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73화 (473/633)

473. 어색한 동행 (2)

“또 같이 일하게 됐군요. 영광입니다.”

한 남자가 올리버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핑크맨 왕실전담실 6번 팀 팀장 리키로, 팀장치고 젊은 축에 속한 사람이었다.

올리버가 리키의 손을 맞잡으며 화답했다.

“저야말로 같이 일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리키 씨. 다른 팀원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인사를 들은 다른 팀원들은 제각기 예를 갖춰 올리버의 인사를 받아줬다.

그들 역시 팀장인 리치처럼 젊은 편에 속했으며, 그 탓인지 올리버에게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호기심이나 흥미를 보인 사람도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란다의 해결사 데이브는 혼자서 데뷔해 단 몇 년 만에 해결사에서 신(新) 계급으로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으니.

그것도 부유한 만큼 거칠기로 유명한 란다에서.

리키가 질문했다.

“이번 임무 내용 숙지하셨는지요?”

“예, 홍인 흑마법사들의 비밀 아지트인 폐광산 습격, 소탕. 저번에 말씀해주신 내용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들어가기 전 확인하고 싶어 그러는데, 체력적으로 괜찮겠습니까?”

리키가 확인차 물었다. 허나, 모욕이나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니었다. 순전히 임무를 위한 업무적인 질문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현재 홍인 흑마법사들이 아지트로 삼은 폐광산은 그 규모가 상당한지라 전투 외적으로도 상당한 체력이 필요할 것이 예상됐다.

핑크맨도 상당한 준비를 해야 할 만큼.

그러니 기아병으로 빼빼 마른 올리버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마법이든 흑마법이든, 보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으니.

올리버가 이에 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배가 자주 고픈 거지 체력은 괜찮은 편입니다.”

“정말입니까?”

“예, 혹시 몰라 제가 먹을 칼로리바랑 물도 충분히 챙겼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올리버가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칼로리바를 가득 담은 마법 가방과 허리춤에 찬 마법 수통을 들어 보였다.

공간마법과 경량화 마법이 적용된 이 수통은 마법 가방 못지않게 비싼 물건으로, 기본 수통의 스무 배가 넘는 물을 담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확답을 들은 리키는 만족했다. 올리버는 수통을 꺼낸 김에 뚜껑을 따 안에 든 물을 마셨다.

물은 투명하고 시원했다.

‘아직까지 아무런 전조(前兆)도 없네.’

올리버는 클로드가 했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독백했다. 홍인 흑마법사들이 악마를 소환하려 한다는······. 아직까지 별다른 전조(前兆)가 없었다.

클로드가 거짓말을 하진 않았으니, 아무래도 홍인 흑마법사들이 실패한 것 같았다.

그것도 아니면 악마의 서적 중 올리버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게 있거나.

불가능한 이야긴 아니었다. 인육 요리사가 보유한 악마의 서적조차 부정확하고, 비거나, 난해한 내용이 많았으니.

올리버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약간 아쉬웠다. 걱정스럽긴 해도 악마를 한번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올리버가 상념에 빠진 사이 리키는 다시 한번 간략하게 이번 임무의 목표와 조건, 역할을 설명했다.

“이번 임무는 다들 알다시피 홍인 흑마법사들의 최대 아지트인 폐광산을 습격해 지도부를 제외한 모두 없애 토벌하는 겁니다. 이미, 군이 주변을 포위하고 있으며, 우리 역할은 성기사를 보조하는 겁니다.”

한 핑크맨 대원이 물었다.

“군의 지원은 없는 겁니까?”

“없어. 폐광산 내부에 숨은 적을 소탕하는 건 숫자보다 질이 더 효과적이니.”

모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리키의 말처럼 공간이 한정된 폐광산에선 대규모 병력은 적절하지 못했으니.

차라리 흑마법사를 상대로 압도적인 상성을 가진 성기사와 이를 보조할 병력을 투입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다만, 올리버는 왠지 모르게 이번 임무가 찜찜했다. 단순히 판도라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는데.

“아, 데이브 씨.”

“예?”

“성기사 쪽과는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가 조율됐으니 너무 걱정하실 것 없을 겁니다.”

“아, 배려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성기사와 자신은 약간 불편한 사이였으니.

대답하기 무섭게 성기사가 한쪽에서 나타났다.

총 3명으로 서번트들을 대동하지 않았다.

현재 서번트들은 다수의 성기사와 함께 혹시 모를 홍인 흑마법사들의 테러 대비에 동원됐기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면 핑크맨이 호위를 하고, 성기사들이 소탕을 전담해야 맞았지만, 코드 감마(γ) 호위와 홍인 흑마법사 토벌.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섞고 말았다.

뭐, 올리버는 아무래도 좋았지만. 호위를 맡아 주주총회와 왕자, 귀족을 구경하든, 소탕을 맡아 홍인 흑마법사를 상대하든. 무엇이든 흥미로웠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이 자리에 요안나가 없다는 거였다.

혹시나 해 같은 팀으로 배정받지 않을까 싶었는데.

‘차라리 다행인가?’

