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69화 (469/633)

469. 특별한 재료 (1)

작지만 선명한 폭발음, 하늘 위로 솟구치는 검은 연기, 흔들리는 땅.

올리버는 그러한 정보를 취합해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감했다.

왜냐면 과거 한번 경험한 적이 있었으니까.

‘폭발 테러.’

그랬다. 폭발 테러였다. 그것도 그냥 폭발 테러가 아니었다.

인육 요리사가 란다에서 일으킨 폭발 테러와 아주 유사했다.

사람의 몸속에 있던 기생충 형태의 크리처들이 숙주를 영양분 삼아 일으킨 대폭발.

그 폭발을 직접 보고 당해봤기에 올리버는 알 수 있었다.

‘위력은 기억하던 것보다 약하지만.’

검은 연기의 규모를 보며 올리버가 생각했다.

O구역을 폐허로 만든 그것과 비교하면 작은 편이었으나. 그렇다 해도 폭발 자체는 엄청났다.

도대체 갑자기 뭔지······. 그때, 통신장치 특유의 신호음이 여러 개 울렸다.

핑크맨의 통신장치였다.

“무슨 일이야?”

중년 신사가 재빠르게 통신장치를 받았다.

그는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코드 감마(γ)는 무사한 건가? ······다행이군. 그럼- 잠깐, 뭐야? 뭐?!”

중년 신사는 폭발에 놀라는가 하면, 통신장치를 받고 안도, 다시 놀랐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으나, 변화무쌍한 감정 상태를 봤을 때 꽤 다급한 상황인 듯했다.

그 증거로 당장 공격할 것 같던 그의 신경은 올리버에게서 폭발이 일어난 방향으로 바뀌었다.

‘크리처와 관련되어 있나?’

올리버가 흑마법사의 눈에 신경을 집중. 폭발이 일어난 방향을 보며 생각했다.

시야 끝에는 흑마법으로 만든 인공 생명체 크리처들이 몇몇 흑마법사와 같이 날뛰고 있었다.

마법사와 마력사용자, 성기사들이 이에 대응하였으나, 만만치 않은 듯했다.

“모두 코드 감마(γ)가 있는 방향으로 간다.”

통신장치의 보고를 들은 중년 신사가 고민 끝에 명령했다.

핑크맨들 모두 갑작스러운 명령에 놀랐으나, 그들 역시 짚이는 구석이 있는지 이유를 묻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후방에서 따라붙어 퇴로를 끊은 핑크맨들도, 매복해 있던 핑크맨들도, 심지어 중년 신사도 말이다.

“뭔가 큰일이 났나 보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판도라의 의견에 올리버가 동의했다.

핑크맨은 판도라에 대한 집착은 물론, 자신에 대한 적대감 역시 최고였건만, 그럼에도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떴다.

그 사이 올리버와 판도라가 도망칠 수 있음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적대감을 가진 올리버를 죽이는 것보다, 3조 이상의 가치가 있는 판도라를 잡는 것보다 더 다급한 일이 생긴 것.

생각이나 추론이 올리버 특기는 아니었지만, 왠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어떻게 하고 싶으시죠?”

질문하는 판도라. 올리버가 답했다.

“일단, 세계수가 있는 데로 가죠. 얼마 가지 않으면 세계수가 나오니·····. 움직이죠.”

“아뇨, 아버지. 전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으신 걸 여쭤봤어요.”

“······하고 싶은 거요?”

“예, 아버지께선 뭘 하고 싶죠?”

재차 묻는 판도라. 올리버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

“어떻게 아신 거죠?”

“아버지니까요.”

판도라가 부드러운 미소와 애정을 빛내며 답했다.

***

타악······. 타악······. 타악······.

올리버는 판도라를 어깨 위에 짊어진 채 건물 사이를 뛰어다녔다.

도시에서 빠르게 이동하는 건 공간 마법을 제외하곤 이게 최고였기에.

올리버는 블랙 슈트를 두른 다리로 바닥을 박차 저 너머에 있는 건물 꼭대기에 착지했다.

“불편하진 않나요?”

