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57화 (457/633)

457. 괴담 (2)

에디스가 말하길 전통 자본가 그룹과 졸부 그룹은 핑크맨에 비해 열세인 정보 부분을 채우기 위해 헤임달을 고용했다고 말했다.

올리버가 보기에도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다.

헤임달은 마법 해커 집단으로 세계수를 다루는 데 있어 이미 정평이 나 있었고, 최근에는 그 실력이 더욱 향상됐으니.

X구역 재개발 때 올리버도 그 실력 향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헤임달이 아니었으면, 엔조이먼트를 그렇게 빨리 칠 수 없었을 테니까.

“······뭐, 이게 우리 조합 입장이야. 유감이군.”

색이 바랜 푸른색 코트, 피들러 캡, 고무장화, 파이프 담배를 꼬나문 노인이 의자에 대충 앉아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는 이곳 퍼스트 스텝(First Step)의 어부조합의 조합장. 통칭 선장으로, 어부조합이 보유한 프로메테우스 사(社)의 주주 권리를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깊은 주름과 회색빛 수염을 가진 그는 에디스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육체노동으로 다져진 육체는 아직 강건해 보였다.

설상가상 만나는 장소가 어부조합의 앞마당인 어항(漁港) 근처라 그 위압감은 배가 됐다.

에디스나 올리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허······. 유감이구만. 난 선장이 저쪽과 손잡을 줄 몰랐는데. 귀족을 싫어한 게 아니었나?”

“귀족이 싫긴 하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놈들이니. 퉤!”

선장은 걸쭉한 가래침을 바닥에 뱉었다.

“근데, 난 귀족이 싫긴 해도 돈은 좋아하거든. 자기네들 쪽에 투표해주면 생선을 군에 납품하게 해 주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거절하겠어? 봐봐, 생선이 겁나 잡힌다고!”

선장이 물고 있던 파이프 담배로 어항(漁港)을 가리켰다.

때마침 어선이 들어와 그물을 내렸다. 작은 산처럼 쌓인 물고기. 실로 엄청난 어획량이었다.

‘정말 물고기 인간과 거래하는 걸까?’

올리버가 어제 에디스에게서 들은 물고기 인간 괴담을 떠올렸다. 일부 어부들이 아이와 소녀를 바쳐 대량의 물고기를 잡는다는.

“귀족들 말을 믿나?”

에디스가 앞에 놓인 새우를 껍질 채 먹으며 물었다.

선장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못 믿을 건 뭐람? 어차피 우리 조합이 가진 주식 양은 쥐꼬리만 한데. 그거 가지고 그런 거래를 한번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겁나 남는 장산데. 뭣보다 난 너희도 겁나 싫거든. 열심히 몸을 움직이지 않고, 돈만 굴리는 놈들. 신의 이치에서 벗어난 거야.”

선장은 피부만큼이나 거친 혀로 말했다. 에디스도 지지 않았다.

“신께선 팔다리를 주셨지만, 생각할 머리도 주셨지.”

“팔다리는 다 합쳐서 네 개야.”

“머리는 더 높은 곳에 달렸지.”

“······빌어먹을, 졌네.”

선장이 걸쭉한 가래침을 다시 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이야기 다 끝났다는 것.

분했는지 그는 에디스에게 한마디 더 했다.

“경호원 제대로 된 놈 좀 데리고 다니지 그래. 삐쩍 말랐잖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마. 이래 보여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니까. 뭣하면 테스트해볼래? 결과는 책임 못 지지만.”

그 말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선원들이 발끈하는 감정을 빛냈으나, 선장은 에디스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그냥 물러났다.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이었다

에디스와 같은 사람이 홀로 데리고 다니는 경호원이라면 겉보기에 허약해 보여도 위험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뼈다귀 같은 놈이라 더 위험할지 몰랐다. 이런 모습인데도 살아남았다는 거였으니.

정작 당사자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지만.

“괜찮으십니까?”

올리버는 에디스에게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일단, 에디스가 고용주인 데다, 오전 내내 돌아다녔음에도 그렇다 할 성과가 없었으니.

허나, 에디스의 반응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왜?”

