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74화 (474/633)

474. 어색한 동행 (3)

“데이브······.” 

“안녕하십니까. 기사님.” 

올리버는 태연하게 인사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실제로 비슷하기도 했고. 

허나, 요안나는 심히 동요했다. 

폐쇄된 노예수용소에서 올리버를 만났을 때처럼 혼란, 죄책감, 후회, 당혹 등. 여러 감정을 빛냈다. 특히, 당혹과 죄책감을. 

왜 이런 감정을 빛내는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단순히 팬의 그림자에 잡아먹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외부 요인에 의한 일차원적인 반응이라기에는 요안나의 감정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그 깊이가 깊었기에. 

올리버는 안으로든 밖으로든 심상치 않은 요안나의 모습을 보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기사님.” 

“아······. 예, 괜찮아요.” 

질문을 들은 요안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그러나 대답과 달리 올리버의 눈에는 그다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감정 상태가 복잡한 것은 둘째치고 몸도 좋아 보이지 않았기에. 

어디 다쳤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몸에 피가 묻긴 했어도 본인의 피는 아니었으니. 아마, 홍인 흑마법사와 교전 중 묻은 것일 터였다.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흑마법사의 눈에 신경을 집중했고, 곧 과도한 감정이 육체에 영향을 미치는 걸 알아차렸다. 

감정의 영향을 받아 요동치는 생명력. 그로 인해 창백해진 얼굴과 이마에 맺힌 식은땀, 안정적이지 못한 호흡이 그 증거. 

좀 쉴 필요가 있어 보였는데, 요안나는 그럴 생각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더니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다른 분들을 찾으러 가죠.” 

올리버는 그 말에 순순히 따랐다. 

객관적으로 보면 잠시 휴식을 가지는 게 좋을 듯했으나, 자신과 단둘이 있어봤자 쉬지 못할 걸 알았기에. 

요안나는 지금 자신과 단둘이 있는 걸 가장 불편해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찾으려고 하는 것 역시 그 때문이었고. 

폐쇄된 노예수용소에서 자신과 대화하길 거부했을 때와 똑같은 상태였다. 

올리버가 동의하자마자 요안나는 폐광산 내부 지도를 꺼내 벽과 기둥에 새겨진 숫자와 비교해 현재 위치를 확인하곤, 성력을 눈에 집중. 황금빛 안광을 내뿜으며 주변의 사람을 살펴봤다. 

올리버도 흑마법사의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는데, 다행히 좀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사람이 몇몇 있는 게 보였다. 

영혼까지 사용해 강제 전이시킨 것치고는 뭔가 싱거웠다. 

현재 위치와 주변을 확인한 요안나는 본능적으로 그곳을 향해 걸어갔고, 올리버는 그녀를 뒤따라갔다. 

폐쇄된 노예수용소 때처럼 요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었으며, 올리버 역시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안나가 자신과 대화하는 걸 얼마나 불편해하는지 알기에. 

덕분에 폐광산에는 요안나와 올리버만의 발걸음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철벅. 

‘철벅?’ 

이질적인 소리에 올리버가 발걸음을 멈췄고, 그 사이 요안나는 앞으로 더욱 나아갔다.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요안나와 올리버의 거리가 몇 걸음 벌려지자 끈적끈적한 어둠이 올리버와 요안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단숨에 둘을 분단시켰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올리버는 몸 안에 저장한 마력을 끌어올려 광원(光圓)을 생성해 주변을 밝혔으나, 이질적인 어둠이 주변을 둘러싸 시야 범위를 최소한으로 좁혔다. 

이에 올리버는 광원에 감정을 주입. 검은빛을 생성해 주변의 어둠을 물리쳤다. 

“이게 무슨······.” 

어둠이 거둬지고 그 주변을 살펴본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흙과 암벽, 나무판자와 기둥으로 이뤄진 광산 통로 일부가 붉은색과 분홍빛이 뒤섞인 매끈한 살점 표면으로 변해 있었다. 

살점 표면에는 미끈거리는 점액이 발려져 있었으며, 바닥 역시 비슷한 살점 표면으로 듬성듬성 변해 있었다. 

