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 판도라 (2)
“음······. 물어보고 싶은 게 참 많네요.”
올리버가 맞은편에 합석한 여성에게 말했다.
밤 갈색 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진 여성에게 말이다.
그녀가 미소 지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감사합니다······. 일단, 이브(Eve)는 맞으신 거죠?”
“예, 앞서 대답 드린 대로. 물론, 아버지께서 아시는 이브(Eve)와는 다르지만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브(Eve)란, 하나의 개체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닌 좀 더 포괄적인 단어였다. 인간, 동물과 같은.
‘세계수에 축적된 방대한 정보가 쌓이고 쌓여 특이점에 도달하면 생길 수도 있는 존재. 이브(Eve)······.’
올리버가 과거 읽은 세계수 관련 서적과 멀린에게서 들은 가르침을 떠올렸다.
세계수의 과도한 정보 축적으로 발생한 인공적인 정신과 의지인 이브(Eve)에 관해.
세계수를 공부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브(Eve)가 탄생할 거라 추측했고, 실제로 탄생했다. 그것도-
“-세 번째네요.”
“무엇이 말씀이죠?”
“이브(Eve)가 나타난 게요. 아가씨께서 세 번째네요.”
올리버가 셰이머스에게 붙잡힌 이브(Eve)와 테어도어를 도와 레이크 빌리지의 룻 넷(Root Net)을 차단한 또 다른 이브(Eve)를 떠올리며 말했다.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이브(Eve). 그런데, 지금 세 개나 나타났다.
밤 갈색 머리 여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판도라······.”
“예?”
“괜찮으시다면 판도라라고 불러주시겠습니까? 고대 신에게 탄생한 여성이 이름인데, 이브3이나, 세 번째 이브라고 불리고 싶진 않아서요.”
아······. 올리버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판도라······. 이름부터 여쭤봤어야 했는데, 제가 실례를 저질렀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뇨, 그렇게까지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특히, 아버지께서는요.”
또 나온 아버지. 올리버는 그 단어에 곱씹었다. 자신과 너무나도 인연이 없는 단어였기에.
판도라가 그런 올리버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아버지라 부르는 게 불편하신가요?”
“음······. 왜 절 아버지라 부르시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아버지께서 저희를 만드셨으니까요.”
예상치 못한 대답. 올리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판도라는 그런 올리버를 배려해주듯 기다려줬다.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종업원이 커다란 접시를 들고 나타났다.
“주문하신 요리가 나왔습니다. 손님.”
부드러운 음성과 함께 앞에 놓인 거대한 스테이크. 냄새를 맡자 배가 요동쳤다.
“······판도라.”
“예.”
“식사하면서 이야기 나눠도 될까요? 배가 고파서요.”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판도라도 뭐 좀 드시겠습니까?”
“아뇨,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판도라가 정중히 예를 갖춰 거절했다. 하긴, 당연했다. 잘 만든 송장인형이긴 했지만, 결국 송장인형. 음식을 먹을 순 없었다.
“어머······. 역시, 아버지께선 눈이 좋으시네요.”
종업원이 떠나고 단둘이 남게 되자 판도라가 말했다.
올리버가 커다란 스테이크를 먹으며 답했다.
“일단, 흑마법사고, 송장인형에 저도 조금 조예가 있거든요.”
“겸손도 지나치시고요. 아버지 수준이 조금이라면, 대부분 흑마법사는 무지렁이 수준일걸요? 자신을 너무 낮추지 마시죠. 지나친 겸손은 거만이니까요.”
판도라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올리버는 그런 판도라를 빤히 바라보며 그녀를 관찰했다. 그녀가 들어간 송장인형에 들어간 생명력과 그 가운데 이식된 나뭇조각 안에 든 인공영혼을.
올리버가 봐온 인공영혼 중 가장 섬세하고 완성도가 높았다.
“겸손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그 증거로 송장인형을 이용해 세계수에 있는 이브(Eve)가 바깥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거든요. 대단한 발상과 기술입니다.”
올리버가 척 보는 것만으로 판도라의 육체 구성을 꿰뚫어 봤다. 판도라는 감탄했다.
“대단하시네요. 척 보고 알아맞히시다니. 동시에 기쁘네요. 그런 아버지께 칭찬을 들으니까요. 과거의 기록을 뒤져가며 만든 보람이 있어요.”
“과거의 기록요?”
“예, 제 특기거든요. 과거를 살펴보는 것요.”
알 수 없는 말. 무슨 뜻인지 궁금했지만, 뒤쫓듯 질문만 하면 안 될 것 같아 올리버는 가장 중요한 것부터 질문했다.
