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 허무한 재회 (2)
수많은 고용인이 짐을 챙기느라 바쁜 대저택 안에서 에디스가 말했다.
자신이 보유한 프로메테우스 사(社)의 주식을 모조리 팔았다고. 그것도 3배 가격으로 말이다.
“근래 내가 한 거래 중 가장 남는 장사였어. 내 양심을 아주 비싸게 팔았거든. 원래 그렇게 비싼 물건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에디스가 자랑스럽게 미소 지었다. 싸구려 물건을 비싸게 팔아넘긴 장사꾼처럼.
“원래는 프로메테우스 사(社)를 설립한 케니 님을 만나러 간 거 아닙니까? 확인하고 싶으신 게 있으시다고······.”
“원래는 그게 맞지. 그런데, 케니 그 머저리가 정말 거세라도 당한 건지 내가 보낸 블러핑에 왕실 비서를 쪼르르 불러놨더라고. 그래서 바로 거래를 제안했어. 내 최대 목표는 결국 돈 버는 거니까.”
아······. 올리버는 탄성을 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주주총회 때문에 에디스가 자신을 고용한 건 맞았지만, 그 주주총회도 결국 이익을 위한 것.
지분 싸움에서 귀족 그룹의 승리가 확실시된 지금 이 거래가 최선의 선택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다른 주주분들은 괜찮을까요? 에디스 님 지분까지 저쪽으로 넘어가면 아예 못 이기실 텐데요.”
에디스가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다.
“첫 번째, 클로드가 귀족 그룹 편을 들기로 한 시점에서, 이미 지분 싸움은 결정 난 거나 다름없어. 애당초 프로메테우스 사(社) 소문을 캐려던 게 지분 싸움으로는 답이 없다는 거였으니. 이해?”
“이해했습니다.”
“두 번째, 다른 주주들은 난 신경 안 써. 투기꾼이 돈 되는 선택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 만약, 욕하는 놈이 있다면 무시해도 돼. 그놈은 제대로 된 투기꾼도 아닌 머저리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대충 이해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이게 가장 중요한 거야.”
“뭐죠?”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거지. 넌 그냥 고용인 나부랭이인데, 왜 그런 걸 신경 써?”
“아······. 맞는 말씀이군요.”
올리버가 동의했다. 확실히 자신이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자신은 일개 고용인이었으니.
그러니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했다. 천사의 집 종업원들에게 배운 편안한 사회생활을 위한 실전형 아부를 말이다.
짝. 짝. 짝.
“축하드립니다. 프로메테우스 사(社)의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거래에 성공하셨으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손뼉 치며 말하는 올리버. 에디스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뭘 하려고 한 건진 모르겠지만 하지 마. 소름 끼친다.”
“예.”
“뭐······. 어쨌건 이게 도움이 되긴 했어.”
에디스가 품 안에서 종이를 꺼냈다. 올리버가 만든 포털마법이 깃든 종이였다.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 에디스에게 맡긴 것으로, 통신장치를 통해 신호를 주면 저것을 매개로 바로 넘어가 에디스를 지킬 계획이었다.
“덕분에 핑크맨 앞에서도 배짱부릴 수 있었어. 인정하기 싫지만 네가 도움이 된 걸 인정해 줄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틀린 말이 하나 있어.”
“예?”
“프로메테우스 사(社)의 정보를 아예 못 얻은 건 아니야. 귀족 그룹에서 원하는 건 단순히 돈 몇 푼 챙기려는 게 아닌 걸 확인했거든.”
“그렇습니까?”
“그래. 돈 몇 푼 더 버는 게 목표면 내 주식을 세 배 가격으로 사주지 않았을 테니 말이야.”
오······. 맞는 말 같았다. 현재 프로메테우스 사(社)의 주가는 최고점.
즉, 거품이 낄 대로 낀 상태였다. 그런 가격에 세배를 얹어 줬다면 그 액수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것도 에디스가 보유한 양이면 더더욱.
돈이 목적이었다면 애당초 이런 거래는 성립할 수 없었다.
‘사실상 에디스 님에게 번 돈을 다 가져다 바치는 거였으니.’
포레스트의 교육과 에디스에게서 들은 정보로 나름 돈 계산을 마친 올리버가 판단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귀족 그룹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뭘까 라는.
“나야 모르지. 이제는 관심도 없고.”
올리버가 의문을 표하자 에디스가 정말 관심 없다는 목소리로 답했다.
“당연하지. 난 엄청나게 이익을 봤으니까. 재산이 배로 불어날 만큼. 프로메테우스 사(社)가 홍인(紅人)으로 마석을 만들든, 악마와 거래하든 더 이상 내 알 바 아니지······. 왜? 좀 그래?”