올리버는 그 순간 깨달았다. 흑마법으로 인해 길쭉한 폐광산 통로가 창자(腸子)로 변하고 있음을. 위(胃)와 이어지는 관 형태의 소화기관 말이다. 

“아아아아아악!!” 

“캬하! 햐햐햐햐하하하━!” 

“아━! 어어엏어어어!!” 

올리버가 주변을 살펴보며 사이, 저 멀리 앞서간 요안나 쪽에서 웬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흑마법사의 눈으로 보자 크리처에 둘러싸인 요안나를 볼 수 있었다. 

올리버는 감정과 마력을 뒤섞은 광원을 등불 삼아 창자로 변하는 광산 통로를 뛰어갔다. 

쿠릉! 쿠르르릉!! 

다리에 블랙 슈트를 둘러 최대 속도를 내 뛰어가던 중 갑자기 창자로 변한 통로가 위아래로 크게 요동치더니 세차게 흔들렸고, 중심을 잡느라 잠시 멈춘 올리버는 흑마법사의 눈으로 주변을 살펴봤다. 

놀랍게도 요안나와 올리버는 어느새 앞뒤가 아닌 위아래로 분단되었으며, 올리버가 있는 통로는 어느새 완전히 창자로 변해 사방이 조여오기 시작했다. 

안에 든 무엇이든 압사시켜 흡수할 것처럼. 

빠져나갈까 했지만, 앞이든 뒤든 어느새 완전히 가로막혀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는데, 올리버는 당황하지 않고 감정을 추출. 흑마법으로 번들거리는 벽을 강타했다. 

[해잇 불릿(Hate Bullet)] 

영창과 함께 벽을 강타한 증오의 탄환. 

허나, 팬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창자는 흠집만 날 뿐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술사의 실력과 사용한 재료 덕분. 

물론, 마력과 감정을 아끼지 않고 사용하면 못 뚫을 것도 아니었지만, 그랬다간 모든 재료를 소진할 게 뻔했다. 

꽤나 난감한 상황. 그러나 올리버는 당황하지 않고 대뜸 허리춤에 찬 핏빛 단검을 뽑아 창자로 변한 바닥을 찔렀다. 

푹. 

흑마법도 가볍게 버틴 창자는 기이하리만치 쉽게 단검에 꿰뚫렸고, 그 상처를 중심으로 수천수만 가지의 질병이 천천히 투여됐다. 

좁혀지고 있는 창자 통로가 1평 남짓 단칸방만도 못한 크기가 될 때쯤 단검이 박힌 바닥 부분이 부글부글 들끓더니 수많은 종양을 생성해 창자에 극심한 통증을 선사해줬다. 

“━━━━━━━!!!” 

거대한 창자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경련을 일으켰고, 올리버는 더 아파하라고 단검을 더 깊이 쑤시는 동시에 손잡이를 살짝 비틀었다. 시계방향으로. 

이에 창자는 더욱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노란 고름을 생성, 불에 손을 댄 아이처럼 좁히던 통로를 원래 크기로 팽창시켰다. 

그럼에도 올리버는 단검을 더 깊게 쑤셨고, 이윽고 바닥은 수천수만 가지의 질병에 의해 부식돼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올리버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쿼터스태프에 흑마법을 둘러 바닥을 향해 투척, 질병에 의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창자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푸쉭! 

썩어버린 살점과 고름, 종양덩어리와 함께 내려가는 올리버, 

그 순간 올리버는 볼 수 있었다. 창백한 괴물에게 둘러싸인 요안나를. 

그녀는 수많은 크리처에 둘러싸여 그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방어만 하고 있었다. 힘이 다 떨어진 것도 아닌데. 

올리버는 쿼터스태프를 원격으로 조종. 크리처 무리 한복판으로 블랙 재블린을 내리꽂았다. 

쾅━━!! 

블랙 슈트를 두른 쿼터스태프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자 범위 안에 있는 크리처 여럿이 박살 났고, 범위 밖 크리처 역시 그 간접 충격으로 쓰러지고 밀려났다. 