“······아까 전 제가 판도라를 만들었다고 하셨죠?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그 말에 판도라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약간의 아쉬움, 실망, 섭섭한 감정을 빛냈다.
뭐라고 할까, 올리버가 알고 있던 이브(Eve)보다 훨씬 사람 같았다.
“음······. 저희 같은 존재가 어떻게 태어나는지는 아시죠?”
“아뇨,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저 책에 나온 이론만 알고 있습니다.”
“세계수의 방대한 정보 축적에 따른 특이점. 그로 인한 인공적인 정신, 의지의 발현이요?”
“예.”
“그 이론을 믿으시나요?”
올리버가 씹고 있던 스테이크를 삼키곤 천천히 입을 닦았다.
“가장 가능성이 있는 이론이라 생각하긴 합니다. 근래에는 마법사들까지 세계수를 이용해 정보의 축적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니까요. 다만.”
올리버가 일부러 말을 멈췄다. 판도라의 반응을 보기 위해.
그녀는 미소 지으며 자신을 말없이 바라봤다. 마치, 이 대화가 즐거운 듯.
올리버가 다시 말을 이었다.
“뭔가 부족하단 생각이 들긴 합니다. 정보량이 아무리 많이 쌓인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정신이나 의지가 깃들 수 있나 싶어서요.”
“딩동댕. 정답이에요. 아버지. 1이나 99나 100이 안 되긴 매한가지. 저희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정보가 필수지만, 외에도 필요한 게 많아요. 세계수에 깃든 생명력과 자연의 힘, 마법사들이 이용료로 낸 마력. 그리고······.”
“-감정이군요.”
올리버가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판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딩동댕. 또, 정답이십니다. 대단하세요.”
짝. 짝. 짝. 판도라가 손뼉을 쳤다.
대답을 듣자마자 올리버는 처음 세계수에 접속했을 때를 떠올렸다.
중고 책방 주인으로 위장한 멀린에게 추천받아 세계수 서적을 봤고, 호기심이 동한 올리버는 외진 곳에 덩그러니 놓인 세계수에 바로 접속했다.
감정을 이용해 말이다.
정상에서 아득히 벗어난 방법이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올리버는 성공했고, 그렇게 올리버는 처음으로 세계수 내부의 허공 세계 룻 넷(Root Net)에 접속할 수 있었다.
“그때 제게 말을 건 눈알이 판도라였습니까? 무수한 마력으로 이뤄진 눈알요.”
“예······. 정확히는 저기도 했죠.”
저기도 했다라······. 수수께끼 같은 말에 올리버는 미간을 찌푸리며 룻 넷(Root Net)에서 본 눈알을 떠올렸다.
무수한 마력으로 이뤄진 눈알. 그 눈알을 본 것은 도합 두 차례였다.
처음 세계수를 접속했을 때와 마텔에 가기 전 정보를 모으기 위해 접속했을 때.
두 번 모두 강렬한 집념을 빛내며 올리버가 누군지 물었다. 그 순간 떠올랐다.
자신이 눈알을 후려쳐 유리 파편처럼 깨버렸다는 걸.
“혹시, 그 눈알 파편입니까?”
“예, 아버지.”
올리버가 알아맞히자 판도라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아까 전 빛낸 아쉬움, 실망, 섭섭한 감정을 보상받듯 반가운, 만족, 기쁨이 빛냈다.
그 모습에서 올리버는 노라를 마주했을 때와 같은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 죄송합니다.”
“예?”
“그때, 때려서요. 제가 좀 마음이 급해 대답하지 않고, 손을 휘둘렀는데······. 죄송하네요.”
“신경 쓰지 마시죠. 아버지. 아버지께서 때려주신 덕분에 제가 탄생할 수 있었으니까요······. 또, 아버지께서 저희를 만드셨는데. 무엇을 하든 그건 당연한 권리시죠.”
“그렇습니까?”
“예, 과거를 보면 알 수 있죠. 부모는 자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답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올리버 역시 역사를 공부했기에.
고대 시대에는 자식을 노예로 세 번이나 팔 수 있었고, 아비가 허락하지 않으면 자식은 재산을 모을 수조차 없었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그 정도가 완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자식은 부모의 소유였다.
처음 역사 공부를 했을 땐 별다른 느낌이 없었건만, 이상하게 지금은 묘한 기분을 들었다. 뭐라 설명하긴 힘들었지만.
“잠깐, 그런데······저희라뇨?”
