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56화 (456/633)

456. 괴담 (1)

식사를 끝마치고 올리버는 에디스가 내어준 손님방으로 들어왔다.

음식을 좀 더 먹고 싶긴 했지만, 상을 다섯 번 정도 차리자 에디스가 이쯤에서 그만 먹으라고 해 어쩔 수가 없었다.

‘제기랄, 식비로 날 파산시킬 셈이야?’

뭐, 나쁘지 않았다. 때마침 확인하고 싶은 것도 생겼으니.

찰칵.

올리버는 문을 닫은 다음 잠금장치를 걸었다.

그리곤 몸에 저장된 마력과 시험관에 깃든 감정을 제각기 손에 끌어모으곤 보안 마법과 흑마법을 동시 발동했다.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방음 마법을 시작으로, 침입을 막는 침입방지 마법, 웬만한 공격도 막을 방어 마법과 접근을 알리는 감지 마법까지.

문은 물론 창문, 벽, 천장, 바닥 등. 벽돌을 쌓듯 빈틈없이 설치했다.

다소 과한 느낌이 들었지만, 사실 전혀 아니었다.

왜냐면 올리버는 이제부터 악마의 책을 볼 예정이었으니 아무리 조심해도 전혀 과하지 않았다.

탁.

올리버는 쿼터스태프를 침대 옆 벽에 세운 다음, 마법 가방을 책상 위에 얹고, 윗옷을 벗으며, 허리 뒤쪽에 찬 가죽케이스까지 벗어 안에 든 빅마우스를 꺼냈다.

빅마우스를 바닥에 내려놓자 사람의 가죽과 눈알, 치아를 덕지덕지 붙여 만든 먹보 주머니가 빵 반죽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사람만큼 커져 일어섰다.

‘크기는 별다른 변화는 없지만, 뭔가 묵직해지셨네.’

“꾸르륵?”

빅마우스가 돋아난 다수의 눈알로 사방을 훑어보더니 특유의 두꺼비 소리를 냈다.

올리버가 답했다.

“아뇨, 빅마우스. 다른 먹보주머니랑 싸우라고 부른 거 아닙니다.”

“꾸룩?”

“아뇨, 앞으로 안 싸우는 건 아니고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나중에 필요하다면 또 할지도 모르거든요. 삼 대 일로요.”

“······.”

“음······. 저번에 싸우는 걸 봤을 땐 삼 대 일도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원망을 내비치는 빅마우스를 향해 올리버가 진심을 담아 응원했다. 양손을 꽉 쥐고.

저번 싸움에서 빅마우스는 차일드에게 배운 격투술로 기적적인 승리를 따냈으니, 충분히 가능할 터였다.

허나, 올리버의 진심이 담긴 말에도 빅마우스는 전혀 공감해 주지 않았다. 참으로 슬펐다.

빅마우스의 원망 섞인 눈빛으로 어색해진 공기. 올리버는 이야기를 돌릴 겸 바로 본론을 꺼냈다.

“음······. 어르신께 받은 서적 좀 꺼내 주실 수 있나요?”

빅마우스는 여전히 원망 섞인 눈으로 올리버를 노려보면서도 부탁한 대로 묵묵히 책이 든 서류 가방을 토해냈다.

꾸에에에엑!

바닥에 털썩 떨어진 서류 가방. 올리버는 지갑에서 지폐를 두 장 꺼내 빅마우스에게 내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꾸루룩······? 꾸룩. 꾸루룩!! 꾸룩!!!”

지폐 두 장을 본 빅마우스가 돋아난 양팔을 휘휘 내저으며 갑자기 분통을 터트렸다.

대충 요약하자면 자신이 올리버를 돕는 건 돈 때문이 아닌데, 어찌해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냐는 거였다.

빅마우스는 자신이 진정으로 화가 난 건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다루며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올리버의 속물적인 태도라고 지적했다.

자신은 결코 그런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먹보주머니가-

“-열 장 드릴까요?”

“꾸룩!”

올리버가 지폐에서 돈을 더 꺼내 내밀자, 빅마우스는 바로 만족. 지폐를 가져가, 하나하나 음미하듯 천천히 입 안에 지폐를 넣었다.

올리버는 빅마우스를 달래는 데 성공했다는 작은 성취감을 느끼며, 서류 가방을 챙겨 침대 위에 올렸다.

철컥 소리와 함께 서류 가방이 열렸고, 올리버는 안에 빼곡히 꽂힌 악마의 서적을 볼 수 있었다.

멀린에게서 받은 뒤 한번 훑어보긴 했지만, 이렇게 다시 꺼내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긴, 부차적이긴 했지만 조셉 패밀리를 떠난 이유 중 하나였으니.

