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70화 (470/633)

470. 특별한 재료 (2)

“······안녕하십니까?”

전쟁터 한복판. 필립이 공격받으려던 찰나에 나타난 올리버가 대뜸 말했다.

너무나도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인사말. 그래서일까? 방금 전까지 죽자사자 싸우던 이들이 일제히 싸움을 멈추고 올리버를 바라봤다.

핑크맨, 경찰, 군인뿐 아니라, 홍인 흑마법사와 크리처까지.

너무나도 결이 다른 올리버의 태도에 필립만이 맞장구칠 뿐이었다.

“여기 있다는 이야긴 들긴 들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보니 반갑구만.”

“저도 필립 중장님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죄송하지만 잠시 실례 좀 해도 되겠습니까?”

“어어, 실례해.”

필립이 허락하자마자 올리버는 몸을 돌려 맞은편 흑마법사를 봤고, 주변 사람들은 이게 뭔 상황인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이 나라의 지배계층인 필립이 웬 해결사와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눴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맞은편 홍인 흑마법사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란다 T구역 30번 거리의 해결사 데이브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선생님 성함을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올리버는 자신을 정식으로 소개하며, 홍인 흑마법사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이것이 예의였으니까.

그러나 홍인 흑마법사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자신의 그림자가 어찌 이리 쉽게 파괴된 건지 의문을 품으며.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가 사용한 재료는 보통이 아니었으니.

아마, 올리버의 그림자가 인육 요리사의 감정과 생명력, 마력을 흡수하지 못했다면 막기 힘들었을 터였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자 올리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음······. 혹시, 제가 실수한 게 있는지요.”

폭탄 테러를 가하고 도시를 습격한 흑마법사에게 실수한 게 있는지 묻는 모습에 모두 어이없는 것을 넘어 경악했다. 말문이 막힐 정도.

그래서일까? 홍인 흑마법사는 입을 열었다.

“실수했지······. 방해했으니까.”

“아······. 죄송합니다. 필립 중장님은 아는 분이라서요.”

왕국군의 중장이자, 왕실 마법사관학교의 교장, 왕실 마법연구부의 실장, 마탑 순수마력학파의 명예 그랜드 마스터, 명문가 로어 가문의 수장인 필립 로어를 아는 사이라 구했다고 올리버가 말했다.

여러 의미로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이었다.

“칼도 던졌지.”

“아, 선생님에게 던진 건 아닙니다.”

“······?”

“오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쪽을 노린 거거든요,”

올리버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에는 수많은 크리처를 토해낸 그림자가 있었으며, 그 그림자 위로 올리버가 던진 핏빛 단검이 꽂혀 있었다.

저게 뭔가 싶은 순간, 단검이 꽂힌 그림자는 조금씩 조금씩 일렁이더니 이윽고 쭈그러들어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림자였다. 아이만 한 크기의 그림자.

“영원한 아이 팬 님의 그림자 맞으시죠?”

갈로스의 수도 라빌리 하수도에서 본 팬의 그림자를 떠올리며 올리버가 물었고, 정답이었는지 홍인 흑마법사는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그림자의 정체를 들킬 줄 예상하지 못해 놀란 것. 놀라긴 올리버도 매한가지였다.

설마 여기서 팬의 그림자를 다시 만날 줄이야. 홍인 흑마법사와 팬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올리버가 팬의 그림자에게도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림자 님. 오랜만입니다.”

“······.”

팬의 그림자는 한쪽 팔을 부여잡은 채 노려봤다.

눈코입 따위는 없었지만, 감정은 가지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단검을 갑자기 던진 점 사죄드립니다. 크리처를 소환하시려고 하시길래 말리고 싶었거든요.”

올리버가 팬의 그림자에게 사과했다. 수천수만 개의 질병이 깃든 단검을 던지고선 뻔뻔하게.

허나, 올리버의 뻔뻔함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쯤에서 물러나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쪽도 계속 싸우기 곤란하고, 그림자 님도 일단 치료하시는 게 좋을 듯한데요. 부탁드립니다.”

“······!!”

“······!!”

등장 이상으로 갑작스러운 올리버의 제안에 모두가 놀랐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양쪽 모두 납득할 수 없는 제안이었으니.

홍인 흑마법사는 조금만 하면 목표물을 손에 쥘 수 있을 거 같고, 핑크맨 등은 홍인 흑마법사를 붙잡아 이런 일을 벌인 이유와 목표, 배후를 알아내야 했다.

그런데 웬 해결사 따위가 멋대로 그런 제안을 한다니.

그러나 올리버는 그런 그들의 반응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거기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보아하니 이 일을 원치 않으신 것 같은데요?”

