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65화 (465/633)

465. 판도라 (1)

“지금 농담하시는 겁니까?”

은빛이 도는 백발, 이지적인 원형 안경을 낀 노신사가 자기 앞에 앉은 덩어리에게 물었다.

노신사의 추궁에 덩어리는 뭉개진 자기 코를 가리켰다.

“지금 내가 농담하는 것 같소? 이 꼴을 보고?”

면죄부인 양 내민 코. 노신사는 사과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에디스 님. 그저 해결사가 고용주를 때린 게 믿기지 않아서요.”

“뭐, 이해합니다. 나도 놀랐으니. 요즘 란다에서 신(新) 계급이라고 근본도 없는 놈들이 돈까지 생겨 이런 일이 왕왕 일어납니다. 물론, 내가 그 피해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에디스는 자연스럽게 불평하곤 바로 본론을 꺼냈다.

“여하튼 미안하게 됐습니다. 데이브 그놈 내가 데려가야 마땅한 데 병신처럼 얻어맞아 실패했습니다······. 망신, 망신, 이런 망신이 따로 없군요.”

노신사는 침묵했다. 귀찮은 날파리를 제거하기 위해 주식을 3배 가격으로 사들였건만,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셈이었으니.

그렇다고 책임을 묻기도 어려웠다.

“음, 역시, 실망하셨구려. 그쪽에서 괜찮으시다면 떠나는 걸 잠시 미뤄 데이브를 잡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번 돈으로 용병을 고용해······. 내 코의 복수도 할 겸요. 어떻게-”

“-괜찮습니다.”

에디스의 제안에 노신사가 확고한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일이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았다고 더 더러워지는 꼴을 볼 순 없지 않은가?

“에디스 님도 피해자인데, 그건 너무 가혹하지요. 이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에디스 님께선 돌아가셔서 몸조리하십시오.”

“오, 그렇게 말씀하니 감사합니다. 왕실 쪽 사람이라 그런지 자비롭군요.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에디스는 진심이었다. 이로써 자신은 모든 책임에서 벗어난 거였다.

노신사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고, 당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에디스까지 남기면 정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그 데이브란 해결사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지요?”

“물론입니다. 내 할 일 대신해주는데, 괜찮고말고가 뭐 있겠소? ······아, 아니다.”

“······?”

“콱 죽여버리십시오. 내 코에 복수도 할 겸. 난 내 코를 좋아했거든.”

에디스의 말에 노신사는 눈을 아주 살짝 가늘게 떴다. 저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위해.

뒤룩뒤룩 살찐 돼지처럼 보였건만, 하는 짓은 늙은 여우나 다름없었다.

‘하긴, 그러니 수도 귀족 집안 딸을 암말처럼 사들인 거겠지.’

노신사는 에디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당한 폭력에 당하시고도 이리 말씀하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비싼 돈을 받았으면 이거라도 해야지. 마음 같아선 돕고 싶지만 그쪽에서 괜찮다 하니 물러나겠습니다.”

“예······.”

“데이브란 그놈 지금 란다에서 가장 잘나가는 해결사긴 하지만, 핑크맨이 합을 짜면 충분히 해볼 만할 겁니다.”

에디스는 노신사의 곁을 지키는 핑크빛 재킷을 입은 남자들을 의미심장하게 노려봤다.

“뭐, 저격이라든가, 성법 아이템을 이용해 말입니다······. 아, 자연의 힘도 다룰 수 있다 하니 그 점 유의하시고.”

에디스는 올리버의 여러 소문과 능력에 관해 이야기하며 조언해줬다. 마치, 진짜 피해자인 것처럼.

덕분에 왕실을 보필하며 온갖 더러운 정치적 술수를 봐온 노신사조차 에디스가 정말 데이브에게 당한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끼익······탁.

혼란스러운 에디스가 나가자마자 노신사가 핑크맨에게 물었다. 이들 모두 팀장급으로 이 바닥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였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핑크맨1이 대답했다.

“석연치 않습니다. 데이브란 그 해결사를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란다 지부에서 보고한 바에 따르면 고용주를 팰 인간도,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할 놈도 아닙니다.”

“그래요?”

“예, 해결사로서 평판은 좋았습니다. 임무 성공률 100퍼센트에 까다롭지도 않고, 기이하지만 젠틀하다고요.”

“그럼, 에디스가 거짓말을 한 겁니까?”

“그것은 조금 애매합니다.”

다른 핑크맨이 말했다.

