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63화 (463/633)

463. 허무한 재회 (1)

“······오랜만입니다. 기사님.”

올리버가 익숙해진 어둠 속에서 인사했다.

눈에 성법이 깃든 요안나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두 눈동자로 올리버를 말없이 바라봤다. 놀란 표정과 감정을 빛내며.

아무래도 여기서 자신을 만날 줄 몰랐던 것 같았다.

그건 올리버도 마찬가지. 그러자 의문이 생겼다.

자신이야 그렇다 쳐도 요안나는 여기 무슨 일로 온 것이란 말인가?

그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올리버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요안나의 감정이 단순히 놀라는 것을 넘어 혼란과 죄책감, 후회, 당혹 등. 여러 감정으로 빛났기에.

마치, 독이 든 쿠키와 커피를 들켰을 때의 노라와 비슷했다.

잘못을 저지르고 들킨 십 대 초중반의 소녀.

기이하게도 성기사 직위까지 받은 요안나는 한순간 그 소녀와 겹쳐 보였다. 매우 연약해 보이던 소녀와.

올리버는 요안나가 스스로 감정을 다독일 때까지 입을 다물기로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1초, 2초, 3초, 4초, 5초······. 얼마인지도 모를 시간이 지났을 때 요안나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뭘 하고 계시는 거죠?”

정말 정말 오랜만에 만난 것치고는 사무적이고 평범한 첫마디. 허나, 나쁘지 않았다.

올리버도 말주변이 좋은 편이 아닌지라, 이런 대화가 오히려 좋았다.

올리버가 답했다.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주주총회에 고용돼 이곳에 오셨다고요?”

미리 들었는지 요안나는 알고 있었다. 하긴, 항구에서 만난 성기사가 이야기했을 테니.

그런데 올리버는 그러한 사실보다 묘하게 눈을 내리깐 요안나의 모습이 더 신경 쓰였다. 과거와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옛날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당하고, 확신에 차 있었건만, 지금은 아니었다.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움츠러들었으며, 길을 잃은 사람처럼 확신은 사라지고 대신 혼란이 자리 잡은 상태였다.

란다 시(市) 내무부 장관 폴 카버와 에디스에게서 들은 소식과 어딘가 달랐다.

이곳 퍼스트 스텝에서 그 누구보다 용맹하게 임무에 임해 실력은 향상되고, 여러 공적을 세웠다고 했는데······. 거기다 빤한 성기사 봉급에도 주변의 기부금을 받아 이곳 빈민가에 구호품을 나눠주고 개인 순찰까지 돈다고 했다. 그래서 성녀라는 별명도 얻었고, 과거보다 더 성실하고 왕성한 활동.

그래서 올리버는 보복성 인사 조치를 이겨낸 거라 판단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듯했다.

올리버는 바로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었지만, 처음 노라를 마주했을 때처럼 설명하기 힘든 어려움을 느끼며 거짓말했다.

“······예.”

“무슨 일을 하고 있기에 이 건물에 여기 오신 거죠?”

“음······. 업무와 관련된 거라 자세히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올리버가 또 적당히 말을 둘러댔다. 다만, 방금과 달리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성기사에게 프로메테우스 사(社)의 비밀을 이야기하는 건 시기상조였기 때문이었다.

에디스가 이 부분에 관해서는 입조심하라고 단단히 경고했다. 악마와 관련된 것이니, 자칫 잘못하면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빠질 수 있었기에.

올리버의 대답에 요안나는 석연치 않은 감정을 빛냈지만, 과거와 같이 깊이 캐묻진 않았다.

역시 착각이 아니었다. 그녀는 과거보다 꺾이고 금이 간 상태였다.

“미안하지만 나가주셔야겠어요······. 이 건물은 총독부의 관리하에 있는 건물이라서요.”

올리버는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역시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핏자국과 손톱자국밖에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혹시, 체포하실 건가요?”

“······아뇨.”

요안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리 대답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과거와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 올리버는 생소함과 궁금증을 동시에 느끼며 그녀의 등 뒤를 따라갔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어둠 속에서 걷는 요안나와 올리버. 침묵과 어둠 탓에 발걸음 소리만 크게 울렸고, 올리버는 요안나의 뒷모습을 향해 입을 열었다.