“아······, 계속 일이 안 풀리시는 것 같아서요. 오전 동안 만나신 분들 모두요.”

“내가 판을 본다고 했지, 저놈들 설득한다고 했나?”

에디스는 새우를 껍질 채 먹으며 태연히 말했다.

“설득할 생각 없으셨습니까?”

“뭐 되면 좋긴 한데, 안 돼도 상관없어. 어차피 본인 말마따나 가진 주식이 얼마 되지 않아 그리 큰 영향을 못 끼치거든.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선.”

지금 같은 상황이란 홍인(紅人) 흑마법사의 테러로 같은 편인 주주를 잃은 상황을 뜻했다.

원래는 전통 자본가 그룹과 졸부 그룹이 힘을 합치면 귀족 그룹을 충분히 누를 수 있었지만, 홍인(紅人) 흑마법사의 테러로 몇몇 주주들이 의식 불명, 혹은 사망해 그만큼 힘이 깎였다.

의식 불명과 유산 싸움 중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에디스가 접시에 남은 새우를 마저 먹으며 말했다.

“또, 얻은 게 아주 없는 건 아니야.”

“무슨 말씀이신지요?”

“오전 동안 발품 판 덕에 귀족 그룹이 최고 경영자를 세우는데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었거든. 고작, 선장이 가진 주식을 당겨오기 위해 군납품 같은 제안을 하다니······.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많이 달아오른 상태라 할 수 있어. 발정 난 개새끼처럼.”

오······. 들어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선장을 만나기 전 둘러본 다른 주주들도 가진 주식에 비해 제법 괜찮은 것을 대가로 받은 상태였다.

그만큼 귀족 그룹이 이번 주주총회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걸 어떻게 이용할지는 올리버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지, 눈앞의 작은 싸움이 중요한 건 아니야······. 너도 사업하면 그걸 알아야 할 텐데.”

에디스가 올리버에게 조언해줬다.

갑작스럽고 이유도 알 수 없는 조언이긴 했지만, 말 자체는 진심. 올리버는 감사를 표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

“실질적 사업 운영은 포레스트 님께서 맡고 계시거든요.”

“그러다 사기를 한번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흥미로운 의견이었다. 포레스트가 자신에게 사기를 친다니.

왠지 그것도 재밌을 거 같았다.

뭐가 재밌는지는 올리버도 알 수 없지만.

그런 올리버의 속마음을 꿰뚫은 것인지 에디스는 올리버에게 익숙함과 몰이해란 다소 상충된 감정을 동시에 빛냈다.

“음, 오후에도 다른 주주분들 만나실 겁니까?”

“아니, 대충 판은 내 눈으로 확인했으니, 더 이상은 안 만날 거야. 티끌은 모아도 티끌이니 차라리 저쪽을 설득하는 게 더 낫지.”

저쪽이란 다름 아닌 헤임달이 알려준 대주주 클로드로, 프로메테우스 사(社) 지분을 꽤 가졌지만, 그 어느 그룹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에디스가 말하길 그는 여태까지의 모든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여성 대리인만을 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왜 직접 참석하신 걸까요?”

“글쎄, 이번 주주총회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난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

“이유가 뭐죠?”

“그냥 감이 그래.”

꽤나 무책임한 발언. 허나, 발언한 자가 에디스다 보니 제법 무게가 느껴졌다.

“음······. 혹시 사진은 없습니까? 저도 얼굴을 아는 게 좋을 듯한데요.”

“사진은 나도 못 받았어. 어차피 수색은 콩키스타도르가 할 거니 넌 크게 신경 안 써도 돼. 세계수 같은 기술력은 핑크맨이 앞서지만, 이곳에 뿌리내린 고전적인 정보망은 이쪽이 더 낫거든. 헤임달로부터 사진을 받는다면 그쪽이 먼저 찾을 거야.”

때마침 에디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에디스 님?”

“콩키스타도르 연락책인가?”

에디스는 눈치 빠르게 남자들의 정체를 간파했다. 덕분에 이야기가 한결 더 빠르게 진행됐다.