만약, 요안나가 있었다면 아는 척했을지도 몰랐고, 그건 올리버에게나 요안나에게 둘 다 좋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특히, 성기사인 요안나는.

성기사가 흑마법사와 개인적으로 알면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몰랐으니.

‘그건 좀 그렇네. 그렇게 되면 아르크 고아원 사람들한테 좀 그러니까. 원장님이나 아이들에게나.’

올리버가 요안나를 영웅처럼 생각하는 고아원 아이들과 요안나에게 그리움과 기특함, 미안함을 품고 있는 고아원 원장을 떠올렸다.

어렵지만 좋은 이야기를 해주신 분이라 슬프면 좀 그럴 것 같았다.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차량에 탑승해주시죠.”

올리버가 과거 기억에 빠진 사이 성기사와 이야기를 끝마친 리키가 말했다.

올리버는 리키의 지시를 따라 차량에 탑승해 이동. 어느새 퍼스트 스텝 외곽 너머에 있는 한 폐광산에 도착했다.

“이런 외진 곳이라. 의외구만.”

핑크맨 중 하나가 말했다. 올리버도 동의하는 바였다.

짧지만 굵었던 지난 며칠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홍인 흑마법사와 그 조력자들은 빈민가에 근거지를 마련했다.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빈민가 외에 홍인들이 발붙일만한 곳이 없어 너무 눈에 띄었으니.

그건 외곽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인 흑마법사는 이곳 외곽 폐광산을 최대 아지트로 삼았다고 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하차!”

추측을 체 하기도 전에 차량이 멈추며 성기사, 핑크맨이 내렸다.

지금 올리버가 내린 곳은 폐쇄된 마석 광산의 6번 입구로, 이미 퍼스트 스텝의 군인들이 와 봉쇄한 상태였다.

장기간의 근무로 서로 안면이 있는지 폐광산을 지키는 군인들은 성기사의 얼굴과 명령서를 보자마자 바로 통과시켜줬으며, 올리버는 다른 일행과 같이 안쪽을 겨눈 기관총과 붉은 돌, 언덕을 지나 판자가 덧대진 폐광산 앞에 도달했다.

일단, 겉보기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겉보기에는 말이다.

칙-! 칙-!

핑크맨과 성기사의 통신 장치 신호음이 울렸다. 리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른 팀도 각자 맡은 입구에 도착했다는군요.”

성기사가 대답했다.

“예, 바로 들어가도록 하죠.”

성기사가 앞장서서 폐광산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

[홀리 라이트(Holy Light)]

폐쇄된 마석 광산에 들어온 지 채 몇 분이 되지 않아 성기사가 앞으로 돌진하며 외쳤다.

성기사의 외침과 동시에 그의 무구에서 성스러운 빛이 발광하며 광산 통로 옆길에 매복해 있던 홍인 흑마법사를 덮쳤다.

빛은 홍인 흑마법사들을 부드럽게 감쌌으며, 그들이 준비하고 있던 흑마법을 소멸시켰다.

“빌어먹을!”

홍인 흑마법사 중 하나가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산탄총을 들어 성기사를 쐈다.

광산 터널에 울리는 총성.

아무래도 성기사에 대비한 것 같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평범한 총탄은 성기사가 든 방패와 몸에 두른 철 코트에 가로막혀 성기사의 몸에 티끌만 한 상처를 입히긴커녕, 돌진 속도조차 줄이지 못했다.

성기사는 이 정도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땅을 박차 더욱 가속. 그 속도를 이용해 방패로 홍인 흑마법사의 얼굴을 후려쳤다.

쾅━━!!

트럭이 사람을 친 소리가 광산 통로에 울려 퍼지며 방패에 처맞은 홍인 흑마법사는 그대로 동료들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광산이란 한정된 지리 탓에 어쩔 수 없는 일.

허나, 그렇다 해도 아군을 방해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갑자기 날아온 아군 탓에 시야와 대응시간이 줄어든 흑마법사들은 제때 반격하지 못해 짧지만 치명적인 틈이 생겼고.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성기사들은 타고난 신체 능력을 이용. 앞으로 내달려 한 번에 홍인 흑마법사들을 해치웠다.

“마이클. 소형 골렘.”

성기사가 홍인 흑마법사를 다 쓰러트린 것을 확인하자마자 핑크맨 팀장 리키가 지시했다.

마이클라 불린 핑크맨은 작은 새 형태의 점토형 골렘을 세 개의 통로 모든 방향으로 날려 주변을 수색했다.

“혹시 뭔가 수상한 게 포착되십니까?”

팀원에게 일을 맡긴 리키가 올리버에게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그는 자신의 팀원뿐 아니라 올리버의 눈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나쁘지 않은 판단인 것 같았다. 소형 골렘도 좋은 장비긴 했지만, 올리버의 눈이 더 빠른 편이긴 했으니, 골고루 사용하는 게 여러모로 좋긴 했다.

올리버는 흑마법사의 눈에 집중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딱히 눈에 띄는 건 없습니다. 저 앞쪽에 홍인 흑마법사들이 더 있긴 했지만, 이쪽 상황을 눈치채곤 후퇴했습니다.”