“기사님께선 여기 어떻게 오신 거죠?”

“······이곳에 수상한 사람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아, 그러고 보니 빈민가 개인 순찰을 하시고, 구호품도 나눠주시죠?”

“······어떻게 아신 거죠?”

요안나가 가다 멈추며 물었다. 그녀로서는 합당한 의문.

올리버가 답했다.

“고용주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폴 카버에게서 요안나의 평소 생활과 평판을 듣긴 했지만, 에디스에게서도 어느 정도 들었으니.

다행히 요안나는 납득하는 눈치였다.

“······그렇군요.”

요안나는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마치, 올리버와 깊게 대화하길 꺼리는 것처럼.

올리버는 그런 요안나의 뒷모습을 보며 억지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 상태로는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듯해.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

“에디스 님에게 들었거든요. 수많은 홍인(紅人) 흑마법사와 싸우며 도시를 지키고, 자진해 빈민가를 순찰해 도시 치안에 이바지하신다고요.”

“······.”

“또, 개인 봉급과 기부금으로 부족하게나마 구호활동도 하신다고요.”

“······.”

“그것도 에디스 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자기도 거기에 기부 제안을 받았다면서요. 물론, 자기는 기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요.”

사실이었다. 에디스 역시 여러 기부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돈은 썩어 날 정도로 많아도, 자신은 절대 남을 돕지 않겠다고 말이다.

일종의 신념이라고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외에도 올리버는 다른 이야기를 더 했고, 요안나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 덕분에 어느새 노예수용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별빛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요안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만 말씀하세요.”

“예?”

“그만 말씀하시라고요. 제가 이곳 신대륙에서 뭘 하고 있는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세요.”

요안나가 손톱 밑에 박힌 가시와 같은 죄책감을 빛냈다.

올리버는 그녀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자신답지 않게 바로 알아맞힐 수 있었다.

과거, 그녀가 이와 똑같은 감정을 보인 적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진 성당 올리버가 로스번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말이다.

계속해 말을 하던 올리버는 요안나의 감정과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었고,

침묵하던 요안나는 강철 건틀릿을 낀 손으로 눈가를 만지더니 입을 열었다.

“칭찬받을만한 행동 아니니까 그만 이야기해요. 들을수록 창피하네요.”

“그런가요?”

“예, 그래요.”

요안나가 몸을 돌려 올리버를 바라봤다. 그녀는 슬픔, 죄책감, 후회, 자기혐오란 감정을 빛냈고, 이를 증명하듯 눈시울이 살짝 촉촉해져 있었다.

“제가 이곳에서 행한 모든 행동은 그저 죄책감을 덜려고 한 것뿐이거든요. 성당에서의 죄책감요.”

이번엔 올리버가 침묵했다.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알 수 없어.

그러는 사이 요안나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마치, 고해(告解)라도 하듯.

“저, 전······. 그 성당에서 아이를 외면했죠. 뒤늦게 행동하려 했지만 실패했고요.”

“예, 들었습니다.”

올리버가 성기사 엘튼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하며 대답했다.

그는 올리버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요안나가 상부에 마법사들의 인체 실험 조사 건을 주장하다 이곳으로 발령 났다고 알려주었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때때로 세상과 타협해야 해······. 우리라고 눈과 귀가 없지 않아. 이 도시의 추악한 면을 모르지 않고. 하지만, 우린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몸. 자신만의 알량한 정의를 가지고 움직일 수 없어.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사건에서 멀어져 해결할 기회조차 사라지고 말지.’

그와 동시에 올리버는 뒤늦게 떠올렸다. 자신을 만나고 요안나가 괴로워하고, 번민했다는 사실을.

올리버는 그제야 요안나가 달라진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 때문이었다. 자신이 그녀에게 죄책감과 후회, 번민 등을 심은 거였다.

요안나가 입을 열었다.

“들은 대로예요. 전 신을 감히 입에 담고 불의를 외면했죠. 뒤늦게 고쳐보려 했지만 실패해 여기로 왔고요. 그래서 여기서라도 열심히 하는 것뿐이에요. 그럼, 제 죄가 조금이라도 사해지지 않을까 해서요······.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죠.”