허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올리버는 타켓팅을 사용해 쿼터스태프 위에 착지. 그 상태로 블랙 슈트를 조종해 천처럼 엮인 블랙 슈트를 하나하나 풀어헤쳐 땅을 따라 주변에 넓고 빈틈없이 퍼트렸다. 

그 상태로 올리버는 마력을 부여. 술식을 발동시켰다. 

[주제뢰(柱制雷)] 

술식을 발동하자마자 바닥을 따라 퍼진 블랙 슈트가 피뢰침 형태로 재조립하는 동시에 마력과 뒤섞여 폭발. 귀를 아리게 하는 소리가 울리며, 검은색 번개 기둥이 위로 솟구쳐올라 주변의 모든 크리처를 꿰뚫고 지져버렸다. 

광범위한 공격은 얼핏 요안나마저 위협할 것처럼 보였으나, 크리처에 둘러싸인 요안나는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았다. 

위력보다는 섬세한 컨트롤과 정밀 타격에 집중한 술식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 

공격을 당한 크리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번개에 관통되고 지져져 바닥 위에 쓰러져 소멸됐고, 올리버는 요안나에게 다가갔다. 바로, 그때였다. 

“카아아아아아아악━━!!” 

소멸하던 크리처들 자신들을 구성한 증오와 원망을 매개로 서로 뭉쳐 소멸을 피하고는, 앙상하면서도 길쭉한 팔을 뻗어 올리버의 목을 콱하고 틀어잡았다. 

그 순간 올리버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요안나와 자신을 공격한 크리처를. 

놀랍게도 크리처는 홍인(紅人)을 모델로 하고 있었다. 

비록, 머리털은 다 벗겨지고, 장기간 햇빛을 보지 못해 창백하며, 등이 기형적으로 굽고, 빼빼 말라 사람보다는 신화 속 괴물 구울(Ghoul) 더 가까워 보였으나, 이 크리처는 홍인을 모델로 하고 있었다. 디테일한 생김새와 창조계열 흑마법의 특성으로 볼 땐 실존했던 홍인이 확률이 높았다. 

가령, 광산에 억지로 들어가 죽을 때까지 마석을 캐야 했던 노예라든가. 

올리버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요안나가 왜 공격하지 못하고 방어만 했는지. 아마, 그녀가 느끼는 죄책감 때문이리라. 

올리버가 앞뒤 상황 파악에 집중하는 사이 홍인-크리처는 올리버에게 끔찍한 증오와 원망을 내뿜으며 남은 한쪽 손까지 보태 올리버의 목을 붙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양팔에 힘을 줘 괴성을 질렀다. 세상을 저주하듯 찢어지는 괴성을. 

“아아아아악!! 끄아아악아아아━” 

━콰직!! 

올리버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수동적으로 방어만 하던 요안나가 일어나 메이스로 홍인-크리처의 얼굴을 후려쳤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홍인-크리처는 올리버를 놓치며 뒤로 날아갔고, 요안나는 땅을 박차 단숨에 따라붙어 크리처를 마무리 지었다. 

메이스에 머리가 완전히 박살 나 소멸하는 크리처. 

요안나는 적을 쓰러트렸다는 만족감 대신 죄책감을 빛내며 올리버에게 소리쳤다. 

“도대체 왜 가만히 있었어요?! ······위험했잖아요!!” 

“죄송합니다.” 

올리버가 사과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무기를 휘둘른 요안나에게. 

요안나는 말없이 올리버를 바라보다 고조된 감정과 피로에 극심한 부담을 느끼며 헛구역질을 했다. 

“우엑! 우에엑······!” 

올리버는 허리춤에 매단 수통을 꺼내 한입 마셔 맛을 본 후, 그녀에게 내밀었다. 

“······.” 

“공간마법을 적용한 마법 수통이라 물은 충분합니다.” 

고민하던 요안나는 결국 수통을 건네받아 마셨다. 

요안나가 물을 마시는 사이 올리버는 가방에서 칼로리바를 네 개 꺼내 요안나에게 하나 내밀었다. 

“괜찮아요.” 