올리버가 말하기 무섭게 마이크 역시 내보낸 소형골렘을 회수하며, 이상이 없음을 알렸다.

리키는 해당 사실을 성기사에게 알렸고 방금 막 홍인 흑마법사를 해치운 성기사들은 지친 기색 없이 바로 안으로 달려갔다.

본인들의 말대로 최대 속도로 저항할 틈도 없이 끝내려는 것.

핑크맨들은 그런 성기사를 뒤쫓으며 그들을 보조했다.

“다른 곳도 순조롭게 진입하고 있다는군요.”

통신 장치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리키가 올리버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다행이네요.”

“예, 다행이죠. 그래서 걱정입니다. 공격이 잘 진행될 때는 매복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특히, 성법에도 내성이 있는 흑마법사를 상대로는요.”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됐다.

폭발 테러 때, 뒤이어 습격한 크리처들은 성법을 맞고도 어느 정도 버텼고, 굽히지 않는 무릎이라는 흑마법사는 특별한 재료를 통해 성법에 저항해 성기사를 셋이나 제압했으니.

“데이브 씨. 검은손의 손가락 영원한 아이 팬을 라빌리에서 봤다고 하셨지요?”

“예? 아, 예······. 우연히요.”

“전 폭발 테러 때 다른 임무를 수행하느라 없었습니다. 그의 크리처가 위협적인가요?”

올리버는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팬의 크리처는 일반적인 크리처와 달리 사람도 재료로 썼기에.

성법에 어느 정도 저항한 것 역시 그 덕분일 가능성이 컸다. 허나, 그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팬의 크리처 중 몇몇 개체는 인간의 영혼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었다.

‘굽히지 않는 무릎처럼.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지만.’

리키가 다시 물었다.

“데이브 씨께서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예?”

“만약의 가능성을 고려해 묻는 겁니다. 성기사를 믿지만, 성법에 저항하는 크리처와 흑마법사가 있는 걸 포착했으니까요. 저희 역시 두 손 놓고 있겠다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 이런 경우는 저희 핑크맨의 주력 분야가 아닙니다. 최소한 이 구성은 아니죠.”

리키가 냉철하게 상황을 고려해 말했다.

단순히 엄살 부리려는 것도, 의지하려는 것도 아닌 냉정하게 상황을 고려해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한 거였다.

역시 젊은 나이임에도 팀장을 그냥 단 게 아니었다.

올리버가 그의 마음에 화답하기 위해 3초 정도 고민한 후 대답했다.

“······솔직히 팬 님의 크리처는 저도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팬이 다루는 크리처는 그 수도 어마어마했고, 질도 남달랐기에.

하나하나 그냥 상대하려고 하면 꽤나 고단할 게 뻔했다.

애당초 이번 작전을 시작한 것도 팬이 홍인 흑마법사에게서 손을 뗀 것 같은 정황이 포착된 탓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근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네요.”

“예?”

올리버가 폐광산 안쪽에 어떠한 존재를 포착하며 말했다. 어떠한 존재란 다름 아닌 팬의 그림자였다.

팬의 그림자는 과거 그랬던 것처럼 어둠을 매개로 광산 저 안쪽에 갑자기 튀어나왔다.

문제는 그냥 나타난 게 아니라는 거였고. 팬은 놀랍게도 인간의 영혼을 다수 손에 쥔 채 나타났다.

“방어 대형!”

기척을 느낀 성기사가 소리쳤다. 그 외침에 맞춰 성기사들은 방패를 내세우며 삼각형 형태로 섰고, 그 안으로 핑크맨과 올리버가 들어갔다.

[새크리드 배리어(Sacred Barrier)]

대형을 갖춘 성기사들이 영창하자 성법은 공명, 혼자일 때보다 더욱 환한 빛을 내뿜으며 작은 장벽을 만들었다.

그때였다. 빛의 장벽에 대응하듯 광산 안쪽에서 어둠보다 짙은 어둠이 기어 다가왔다.

모든 걸 삼킬 것 같은 어둠이. 꽤 인상적이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신의 빛이 우릴 지켜줄 테니.”

“음······. 저 어둠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올리버가 다가오는 어둠을 보며 악의 없이 말했다.

초를 치는 말에 모두가 인상을 찌푸리며 올리버를 바라보는 찰나, 어둠보다 짙은 어둠이 기어와 성기사와 그 성법 그리고 핑크맨과 올리버를 삼켰다.

흡사, 격류에 휘말린 느낌. 과거 바토리의 혈마법에 강제 전이 당했을 때와 비슷했다.

당시 경험 덕분인지 올리버는 어둠에 간섭해 흐름을 꼬았고 간신히 어둠의 격류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볼 줄은 몰랐네요.”

어둠 속에서 빠져 나온 올리버가 맞은편 사람에게 말했다.

올리버의 목소리를 들은 상대는 부드러운 빛으로 주변을 밝혔고 그렇게 요안나는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브······.”

그녀가 어둠 속 빛에 의지하며 올리버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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