올리버가 한쪽 어깨에 짐짝처럼 매달린 판도라에게 물었다.

거친 이동 탓에 혹여 불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판도라가 대답했다.

“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송장인형이라 통증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거든요.”

“아······.”

올리버는 탄성을 냈다. 맞는 말이었다. 송장인형은 뭐가 됐건 시체. 흑마법과 가공을 통해 생전의 모습을 구현하고, 힘을 발현할 수 있어도 시체는 결국 시체였다.

그래서 통증 따위 느끼지 못했다. 그건 차일드 역시 마찬가지였고.

실제로, 송장인형이 몇 번 박살난 적이 있어도 탑승한 차일드가 직접적인 공격을 당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호텔에서 음식을 못 먹은 것도 같은 이치고······. 새삼 퍼펫 님이 대단한 게 실감 나네.’

올리버가 과거 퍼펫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공원에서 만나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퍼펫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바람의 감촉을 느끼고, 새들의 지저귐도 듣는 축복을 누리기 위해 적잖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다.

당시엔 대단한 건 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주 대단한 거였다.

시체가 음식을 먹고, 바람을 피부로 느낀다는 거였으니.

얼마나 많은 인내와 노력을 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괜찮으신가요?”

목적지 바로 앞에 도착한 후, 바닥으로 내려온 판도라가 물었다.

“아. 별거 아닙니다. 잠시 딴생각을 했습니다.”

“괜찮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저쪽은 아닌 거 같지만요.”

판도라가 건물 아래를 가리켰다. 방금 일어난 폭발을 증명하듯 건물 아래는 폐허나 다름없었는데, 그 위로 작지만 기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올리버가 보기에도 기이한.

“빌어먹을 이게 무슨 장난이야!”

한 손에 리볼버, 다른 한 손에 도끼를 든 핑크맨이 눈앞의 상대 대가리를 쪼개며 소리쳤다.

올리버도 그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

그 적은 장난감 병정이었으니. 아이들이 가지고 놀거나, 어른들이 수집하는 장난감 병정.

지금 폐허 위에선 붉은 군복을 입은 장난감 병정이 핑크맨은 물론 퍼스트 스텝 경찰, 군인과 한 데 뒤엉켜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탕!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난감 병정이 장난감 총으로 핑크맨을 쐈다.

난전의 특성 탓에 핑크맨은 미처 반응하지 못해 맞아 쓰러졌고, 붉은 피부의 흑마법사는 감정을 추출해 갓 죽어 신선한 시체에 흑마법을 걸어 새로운 장난감 병정을 만들었다.

“오······.”

올리버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창조계열 흑마법을 저런 식으로 쓰다니 상상도 못 했다.

크리처는 감정으로 만드는 게 일반적일 텐데.

‘······하긴, 일반적인 거지 반드시 그렇게만 되는 건 아니니까. 나도 감정과 생명력을 써서 차일드를 만들었으니, 사람의 사체도 쓸 수 있겠지.’

올리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 내렸다.

특히, 창조계열 흑마법은 다른 계열에 비해 특이한 편이었으니.

[홀리 라이트(Holy Light)]

계속해서 생성되는 장난감 병정으로 핑크맨 등이 밀리던 찰나, 철 코트와 냉병기로 무장한 성기사들이 나타나 성법을 사용했다.

사방을 감싸는 부드러운 빛.

그 순간 올리버는 이제 끝났다고 판단했다.

성법의 위력은 올리버가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

실력 여부를 떠난 압도적인 상성 차. 당연히 흑마법으로 만든 크리처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뭐지?’

올리버가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며 놀랬다. 왜냐면 성법의 성스러운 빛을 맞고도 크리처-장난감 병정은 원형(原形)을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대단했다.

절대적이라 할 정도의 상성 차이를 어느 정도는 극복한 것이니. 마치, 올리버의 인공영혼처럼.

올리버가 그 원인을 분석하는 사이, 지원을 나온 세 명의 성기사 중 한 명이 말했다.

