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 황금의 주술사 (1)
“케엑! 켁!”
던칸이 목을 놓아주자 클로드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기침을 토했다.
그 모습을 본 송장인형-던칸이 딱! 딱! 딱! 이빨을 부딪치며 올리버에게 뭐라 말했다.
“······뭐라고 하나요?”
“한 대만 때릴 수 있게 해 달라네요. 마력 실에 붙잡힌 게 기분 나빴나 봅니다.”
올리버가 포스의 말을 해석해줬다. 포스(Fourth) 역시 퍼스트(First)와 써드(Third)처럼 천사의 집 종업원들에게 교육을 받아 제법 말을 잘할 수 있게 됐지만, 감정이 격해지면 특유의 울음소리를 냈다.
“아, 전 안 그랬으면 좋겠네요. 잘못하면 죽습니다.”
“그래서 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포스. 저기 떨어진 거미-송장인형 좀 가져와 주시겠어요?”
올리버가 포스의 관심을 돌릴 겸 일을 부탁했다.
포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으나, 그와 별개로 올리버의 부탁을 들어줬다.
“헤······. 대단하군요.”
“모두요. 송장인형도 대단하고, 그 송장인형에 들어가 조종하는 크리처도 대단하네요. 이름이 뭐죠?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차일드라고 합니다. 제가-”
올리버는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순간, 재밌는 우연을 발견했기에. 차일드를 만든 건 퍼펫 덕분이었다.
진짜로 말이다. F구역에 있는 오염구역 청소 때 올리버는 우연히 퍼펫의 연구인 인공영혼을 봤고, 그것을 응용해 차일드를 만들었다.
감정만으로 만든 기존의 미니언에 생명력을 추가하고, 약간의 공을 더 들여서 말이다.
‘차일드란 이름도 2초 만에 지었지. 그냥 미니언이랑 구분하려고.’
새삼 떠오른 기억. 올리버는 들어간 노력에 비해 아주 훌륭한 성과로 나온 차일드를 인지하며, 자신이 운 좋았단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여기.”
때마침 차일드-포스가 거미-송장인형을 질질 끌고 와 올리버 앞에 놓았다.
클로드를 때리지 못해 아쉬운 눈치. 송장인형-듀란스에 들어간 세컨드 역시 조용히 옆으로 와 포스의 편을 들어줬다.
그것은 아직도 천사의 집 종업원들에게서 구해주지 않아 화가 난 눈치였다.
“세켄드, 포스.”
평소와 아주 조금 다른 음색에 세컨드와 포스가 움찔. 올리버가 이어 말했다.
“고맙습니다.”
올리버는 뒤늦게 차일드에게 감사를 표했다. 들어간 노력과 시간, 자원에 비해 너무 잘 나와줘서.
포스와 세컨드는 살짝 놀란 감정을 보이더니 서로 눈을 마주 봤고, 이내 올리버에게 응어리진 감정이 풀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아, 감동적이네요.”
그 모습을 본 클로드가 한마디 했다. 곧바로 포스의 발차기를 입에 맞았지만.
“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까?”
당황한 올리버가 사과했다. 클로드는 진심으로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살아있으니까요. 그런데 조금 아프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올리버는 다시 사과하곤 포스에게 주의를 준 다음, 포스와 세컨드를 원래 있던 플라스크 안으로 되돌렸다.
탑승자를 잃은 송장인형은 곧 의식을 잃은 사람처럼 허물어졌고, 올리버는 축소화 마법으로 줄인 다음 다시 품 안에 넣어 특정 술식을 부여했다.
신호하면 바로 밖으로 나올 수 있게.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군요. 좋네요. 축소화 마법과 술식 유지로 마력 소모가 좀 심하긴 하겠지만, 갑자기 송장인형이 튀어나오면 힘의 여부와 별개로 의표를 찌를 수 있죠. 힘이 강하면 더 좋지만요······. 그 수법 저도 써도 될까요?”
클로드가 물었다. 이에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 물론입니다······. 그런데 굳이 제게 허락을 구할 필요 있습니까? 좋은 게 있으면 사용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올리버가 진심으로 말했다. 일단, 자신부터가 그런 식으로 살아왔기에.
미니언은 조셉의 크리처 ‘이터(Eater)’을 개량해 흉내 낸 것이고, 인공영혼과 송장인형 역시 퍼펫의 것을 흉내 낸 것이었다.
그 외에도 비슷한 게 수없이 많았고. 오히려 허락을 구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원래 허락을 구해야 하는 건가요?”
“아뇨, 아뇨. 그건 아닙니다. 다만, 저보다 강한 사람한테는 묻는 게 좋지요. 약간 분위기를 환기할 겸 물은 거기도 하고요.”
“아······. 농담 같은 건가요?”
