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8. 몰이해(沒理解) (2)
“혹시, 제 주변 사람들을 인질로 위협하시는 겁니까?”
올리버가 물었다. 혹시 모를 오해나 착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직설적으로.
싸아아아······.
질문과 동시에 미묘하게 바뀐 올리버의 분위기. 착각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핑크맨 모두 공기가 차가워지는 걸 느끼며 몸에 미세한 소름이 돋았다.
“······.”
“······.”
“······.”
이 알 수 없는 기현상에 모두 침묵했다. 그도 그럴 게 이번 의뢰는 핑크맨의 가장 큰 거래처인 왕실의 의뢰.
당연히 참가한 인원 모두 핑크맨에서 알아주는 엘리트였다.
팀장부터, 특기요원 심지어 일반 전투원까지.
그렇기에 실력은 물론 정신력도 남달랐다. 어떠한 상황과 강자 앞에서도 패닉에 빠지지 않고 냉철히 움직여 임무를 달성할 수 있게.
그런데 그런 그들이 한순간 모두 소름이 돋으며 주춤거렸다. 단 한 명의 흑마법사에게.
그 흑마법사가 란다에 둥지를 튼 엔조이먼트를 82명이나 살해한 실력자임을 고려해도 창피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성법 아이템까지 맞춘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일개 해결사에게 압도당했다는 사실에 핑크맨들이 냉정함을 잊으려는 찰나, 이들을 이끄는 중년 신사가 입을 열었다.
“협박이 아닙니다. 우리 핑크맨에겐 폭력은 그저 사업수단. 사적으로 함부로 휘두르는 게 아닙니다.”
올리버는 중년 신사의 말에 경청했다.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
“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뿐입니다. 왕실과 귀족이 하는 일에 훼방을 놓는다면 그건 필연이니까요. 그런 각오도 없이 이 일을 하는 겁니까?”
중년 신사는 자신들에게는 감정이 없으며, 그저 고용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둘러댔다.
사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말과 이치보다는 실질적으로 행할 힘과 상황이 더 중요한 법이었으니.
상대가 겁먹고, 곤란할수록 더욱 그랬다.
그 증거로 젊은 나이에 란다 대표 해결사가 된 흑마법사조차 고심에 빠졌다.
말로 상대방의 행동에 제약을 걸었다고 판단한 중년 신사가 슬슬 움직이려 하는 그때, 생각을 마친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혹시, 선생님께선 결혼하셨습니까?”
너무나도 뜬금없는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꽂혔다.
“······예?”
“결혼하셨는지 여쭤봤습니다. 제가 잘 아는 분야는 아니지만, 보통 그 나이에는 결혼하고 자녀분도 있는 거로 알거든요.”
그 순간 중년 신사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꼈다.
“지금 뭐하는-”
“-아, 있으시군요. 자녀분.”
“······.”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올리버는 중년 신사에게 자녀가 있다는 걸 알아맞혔다.
그 모습에 중년 신사는 아까 전 레스토랑 때 느낀 당혹감을 다시 맛봤다. 그 무게와 위압감은 비교할 바가 아니었지만.
올리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혹시, 여기 계신 다른 분들은 가족이나 소중한 분이 있으신가요? ······아, 역시 다들 있으시군요.”
멋대로 질문하고 멋대로 대답하는 올리버.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핑크맨들은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왜냐면 그들 모두 소중한 사람이 있었으니까.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 임신 중인 아내와 자식들.
올리버의 질문을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그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하고, 기분 나쁜 불쾌함이 올라왔다.
마치, 벌레 떼가 몸을 뒤덮는 것처럼. 당장이라도 뿌리치고 싶지만, 너무나도 기분 나빠 꼼짝할 수도 없었다.
그때, 올리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억양이나 목소리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약간 침울한 느낌이 들었다.
“하긴, 당연한가요? 제가 아는 분 중 꽤 악명 높으신 분이 있는데, 그분도 소중한 사람은 있었거든요.”
올리버가 판도라를 내버려 두고 적당한 곳에 걸터앉았다. 몹시도 피곤해 보였다.
“여동생이었습니다. 그 악명이 높은 분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요.”
“······.”