올리버가 뒤늦게 이상한 점을 짚으며 물었다.
“말 그대로랍니다. 파편이란 건 여러 개니까요.”
“······그 파편이 두 개 더 있습니까?”
“예. 아버지.”
“그중 하나는 제가 알고 있는 이브(Eve)고요?”
“예. 훌륭하신 추론입니다.”
판도라는 올리버를 칭찬했고, 올리버는 셰이머스를 쓰러트린 직후 이브(Eve)를 떠올렸다.
엔조이먼트에 꽁꽁 묶여 강렬한 분노와 증오를 내뿜던 이브(Eve)를.
올리버는 기억 속 이브(Eve)와 지금 눈앞에 있는 또 다른 이브(Eve)-판도라를 비교했다.
“신기하네요······. 판도라 말씀대로면 이브(Eve)와 같이 시간에 태어났다는 말씀이신데, 뭐랄까 차이가 많이 나는 거 같습니다.”
진짜로 그랬다. 이브(Eve) 역시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그와 별개로 정체성이라든가 자아, 가치관 등이 덜 확립돼 불안정했건만, 판도라는 전혀 아니었다. 그녀는 안정적으로 보였다.
“아마, 학습량 때문일 겁니다.”
“학습량요?”
“예······. 이브(Eve)와 달린 전 우호적인 이들을 만나 안정적인 학습을 할 수 있었거든요.”
“오······. 어떤 분들을 만나셨죠?”
“헤임달요.”
***
헤임달.
세계수를 다루는 마법 해커 집단. 판도라는 그 헤임달을 만났다고 했다.
“아버지의 손에 의해 나뉘고 저희는 제각기 방대한 정보의 흐름에 휩쓸려 흩어졌습니다. 전 운이 좋게도 헤임달과 조우할 수 있었죠.”
“그분들께선 판도라를 억지로 속박하려 하지 않았나요?”
“이야기가 아예 없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러진 않았어요. 저와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며, 제 학습을 도와줬거든요, 그 대신 헤임달은 절 관찰하고 연구했지만, 나쁘진 않아요······. 지금은 그들의 일을 가끔 돕고 있습니다. 이 몸은 그 보수 중 하나고요.”
“음······. 잘 믿기지 않네요.”
침음성을 내며 올리버가 말했다.
나쁜 뜻으로 해석하였는지 판도라의 표정이 약간 안 좋아졌다.
“제가 헤임달을 돕는 게 마음에 안 드시나요?”
“아뇨, 나쁜 뜻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세요. 그저 이 모든 상황이 잘 믿기지 않을 뿐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만들고, 그중 한 분이 송장인형을 이용해 제 앞에 서 있는 게요······. 솔직히 현실감이 없네요.”
올리버가 솔직한 자기 생각을 말했다. 신대륙은 온갖 괴담이 판치는 신비의 땅이라더니, 정말 신비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문제는 너무 신비해 와 닿지 않는다는 거였고.
“혹여, 제가 아버지를 불편하게 해드렸나요?”
올리버의 안색을 살피던 판도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고민 끝에 올리버가 답했다.
“글쎄요······. 궁금한 건 좀 많습니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범위라면 성심성의껏 대답하겠습니다.”
대답할 수 있는 범위 내라······. 올리버는 그 말뜻을 곱씹으며 주변을 관찰했다.
“송장인형에 세계수 나뭇조각을 심고, 그 나뭇조각을 매개로 송장인형에 들어간 건 대단한 기술이라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요.”
올리버가 말을 멈췄다 다시 이었다.
“그런데, 그만큼 위험해 보이는데 괜찮은 거 맞습니까?”
정확한 지적이었다.
세계수에 있어야 할 판도라의 의식을 자그마한 나뭇조각에 옮겨 송장인형에 넣는 거였으니.
이로써 물리적으로 포획할 수 없는 판도라는 이 순간 물리적으로 포획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뀌었다.
물론, 아무런 위험도 없다면 별문제 아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이 호텔 안과 바깥에 판도라를 노리는 사람들이 적잖게 포착됐다.
감정 상태와 그 방향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 사실을 판도라에게 이야기하며 무슨 안전장치가 있는지 묻자 판도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혹시 몰라 조심했는데도 포위될 줄은 몰랐네요.”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아예 모른 건 아니신 것 같은데······.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오신 거죠? 이렇게 갑자기?”
“이 도시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거든요.”
“······예?”
“지난 행적으로 볼 땐 아버지께선 떠나지 않으실 거고요. 그래서 무리해가며 찾아왔습니다.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나보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