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 황금의 주술사 (2)
사람을 황금으로 바꾸는 황금의 주술사.
신대륙에 흔해 빠진 여러 괴담 중 하나로, 에디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뭔지 대충이나마 알 거 같았다.
기껏해야 가닥 정도였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빌어먹을······.’
“뭔가 짚이시는 게 있습니까?”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에디스를 향해 올리버가 물었다.
에디스는 바로 대답하지 아니하고 올리버를 빤히 노려봤다.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그는 뭔가 불쾌해하고 있었다.
“······왜 물어보는 거지? 어차피 내 감정을 보면 알잖아?”
불쾌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에디스.
짜증이 섞이긴 했지만,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올리버는 에디스의 감정 변화를 포착했다.
“여쭤보는 게 예의인 거 같아서요.”
“그놈의 예의. 그래서 사람들이 흑마법사를 싫어하는 거야. 속을 훤히 꿰뚫어 보는 인간을 어느 누가 좋아하겠어?”
갑자스러운 매도(罵倒). 허나, 그와 별개로 올리버는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이 흑마법사를 싫어하는 건 사람을 재료로 쓰고, 악마와 접촉하기 쉬워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에디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짜증 나는구만. 이렇게 욕을 하는 데도 기분 나빠하긴커녕 뭔가 배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니.”
“실제로 배웠습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사소하지만 재밌는 사실을 알려준 에디스에게 감사를 표했다. 비꼼도, 조롱도 아닌 순수한 감사라 더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혹시, 짜증이 나신 이유가 괴담과도 관련 있는 겁니까? 황금의 주술사 말입니다.”
황금의 주술사.
망태기 할아버지, 물고기 인간, 사이렌(Siren), 비스크 인형(Bisque Doll), 부기맨, 호두까기 인형과 더불어 신대륙에 퍼진 괴담 속 인물.
에디스의 말에 따르면 게으른 인간을 납치해 황금으로 바꾸는 존재라 하였는데, 처음 에디스는 푼돈으로 노동자를 부리기 위해 생긴 괴담이라 했다.
그런데 사실 그게 아닌지 에디스는 묘한 감정을 빛냈다.
약간의 충격, 당혹감, 찝찝함 같은.
도대체 뭐길래 에디스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올리버로서는 궁금할 따름이었다.
긴 침묵 후, 에디스가 입을 열었다.
“······뭔가 짚이는 게 있긴 있어.”
“뭐죠?”
“근데, 지금 말할 순 없어. 말 그대로 짚이는 수준이거든.”
올리버는 그럼에도 가르쳐달라 말하고 싶었지만, 에디스의 감정이 생각보다 단호해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캐묻는 대신 좀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대화를 진행했다.
“란다로 돌아가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아, 죄송합니다. 다만, 제 머리로는 돌아가는 게 가장 상책일 것 같아서요.”
올리버가 말했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귀족 그룹에 비해 불리한 상황에서 판을 흔들 수 있는 대주주 클로드까지 귀족 그룹 편을 든다고 했으니, 사실상 전통 자본가 그룹과 졸부 그룹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주주총회는 기적을 발휘하기 힘든 명백한 숫자 싸움이었으니. 거기다 홍인(紅人) 흑마법사가 악마까지 소환하려 한다?
소환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 수는 없었으나, 얻을 게 마땅치 않은 현시점에서는 란다로 돌아가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에디스가 되물었다.
“내가 돌아갈 거 같아?”
“음······. 안 돌아가실 거 같네요.”
올리버가 에디스의 감정을 읽으며 답했다. 그는 결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돈에 대한 탐욕과 이익에 대한 집착을 넘어 어떠한 신념마저 내보였다.
“맞아. 난 안 돌아갈 거야. 이대로 아무것도 못 챙기고 도망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거든. 태어난 것밖에 업적이 없는 놈들에게선 더더욱······. 넌 어떡할 거야? 도망칠 거야?”
“저 말씀입니까?”
“그래, 너 말씀입니다. 나더러 꼬랑지 말고 개새끼처럼 도망치라고 했으니, 넌 도망칠 생각이야? 흑마법사 주제 악마가 무서워서?”
단순하지만 동시에 생각할 거리가 많은 질문.
올리버는 약간 고민한 후 답했다.
“음······. 솔직히 말해 무섭습니다.”
“뭐?”
“악마 말입니다. 저번에 만나봤는데, 무섭더군요.”