“드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당분이 많은 초콜릿 맛인데.” 

“정말 괜-” 

“-아멜린 원장님과 고아원 아이들은 기사님께서 드시길 바랄 겁니다.” 

요안나가 놀라더니 눈을 부릅뜨며 올리버를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요안나에게 다시 칼로리바를 내밀었다. 당분이 많이 들어간 초콜릿 맛 칼로리바를. 

요안나는 올리버를 한참 동안 노려보다 결국 마지못해 칼로리바를 받아먹었고, 올리버도 요안나에게서 약간 떨어져 칼로리바를 말없이 먹었다. 

우적. 우적. 우적······. 

다행히 창자로 변한 폐광산 통로는 아까 전 아픈 일을 겪어서인지 조용했고, 올리버와 요안나는 그렇다 할 방해 없이 앉은자리에서 칼로리바를 다 먹을 수 있었다. 

요안나 한 개, 올리버 세 개. 

올리버가 마지막 칼로리바까지 다 먹은 후 질문했다. 요안나가 보인 반응을 추측해. 

“혹시, 이곳 홍인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아시나요?” 

당분이 많이 들어간 칼로리바를 먹어 약간 차분해진 요안나가 대답했다. 

“예······.” 

“역시 그렇군요.” 

올리버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 

판도라가 세계수에 접속해 떠나기 직전 홍인 흑마법사들에 관해 말해주었다. 

그들이 왜 흑마법사가 돼 도시를 테러하는지 말이다. 

상당히 긴 이야기였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빼앗기고 침탈당한 자의 정당한 권리라고 했다. 최소한 판도라가 평하길 말이다. 

“판도라가 말하길 홍인들에게 있어 우린 조상들의 땅을 멋대로 빼앗은 침략자에 불과하다더군요······. 그와 함께 홍인들이 우리에게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이야기해줬습니다.” 

올리버는 담담하게 서술했다. 이 땅에 처음 온 탐험가들이 음식을 대접해준 홍인을 어찌 죽였는지, 이후 금과 자원을 얻기 위해 어떤 착취를 하였는지, 그 착취를 위해 어떤 고문을 하였는지, 얼마나 많은 학살을 자행했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부족이 사라졌고, 사라지고 있는지 말이다. 

“그래서 판도라는 개인적으로 홍인 흑마법사들을 응원한다고 하더군요. 그들은 피해자고, 우린 가해자라서요. ······기사님은 어떻게 알게 됐죠?” 

“······교단에 기록된 책과 빈민가 홍인들에게서요.” 

“아······.” 

올리버는 탄성을 냈다. 참으로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란다에서도 부당하고 사악한 일을 직면했던 요안나가, 여기서도 그런 일을 또 마주하다니. 

“오해하진 마세요. 그렇다고 그들의 테러 행위를 옹호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저, 빈민가에 쳐들어가 닥치는 대로 고문하고, 여기 흑마법사를 체포하는 대신 몰살하는 게 옳은 건지 의문일 뿐이에요.” 

올리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인들이 거주하는 빈민가에서 어떻게 수색하고, 신문했는지 봤기에. 

일단 수상하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체포해 신문했다. 

“그럼, 왜 호위 임무가 아닌 이번 임무에······.” 

올리버는 말을 하다 말고 반사적으로 멈췄다. 말하는 도중 그 이유를 알 것 같았기에. 

요안나는 성기사. 위에서 시켰기에 따를 것일 터였다. 

요안나와 눈을 마주치자 알 수 있었는데, 올리버가 요안나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요안나 역시 올리버의 생각을 읽었다. 

그녀는 수치와 죄책감을 빛냈다. 과거 성당에서처럼. 

“창피하네요. 아직도 이런 모습이라니······. 저, 저는 정말, 정말-” 

요안나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더듬었다. 그 모습에 올리버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오래전부터 가슴속에 담아둔 말을. 

“-세상은 복잡하며, 파테르교는 아주 오래되고 거대한 조직이다, 그렇기에 우린 때때로 세상과 타협해야 한다.” 

“······.” 

