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75화 (475/633)

475. 발동(發動) (1)

흑마법은 크게 네 가지 계열로 구분됐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배우기 쉽고 안정적인 위력을 내는 화기계열. 

다소의 위험을 내포하지만, 경우에 따라 유용하면서도 가장 위력적인 질병계열. 

많은 자원을 요구하지만, 그만큼 다방면의 발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조작계열. 

“마지막으로 창조계열이 있습니다.” 

올리버가 요안나에게 말했다. 

요안나 역시 성기사로서 배운 게 있는지 입을 열었다. 

“흑마법 계열 중 가장 배우기 어렵고 사용하기 난해한 계열 맞죠?” 

“예, 그래서 획득할 수 있는 정보의 비율도 가장 낮은 편에 속합니다.” 

실제로 스승인 조셉의 서재를 포함해 올리버가 해결사 생활을 하며 꾸준히 노획하고, 구매한 흑마법 서적 중 창조계열은 그 비중이 가장 적은 편에 속했다. 

심플하게 흑마법 재능만 필요로 하는 화기계열과 의학지식을 필요로 하는 질병, 조작계열과 달리 창조계열은 요구하는 그 재능이 남달랐기에. 

“상상력, 창의력, 진심 등. 뭐라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힘든 요소지요. 그 탓에 재능과 별개로 창조계열은 사용하기도, 연구하기도 힘든 학문입니다.” 

“······데이브 씨께서도 사용하기 어렵나요?” 

“음······. 좀 까다롭긴 합니다.” 

올리버가 고민 끝에 대답했다. 

미니언(Minion), 차일드(Child), 헝거(Hunger). 올리버는 필요에 따라 크리처를 만들어 유용하게 사용하긴 했지만, 그와 별개로 창조계열 자체를 잘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왜냐면 상상력, 창의력, 진심이란 요소가 올리버의 발목을 붙잡았기에. 

그 증거로 올리버가 만든 크리처는 모두 스승인 조셉의 크리처 이터(Eater)를 개량하고 흉내 낸 것에 불과했다. 

헝거(Hunger)는 예외적으로 케빈이 사용한 정령에 적잖은 영감을 얻었지만, 본질적으로 배고픔을 기반으로 만든 이터(Eater)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그런데 이게 팬이 만든 건지 어떻게 아는 거죠?” 

“사용하기 까다로운 거지 분석까진 어렵진 않습니다. 눈으로는 보이거든요.” 

올리버가 창자를 구성하는 엄청난 양의 감정과 시체 그리고 영혼을 꿰뚫어 봤다. 

폐광산 전체를 덧씌우기 위해서는 당연한 양이긴 했으나, 그렇기에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엄청난 양의 재료를 사용한 건지 말이다. 

이 정도 규모의 재료면 액수는 둘째였고, 확보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궁지에 몰려 사용했다 하기엔 너무 과한 양. 차라리 포위를 뚫고 도망치는 게 더 이득일 정도였다. 팬이 가세했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자원을 쓰는 방향으로 갔다면 한 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특히, 손가락 팬이 도와준 거라면 말이다. 

올리버는 확인을 위해 수통을 뚜껑을 열어 물을 마셨다. 

“······.” 

“왜 그러시죠?” 

“아뇨, 물이 시원해서요. 그보다 요안나 님께선 이제 어찌하고 싶습니까?” 

“예?” 

“솔직히 말해 전 지금 이 순간에도 요안나 님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 

“하지만 전 거래를 했고, 이번 임무를 맡았습니다. 제 의지로 성기사님들을 보조하러 왔지요. 그리고 지금 제 눈앞에 성기사 님은 요안나 님뿐입니다······. 요안나 님은 어찌하고 싶습니까?” 

이번 임무에 대한 불확신과 개인적인 죄책감, 신앙, 망설임 등으로 흔들리던 요안나의 두 눈은 올리버의 질문에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절······. 도와주실 건가요?” 

“그게 제 일이니까요.” 

올리버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이야길 했다. 이번 임무까지는 최선을 다해 도와줄 생각이었다. 

허나, 요안나는 생각 이상으로 안도감과 고마움을 느꼈다. 

별것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까 했지만, 고민에 빠진 요안나를 보고 입을 다물기로 했다. 

“······데이브 씨 의견은 어떻죠? 지금 상황이요? 위험한가요? 임무를 진행해도 괜찮겠나요?” 

성기사가 흑마법사에게 의견을 구했다. 

얼핏 보면 아이러니한 광경이었지만, 올리버는 신경 쓰지 않고 성실히 대답했다. 정말 신경 안 썼으니까. 

