고, 올리버와 굽히지 않는 무릎은 서로 쿼터스태프를 붙잡은 채 대치했다.
“······넌 뭐야?”
굽히지 않는 무릎이 당혹과 혼란, 증오, 원망을 빛내며 물었다.
“란다 T구역 30번 거리의 해결사 데이브라 합니다. 이름을 물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저도 질문하나 드려도 될까요?”
“······.”
“지금 사용하신 영혼. 필립 중장님을 습격하셨을 때 같이 싸우신 동료분들 영혼인데, 어떻게 사용하시는 거죠?”
“······!”
순수한 호기심에 기반한 올리버의 질문에 굽히지 않는 무릎은 극도의 모욕감과 분노를 느끼며 영혼을 추가해 올리버를 밀어붙였다.
신비하게도 그는 자의로 동료의 영혼을 흑마법 재료로 사용했음에도, 동시에 이것을 원치 않고, 슬퍼하며 괴로워하기까지 했다.
영혼들은 그런 굽히지 않는 무릎의 감정에 반응한 듯 더욱 강렬한 힘을 냈고, 올리버는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역시, 진짜 영혼. 힘이 남달랐다.
이대로는 비효율적이라 판단한 올리버는 흑마법을 사용해 홍인 흑마법사를 붙잡으려 하였는데, 천장에 매달리 팬의 그림자가 올리버를 향해 위에서 아래로 단검을 내리질렀다.
빈틈을 노린 치명적인 공격에 올리버는 굽히지 않는 무릎을 잡기를 포기하며 거리를 벌렸고,
팬의 그림자는 천장에서 내려와 하수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주변의 어둠을 흡수, 몸집을 키우더니 한쪽 팔에 수많은 칼날을 돋아나게 한 다음, 팔을 쭉 늘려 올리버를 향해 내질렀다.
한 번에 다섯 개로 보이게 할 정도로.
촥! 촥! 촥! 촥! 촥!
그림자가 무수한 칼날이 달린 팔을 내지를 때마다 날카로운 칼날 소리가 울렸다.
베인 거였다. 팬의 그림자가.
“······!”
오직 검은색으로 이뤄진 1차원적인 팬의 그림자는 없는 입으로 비명을 질렀다. 하기야 수천수만의 질병이 깃든 핏빛 단검에 베였으니.
“······?! ······!! ······!?!”
팬의 그림자는 올리버가 든 핏빛 단검을 보곤 경기를 일으키며 무언(無言)으로 소리를 질렀다.
불과 며칠 전 이 단검에 베여봤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회복도 안 된 상태라면 더더욱.’
그런데 추가로 다섯 번이나 더 베였다. 그림자는 극심한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의 심상치 않은 상태를 눈치챈 굽히지 않는 무릎은 엉망이 된 손으로 영혼을 쥔 채 앞으로 나와 시간을 끌 요량으로 말을 걸었다.
“그 단검 뭐지?”
“단검입니다······.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이 좀 깃든.”
“원래 칼을 잘 다루나?”
“그냥 조금요?”
“근데, 왜 날 상대로 안 썼지?”
굽히지 않는 무릎이 어느 정도 진심을 담아 물었다. 그도 그럴 게 그림자의 맹공에 맞춰 단검을 휘두른 올리버의 모습은 척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아, 다소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음······. 칼은 너무 날카로워 사람에게 쓰긴 좀 그렇거든요······. 이젠 질병 흑마법도 깃들어 있고요.”
즉, 너무 과해 쓰지 않았다는 거였다. 이미 사람이라면 이골이 나게 죽여봤을 거 같은 놈이 말이다.
팬의 그림자가 그럼 왜 자신에겐 두 번이나 썼냐고 없는 입으로 물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알아들을 수 없는 크리처의 언어. 올리버는 알아듣고 대답했다.
“어······. 사람이 아니라 크리처니까요?”
“······.”
팬의 그림자는 없는 두 눈을 번쩍 뜨며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그렇기에 상처받았다.
그림자의 감정을 엿본 올리버가 뭔가 실수했나 싶어 사과하고 왜 그러는지 정중히 물어봤다.
허나, 분노한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고 텅 빈 입이 찢어질 정도로 소리 없이 괴성을 지르며 몸에 깃든 질병-약화계열 흑마법도 무시한 채 힘을 쥐어짜 어둠을 매개로 대규모 포털을 다수 열어 수많은 크리처를 소환했다.
그림자를 통해 나온 크리처는 장난감 병정, 병아리 병정뿐 아니라, 길쭉한 팔을 가진 부기맨과 멋들어진 칼을 찬 호두까기 인형 등 다양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크리처에 성기사들은 성스러운 빛을 내뿜어 전역에 피해를 줘 진격을 멈췄고, 핑크맨들은 진을 짜 이를 보조했다.
그 와중 팀장 리키가 도끼로 병아리 병정의 목을 자르는 활약을 했는데, 잘린 목 사이로 암탉 머리가 솟아오르더니 그대로 닭으로 성장, 달걀을 그 자리에서 낳아 새로운 병아리 병정을 만들었다.
“이런, 역겨워라.”
보자기를 뒤집어쓴 부기맨은 보자기처럼 엷은 몸을 이용해 주변 사물의 빈틈에 비집고 들어가 숨어들더니, 길쭉한 팔로 핑크맨 하나를 붙잡아 틈새로 끌고 갔고, 천장에선 광대들이 쏟아져 나와 강습을 감행했다.
올리버 역시 인공영혼을 이용한 흑마법으로 크리처들을 상대했지만, 숫자가 너무 많고, 인간의 시체나 영혼을 재료로 사용한 개체가 있어 조금씩 뒤로 밀려 정중앙으로 몰렸다.
‘음, 이걸 써야 하나. 조금 뒤로 미루고 싶은데······.’
올리버가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크리처를 상대로 고민하는 그때 성기사들이 힘을 공유하며 있는 힘껏 영창했다.
[퓨리파잉 플레임(Purifying Flame)]
여러 성기사들의 동시 영창에 크리처의 진격을 저지하던 강렬한 빛은 더욱 강렬하게 빛나더니, 황금빛 화염을 형성해 주변의 크리처는 물론 홍인 흑마법사, 창자까지 불태우기 시작했다.
올리버가 봐온 성법 중에서도 그 위력과 범위가 모두 우수했는데, 이를 증명하듯 인간의 영혼이 재료로 사용된 크리처 역시 큰 피해를 입었고, 창자 터널 역시 괴로워하며 공간을 최대 크기로 확장해 화염으로부터 멀어지려 했다.
이 정도면 팬의 그림자도 화를 가라앉히고 물러서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팬 역시 그림자 포털을 닫고 있었고. 그러나 이는 착각이었다.
팬은 포털을 닫는 대신 창자 통로에 다시 손을 쑤셔 넣어 통제권을 행사, 창자 터널이 요동치며 뭐라 형용하기 힘든 크리처가 십수 마리 터져 나왔다.
“뿌글뿌글. 뜽장!”
형용하기 힘든 크리처 위에 탄 스컹크 망토를 두른 소년이 큰소리로 외쳤다. 너무나도 해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