“엘튼 기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요안나 님과 파트너셨던 분이요. 요안나 님께서 란다 마법사에 대한 감사를 주장하다 다른 곳으로 발령받은 뒤 그분을 만났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엘튼 기사님께서 알려주셨거든요. 좋은 분 같았습니다.” 

요안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요안나를 믿고 흑마법사와 만나는 것도 묵인해 주신 분이니. 

“그분께서 제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가령, 알량한 정의만으로 움직일 수 없는 현실에 관해서요. 그렇게 하면 오히려 사건에서 멀어져 해결할 기회조차 없어진다고요.” 

“······핑계일 뿐이죠.” 

“음······. 아뇨, 핑계는 아닐 겁니다. 왜냐면 전 아무 말도 못 했거든요.” 

그랬다. 엘튼이 위와 같은 말을 했을 때, 올리버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할 말이 없었던 게 아닌, 반박할 말이 없어. 

지금 생각해보니 좀 창피한 기억이었다. 

“성당에서 제가 너무 좋을 대로 이야기했죠. 주제넘게요······. 용서해주십시오. 가끔 주제넘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요······. 뭐라 변명하든 전 그때 경전에 적힌 말을 행하지 못했어요. 성기사임에도요.” 

올리버는 침묵했다. 솔직히 요안나의 말에 동의했다. 성기사가 상황에 따라 경전의 내용을 지키고 안 지키는 건 올리버가 보기에도 좀 그랬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녀가 이해되기도 했다. 아르크 고아원 사람들을 만나봤기에. 그런 사람들이 가족이라면 망설여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문득, 올리버는 궁금해졌다. 만약, 자신도 그런 고아원에서 자랐으면 어땠을지. 

‘음, 바보 같은 생각이네.’ 

올리버가 1초도 되지 않아 자신의 어리석음에 탄식했다. 애당초 그 만약이 모인 게 지금 자신인데.

“그래도 요안나 님은 저보다 나으신 것 같습니다. 최소한 뒤늦게라도 고치려고 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괴로워하며 고민하고 있지 않습니까.” 

“······.” 

“전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랬다. 올리버는 요안나처럼, 아니, 요안나보다 더 깊이 더 생생히 홍인들의 비극을 들었음에도 현재 그렇다 할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 

딱히 놀랍거나 충격적이진 않았다. 자신이 이런 건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았으니. 

노라와 그 오빠 니코의 일화를 듣고도 올리버는 최소한의 공감이나, 죄의식, 슬픔은커녕. 그 사실에 아무것도 못 느끼는 사실에만 슬픔을 느낄 뿐이었다. 

“아무것도 못 느끼는 게······. 슬프다고요?” 

“이기적이게도요······. 참 그렇죠? 남의 가족을 죽였는데, 전 그 와중에도 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느꼈습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요안나 님을 찾아온 겁니다. 상담하고 조언을 받을까 해서요.” 

“······왜 저죠?” 

“초심으로 가면 해답이 나올 거라고 해서요. 요안나 님께서 제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려주셨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들은 요안나는 노예수용소 때보다 더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데이브······. 아니, 올리버······.”

쉽사리 말을 못 하는 요안나. 그때, 올리버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런데 깨달았습니다. 전 지금 이 와중에도 노라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요. 오직 제 문제에만 관심 있어, 저로 인해 요안나 님께서 어떤 상황에 처하고, 어떤 고뇌와 고통에 빠지셨는지 전혀 신경 안 쓰고 있죠.” 

요안나는 그 말을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으나, 올리버는 오히려 확신을 얻었다. 

신대륙에 넘어온 이후에도 자신은 이기적이었다. 요안나의 사정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졌으니.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요안나 님께 이 문제로 상담받고 싶을 뿐입니다. 전혀 그럴 때가 아닌데도 말이죠.” 

올리버가 자신이 만든 검은빛 광원으로 창자로 변한 통로를 밝히며 말했다. 

정신적으로 몰려있던 요안나는 이제야 주변의 변화를 눈치챘다. 

“이건 도대체······.” 

“팬 님의 작품인 것 같습니다. 창조계열 흑마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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