그러자 올리버는 문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악마의 서적은 부차적인 이유긴 했지만, 올리버가 조셉 패밀리를 떠난 이유기도 했는데, 그에 비해 참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어렵게 얻은 느낌이 들었다.

에디스에게 한 권 얻긴 했지만, 딱 그 정도였으니.

구하기가 어려운 물건인 점을 고려해도 좀 이상했다. 꼭 마치 누군가 방해한 것처럼.

“그건 좀 너무 갔나······?”

올리버는 자신이 생각이 과하다 판단하곤, 악마의 서적을 가방에서 한 권씩 꺼내 옆에 차곡차곡 쌓았다.

한 권씩 빼낼 때마다 올리버는 책에 적힌 제목을 확인했다.

[악마 소환이란 무엇인가?]

[악마 소환. 야, 너도 할 수 있어.]

[악마 소환에 필요한 도구와 그 의미]

[-79824. 기록 모음집]

[+100. qnvofhdlsgkstotleo]

[멸망한 도시 방문록]

[한 아버지의 일기]

[미치광이가 저술한 악마 소환의 의미와 원리 이론]

등등.

책의 제목은 개성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부터, 딱딱한 제목, 이해할 수 없는 문장으로 구성된 것 등 다양하게 있었다.

멀린에 말에 따르면 올리버의 관심을 확 끌만 한 것은 없을 거라고 했지만, 오히려 그게 좋을지도 몰랐다.

악마의 서적을 읽을 때, 눈의 통증이나 현기증 등 부담이 오곤 했는데, 사소한 내용이면 읽어도 부담이 가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책을 정리하던 중 올리버는 마침내 원하는 책을 찾았다.

[악마. 소환. 도시. 관찰. 기록.]

올리버는 아까 전 식사 시간 에디스에게 들었던 신대륙 괴담을 떠올리며, 책을 펼쳤다.

***

에디스가 말하길 신대륙 괴담은 여러 가지가 있고, 그 특색이 강하다 하였다.

앞서 말한 망태기 할아버지의 경우,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나쁜 아이를 데려가는 괴담으로 사실 꽤 흔한 이야기라 했다.

‘흔하다고요?’

‘어, 인신매매범이 있는 동네에는 하나씩 있는 이야기거든. 인신매매범은 어디나 존재하고. 하지만 여기 신대륙 망태기 할아버지는 그 수준이 남달라.’

‘어떻게 남다르죠?’

‘차별이 없거든. 가난뱅이 아이는 물론, 부잣집 애새끼도 차별 없이 데려가. 보통은 못 그러는데······. 물론 괴담일 뿐이지만.’

‘아이들이 사라진 적 없다는 뜻인가요?’

‘그건 아니고. 애들은 매년 주기적으로 사라져. 너무 흔해 빠진 거라 농담거리로도 못 쓰지. 특히, 나한테는. 다만······.’

‘다만?’

‘이곳 퍼스트 스텝 초창기 때 실제로 많은 수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적이 있다더군. 물론, 확실한 건 아니야. 난 애새끼들이 사라지든 말든 좆도 관심 없거든.’

에디스는 본인의 말처럼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곤 곧바로 다른 괴담을 이야기했다.

아이나 예쁜 소녀를 대가로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물고기 인간,

신기한 묘기로 아이는 웃게 하고, 어른은 죽이는 광대,

아름다운 노래로 배를 침몰시키는 사이렌(Siren),

엄마 아빠를 찾아 헤매는 비스크 인형(Bisque Doll),

사람이 날 수 있게 도와주는 요정,

침대 밑이나, 벽장 속에 살며 아이들을 노리는 부기맨,

아이에게 폭력을 일삼는 못된 어른을 깨물어 죽이는 호두까기 인형,

사람을 황금으로 바꾸는 황금의 주술사,

모험과 꿈의 나라로 데려다주는 왕자,

수십 년 전 신대륙과 구대륙 사이를 오가는 배들을 한입에 잡아먹었다는 바다 괴물 등등.

대충 이야기한 것만 합쳐도 열 개는 족히 됐다. 모두 흥미로운 이야기.

하지만 신대륙 괴담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조차 아닌 척하며 믿는다는 점이었다.

밤이 되면 바닷가로 나가지 않는 어른들과 항해 때마다 양초를 켜 기도하는 뱃사람들, 경호원을 고용해 집뿐 아니라 아이까지 지키게 하는 부유층이 그 증거였다.

에디스는 그런 퍼스트 스텝이 재밌다고 웃었지만, 올리버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 강렬한 학구적 흥미를 느꼈다.