“에디스가 경고한 데이브의 능력 역시 전부 사실입니다. 자연의 힘을 다루는 특이 케이스에, 근래, 빼빼 말라진 것과 별개로 신체능력까지 좋아진 것도요······. 무슨 흑마법 시술을 받았다 하더군요.”

“결국, 정확히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는 거군요. 에디스가 수작을 부린 건지, 아닌 건지.”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핑크맨들에게 노신사가 냉철히 말했다.

왕실 비서인 노신사의 목소리와 태도에는 품위와 예의가 깃들어 있었지만, 동시에 핑크맨 팀장급조차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냉철함과 위압감이 깃들어 있었다.

세계 최강국 연합 왕국에서 비서로 평생을 산 노괴라 할 수 있었다.

노신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 데이브란 해결사 제압 가능하겠습니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여차할 경우.”

“가능합니다.”

핑크맨1이 대답했다.

“셰이머스와 엔조이먼트를 홀로 쓰러트린 대단한 해결사가 맞긴 하지만, 누구든 약점은 존재하고, 그건 저희 핑크맨의 특기입니다. 장비와 팀원을 맞추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핑크맨2가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다만, 지금은 그쪽에 인력을 빼는 건 좋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유는?”

“곧 주주총회가 시작돼 둘째 왕자님을 비롯해 주요 인사가 이곳에 오실 텐데, 그럼 경호 인력을 한층 보강해야 합니다. 종군 마법사도 올 테지만, 홍인(紅人) 흑마법사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거기다······.”

“······?”

“숲 처녀가 이 도시에 있다고 넷 내비게이터(Net Navigator)의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흔치 않은 기회. 그쪽에 인력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그럼, 날파리를 내버려 두자는 겁니까?”

“아뇨, 저희가 직접 움직이는 대신 성기사에게 맡기면 어떨까 합니다. 보고에 따르면 그쪽 역시 데이브를 주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에디스가 떠난 사실만 이야기해줘도 알아서 움직여 줄 겁니다.”

핑크맨2의 합리적인 제안. 핑크맨1도 동의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곳 성기사들 성향을 고려하면 저희가 원하는 것 이상을 해줄 겁니다.”

핑크맨 팀장의 차분한 조언. 첫째 왕자를 대신해 온 왕실 비서가 답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해 주십시오. 나머지 분들은 원래 하던 대로 둘째 왕자님과 다른 귀빈을 맞이할 준비를 하시고, 상대측 주주들 동태를 살펴주십시오. 이 주주총회 무사히 끝내 에드워드 왕자님이 최고 경영자가 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

“음······.”

퍼스트 스텝의 한 호텔 객실 안.

올리버는 여러 권의 책을 널브러트린 침대 위에 앉아 한 서적을 읽고 있었다.

다름 아닌 악마의 서적으로, 중간에 읽다 만 [악마. 소환. 도시. 관찰. 기록.]이었다.

악마가 소환된 도시를 바깥에서 안쪽으로 탐색하며, 기록한 책에는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가령, 도시 100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에서조차 정체불명의 뒤틀린 존재(악마 추정)가 나타났다든가, 혹은, 수많은 사람이 집단 자살을 했다든가.

한 줄로 요약하니 그렇다 할 감흥이 없었지만, 책에 기록된 내용과 삽화를 보면 마냥 가벼이 볼 순 없었다.

뭐라고 할까······. 책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위압감은 도시 외곽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절정에 치달았다.

“도시의 내부는 끔찍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왜냐면 너무나도 황량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이 도시 ■■■은 지상에서 번영하는 위대한 도시였건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체조차 말이다.”

서걱서걱서걱.

올리버는 양반다리를 한 채 책의 내용을 읊조리며 노트에 해당 내용을 옮겨 적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최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선에서 내용을 기록하던 책은 갑자기 글의 성격이 변하더니, 하나의 감상문처럼 되었다.

덕분에 글을 좀 더 몰입해 읽을 수 있었다.

“그랬다 시체조차 없었다. 수많은 사람이 거주한 도시 중의 도시였건만. 남은 것이라고는 한때 번영했다는 증거인 크고 화려한 건물뿐이었다. 가시처럼 돋아난 거대한 건물과 대리석으로 겉을 마감한 무덤, 그 위를 장식한 거대한 황금상, 거대하고 신비로운 짐승의 신상 같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해당 내용 중간에 삽화가 박혀 있었다. 삽화에는 당시 도시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는데, 책의 내용처럼 도시는 크고 웅장하며 화려했다.

