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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467화 (467/633)

467. 몰이해(沒理解) (1)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나보고 싶어서요.”

판도라가 그리 말했다. 올리버를 직접 보고 싶었다고.

그 말을 들은 올리버는 침묵했다. 정확히는 과거 기억이 떠올라 잠시 상념에 빠진 거였지만.

올리버가 떠올린 기억은 다름 아닌 고아원이었다. 올리버의 첫 번째 세상 고아원.

보통 고아들은 올리버처럼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경우도 일반적이었지만, 부모에게 조금 길러지다 버려지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고아원 담벼락 너머에서는 다 똑같은 고아였지만, 그럼에도 그 둘에는 차이가 있었다.

둔한 올리버조차 알 정도로 명백한 차이가.

그것은 다름 아닌 희망이었다.

부모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 부모의 손에 버려진 아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언젠가 부모가 다시 찾아올 거라 믿었다. 원래부터 버려진 아이들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아······. 너무 제멋대로죠?”

침묵하는 올리버의 안색을 살피던 판도라가 밤 갈색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아뇨, 기분 나쁜 거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냥 과거 기억이 떠올라서요.”

판도라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올리버는 아직 그 정도로 센스가 좋지 못했기에.

올리버의 말은 진심이었다.

판도라를 보고 있노라니 과거 고아원에서 같이 지낸 한 소녀가 떠올랐다.

부모의 손에 직접 끌려 고아원으로 온 소녀로 어른스럽고 똑똑했지만,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언젠가 부모를 다시 만나 집으로 돌아갈 거라 굳게 믿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아이들의 괴롭힘과 열병 속에 죽었지만.

당연히 올리버는 돕지 않았고······. 그러자 문득 궁금해졌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절 어째서 만나보고 싶었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

“잘 이해가 안 돼서요. 저로 인해 탄생한 것은 맞는 거 같지만, 전 여러분의 존재도 몰랐고, 솔직히 지금도 그렇다 할 감흥을 느끼지 못하거든요. 좀······. 신기할 뿐이죠.”

“······.”

“이브(Eve)야 제 도움을 약간 받았다 쳐도, 판도라는 헤임달이라는 조력자도 있으신데 왜 위험을 감수하고 절 찾아오신 거죠?”

“······본능 같은 거죠.”

판도라가 고심 끝에 답했다.

“병아리가 태어나면 자기 어미 닭을 쫓아가는 것처럼요.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처럼요. 창조주를 보고픈 피조물의 본능요.”

“음······. 역시 잘 이해가 안 되네요. 죄송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해보려 노력하다 결국 실패한 올리버가 사과했다.

실제로 올리버는 다른 고아들과 달리 딱히 부모를 그리워한 적이 없었기에······. 아니, 그 이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태어나서 본 적도 없는 존재였으니. 오히려, 얼굴도 모르는 부모를 그리워하는 다른 아이들이 이해가 안 됐다.

모르는데 어찌 그리워할 수 있단 말인가?

“괜찮습니다. 저한테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판도라가 올리버를 배려하며 말했고, 올리버는 거의 다 먹어가는 스테이크와 이쪽을 점점 주시하는 사람들을 번갈아 살피며 입을 열었다.

“판도라에게 궁금한 게 참으로 많네요.”

“앞서 말했다시피 제가 대답할 수 있는 범위 내라면 다 대답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질문할게요. 혹시, 모르는 사람에게 붙잡혀 신체의 모든 자유를 빼앗긴 채 꽁꽁 묶여도 괜찮나요?”

“음······? 아뇨.”

“두 번째 질문. 정말 아무런 안전장치나, 도주 방법은 없으신가요?”

“예, 최대한 빨리 세계수로 가 그쪽으로 옮겨지면 될 거 같긴 한데, 핑크맨이라 어려울 거 같네요.”

핑크맨. 그 단어를 들은 올리버는 아까 전부터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몸에 깃든 풍부한 마력량과 밀도 높은 생명력. 빈틈없는 위치 선정, 차분하고 냉철한 감정 등으로 볼 때 이 바닥 프로인 핑크맨이 맞는 거 같았다.

올리버는 이제 한 조각(조금 크지만) 남은 스테이크에 소스를 바르며 물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세계수로 접속할 때까지만 도와드려도 될까요?”

“······괜찮으신가요?”

판도라는 감히 예상하지 못했는지 놀란 반응을 보였다. 겉보기에는 차분했으나, 진심으로 놀랐다.

“예, 그러고 싶어서요.”

짧지만 확고한 의사가 느껴지는 대답. 판도라는 손을 꼼지락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쁨과 감동을 느끼며.

대답을 들은 올리버는 마지막 남은 스테이크를 한입에 넣어 우물우물 씹었다.

부드러운 고기와 풍부한 육즙. 근래 느끼는 거지만, 식사란 역시 즐거운 거였다.

올리버는 음식 가격에 팁까지 얹어 탁자 위에 올린 뒤, 냅킨으로 입가를 닦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 뚜벅뚜벅 망설임 없이 한 구석엔 앉은 중년 신사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생선 요리를 먹고 있던 건장한 신사는 갑작스레 말을 거는 올리버를 보고 놀랐다. 최소한 겉보기에는.