요안나는 말을 하면 할수록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치, 구더기를 씹듯 혐오감과 거부감을 빛냈다.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게.

그 감정 탓인지 올리버는 성당에서 요안나에게 한 자신의 말을 돌이켜 봤다.

약간 주제넘었단 생각이 들었다.

올리버가 고민하는 사이 요안나는 말을 끝마쳤다.

“······그러니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을 보는 것만으로 제 죄가 떠올라 괴로우니까요. 빼빼 마른 당신 얼굴을 봐도 왜 그런지 걱정된다기보단 그냥 괴로워서 사라져줬음 좋겠어요······. 미안해요, 이기적이라서요.”

진심. 그러나 올리버는 입을 열었다. 자신은 대답을 들어야 했다.

“거짓말했습니다.”

“······예?”

“이 도시로 온 이유 말입니다. 주주총회로 에디스 님에게 고용된 건 맞지만, 그것 때문에 이 도시에 온 건 아닙니다. 오고 나니 고용된 거에 더 가깝죠.”

“······뭐 때문에 온 거죠?”

“기사님께 상담하려고 왔습니다······. 옛날에 제가 망가졌다고 말씀하신 적 있지 않습니까? 당시에는 크게 상관없었는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져서요. 그래서 거기에 관해-”

“-죄송해요. 제가 함부로 말했네요.”

“······기사님을 탓하기 위해 찾아온 게 아닙니다. 그저 조언을 구하기 위해 온 겁니다.”

“죄송하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예요. 제가 당신께 해드릴 조언은 없어요.”

“이유가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저도 뭐가 옳은지, 뭐가 그른지 잘 모르겠거든요.”

요안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주 슬픈 미소를.

본능적으로 올리버는 단순히 성당 일 때문에 저러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게 뭔지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다는 거였고.

“저는-”

“-주주총회가 끝나는 대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어째서죠?”

“항구에서 일어난 일 들었어요.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곳 성기사들이 모두 당신을 주시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한 게 잊히지 않는 거 같아요.”

망신이라. 하긴, 에디스의 개입으로 성기사가 흑마법사를 대 놓고 놓아줬어야 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망신일 수도 있었다.

“주주총회가 끝나고도 여기 남아 있으면, 필시 끈질긴 조사를 받게 될 거예요. 이곳 신대륙에선 흑마법사들의 활동이 남달라 성기사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거든요.”

“예, 알고 있습니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역시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흑마법사가 날뛰니, 성기사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라. 꼭 무슨 공생 관계 같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요안나의 감정이었다.

이곳 신대륙의 홍인(紅人) 흑마법사는 구대륙 이상으로 사나운 존재들. 송장인형을 이용해 항구에서 자폭테러를 가하려는 것만 봐도 쉬이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요안나는 그들을 적대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오히려 혼란과 동정, 망설임마저 보였다.

과거와 달라진 감정 상태.

요안나는 드디어 자기 이야기를 다 했다는 듯 물러나려 했다.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경고했다.

“홍인(紅人) 흑마법사들이 악마 소환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

“물론, 확실한 건 아니고, 저도 어디서 들은 거지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기사님도 조심하십시오.”

***

“그런 중요한 정보를 이야기했다고?”

복귀한 올리버의 보고를 들은 에디스가 말했다. 어째서인지 저택 안의 고용인들은 짐을 챙기는 등 분주했다.

“예, 죄송합니다.”

“평소 같았으면 개새끼 소새끼 온갖 욕을 했을 테지만, 지금은 바쁘고, 아무래도 좋으니 그냥 넘어가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인지요? 아무래도 좋다니요.”

“말 그대로야. 주주총회. 더 나아가 프로메테우스 사(社), 이곳 신대륙은 더 이상 나랑 아무 상관없는 곳이 됐거든. 난 이 시뻘건 땅을 떠날 거야.”

“아직도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보유한 프로메테우스 사(社) 주식을 모두 팔았다는 뜻이야. 어쩌다 보니 왕실 대리인과 거래했거든. 내가 보유한 주식을 3배가에 몽땅 팔기로 했어.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조건이 뭐죠?”

“이제 좀 말귀를 알아듣네? 대신 프로메테우스 사(社)의 추잡한 비밀을 더 이상 캐지 않기로 했어. 양심의 가격인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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