“위험한 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괜찮다는 건가요?” 

“아뇨, 얼마나 위험한지 저도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창조계열은 배우기 어렵고 사용하기 난해한 만큼 미지의 가능성이 있는 학문. 술사의 실력과 재료에 따라 어떤 힘을 가진 크리처나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예측 자체가 힘들어 뭐라 의견 드릴 수 없습니다. 특히, 상대가 창조계열이 특기인 팬 님이라면요.”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대답. 요안나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대답이 되었는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올리버가 말을 보탰다. 

“다만 확실한 건 뭔지 몰라도 팬 님께서 보통 각오로 여기 온 건 아니라는 겁니다. 폐광산을 뒤덮은 이 창자에 들어간 재료가 보통이 아니거든요.”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창자를 가리켰다. 어찌 된 영문인지 창자는 움찔거리며 공포를 느꼈다. 

올리버의 말을 들은 요안나는 처음 때처럼 성력을 눈에 집중. 황금빛 안광을 내뿜으며 주변을 둘러봤고, 올리버 역시 흑마법사의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창자로 변한 폐광산 통로는 이미 그 형태가 상당히 변하여 팬의 그림자에 강제로 전이된 사람들을 더욱 불리하게 몰아넣고, 고립시켰다. 개중 일부는 소화액에 몸이 녹아 크리처에게 잡아먹히는 사람도 있었다. 

말 그대로 팬의 뱃속이나 다름없었다. 

“데이브.” 

“예, 기사님.” 

“아까 전 절 도와줬을 때처럼 길을 열어줄 수 있나요.” 

“물론이죠.” 

올리버가 핏빛 단검을 다시 뽑았다. 그 모습을 본 창자는 경기를 일으키듯 요동쳤다. 

*** 

“이런 미친놈이······.” 

퍼스트 스텝의 어느 거대 지하 공동(空洞). 

그곳에서 양쪽 눈을 감은 팬이 대뜸 중얼거렸다.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팬의 목소리에는 노기(怒氣)가 섞여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팬을 바라봤다. 

자신의 몸에 맞지 않은 크고 화려한 왕좌(王座)에 앉아, 추장임을 상징하는 워보넷(Warbonnet)을 머리에 쓴 팬을 말이다. 

왕좌와 워보넷. 모두 왕을 상징하는 물건이었건만, 팬의 어린 외관 탓인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때장! 때장!” 

스컹크 망토를 두른 한 꼬마가 팬에게 요란하게 뛰어왔다. 

작은 몸집과 어눌한 말투, 산만한 행동은 꼬마가 아주 어린 나이임을 말해 주었다. 

“때장! 때장! 때장! 때장! 때장! 때장! 때장! 때-” 

-콱! 

쉴 새 없이 팬을 부르는 소년의 머리 위로 한쪽 눈을 뜬 팬이 주먹을 날렸다. 

“시끄러, 투틀즈 이 얼간아!” 

머리를 맞은 게 아픈지 투틀즈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사과했다. 

“미얀. 때장······.” 

그러나 그와 별개로 맞은 게 억울한지 한쪽 눈에 눈물이 찔끔 고였다. 그저 팬이 걱정돼 그런 것뿐인데. 

“괜찮습니까?” 

팬이 걱정된 게 투틀즈란 소년만 있는 게 아닌지, 홍인 흑마법사 중 대장 격인 굽히지 않는 무릎이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홍인 흑마법사 중 유일하게 영혼을 사용할 수 있는. 

‘그래 봐야 동족의 진실된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한 수준이지만.’ 

“무슨 문제 있습니까?” 

대답이 없자 굽히지 않는 무릎이 다시 팬에게 질문했다. 

팬이 머리 위에 쓴 워보넷(Warbonnet)을 고치며 대꾸했다. 

“뭐, 그리 큰일은 아니야.” 

“일이 있다는 거군요.” 

날카로운 새끼. 팬은 속으로 욕했다. 

저기 모닥불과 릴리 주변에 모여 북 치고 춤이나 추는 홍인들처럼 멍청하면 딱 좋을 텐데. 

왕좌 뒤에서 쉬고 있던 부글부글은 팬의 감정에 영향을 받아 특유의 형용하기 힘든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춤과 북으로 의식을 진행하던 홍인들과 릴리가 겁먹으며 자리를 이탈하려 했다. 

오, 그래선 안 됐다. 그래선 말이다. 

팬은 손을 들어 부글부글을 진정시킨 후 입을 열었다. 