에디스가 뒤룩뒤룩 살찐 양팔을 벌리며 물었다. 올리버는 그런 에디스를 바라보곤 대답했다.
“아뇨······. 제가 누굴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거든요.”
“그래?”
“예······. 가끔씩 주제넘게 그러곤 하는데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올리버가 방금 전에 만난 요안나를 떠올렸다. 자신으로 인해 번민과 괴로움에 빠진 그녀를.
“잘 아네······. 어쨌건 귀족 그룹이 원하는 건 돈 이상이라는 거야. 자기들이 벌 돈을 내게 전부 줬으니······. 물론, 그게 뭔지는 더 이상 내 알 바 아니니까.”
“혹시 그래서 떠나시는 겁니까?”
“뭐, 그렇지. 자의(恣意)로 떠나는 것도 있지만, 저쪽에서 하루라도 빨리 꺼져달라고 했거든. 내 양심을 비싸게 사줬으니 그 정도는 들어드려야지.”
“이렇게 빨리 헤어진다니 뭔가 아쉽네요.”
“뭔 개소리야? 너도 당연히 따라와야지.”
“예?”
“예? 는 씨발. 바늘이 가면 실도 따라와야지.”
“저희가 그런 관계였나요?”
“오, 씨발 새끼. 상처받는데?”
에디스가 진심으로 말했다.
“불쾌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에디스 님이 가시는데 저는 왜 따라가야 하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요.”
“넌 지금 내게 고용돼 있잖아? 난 더 이상 프로메테우스 사(社)에 관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떠나는 건데, 네가 남으면 존나 이상해 보이잖아?”
“음······. 어차피 전 의뢰 단위로 계약하는 해결사니 괜찮지 않을까요?”
“란다였으면 먹혔을 주장이지만, 여긴 란다가 아니거든. 거기다 상대측은 왕실과 귀족. 그런 논리는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별한 피를 타고났다고 착각하는 인간들은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기보다, 자기들 편한 대로 보려고 하거든. 필시, 내가 수작 부린다고 생각할걸?”
진심.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올리버는 난감해졌다. 원래는 이 일을 끝내고 요안나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떠나야 한다니······.
“뭐가 문제야? 그 성기사를 만났다면서?”
“아······. 예, 만나긴 했는데, 아직 제대로 대화 나누지 못해서요.”
“본인은 할 말 없다며?”
에디스가 재차 반박했고, 올리버는 침묵했다. 실제로, 요안나는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했기에, 올리버 역시 용무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에디스를 따라 떠나는 게 여러모로 깔끔.
분명 올리버도 그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이상하게 아직 떠나기 아쉬웠다. 너무 말이다.
“왜? 이야기 들어보니까 그 성기사와의 만남은 허무하기 그지없었던 거 같은데?”
“예상치 못한 건 맞지만 허무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 안타깝네. 난 몹시도 허무했는데.”
“무엇이 말씀입니까?”
“케니 말이야. 좀 못 본 사이 거세된 개새끼처럼 변했거든. 아주아주 실망스럽고 허무했어. 인생무상. 분명, 젊은 시절에는 나보다 더한 미친놈이었는데 말이야.”
무슨 이야긴지 이미 들어 대충 알고 있었다.
그 케니란 사람은 투기판에서 막 재산을 모은 에디스에게 그렇다 할 근거도 없이 자신에게 전 재산을 투자하라고 종용한 사람이었으니.
당시 투기가 만연하던 시대 상황을 고려해도 미친 소리. 그랬기에 에디스는 케니에게 투자했다.
“미친 시대였으니, 가장 미친놈이 좋을 것 같았거든. 예상대로 큰돈을 벌었고. 그런데, 지금은 내가 보낸 블러핑에 지레 겁먹곤 자기가 혐오하던 인간을 몰래 불러 숨겨뒀지. 뭐, 덕분에 큰돈을 만지긴 했지만, 실망스러운 건 매한가지야. 사람은 결국 실망하게 되는 존재인 거 같더라고.”
평소 하던 반사적인 불평이 아닌지, 에디스는 진짜로 실망감과 허무함을 빛냈다.
“꽤······. 친한 친구분이셨나 보군요.”
“······친구는 아니야. 초창기 사업 파트너지. 돈이 생기며 사랑도 없고, 우정도 없다는 걸 알게 됐거든. 사랑과 우정은 가난뱅이들이 돈 대신 만든 허상에 불과해.”
“아쉽네요. 전 에디스 님과도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요.”
“······아부하는 법도 배웠어?”
“예, 천사의 집 종업원분들께 배웠습니다. 다만, 이건 진심입니다. 아부는 아까 전에 박수 친 겁니다.”
짝. 짝. 짝. 올리버가 다시 손뼉을 쳤다.