“겁먹지 마시오. 저 사악한 크리처들은 모두 약해졌으니, 지금 몰아━”

[━셰도우 스파이크(Shadow Spike)]

핑크맨 등의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소리치던 성기사에게 누군가 흑마법을 사용했다.

홍인(紅人) 흑마법사로, 성기사처럼 지원을 나온 흑마법사였다.

그는 놀랍게도 ‘특별한 재료’를 사용해 등장과 동시에 세 명의 성기사 중 한 명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쾌거를 달성했다.

‘저게 가능한 건가?’

올리버가 새롭게 나타난 홍인 흑마법사를 살피며 감탄했다. 처음 보는 종류의 흑마법사였으니까.

“도대체 멋대로 무슨 일을 벌인 거야?!!”

지원을 온 홍인 흑마법사는 다른 홍인 흑마법사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용감하게도 그는 성기사를 세 명이나 앞에 두고도 동료를 꾸짖었다. 하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재료가 재료다 보니.

다른 홍인 흑마법사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그럼, 이 기회를 그냥 놓치자고?! 빌어먹을! 이미 엎질러진 거 뭐 어떡해! 그냥 너도 도와!!”

그렇게 소리친 홍인 흑마법사는 자세를 잡더니 이윽고 그림자를 넓게 퍼트리며 수많은 크리처를 토해냈다.

병아리 대가리를 한 병정,

검은색 보자기를 뒤집어쓴 길쭉한 갈고리 팔의 부기맨,

곰보다 거대한 곰 인형,

장난감 낫을 든 광대까지.

너무나도 익숙한 크리처가 한 무더기 뛰쳐나왔다.

성기사들이 바퀴벌레처럼 튀어나오는 크리처에 놀라 성법을 발동하려는 그때, 아까 전 방해한 홍인 흑마법사가 손안에 머금은 특별한 재료를 이용해 흑마법을 발동했다.

[해잇 불릿(Hate Bullet)]

[홀리 라이트(Holy Light)]

성기사들은 당연히 흑마법사에 대항해 성법을 발동. 증오의 탄환을 무력화시키려 했지만, 놀랍게도 증오의 탄환은 성스러운 빛을 직격으로 맞고도 사라지지 않고 날아가 성기사들의 몸을 관통했다.

“······!!”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지만, 너무나도 예상 밖의 현상에 당황한 성기사들은 큰 피해를 입었고, 그사이 그림자 밖으로 나온 크리처들은 장난감 병정과 합세해 핑크맨 등을 단숨에 끝장내려 했다.

[스트렝슨(Strengthen)]

[매그니파이(Magnify)]

위기의 순간 울려 퍼진 굵은 선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거대한 창이 수십 개 나타나 그림자를 통해 나온 수십 마리의 크리처를 단숨에 짓눌러 으깨버렸다.

압도적인 크기와 질량으로 말이다.

콰과과과광━!!

거대한 질량의 물체가 땅을 뒤흔들었다. 뒤이어 누군가 말했다.

“내 살다 살다 성기사를 구해줄 줄은 몰랐는데.”

그 누군가란 다름 아닌 필립이었다.

왕국군의 중장이자, 왕실 마법사관학교의 교장, 왕실 마법연구부의 실장, 마탑 순수마력학파의 명예 그랜드 마스터이자, 로어 가문의 수장인 필립 로어.

그는 흑마법사의 공격에 당한 성기사를 지켜주며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방해꾼의 등장에 홍인 흑마법사는 아까 전처럼 특별한 재료를 이용해 흑마법을 발동. 필립 로어에게 검은색 투창을 투척했다.

흑마법 자체는 단순하고 기본적이었으나, 재료가 재료다 보니 위력적.

이에 필립은 정면으로 막으려는 대신 품에서 롱소드와 세이버를 꺼내 날아오는 검은색 투창을 흘려 치는 것으로 응수했다.

부족한 화력을 기술로 메운 것.

거기다 필립은 도끼와 투창을 던지고, 직접 돌진해 거리를 좁히는 등 홍인 흑마법사를 압박했다.

노년에 접어든 나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렵하고 노련하게.

허나, 필립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왕국의 중장이라는 지위에 걸맞게 지시까지 내렸다.