“일이 생기긴 했어. 아주 작은······. 침입자 중 하나가 창자 터널을 뚫고 동료와 합류하고 있거든.”

“가능합니까?” 

굽히지 않는 무릎이 특유의 딱딱한 말투로 물었다. 겉보기에는 별로 놀란 눈치가 아니었으나, 감정 상태를 볼 때 꽤 놀란 눈치였다. 

하긴, 그건 팬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인 창조계열과 달리 공간 자체를 크리처(Creature)로 덧씌우는 창자 터널(Intestine Tunnel)은 팬의 자랑 중 하나였으니. 

소모되는 재료의 양이 많고, 크기에 따라 필요한 양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나, 공간 자체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저 창자 터널은 작은 네버랜드(Neverland)라 해도 무방했다. 

의지대로 구조를 뒤바꾸며, 공간 자체를 짜부라트리고, 내부 환경에 영향을 줘 끈적거리는 어둠을 통해 안에 있는 사람을 장님으로도 만들 수 있는 자신만을 위한 작은 왕국. 

어디 그뿐이랴? 조건이 까다롭지만 장소에 깃든 원념을 이용해 대량의 크리처를 만들 수도 있었고, 소화액으로 사람을 녹여 흑마법 재료로 재탄생시킬 수도 있었다. 

내부가 너무나도 단단해 성법으로든 마법으로든 파괴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즉, 저 안에 있는 건 전부 자기 장난감이나 다름없다는 거였다. 

‘그런데, 저 미친놈은······.’ 

팬이 뭐라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느끼며 데이브를 생각했다. 

‘아니, 올리버인가?’ 

데이브인지, 올리버인지 여하튼 놈은 여태까지 단 한 명밖에 뚫지 못한 창자 터널을 뚫어버렸다. 

용으로 변한 인육 요리사를 제압할 때 사용한 단검을 이용해 말이다. 

역시 보통 단검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면 창자 터널이 창조주인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 놈에게 그냥 길을 열어주는 게 말이 되겠는가? 그것도 아프고 무서워서. 씨발, 어이가 없었다. 

크리처라는 게 애당초 주인 말 안 듣고, 더 나아가 주인을 상대로도 이빨도 들이미는 존재이긴 하지만, 자신은 팬이지 않은가? 

검은손의 손가락이자, 네버랜드의 주인, 무엇보다 왕자인 팬. 그런 자신이 크리처의 통제권을 빼앗겼다는 건 너무나도 굴욕적이었다. 

의식도 제대로 못 하는 홍인들을 당장 다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정도로. 

팬의 분노에 부글부글과 주변의 크리처들이 다시 반응해 특유의 몽환적인 모습이 껍질처럼 벗겨졌다. 

모두가 긴장하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 순간 팬은 보았다. 

모닥불과 토템, 릴리, 그 주변을 둘러싸 북을 치고 춤을 추던 홍인들 사이에서 흐르는 미묘한 지옥의 기운을. 어린 시절 느꼈던 악마의 존재를 말이다! 

팬은 화가 난 것도 잊고 손을 흔들며 다급히 말했다. 

“의식! 계속해! 의식!!” 

심상치 않은 팬의 반응에 홍인들은 다시 북을 치고 춤을 췄고, 이번 의식의 핵심인 릴리 역시 거대한 북 위에 올라가 격정적인 춤을 췄다. 

둥! 둥! 둥! 둥! 둥! 둥! 둥! 둥! 둥! 둥! 둥! 둥! 둥! 둥! 둥! 

릴리가 날렵한 스텝을 밟을 때마다 공기가 울렸으며, 팬은 지옥의 악마가 이곳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눈치챘다. 

빌어먹을! 그랬다. 악마가 드디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거였다! 이곳에! 자신에게!! 

방금 다 죽이고 때려치우려고 한 게 실수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투틀즈, 굽히지 않는 무릎.” 

“웅! 때장!” 

“······.” 

“너희가 날 위해 시간 좀 끌어야겠다. 크리처는 지원해줄 테니까. 그림자!” 

팬이 그림자를 큰 소리로 불렀다. 자신의 그림자를 매개로 만든 크리처를. 

의식용 모닥불만이 유일한 빛인 지하 공동(空洞) 어둠 속에서 팬의 그림자가 걸어왔다. 

평소와 같으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모습에 팬은 질문하려다 이내 관뒀다. 아무렴 어떤가? 중요한 건 의식에 발동이 걸리고 있다는 건데. 

팬이 자신의 그림자에게 명령했다. 

“얘네들 데리고 손님 상대 좀 하고 와라. 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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