올리버가 특별한 재료를 사용하는 흑마법사에게 물었다. 침묵했지만 올리버의 제안에 구미가 당기는 눈치였다.

“여러분 모두 그림자 님의 그림자 포털로 이동하신 것 같은데, 잘못하면 퇴로가 막힐 수 있습니다. 지원군도 오고 있는데, 이쯤에서 양보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올리버가 설득하기 쉽게 한마디 더 보탰다. 그 말에 홍인 흑마법사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결정 내렸다.

그는 손짓해 동료 홍인 흑마법사에게 명령했다.

동료 중 일부가 반발했으나, 인상을 한번 쓰자 결국 군소리 없이 따랐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퍼스트 스텝 군인 중 하나가 소리쳤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왕자를 노리는 불순분자를 왜 그냥 놓아줘! 네놈이 뭔데!!”

군인은 올리버에게 총이라도 쏠 듯 엄청나게 흥분했다. 그때, 필립이 끼어들어 올리버를 도와줬다.

“진정하게.”

“주, 중장님?!”

“진정하라 했어. 나는 바보라 가만히 있는 거 같나?”

평소 호탕하던 필립이 웃음기를 싹 빼고 묻자,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군인, 경찰 심지어 핑크맨조차 물에 담긴 쇠처럼 차갑게 식으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까 전 전투에서도 그렇고 놀라운 장악력.

그렇게 필립은 주변을 진정시켰고, 안전이 확보된 것을 확인한 홍인 흑마법사들은 크리처와 함께 팬의 그림자가 만든 그림자 포털을 통해 늪에 빠지듯 사라졌다.

팬의 그림자까지 사라지자 필립은 올리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까 전보다 한결 부드럽지만, 여전히 근엄했다.

“자, 그럼, 이제 설명해볼 수 있겠나? 왜 그냥 보내줬지?”

“만약, 계속해 싸웠으면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을 겁니다. 이곳을 폐허로 만들 만한 폭발이요.”

“근거는.”

“홍인 흑마법사들 몸에 기생충 형태의 크리처가 있었습니다.”

***

기생충 형태의 크리처.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의 초대장을 받았을 때를 말하며, 기생충 형태의 크리처에 관해서 설명했다.

숙주를 양분 삼아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크리처에 관해 말이다.

“그 크리처가 홍인 흑마법사들 몸 안에 있었다고?”

“예, 전부는 아니지만 적잖은 수가요. 전 인육 요리사 님 작품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계속해 압박했으면 자폭했을지도 모릅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이야기에 모두 침묵했다. 몇몇 사람이 의심을 빛내긴 했지만, 마탑 직원이란 신분과 필립의 존재 탓에 쉽사리 겉으로 드러내진 못했다.

허나, 그럼에도 직접 확인해야 하는 사람은 있는 법.

퍼스트 스텝의 군인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물었다. 감정 상태로 봤을 때 아주 올곧은 사람 같았다.

“어떻게 그리 잘 아는 겁니까?”

“직접 폭발하는 장면을 봐서 그렇습니다.”

“폭발을 직접?”

“예, 바로 앞에서 봤거든요.”

올리버는 대답과 함께 폭발 직전 기생충 크리처의 움직임을 설명했다.

“말도 안 돼······. 그럼 어떻게 살아있는 겁니까?”

군인이 의심했고,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크게는 도시의 한 구역을 날려 버리고, 작게는 건물 몇 채를 날려 버릴 위력의 폭발이었으니.

그런 폭발을 코앞에서 보고도 살아있다는 건 다소 말이 안 됐다.

“운이 좋았습니다.”

올리버가 진심을 담아 답했다. 정말로 운이 좋았기에.

당시에 인육 요리사 제자의 마력과 감정, 생명력 등을 흡수한 검붉은 나뭇가지가 있어 좀 더 수월하게 막을 수 있었다.

만약, 없었다면 좀 위험했을 거였다.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물건이 딱. 지금 생각해보니 하늘이 도왔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래서인지 질문을 한 군인이나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필립만 빼고.

“저 말은 사실일세. 내가 직접 확인했거든······. 여하튼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단 이야기군. 맞나?”

“예.”

“그럼, 아까워도 어쩔 수 없지. 폭발의 위험을 감수할 바에는 놓아주는 게 맞아.”

필립이 혼자 생각하며 결론 내렸고, 거기에 딴지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생각을 마친 필립이 명을 내렸다.

“대령.”

“예! 중장님.”

“자넨 휘하 병력을 데리고, 내가 데려온 종군 마법사와 함께 코드 감마(γ)를 보호하러 가. 곁에 성기사와 종군 마법사가 있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해······. 코드 감마(γ)가 지내실 곳이 있나? 안전하게?”