올리버가 과거 조셉의 비밀 제단과 갈로스의 기계 탑에서 본 악마를 떠올리며 말했다.
“······악마를 만나본 적 있다?”
“예, 기껏해야 그림자를 간접적으로 만난 수준이었지만요.”
시체가 뒤엉켜 나타난 말을 탄 노인과 안개 형태로 이뤄진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악마를 떠올리며 올리버가 답했다.
악마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그것이 현세에 직접 강림한 것이 아닌, 그림자와 같은 간접적인 걸 알 수 있었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올리버는 아무리 노력해도 맞설 수 없는 존재임을 직감했다.
둘 모두 자신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했음에도 두렵기 그지없었기에.
“충격적이군. 그림자든 뭐든 악마를 봤다는 게······. 아니지, 오히려 너니까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
에디스는 악마를 봤다는 현재로서 다소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를 선뜻 믿어줬다. 그러나 별개로 그는 여길 떠날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어쨌건 다시 말씀드리면 전 흑마법사지만 악마는 두렵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맞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안 들거든요.”
“도망칠 거란 이야기야?”
“아뇨, 그건 아닙니다. 일단, 에디스 님과 약속이 있고, 또 개인적으로 악마가 소환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거든요.”
“미친 새끼가 따로 없군.”
에디스가 온 마음을 담아 평했다. 무서운 것도 진심인데, 직접 보고 싶다는 것도 진심이었으니, 미친 새끼가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가 아랑곳하지 않고 덧붙였다.
“또, 개인적인 볼일이 있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신대륙에 볼일이 있다고 했지? 관심이 없어 안 물었는데, 뭐지?”
“만나고 싶은 분이 있었습니다.”
“허······. 어떤 놈인데 직접 여기까지 왔지?”
올리버가 답했다.
“요안나 님이라고, 성기사입니다.”
“······성기사? 요안나?”
에디스가 미간을 찌푸리고, 의심을 빛냈다. 여태껏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예······. 아십니까?”
“알고말고. 이 동네에서 나름 유명한 아가씨거든. 용맹하고 자비로운 성녀. 그 여기사는 왜? 아는 사이야?”
“예, 어쩌다 보니 안면이 있는데, 그분께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걱정하진 마십시오. 에디스 님의 일이 끝날 때까지는 개인 행동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에디스를 안심시키기 위해 올리버가 말했다.
현재 계약으로 에디스와 묶인 상태. 요안나를 만나다 문제가 생기면 에디스까지 곤란할 테니 일이 끝날 때까지 참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에디스는 그런 걱정 따위 하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을 빛냈다.
“상담할 게 뭔데?”
“예?”
“상담할 게 뭐냐고. 흑마법사가 성기사를 만나 상담할 거라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건데?”
“말씀드리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지루하실 텐데요?”
“지루한지 아닌지 그건 내가 판단해. 이야기해 봐. 이야기에 따라 네 일도 빨리 풀릴 수 있잖아?”
에디스가 말했고, 올리버는 그의 감정 상태를 확인 후 입을 열었다.
“이야기하자면 길어지는데, 이번 X구역 재개발 사업에서 이야기가 시작입니다.”
***
X구역 재개발 사업부터 서두를 땐 올리버는 그 과정에 있었던 노라와 그녀의 오빠 일까지 전부 설명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올리버가 느낀 무감정과 이기적인 슬픔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설명을 다 들은 에디스가 입을 열었다.
“뭔 병신 같은 소린지 전혀 이해가 안 되네.”
에디스가 온 마음을 담아 말했다. 정말로 말이다.
그는 극심한 답답함과 몰이해를 빛냈다. 도저히 올리버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그러니까 네 말은 널 독살하려고 했던 잡년의 오빠를 죽인 것에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아 이에 관해 성기사에게 상담하러 왔다는 거지? 겸사겸사 어떻게 지내는지도 보고?”
“요약하면 대충 그렇습니다.”
“이거 완전 진짜 미친놈이잖아······.”
에디스는 자신이 느낀 감정을 증명하듯 탁자 위에 놓인 독한 술을 따 병 채 들이켰다.
올리버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고, 에디스는 그런 올리버를 보더니 울화통을 터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놈이 하는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엉터리야!”
“그렇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노라라는 계집 오빠는 애당초 일하는 과정에서 죽인 건데, 네가 왜 미안해해야 해? 해결사라는 게 죽이는 거 아니면 죽는 게 일인데, 그럼, 뒤진 놈 잘못이잖아? 그게 싫으면 애당초 그 일을 하지 말았어야지!”