“감동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군. 그 보답으로 조언해줄까? 내가 가자고 할 때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와. 내가 떠나는데 남으면 나 이상으로 너도 곤란할 거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성기사님들께서 절 끈질기게 조사할 테죠.”
“세상을 너무 긍정적으로 보는데? 조사 그 이상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왜 안 하는 거야? 지금 귀족 그룹도 널 안 좋게 보고 있는데?”
“성기사님들이야 그렇다 쳐도, 귀족 그룹에서 절 왜 해치겠습니까? 에디스 님이 떠나면 전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데요.”
“프로메테우스 사(社) 뒷조사를 한 인간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 해칠 이유는 차고 넘치지. 귀족이나 왕실 인사들은 그보다 사소한 거로도 사람을 죽이기도 하거든.”
“음······.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남겠다는 거구만.”
“성기사님 만나는 것 외에도, 여기서 정말 악마가 소환되는 건지 알고 싶거든요. 뭣보다······.”
“······?”
“제게 떠날 것을 조언하신 거라면 제 의견을 존중해준다는 뜻 아니십니까?”
올리버가 그답지 않게 말의 숨은 뜻을 간파했다. 에디스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
“미친놈.”
에디스는 그리 말하곤 탁자 위의 독한 술을 마시더니 대뜸 말했다.
“내 얼굴에 주먹을 갈겨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말 그대로야. 얼굴. 주먹. 갈겨. 이해하기 어려워?”
“아뇨, 제 말뜻은 그게 아니라-”
“-이 도시에 남아서 볼일 보고 싶으면 닥치고 갈겨! 의뢰를 끝내고 마는 건 내가 판단하는 거니. 만약, 안 갈기면 넌 무조건 나랑 같이 란다로━”
━탕!
에디스가 말하는 도중 올리버는 조와 테렌스에게 배운 대로 가볍게 잽을 날려 에디스의 코를 정확히 맞췄다.
방아쇠를 당긴 총처럼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
에디스는 코를 부여잡은 채 뒤로 넘어져,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개······미친! 빌어먹을!! 오······망할······! 진짜 아프잖아?!!”
순수한 분노와 짜증. 올리버는 변호하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많이 아프신가요?”
“미친 또라이 새끼가! ······주먹도 더럽게 맵네······.”
에디스는 뒤룩뒤룩 살찐 몸으로 일어났다. 코뼈가 부러진 건지 엄청난 양의 코피를 뚝뚝 흘렸다.
“끄아아아아······! 아직도 시큰거려. 시큰거린다고!! ······너 감정 실었지?”
에디스가 아파하며 추궁했다. 다행히 통증으로 인해 짜증은 낼지언정, 원망 같은 감정은 없는 듯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왜 때리라 하셨는지요?”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을 올리버가 한 박자 늦게 했다. 에디스는 손수건으로 코를 부여잡으며 답했다.
“······이 정도는 해야 내가 널 데려가려고 노력한 티가 나잖아? 이 정도도 안 하면 내가 개수작 부린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제대로 일 안 한 거라 생각하겠지.”
일리 있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과하지 않나란 생각도 들었다.
“미리 선을 그어놓는 것뿐이야. 너 왠지 사고 칠 거 같거든.”
“조심할 생각입니다.”
“내 얼굴에 주먹 갈길 정도면 조심한다 해도 뻔하지.”
에디스가 바로 핵심을 꿰뚫어 보았다. 여기서 올리버가 무엇을 할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으나, 에디스이 얼굴에 주먹을 갈긴 것으로 볼 때 그 끝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에디스가 검지로 올리버의 가슴팍을 찌르며 경고했다.
“난 널 데리고 가려했는데, 네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어겨 내 얼굴에 주먹을 갈긴 거야. 알겠어?”
“······계약을 어긴 건 아니니, 그 부분은 빼면 안 되겠습니까?”
“미친 새끼가 진짜······. 난 코뼈가 부러졌다고!”
에디스가 시뻘겋게 물든 손수건을 내리며 올리버의 주먹에 부러진 코를 보여줬다. 아직까지도 코피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흘러나왔다.
“넌 이제 나가. 난 떠날 준비 하자마자 네가 멋대로 갔다고 저쪽에 이야기할 거니까. 경고하는데, 잘 숨는 게 좋을 거야. 성기사들이 바로 들이닥칠지도 모르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럼, 배웅하지 않고 바로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그래, 꺼져······. 아, 잠깐만.”
에디스가 올리버를 멈춰 세우곤 품에서 쪽지를 하나 꺼내 던졌다. 올리버는 그 쪽지를 날렵하게 낚아채 읽어보았다. 웬 통신번호가 적혀있었다.
“이건 뭐죠?”
“헤임달 쪽 통신번호. 난 더 이상 필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