그러나 동시에 지나칠 정도로 깨끗하기도 했다. 너무 깨끗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말이다.

책을 쓴 저자 역시 그러한 느낌이 나는지 해당 내용은 몇 줄에 걸쳐 자세히 기록했다.

지나친 청결함에서 오는 오싹함을,

과도한 침묵에서 오는 압박감을,

텅 빈 도시의 이질적인 기괴함을 말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도망치지 않고 도시를 계속해 둘러봤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몇몇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도시민이 남긴 것으로 추정된 기록물로, 해당 기록물에는 악마가 강림하기 전 징조(徵兆)가 적혀있었다.

손실이 많이 돼 모든 내용을 알 수 없었지만, 징조는 하나가 아닌 복수(複數)이며, 그중 첫 번째는 물이 붉게 물든다는 거였다.

흥미로운 이야기. 올리버는 해당 내용도 하나도 빠짐없이 노트에 옮겨 적으며, 두 번째 발견한 것을 읽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괴한 나무였다. 사람을 닮은 나무.

“난생처음 보는······나무가 아닌 딱딱한 살점······상처 사이로 검붉은 무엇인가······살아있는······뜨거우며, 고동치며, 부서져도 다시 재생······입으로 추정되는 부분에서 어떠한 속삭임이······의사소통은······기도? 저주?······불룩 솟은 부분에선······꿈틀대는······아무래도 이 나무는······.”

책에는 해당 나무에 관한 설명과 묘사가 몇 페이지에 걸쳐 기록돼 있었고, 올리버는 읊조리듯 낮게 웅얼거리며 해당 내용을 모두 적었다.

이에 관한 삽화 역시 있었지만, 앞의 다른 삽화와 달리 자세히 묘사는 되어 있지 않고, 형이상학적이고 흐릿하게 그려져 있어 구체적으로 무엇을 그린 건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마치 그리는 사람도 뭘 그리는지 모르듯.

올리버는 그 삽화 역시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 내 노트에 그렸다.

그렇게 첫 번째 악마의 서적인 [악마. 소환. 도시. 관찰. 기록.]을 마침내 다 읽을 수 있었다.

“끄응······.”

다 읽은 서적을 덮자마자 올리버는 피로를 느끼며 눈 가운데를 주물렀다.

책의 초반부와 중반부 역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지만, 후반부 도시 내부 이야기는 그 이상이라 더 집중했고, 더 피곤했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침대 위에 일어나 몸을 풀고, 칼로리바와 쿠키로 허기를 채우는 올리버가 생각했다.

에디스와 헤어진 후 그에게서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수상쩍은 장소를 전부 수색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니, 더욱 움직였고, 그 탓에 육체와 정신에 더욱 피로가 쌓였다.

사실 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걸 수도 있었다.

에디스가 준 자료는 수십 년 전 소문일 뿐.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았고, 설사 소문이 사실이라 하더라고 수십 년이면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수십 년이란 시간이 지나면 어떤 일을 지우기도, 풍화돼 저절로 사라지기도 충분한 시간이었으니.

즉, 처음부터 접근 방향이 잘못된 셈이었다.

우적. 우적. 우적.

한바탕 책을 읽고, 지난 일을 돌이킨 후 올리버는 묘한 탈력감(脫力感)을 느끼며 입에 간식을 쑤셔 넣었다.

뭐랄까. 원래 신대륙에 온 것은 요안나를 만나 상담을 받고 싶었던 것뿐인데, 지금 뭐하고 있나란 생각이 들며 기운이 쪽 빠졌다.

‘기사님과 지금 대화 나눌 수 없는 상태고, 악마 소환 역시 흥미롭긴 하지만 묘하게 힘이 빠지네······.’

올리버는 잠시 멍하게 침대 위에 앉았고, 몇 초 후 이대로는 위험할 거라 판단, 억지로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이 상태로 있으면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아무런 소득 없이 란다로 돌아갈 것 같았다.

아직은 피하고 싶은 사태.

올리버는 그래서 당장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첫 번째 할 일은 정리 정돈으로 아직 읽지 않은 악마의 서적을 정리해 빅마우스에게 먹이고, 다 읽은 [악마. 소환. 도시. 관찰. 기록.]에는 따로 표식을 남겼다.

다 읽었다는 표식을 말이다.

다 읽은 책은 나중에 에디스에게 받은 책에 먹일 예정이었다.

인육 요리사가 보유하고, 멀린이 인정한 악마의 책이라면 에디스에게 받은 책이 먹을 게 확실했으니, 책 내용이 추가될 터.