“제군들! 적은 내가 막을 테니 재정비하라! 곧 지원군이 온다! ······줄리아! 다친 성기사들을 데리고 후퇴해!”

필립은 짧고 간결한 명령.

강렬한 힘과 카리스마가 깃든 그의 목소리에 사기가 한번 꺾인 핑크맨과 군인, 경찰은 망설임 없이 움직여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틸 전열을 짰고, 한 여성 마법사는 다친 성기사를 데리고 뒤로 빠졌다.

엄청난 일사불란함. 모두 필립을 믿기에 가능한 행동으로, 실제로 필립은 그러한 믿음에 보답하듯, 성기사 셋을 홀로 제압한 흑마법사를 압박하는 동시에 축소화된 무기를 투척해 상대측 크리처와 홍인 흑마법사를 견제했다.

“길어져라!”

뛰어난 신체 능력과 무기술, 열 개의 칼과 여섯 개의 도끼, 세 개의 투창으로 맹공을 퍼붓던 필립은 사리사를 꺼내 들더니 양손으로 붙잡아 외쳤다.

그러자 6미터가 넘는 사리사는 폭발하듯 자라나 맹공으로 자세가 불안정해진 흑마법사를 행해 돌진했다.

쾅━!!

마력이 집중된 사리사가 목표물에 도달하자 트럭이 부딪치는 굉음을 냈다. 실로, 엄청난 힘.

허나, 더 놀라운 것은 홍인 흑마법사가 이를 막았다는 점이었다.

특별한 재료를 자신의 그림자에 불어넣어 말이다.

그의 그림자는 흡사 살아있는 생명처럼 불룩 솟아나더니 필립의 사리사를 정면에서 멈춰 세웠다.

꾸구구구구구!!

힘과 힘의 대결. 필립의 마력은 올리버가 봐온 사람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양과 질이 뛰어났지만, 홍인 흑마법사가 다루는 재료 역시 보통이 아닌지라 이를 견뎌냈다. 아니, 견뎌내는 것 그 이상이었다. 사리사를 점점 압도했으니.

우지지직······!

그림자의 압력에 사리사가 비명을 지르는 그때, 필립이 다시 말했다.

“커져라.”

그 말과 함께 그림자에 짓눌리던 사리사가 수십 배로 커져 홍인 흑마법사의 그림자를 찢어버렸다.

한순간에 뒤집힌 전황.

필립이 그 상태로 창을 밀어 흑마법사를 꿰뚫다 못해 뭉개버리려 했다.

“물어버려.”

딱━━!!

홍인 흑마법사가 자신의 그림자에 명령했고, 찢어져 나간 그림자가 다시 합쳐져 거대한 치아로 변하더니, 거대해진 사리사를 한입에 씹어 부러트렸다.

필립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 끔찍한 외형에 혐오감을 느꼈고, 홍인 흑마법사는 그림자를 돌진시켜 필립을 씹어 죽이려 했다.

다시 무기를 꺼내는 필립. 그의 머리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라이트(Light)]

다른 아닌 올리버로, 올리버는 마력을 이용해 강렬한 빛 덩어리를 자기 등 뒤에 생성했다.

때아닌 강렬한 빛에 그림자 치아는 한순간 멈칫했으나, 재료가 재료인지라 그렇다 할 피해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올리버의 목표는 그림자를 없애려는 게 아닌 만들려는 거였으니까. 바로, 자신의 그림자를.

올리버는 빛의 역광을 이용해 거대한 그림자를 생성. 위에서 아래로 홍인 흑마법사의 그림자를 짓눌러 으깼다.

너무나도 가볍게 말이다.

콰앙!!

거대한 그림자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자 충격파와 흙먼지, 찢긴 그림자 조작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땅 위로 착지한 올리버는 허공에 흩날리는 그림자를 자신의 그림자로 흡수하며, 허리춤에 찬 단검을 꺼내 투척했다.

비록, 홍인 흑마법사는 가볍게 피했지만.

갑작스러운 등장에 모두가 올리버를 바라봤고,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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