“예? 무슨 볼일이라도······?”

“예,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책임자십니까? 맞는 거 같기는 한데, 확실히는 몰라서요.”

올리버는 레스토랑 내 몇몇 손님들을 가리켰다.

바빠 보이는 사업가,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노신사와 손자로, 이들 모두 핑크맨이었다.

숨어있는 핑크맨을 정확히 짚어내자 중년 신사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도 그럴 게, 핑크맨의 은신을 알아차린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누가 누군지 맞힌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흑마법사임을 고려해도 엄청난 신기였다.

중년 신사가 맞은편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대화하는 중이니까, 저건 하지 말죠. 부탁드립니다.”

몇몇 핑크맨이 눈치를 보며 판도라를 노리려 하자 올리버가 정중히 자제할 것을 부탁했다.

그 모습에 기회를 엿보던 모든 핑크맨의 행동이 정지. 책임자로 추정되는 중년 신사도 멈출 것을 지시했다.

“볼일이 뭐죠?”

“혹시, 저 아가씨를 노리는 거 오늘은 좀 봐주실 수 없겠습니까?”

“오해가 있는 듯한데, 전 인신매매범이 아닙니다.”

“압니다. 저 아가씨도 사람은 아니니까요”

차분하지만 훅 들어온 말. 중년 신사는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저 아가씨 정체를 압니까?”

“예.”

“그럼, 우리 정체도 알겠군요.”

“아마도요.”

“근데도 이리 말하다니······. 정체가 뭡니까?”

중년 신사가 몸 안에 풍부한 마력을 세밀하게 내뿜어 올리버를 압박했다.

마법사답게 마력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사람이 북적대는 호텔 식당임에도 정확히 올리버만 짓눌렀으니.

구구구구구구.

치명적이진 않지만, 상대의 기를 꺾기 딱 좋은 수준의 압박감.

올리버가 앉은 의자가 내리누르는 힘에 작게 비명을 질렀다.

정작 올리버에겐 아무런 영향도 못 줬지만.

“아, 실례했습니다. 제 소개부터 했었어야 했는데, 오늘 실수를 많이 하네요.”

올리버는 정말 실수했다는 듯 말했다. 왜냐면 정말 실수했다고만 생각했으니까.

올리버는 자신의 몸에 부여한 술식을 제거, 순수마력마법 중 하나인 위장 마법을 해제했다.

지우개로 지우듯 손과 얼굴, 목 등. 바깥에 노출된 부위가 원래의 빼빼 마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데이브······. 나무꾼 데이브 씨 맞습니까? 란다의 해결사?”

“예, 절 아시나요?”

“알고 말고요. 고용주의 코를 부러트린 사람이니까. 이 바닥이 아무리 험해도 보통 잘 그러진 않는데.”

“아······.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올리버가 변호했다. 정말 한 대 갈길 생각이었을 뿐, 코를 부러트릴 의도는 없었다.

코를 노린 건 그저 본능적인 실수였다.

“숲 처녀와는 무슨 관계죠?”

“숲 처녀요?”

“이브(Eve) 말입니다.”

더 이상 숨길 생각이 없는지 중년 신사는 바로 직구를 꽂았다.

질문을 들은 올리버는 판도라를 잠시 바라봤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방금 막 만난 사이라는 겁니다.”

“데이브 씨에 관한 보고라면 란다 지부에 있는 핑크맨에게 들은 적 있죠.”

“그렇습니까?”

“정보야말로 힘이니까. 그런데 농담도 잘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 칭찬 감사합니다. 매일 1시간씩 유머책을 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방금 그건 농담 아닙니다.”

중년 신사는 마법사라 올리버처럼 감정을 꿰뚫어 볼 수 없었으나, 마법사 특유의 학식과 경험, 핑크맨으로 쌓은 노련함을 통해 단숨에 올리버의 속을 꿰뚫어 진심인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결심하듯 입을 열었다.

“바깥에서 이야기 나누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잠시만요······. 저 좀 따라와 주시겠어요?”

노심초사 이쪽을 바라보는 판도라에게 올리버가 부탁했다.

판도라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중년 신사가 멈춰 세웠다.

“아뇨, 데이브 씨만 따라오시죠.”

“죄송한데 그건 안 됩니다. 자리 비운 사이 데려가시면 좀 난감할 거 같거든요.”

단숨에 핑크맨의 속셈을 간파한 올리버. 중년 신사는 한마디 하고 물러날 뿐이었다.

“소문이랑 정말 다르군요.”

***

올리버는 판도라와 함께 중년 신사를 따라 호텔에서 약간 떨어진 넓고도 음침한 뒷골목에 들어섰다.

이곳 퍼스트 스텝(First Step)은 얼핏 꽤 발전한 도시인가 싶으면서도, 특정한 목적에 따라 건설된 도시답게 중간중간 빈 부분이 있었다.