올리버도 동의했다. 노라의 오빠인 니코를 죽인 것은 분명 일할 때로, 개인적 감정은 전혀 없었고 서로 자기 일을 한 것뿐이었다.
설사 반대 결과가 나온다 해도 아쉽긴 하겠지만, 자신 역시 딱히 원망스러울 것 같진 않았다.
“근데도 그 계집애는 널 죽이려고 했지. 제 오빠가 죽인 인간은 생각하지도 않고. 내가 이래서 여자들을 싫어해! 대가리가 비었거든! 그런데 그런 애를 위해 죄책감을 느끼고 싶다고? 넌 도대체 무슨 변태야?”
에디스는 화냈다. 그런데 어째 이상했다. 그냥 화가 났다기보다 올리버 대신 화내 주는 느낌이었다.
뭔가 오해를 한 듯해 올리버는 정정했다.
“아, 에디스 님 뭔가 오해를 하시고 계신 것 같은데, 전 노라를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노라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그건 제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서거든요.”
“이기적인 욕망?”
“예, 노라에게 사과할 수 있게 기다려달라 부탁하고, 약간의 도움도 줄 방법을 마련했지만, 근본적으로 제 행동은 이기심에 기인한 겁니다. 제가······. 좀 더 공감하고 싶어서요.”
올리버가 마지막 부분을 어렵게 말하며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걸 설명하는 아이처럼.
허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은 공감과 감정 같은 것을 느끼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망에 불과했다.
노라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했을 때 느낀 이기적인 슬픔과 그 궤가 다르지 않았다.
에디스가 물었다. 비꼬는 게 아닌 진지하게.
“왜 그딴 걸 공감하고 싶지?”
“예?”
“왜 공감하고 싶냐고? 넌 힘이 있어.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강한 편에 속해. 나이대와 잠재력까지 고려하면 최고라 할 수 있지. 그런 힘을 타고났는데? 왜? 어찌하여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 거야? 그냥 무시하고 휘두르면 되지.”
에디스는 진심이었다. 왜냐면 자신은 그런 힘이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젊음 시절 자신의 선량함이 욕보였고, 자신의 선량함이 나약함이 아닌 걸 증명하기 위해 끔찍한 짓을 저질렀어야 했다.
아마, 눈앞의 흑마법사와 같은 힘을. 아니, 그 반의반 정도 되는 힘만 가졌어도 그런 일 따위 겪지 않았을 거였다.
올리버가 답했다.
“글쎄요? 저도 구체적으로는 대답하기 어렵네요. 그냥 원하기에 원한다고 밖에요. 다만, 기대되는 건 있습니다. 제가 공감이란 걸 하게 되면 아름다운 빛을 여기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올리버가 자신의 왼쪽 가슴을 두들겼다.
“아름다운 빛?”
“예. 애당초 세상 밖으로 나온 것도 그거 때문이니까요.”
올리버가 아름다운 빛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온 건 과거 들은 적 있었기에, 아름다운 빛이 뭔지 묻지 않았다.
대신 에디스는 다른 질문을 했다.
“아름다운 빛을 여기로 이해하면 뭐 어떻게 하게? 음?”
“글쎄요? 그럼, 노라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겠죠.”
“······미친놈. 말하는 게 엉망진창이야.”
“그렇습니까?”
“그래, 완전 말이 안 되는 개소리야. 그것도 모자라 재능이란 축복을 낭비하고 있고. 덕분에 내 시간도 낭비하고 있군.”
에디스가 특유의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허나, 기이하게도 진심은 아니었다.
“낭비는 이쯤에서 그만하지 울화통 터질 거 같으니까······. 난 케니를 만나러 갈 거야.”
“케니라면, 프로메테우스 사(社)를 설립하신 창업주이자, 이번에 대표 경영자에서 내려오시는 분 말씀입니까?”
“어, 그에게 확인하고 싶은 게 있거든. 그사이 넌 내가 말한 곳에 가 뒷조사 좀 해봐.”
“무엇을 말씀입니까?”
“프로메테우스 사(社). 악마와 거래해 홍인(紅人)을 마석 원석으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거든.”
“······예?”
“그게 황금의 주술사 괴담의 근원이야. 물론, 확실한 건 아니지만. 한번 증거를 찾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