“있습니다. 앞선 곳에 비해 협소하지만, 보안은 더 나은 곳입니다.”

“딱 좋군. 나머지는 주변을 수색하고 다친 병력을 수습한다.”

필립의 호령에 퍼스트 스텝의 경찰과 군병력이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핑크맨은 예외였지만.

그들은 필립의 말에 따라 주변으로 흩어져 임무를 수행하는 대신 이쪽으로 모였다. 정확히는 올리버를 포위한 거였지만.

개중에는 아까 전 뒷골목에서 본 핑크맨도 몇몇 섞여 있었다.

‘중년 신사분은 안 계시나?’

올리버가 반사적으로 그를 찾아봤고, 곧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필립의 옆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얼핏얼핏 들렸는데, 대부분 판도라에 관한 것으로, 올리버가 방해했다는 이야기도 추가했다.

설명을 다 들은 필립은 흥미를 빛내며 올리버를 내려다봤다.

“자네에 관한 유감스러운 소식은 이미 접했지만, 이건 또 새롭군······. 숲 처녀는 어디 있지?”

숲 처녀. 아무래도 이브(Eve)를 칭하는 암호인 듯했다.

올리버는 자신이 뛰어 내려온 건물 꼭대기를 가리켰다.

모두 고개를 들었고, 건물 옥상에서 얼굴을 빼꼼 내민 판도라를 발견했다.

“가서 잡아.”

중년 신사가 명하자, 핑크맨 몇몇이 바로 움직였다.

그때, 올리버가 양손을 쭉 뻗으며 말했다.

“판도라.”

말하기가 무섭게 판도라는 건물 꼭대기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3조 이상의 가치가 있는 세계수의 인공정신 이브(Eve)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브(Eve)의 가치를 고려하면 개인적인 감정과 태도와 별개로 식겁할 상황.

그 가운데서 올리버가 영창했다.

[타겟팅(Targeting)]

영창을 하자 올리버의 팔과 판도라의 몸에 다트판 생성됐다.

덕분에 떨어지던 판도라는 올리버 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틀었고, 올리버는 타겟팅의 인력(引力)과 척력(斥力) 그리고 감정 입자를 적절히 조절해 판도라를 무사히 받아냈다.

모두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브(Eve). 판도라라고 합니다.”

올리버가 판도라를 바닥에 내리며 필립에게 소개했다.

필립은 잠시 판도라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안녕하시오. 아가씨. 아름다우시구려.”

“감사합니다. 필립 중장님. 세계 최강군의 한 축을 맡으시는 로어 가문의 가주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판도라가 아주 자연스럽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 모습을 다들 멍하니 바라봤다.

사람이 아닌 이브(Eve)가 너무나도 사람처럼 행동해 놀란 것.

어찌 보면 소름이 끼쳐야 할 모습일 수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몇몇은 아름답다고 느꼈다.

대부분 인간은 평생 볼 수 없는 정령을 만난 것처럼.

필립이 감탄 섞인 눈으로 올리버를 보며 물었다.

“이브(Eve)와 아는 사이라······. 생각보다 사교성이 좋군.”

“매일 잠자기 1시간 전 유머책을 읽습니다.”

올리버가 아주 자랑스럽게 말했다. 왜냐면 자랑스러웠으니까.

“······내 사촌이 말하길 자네가 이브(Eve) 포획을 방해했다고 하던데, 그 이유를 알 수 있겠나?”

“아는 사이거든요.”

올리버가 짧고 간결하게 답했다.

어디로 보나 되지도 않는 개소리였지만, 이상하게도 올리버가 말하니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음······. 근데, 내 앞에 데려왔다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지?”

“오늘은 판도라를 쫓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가급적이면 앞으로도 쫓지 말아 주셨으면 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아서요.”

“알았네.”

필립이 너무나도 흔쾌히 수락했다. 핑크맨들은 너무 놀라 눈을 번쩍 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필립은 말을 이었다.

“최소한 오늘은 쫓지 않지. 대신, 조건이 있네.”

“말씀하시죠.”

“테러를 일으킨 홍인 흑마법사를 토벌할 건데, 자네도 합류하게.”

“알겠습니다.”

3조 이상의 가치를 가진 이브(Eve)와 영원한 아이 팬과 커넥션이 있을지도 모르는 홍인 흑마법사와 관련된 일이 단 몇 마디 말에 결정됐다.

그 모습을 모두 멍하니 바라봤다. 핑크맨은 물론, 판도라까지 말이다. 너무나도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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