“정말 소중한 분이셨어요. 자기 몸이 칼에 베이고, 끔찍한 질병이 몸을 좀먹어도 여동생만은 구하려 했거든요······. 아마,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했을 겁니다. 그 여동생이요.”
올리버가 용으로 변한 인육 요리사와의 싸움을 떠올렸다. 그가 한 말도.
‘나조차 있는 소중한 사람조차 네겐 없는데. 그저 소중한 감정만 있을 뿐. 아끼는 장난감처럼.’
“······그래서 그분 앞에서 그 여동생분을 찔렀습니다. 쿼터스태프로 심장을요.”
“······지금 협박하는 건가?”
몸을 누르다 못해 으깨버릴 것만 같은 적막을 깨고 중년 신사가 물었다.
올리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기 가족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으로 느껴졌기에.
올리버가 중년 신사를 보며 딴소릴 했다.
“책에 적혀 있었습니다.”
“······.”
“형제자매 앞에서 다른 형제자매를 살해하는 것요. [감정 채취의 노하우]란 흑마법 서적에 적혀있었습니다.”
“······.”
“마법에 마력이 필요하듯, 흑마법에는 감정이 필요하잖습니까? 특히, 흑마법은 재료(감정)의 질에 큰 영향을 받아서요······. 그래서인지 인간의 감정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채취하는 방법이 여럿 전해집니다. 아까 전 형제자매 앞에서 다른 형제자매를 살해하는 것도 그중 하나이지요. 그 외에도 부모 앞에서 자식을 죽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혹시, 아내와 자식 두 분 다 계십니까?”
올리버가 핑크맨 중 한 명을 보며 물었다.
마법도 흑마법도 쓰지 않았건만, 핑크맨은 거대한 위협을 느꼈다.
“제가 읽은 책에서 말하길 어미가 보는 앞에서 자식을 고문해 죽이면 양질의 분노와 증오, 절망을 뽑아낼 수 있다 하더군요.”
“뭐······?! 이 개-”
핑크맨은 순간의 분노로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을 떨쳐내며 소리쳤다. 그러한 발악이 무색하게 올리버는 빼빼 마른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댔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제스처였건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핑크맨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마법처럼.
“······.”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진심으로요. 가족이 위협당한다면 화가 나시겠죠······. 전 가족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요.”
올리버가 자신을 바라보는 판도라를 보곤 다시 하던 이야기를 이었다.
“그 책에서 말하길 거기서 감정을 더 뽑아낼 수 있다 하더군요. 가령, 그 어미를 열흘 정도 굶긴 뒤 죽은 자식의 살점을 구워 준다든가요.”
임무를 위해선 수백 명의 시위대도 몰살하고, 죄 없는 사람조차 죽일 수 있는 핑크맨이 역겨움에 모두 경악했다.
아니, 어쩌면 이야기 내용보다 사람이 더 문제일 수도 있었다.
바로, 눈앞의 흑마법사 말이다. 왜냐면 그는 마치 가벼운 실험을 이야기하듯 담담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저건, 허세나 연기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인간군상을 봐온 핑크맨이기에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하면, 추가로 더 많은 감정을 뽑아낼 수 있다 하더군요. 깊은 절망감과 자기혐오, 죄책감 같은걸요. 저도 효율적이라 생각하긴 합니다. 이미 한번 감정을 쥐어짠 개체로부터 한 번 더 뽑아내는 거니까요······. 참고로 적잖은 수가 그 고기를 먹는다 합니다. 책에서 읽은 내용에 따르면요······. 혹시, 임신한 아내가 있으신 분 있나요?”
핑크맨은 당연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미 없었다. 올리버의 눈은 누군지 전부 알아맞혔으니까.
마치 지상의 인간을 모두 살펴본다는 신의 눈처럼, 혹은 모든 인간의 죄를 꿰뚫어 본다는 악마의 눈처럼.
올리버는 말했다. 임신한 임산부에게 가할 수 있는 실험 겸 감정 채취법을. 그것은 앞의 내용보다도 더 비인륜적이었으며, 끔찍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듣는 것만으로 생물학적인 거부감과 역겨움을 느낄 정도. 듣고 있는 핑크맨은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올리버의 저 입을 꿰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뭐에 홀린 것처럼 핑크맨에게 소중한 사람이 누가 있는지 계속해 물었고, 그와 관련된 끔찍한 감정 채취법을 이야기했다.