“예, 콩키스타도르의 연락책을 맡고 있는-”

“-넌 관심 없고 온 이유만 말해. 자기 소개하러 온 건 아닐 거 아니야?”

연락책은 에디스의 태도에 얼굴을 붉혔다.

“아······. 예······. 다름이 아니라 브라이언 님의 전언을 전하러 왔습니다.”

“뭐야?”

“클로드가 이쪽으로 연락했답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 에디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쪽이 불리한 상황인 걸 하고 거래를 제시하려는 건가 싶었지만, 다음에 나온 발언 때문에 혼란은 가중됐다.

“자기와 대화하고 싶으면 에디스 님 경호원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

“뭐?”

“자기와 대화하고 싶으면 에디스 님 경호원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혼자 여기 적힌 곳 밤에 말입니다.”

연락책이 말하며 쪽지를 내밀었다. 에디스는 쪽지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뭐 하자는 개수작이야?”

***

개수작.

에디스는 그리 평했다.

솔직히 올리버가 봐도 뭔가 석연치 않은 조건이긴 했다. 그렇지 않은가?

주주총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데, 주식이 하나도 없는 올리버를 통해서 대화를 나누겠다니.

누가 봐도 수상하기 그지없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수상해 보여도 가야 할 때가 있었고, 이번 경우도 그러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현재 아쉬운 것은 이쪽이었으니.

자잘한 소액 주주들까지 귀족파에 매수된 상태에서 유일하게 판을 흔들 수 있는 건 클로드란 대주주를 매수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에디스 역시 마지못해 수락했다.

‘꽤 불쾌해하셨지만.’

올리버가 약속 장소인 퍼스트 스텝의 슬럼가 ‘쓰레기장’에 도착했다.

이름 그대로 쓰레기장인 이곳은, 판잣집이 덕지덕지 있으며, 주로 홍인(紅人)과 그 혼혈이 주로 산다고 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사람 눈을 신경 안 써도 된다 했지. 그거 때문에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건가?’

올리버가 추측했지만, 왠지 그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감일 뿐이었지만.

‘묘하게 기시감이 드네.’

어두운 슬럼가를 둘러본 올리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기시감은 더욱 심해졌다.

“아, 나오셨군요.”

어둠 속에서 한 여성이 나오며 말했다.

어둠에서 나온 여성은 얼마 전 본 패션 잡지에 실린 최신식 여성용 양복을 입고 있었다.

볼륨이 있는 재킷과 타이트한 드레스 셔츠, 통이 넓은 바지, 그와 세트를 이루는 넥타이와 구두.

중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매력을 모두 살린 깔끔한 제품이었다.

‘신기하네. 차일드들이 입을 옷 고를 때 본 옷을 여기서 보다니······. 재밌어.’

재밌는 건 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아까 전부터 느낀 기시감의 근원이 어딘지 드디어 알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브라이언 님과 에디스 님의 대리로 나온 데이브라고 합니다. 클로드 님입니까?”

“안녕하세요. 전 그분의 대리인입니다.”

“아, 그렇군요.”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받아들였다. 대리인이 나왔다는 사실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여성이 사과했다.

“주인님께서 직접 나오지 않은 점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분께선 쑥스러움이 많고, 겁도 많으셔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전 말만 전하면 돼서요.”

올리버가 바로 쪽지를 꺼냈다. 주주총회에서 클로드를 끌어들이기 위한 조건으로, 올리버는 에디스가 연습시킨 대로 설득의 기교를 발휘, 읽어나갔다.

꽤 열심히 읽었지만, 여성은 그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조건이 어떠신지요? 원하시는 게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설명을 끝마친 올리버가 물었고, 여성이 고민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음······.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요. 주인님께 전해 드린 후 최대한 빨리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클로드 님이 아닙니까?”

“예······? 아까 전, 제가 대리인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듣긴 했지만, 클로드 님이 그래서 아닙니까?”

올리버가 무덤덤하게 다시 묻자, 여성······. 정확히는 여성형-송장인형의 안색이 바뀌었다.

놀라운 기술이었다. 안색까지 변하다니. 화장으로 때우는 수준을 넘어섰다.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퍼펫 님 제자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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