화려한 호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 거대한 뒷골목이 그 증거였고

“소문과 다른 부분이 있지만, 똑같은 부분도 있군요. 정말 따라오실 줄이야.”

“따라오라 하셨으니까요?”

중년 신사의 말에 올리버가 답했다. 그는 기이할 정도로 덤덤한 올리버에게 혼란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깔아놓은 판에 자신감을 가졌다.

주변을 살펴보니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탁. 탁. 탁. 탁. 멈칫.

목표한 지점에 도착했는지 지팡이를 든 중년 신사가 멈췄다.

“혹시, 데이브 씨, 그거 아십니까? 우리 핑크맨이 그대를 찾고 있던 걸요.”

올리버는 눈을 움직여 주변을 관찰했다.

레스토랑에서 손님인 척 위장해 있던 핑크맨들이 뒤를 따라와 퇴로를 끓고, 뒷골목 곳곳에 대기하고 있던 핑크맨들이 소리 없이 움직여 포진을 짰다.

뒷골목 갱들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사불란함.

허나, 그 이상으로 눈에 띄는 것은 핑크맨들이 갖추고 있는 양질의 무기와 장갑(裝甲)이었다.

마력 내성이 보이는 방탄복과 마법 총기, 마법으로 강화한 도끼와 칼.

핑크맨이란 명성을 고려해도 장비 하나하나가 모두 상당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성법 아이템이지만.’

올리버가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장착한 성법 아이템을 보며 생각했다.

마법사에게도 강하지만, 흑마법사에겐 쥐약이나 다름없는 성법 아이템.

비싼 물건인 데다 판매 역시 신전의 통제하에 있기에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건만, 지금 이 자리에 다섯 개나 있었다.

흑마법사에겐 꽤 무서운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흑마법의 강약과 무관하게 성법은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으니.

“성기사 역시 그대를 찾고 있는 것을 압니까?”

“알고 있진 않지만, 조심하고 있긴 했습니다.”

“하긴, 그러니까 위장마법으로 정체를 숨긴 걸 테죠.”

“예, 흑마법사에게 그리 친절한 동네 같지는 않아서요.”

“잘 아십니다. 그러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옆에 있는 숲 처녀를 이쪽에 넘기십시오.”

“그게 곤란해서 따라온 것입니다만? 서로 대화를 나눠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요.”

“말해봤자 호흡, 시간 낭비라 그러는 겁니다. 우린 숲 처녀를 붙잡기 위해 온 거거든······. 이브(Eve)의 가치를 모르진 않겠지요?”

당연히 모르진 않았다. 이브(Eve)는 세계수란 미지의 분야에서 일대 혁신을 가져다줄 궁극의 존재였으니.

ABC사기로 3조가 넘는 돈을 챙긴 셰이머스가 바로 란다를 뜨지 않고 숲에서 농성한 이유도 사실상 이브(Eve) 때문. 그 말은 즉, 이브(Eve)의 존재가치는 최소 3조 이상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핑크맨이 판도라를 노려도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 거였다.

잡아서 팔든, 활용하든 그 존재 자체가 가치 덩어리였으니까.

하지만 그와 별개로 좀 그렇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왜냐면 이브(Eve)와 판도라 역시 자유 의지를 가졌기 때문.

자신의 의지를 가진 존재인데, 억지로 속박하는 건 좀······그렇지 않은가?

올리버가 이 부분을 들어 차분히 설득하려는 찰나, 핑크맨인 중년 신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만약, 숲 처녀를 이쪽에 순순히 넘겨주신다면 저희는 더 이상 데이브 씨를 위협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우리도 그대와 마찰을 빚고 싶지 않거든요.”

“예?”

“우리 고용주께서 그대를 좋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수상쩍은 주제에 여기 왜 있는지도 모르고, 전(前) 고용주를 때렸다고 말이죠.”

올리버는 그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에디스가 예견해도 한참 전에 예견한 일. 반응을 보이는 게 더 어려웠다.

“허나, 지금 저희 일에 협조해주신다면 고용주께 건의해 당신을 적대하지 않겠습니다. 그 정도 권한은 있으니까요. 원하시면 성기사 쪽에도 말을 넣어 드리겠습니다.”

“친절하시군요.”

“예?”

판도라가 놀라 되물었다.

중년 신사가 이어 말했다.

“하지만 저희를 계속해 방해하신다면 아무것도 약속드릴 수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란다에서 일으킨 사업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올리버가 멈칫하며 되물었다.

“사업가로서 리스크를 고려하라는 겁니다······. 지금 우리 고용주는 상당한 힘과 영향력을 가졌습니다. 계속해 방해한다면 막 설립된 당신 사업체와 저희의 마찰이 불가피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그걸 원치 않습니다.”

걱정을 가장한 친절한 협박. 연합 왕국 특유의 음험한 협박으로,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보통 잘 먹혔으니까.

문제는 지금 그 상대가 보통과 약간 거리가 있다는 거였다.

“혹시, 제 주변 사람들을 인질로 위협하시는 겁니까?”

올리버가 오해나 착각의 소지를 막기 위해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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