아주 차분하게, 아주 담담하게, 아주 절제되게.
그렇기에 더더욱 피부로 와닿게 느껴졌다. 뒷골목에 흔해 빠진 협박이 아닌, 진짜 현실로 말이다.
싸움을 시작하지도 않았음에도 핑크맨들은 어느새 올리버에게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불길하고 불쾌한 악의에.
반걸음 뒤로 물러난 핑크맨들.
그때 중년 신사가 몸에 깃든 마력을 분출하며, 지팡이 칼을 뽑아 들었다.
저 혓바닥을 계속 놀리게 둬선 안 됐다.
촤아아앙!
중년 신사가 지팡이 칼을 허공에 휘두르자 공기가 베이는 소리가 울리며, 올리버의 혀에 현혹된 핑크맨들이 일제히 정신을 차렸다.
간신히 되찾은 주도권.
중년 신사가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궁금하군. 우리 가족을 인질 삼아 협박하겠다는 건가? 네놈이 그토록 잔혹하니 조심하라고?”
올리버가 중년 사내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아까 전과 같은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약간의 피로를 느낄 수 있었다.
“······궁금할 따름입니다. 그 악명 높은 분은 여동생을 그리 사랑하셨으면서 어찌해 남들을 쉬이 살해하고 잡아먹은 건지요? 또, 여러분 역시 소중한 게 있는데, 어찌 다른 사람의 소중한 것으로 이용해 협박하는 건지요······. 이해하기가 다소 어렵네요. 대답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답해줄까?”
중년 사내가 말했다.
“우린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거거든. 우린 거대한 조직과 수많은 뒷배를 거느린 핑크맨. 다른 뒷골목 쓰레기들과 달라.”
대답을 듣는 순간 올리버의 눈이 살짝 떠졌다.
너무나도 당연한 거였지만, 올리버에겐 새삼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자신들은 당하지 않을 거라니.
“여태껏 만난 놈들에겐 그런 협박이 통했을진 모르지만, 우린-”
“-협박한 적 없습니다.”
올리버가 중년 신사의 말을 잘랐다. 너무나도 잔잔하고 차가워 오히려 말이 날카로웠다.
“그런 감정 채취를 하긴 좀 그렇거든요.”
“······.”
“좀 그렇지 않습니까? 저와 상관없는 사람들인데, 보는 앞에서 자식을 죽이고, 그걸 먹이며, 임산부의 배에 약물을 투여하며, 뒤틀린 자식을 억지로 낳아 품 안에 안겨 키우는지 안 키우는지 살피고, 끔찍한 고문을 가해 그 고문을 다른 가족에게 전가하는지 살피는 게요······.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못하겠습니다. 때때로 하고 싶어도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올리버가 말을 멈추며 중년 신사와 주변의 핑크맨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들의 얼굴과 감정을 눈에 새기듯.
“왠지 여러분 가족은 그렇게 해도 좀 그럴 것 같지가 않네요.”
오싹······!!
핑크맨들의 등줄기엔 일제히 강렬한 소름이 돋았다.
아까 전부터 느낀 이질적인 불쾌함과 불길함, 경계심이 폭발한 것.
마치 사람 거죽을 뒤집어쓴 무엇인가가 이윽고 그 거죽을 벗은 것 같았다.
극도의 공포를 느낀 핑크맨은 교육받았던 대로 공포를 배제하려 했다.
그들은 성법 아이템을 발동해 마법과 흑마법을 무력화시키고, 성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고화력 총기로 공격. 중년 신사와 다른 마력사용자로 올리버를 끝장내려 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흑마법사든 마법사든 성법으로 힘을 봉인하면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으니.
그 위협적인 송장인형 역시 꺼낼 틈도 없이 해치우면 문제없었다.
실제로 핑크맨은 그런 방식으로 적잖은 강자를 쓰러트려 명성을 쌓아왔다.
허나, 그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저 멀리 어디선가 작지만 선명한 폭발음이 울리며, 땅이 흔들렸기에.
지진은 아니었다. 지진보다 인위적인 무언가였다.
“폭발 테러.”
올리버가 거대한 검은 연기를 바라보며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과거 인육 요리사가 했던 폭발 테러와 너무나도 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