올리버가 물었다. 1시간씩 유머책을 읽는 덕분인지 요즘은 농담을 잘 구분해 목소리에 자신감이 깃들었다.
“음······. 참 특이한 분이시군요.”
클로드가 진심으로 말했다. 저런 실력을 갖췄는데, 이런 성격이라니. 소문을 통해 듣긴 했지만, 직접 보니 그 느낌이 달랐다.
“실력이라면 클로드 님도 뛰어나신대요.”
올리버가 진심으로 화답했다.
송장인형은 재료 본연의 능력을 살려야 했기에 일반 좀비와 달리 흑마법 몇 개를 걸고 끝이 아니라, 술사가 하나하나 직접 조종해야 해 더 많은 집중력이 요구했다.
팔과 다리의 움직임은 물론 술식, 공격 방식 등등. 조종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흡사, 마리오네트.
그래서 웬만한 흑마법사는 혼자서 2~3구를 다루는 게 한계였고, 재능이 있다 해도 그 두 배를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클로드는 일단 확인된 것만 여섯 구를 조종했다.
재능이든 노력이든 엄청난 실력.
“데이브 님께서 더 대단하신걸요?”
“그런가요? 차일드를 이용해 꼼수를 쓰는 저보다 클로드 님이 더 송장인형에 조예가 깊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꼼수를 못 써서 전 이렇게 하는 것뿐이랍니다.”
“그럼, 이 방법도 쓰시면 되지 않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전 조작계열에는 재능이 좀 있지만, 창조 쪽에는 그렇다 할 재능이 없어서요.”
올리버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계열에 따른 재능이나 난이도란 개념 자체가 올리버에겐 생소한 것이었으니.
클로드가 그런 올리버의 반응을 보곤 반 농담 삼아 물었다.
“차라리 송장인형을 어떻게 강화하신 건지 가르쳐주시렵니까? 일반적인 송장인형에서 나온 출력이 아니던데요?”
놀라운 눈썰미. 올리버가 대답했다.
“마법을 쓸 줄 알아야 가능합니다.”
“오, 괜찮네요. 저도 마법에 조금 조예가 있거든요. 특이 케이스라서요.”
예상외의 대답에 올리버는 망설임 없이 허리 뒤쪽 가죽케이스에서 빅마우스를 꺼냈다.
그리고는 빅마우스에게 부탁해 생명학파 책과 필기한 노트를 몇 권 꺼내 달라 부탁했다.
여러 개의 눈으로 상황을 파악한 빅마우스는 시키는 대로 해당 내용물을 곧장 꺼냈다.
“꾸에에에엑-!”
바닥에 떨어진 책과 노트. 올리버는 그 책과 노트를 직접 주워 클로드에게 내밀었다.
“책은 필요한 기본 지식이 담겨 있고, 노트는 그 지식을 이용해 송장인형을 강화할 방법이 적혀 있습니다. 아마, 클로드 님 실력이면 혼자서도 익힐 수 있을 겁니다.”
던칸에게 목이 붙잡혔음에도 웃던 클로드는 처음으로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강렬한 의심으로 빛났다.
왜 이러나 싶어 올리버가 물었다.
“혹시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뇨······. 별건 아니고 무슨 함정인가 싶어서요. 그냥 가르쳐 준다고요? 데이브 님께서 쌓아 올린 지식과 기술을요?”
실로 당연한 반응이었다. 마법사나 흑마법사나 지식이 최대 재산이자 힘. 체계화된 교육 시스템을 갖춘 마법사조차 지식을 공유하길 꺼렸고, 흑마법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정식으로 들인 제자에게조차 가르침에 인색한 게 보통이었으니.
그런데 올리버는 지금 그 지식을 방금까지 싸운 적인지 아닌지도 모를 자에게 넘겨주겠다고 했다.
그런 비상식 속에서 올리버가 순수하게 물었다.
“이상한가요?”
“보통 그렇죠? 가르쳐 달라고 한 게 저긴 하지만, 왜 가르쳐 주시는 겁니까? 겁나려고 하네요.”
“음······.”
올리버가 침음성을 내며 고민에 빠졌다. 과거에도 이런 질문을 들은 적 있었다. 당연히 대답도 같을 수밖에 없었다.
“클로드 씨는 배우고 싶고. 전 가르쳐 줄 수 있는데, 이 이상 이유가 필요한가요?”
이때 처음으로 클로드의 표정은 통제력을 잃었다. 상식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대답이었기에.
그나마 다음 말이 나와 표정을 수습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공짜로 가르쳐드리는 게 아닙니다.”
“다행이군요······. 죄송하지만, 투표는 제 권한 밖입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쓰러트린 좀비와 송장인형은 제가 챙기고 싶다는 뜻입니다.”
올리버가 거미-송장인형을 가리켰다.
네 명의 마법사를 한데 엮은 송장인형은 신화 속 괴물 아라크네처럼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거미의 몸통을 하고 있었다.