‘물론, 그전에 몇 번 더 읽을 거지만.’

올리버는 그리 생각하며 [악마. 소환. 도시. 관찰. 기록.] 서적 역시 빅마우스에게 먹여 정리를 끝마친 후, 배를 채우기로 했다.

칼로리바를 여섯 개, 쿠키도 한 접시를 먹었건만, 배가 고프면 더 고파졌지 부르진 않았다.

올리버는 입고 있던, 바지와 셔츠에 조끼, 재킷을 걸쳐 입은 다음 몸에 저장한 마력을 끌어올려 위장마법을 사용했다.

순수 마력 마법인 위장마법을 이용해 자신의 빼빼 마른 얼굴과 손 등을 가렸다.

에디스의 조언대로 혹시 모를 성기사나, 귀족 그룹의 추적으로 피하고자.

거울을 봐 미세한 부분까지 조정한 올리버는 호텔 식당에 방문해 자신의 지정석에 앉았다.

진짜 지정석은 아니었지만, 올리버가 며칠 동안 여기 머물며 두둑한 팁을 주자 하나의 지정석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종업원은 은색 쟁반 위에 신문을 가져와 기다렸다는 듯 올리버 앞에 내려놓았다. 시간을 아낄 겸 음식이 나오는 동안 신문을 읽자, 어느 순간부터 종업원들이 알아서 챙겨줬다.

“오늘 신문입니다. 손님.”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종업원의 친절에 인사와 팁으로 보답했다.

종업원은 올리버에게 오늘의 메뉴를 추천했고, 올리버는 그것을 주문했다.

물러나는 종업원. 혼자 남게 된 올리버는 종업원이 준 신문을 읽었다.

신대륙의 신문은 란다와 같은 구대륙 신문보다 구성이 단조로웠지만, 그래도 신문이었기에 흥미로운 내용이 한두 개 정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드디어 왕자를 비롯한 귀족 그룹에 속한 귀빈들이 이 도시를 방문했다는 거였다.

‘그래서 낮에 소란스러웠던 거구나.’

올리버는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 신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도시를 방문한 귀빈은 작위를 가진 귀족과 중앙 의회 관료로 모두 친(親)왕실 인사며, 이 무리를 대표로 끌고 온 사람은 아직 10대 중반인 둘째 왕자 알버트 9세라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역시 형처럼 프로메테우스 사(社) 주식을 적잖게 보유했다.

‘왕자라······. 생각보다 평범하네.’

신문에 찍힌 알버트 9세를 살펴보며 올리버가 생각했다.

잘생기고, 깔끔하며, 오랜 교육으로 기품이 느껴졌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눈은 두 개, 입과 코는 하나, 팔다리 역시 두 개씩이었다.

다른 귀족이나 중앙 인사도 마찬가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였지만, 올리버는 뭔가 실망스러웠다.

귀족과 왕족은 특별한 피를 가졌다고 심심찮게 들어 뭔가 남다른 게 있는 줄 알았건만, 보통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사진으로 봐서 그런가?’

혹시 몰라 올리버는 사진을 자세히 살펴봤다. 어쩌면 자기가 놓친 게 있을지 몰랐으니.

다행히 놓친 걸 찾을 수 있었다. 비록, 올리버가 생각한 그런 건 아니었지만.

“필립 중장님?”

올리버가 여러 인파 속에 있는 필립 중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5, 60대지만, 2미터를 가뿐히 넘기는 근육질 거구의 사내는 흑백사진의 특성과 수많은 인파 탓에 잠시 가려졌지만, 인지하자마자 놀라운 존재감을 내뿜으며 올리버의 눈을 비집고 들어왔다.

도대체 마법사인 그가 왜 있나 싶은 그때, 누군가 다가와 말했다.

“로어 가문은 마법사지만 동시에 연합 왕국의 군사 부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정치적 가문. 왕실과 연이 깊답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설명에 올리버는 앞을 봤다.

그곳엔 처음 보는 미모의 여성이 서 있었다.

밤 갈색 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진 담백하지만 아름다운 여성. 그 외모를 증명하듯 호텔 객실 내 몇몇 남성이 여성에게 눈길을 빼앗겼고, 올리버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다소 달랐지만.

처음 보는 여성이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혹시 이브(Eve)입니까?”

올리버가 여성의 본질을 꿰뚫으며 물었다.

여성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예, 맞습니다. 물론, 그 이브(Eve)와는 다르지만요.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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