가만 살펴보니 거미의 몸통처럼 보이는 하반신은 마법사의 몸통 세 개를 합친 것으로, 그 몸통에는 다리가 여덟 개, 팔이 네 개 달렸고, 상체에는 네 개의 팔이 추가로 달려 있었다.
“흥미로워서요. 송장인형과 시체 골렘을 혼합한 형태는 처음이라서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데이브 님의 기술에 비하면 하위호환입니다만?”
클로드가 올리버가 준 노트를 빠르게 훑어보며 답했다. 마법에 조예가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지 그는 생명마법을 이용한 세포 결합과 이를 통한 송장인형 강화를 이해한 눈치였다.
확실히 틀린 말이 아닐지도.
거미-송장인형은 뭐가 됐건 물리적인 결합인 데 반해, 올리버의 강화 방식은 세포를 이용한 화학적 결합. 뭐가 더 좋을지는 자명했다.
“그래도 제겐 흥미롭습니다. 저기 시체골렘도 관심이 가고요.”
올리버가 송장인형-듀란스의 총알에 맞고 쓰러진 시체 골렘을 가리켰다.
올리버가 본 시체 골렘 중 가장 완성도가 높았다.
“음······. 거절할 이유가 없군요. 너무 남는 장사라서. 그런데, 억지 하나 부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죠.”
“저기 저 아가씨들은 챙겨가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클로드가 흑마법사, 마법사, 드루이드, 마력사용자, 마법장비-송장인형을 가리켰다.
항구 때부터 곁에 둔 다섯 구의 송장인형.
“제가 가장 아끼는 아가씨들이라서요.”
“알겠습니다.”
올리버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진짜 관심은 거미-송장인형이나 시체 골렘에 있었으니 딱히 양보랄 것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거래가 성사되자마자 올리버는 빅마우스에게 부탁해 거미-송장인형과 다른 좀비를 챙겼다.
빅마우스는 보통 송장인형에 비해 체감상 여섯 배는 커 보이는 거미-송장인형을 뱀처럼 꿀꺽꿀꺽 삼켰고, 늑대와 하운드-송장인형은 한 번에 여러 구 꿀꺽 삼켰다.
문제인 것은 집채만 한 크기의 시체 골렘.
잘라서 삼키게 해야 하나 싶은 그 순간, 빅마우스는 이빨이 지퍼로 달린 입을 활짝 벌려 시체 골렘에 대고 천천히 입을 넓혀갔다.
자신보다 큰 먹이를 삼키는 뱀처럼.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빅마우스는 입보다 큰 물건은 못 삼킨다고 했는데······. 설마, 다른 먹보 주머니를 세 개나 삼켰기 때문인가?’
올리버가 나름대로 추측했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아니, 그거 외에는 그럴듯한 이유도 없었다.
과거의 빅마우스와 차이라면 오직 그거뿐이니. 만약, 그게 사실이면 참으로 안타까웠다. 더 일찍 싸우게 해야 했는데.
올리버가 속으로 아쉬워했고, 빅마우스는 몸을 부르르 떨며 올리버를 흘겨봤다.
올리버가 자신이 한 생각을 솔직히 말하려는 찰나, 클로드가 물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예? 무엇이 말씀이죠?”
“제게 이런 지식을 그냥 줘도요······. 원래 촌스럽게 이런 질문하지 않는데, 지금은 하게 되네요.”
“그냥 드린 거 아닙니다만?”
“아, 정정하죠. 뭐가 됐건 제게 이런 지식을 줘도 괜찮습니까? 제가 더 발전시켜 더 나은 기술을 보유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잘 됐군요. 그럼, 전 당신께 배울 수 있으니까요.”
올리버가 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왜냐면 그게 진심이었으니까.
오히려 바라는 바였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만나게 되면 더 배울 수 있었으니 그건 기쁨이지 않은가?
남들과 궤가 다른 가치관. 허세가 아닌 진심인 걸 깨달은 클로드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인간을 또 만나다니.
‘아니, 주인님도 또 경우가 다른가?’
클로드가 주인인 퍼펫과 올리버를 비교했다. 그때, 올리버가 말을 걸었다.
“그런데, 클로드 님. 이제는 그걸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말씀하신 재밌는 정보요.”
“아, 맞다. 그게 있었죠. 기억력이 좋으십니다.”
“일이라서요.”
올리버가 대답했고, 클로드는 입을 열었다.
“제가 말한 재밌는 정보란, 다름 아닌-”
***
“-여기 신대륙에서 악마를 소환하려 한다고? 홍인(紅人) 흑마법사들이?”
대저택에서 에디스가 되물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너스로 한 가지 더 알려주셨습니다. 사람을 황금으로 바꾸는 황금의 주술사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고요. 저번에 에디스 님이 말씀해주신 괴담인데, 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