결이 많이 다르긴 했지만, 악마의 서적 [악마. 소환. 도시. 관찰. 기록.]에 적힌 내용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겨.

“······악마가 소환된 것으로 추정된 도시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조차 정체불명의 뒤틀린 존재가 나타났다고 한다. 온몸이 칠흑 같은 타르로 뒤덮인 존재는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했지만- 음······.”

올리버는 책 내용 중 흥미로운 부분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악마’로 추정되는 존재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과 비슷한 형상이라······.’

올리버는 흥미를 느끼며 해당 존재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단, 간절한 건 아니고, 그저 흥미 수준이었다.

책에 서술된 내용만 본다면 흥미로운 존재긴 해도, 조셉이나 인육 요리사를 상대할 때 만난 ‘그 악마’들에 비하면 많이 심심한 편이었다.

오히려 흥미가 생기는 건 이후 안쪽으로 접근해서 관측된 괴현상(怪現象)이었다.

악마가 소환된 도시 부근에서 수많은 사람이 집단 자살을 한 정황이 포착됐는데,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보통 집단 자살이라 해도 열 명 스무 명을 채 넘지 않았건만, 책에서는 평균 마을 단위의 사람들이 집단 자살을 했다고 쓰여 있었다.

선뜻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규모. 허나, 책에 기록된 사실적인 삽화는 내용에 신빙성을 더해줬다.

삽화 아래 내용에선 악마가 나타난 공포로 인해 사람들이 자살했을 거로 추측하였는데, 올리버는 왠지 그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올리버도 설명하기 힘들었다. 삽화의 그림이 뭐랄까? ······공포에 빠졌다기보다는, 슬픔? 안타까움? 죄······? 여하튼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느낀 거라 가능성은 많이 떨어지지만.’

올리버는 자신의 공감 능력 수준을 냉정하게 직시하며 읽은 부분 중 흥미로운 부분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내용뿐 아니라 삽화까지도.

그런 다음 더 안쪽인 도시에 관한 부분을 보려는 찰나, 에디스가 다가오는 게 포착됐다.

안 주무시고 뭐 하나 싶었는데, 올리버는 곧 자신이 밤을 새웠다는 걸 깨달았다.

악마의 책치고 눈도 아프지 않고, 현기증도 유발하지 않아 정신없이 봤건만, 이 정도일 줄이야.

올리버는 쓰고 있던 노트와 악마의 서적 [악마. 소환. 도시. 관찰. 기록.]을 마법 가방 안에 서둘러 담은 뒤, 곧바로 보안 마법과 흑마법을 해제했다.

쾅! 쾅! 쾅!

보안 마법과 흑마법을 해제하자마자 에디스가 문을 때렸다. 에디스다운 힘찬 노크.

올리버는 노크 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문을 열었다.

“안 잤어?”

에디스가 올리버를 보자마자 대뜸 말했다.

“음······. 푹 잤습니다.”

“구라지?”

“예.”

올리버는 재빨리 거짓말을 시인했다. 에디스는 이미 투기꾼 특유의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올리버가 거짓말한 걸 눈치챈 상태였다.

“날카로운 관찰력은 니미, 딱 봐도 밤새웠구먼. 옷도 그대로고.”

“아······.”

올리버가 자기 옷차림을 보며 소리 냈다. 그러고 보니 책에 너무 빠져 옷조차 갈아입는 걸 깜빡했다.

“일하는 데 지장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 고용됐으면 내게 믿음도 줘야지.”

진지한 비판. 올리버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일을 제대로 하는 건 당연한 거였고, 의뢰인에게 심리적 믿음도 줘야 했다.

이번 일의 경우에는 특히 더.

올리버는 바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죄송합니다. 에디스 님······. 앞으로는 이런 실수,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도대체 뭘 한다고 밤샌 거야?”

“······책을 읽었습니다.”

올리버가 둘러댔다. 악마의 서적을 읽느라 밤새웠다고 말하긴 뭣하지 않은가?

다행히 에디스는 추궁하지 않았다.

“뭐, 좋아. 일단, 일이 급하니까. 식사하고, 씻은 뒤 바로 외출할 수 있도록 해.”

에디스가 그리 말하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올리버가 에디스의 뒷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귀족, 전통 자본가, 졸부. 어느 그룹에도 소속되지 않은 다른 주주들 만나볼 생각이야. 판 좀 자세히 보게. 뭣보다-”

에디스가 말을 멈추더니 주머니에서 쪽지를 한 장 꺼냈다.

“여태까지 한 번도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은 대주주가 여기 왔다더군.”

한 번도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대주주라······.

“그 쪽지가 알려준 건가요?”

“아니, 이 쪽지를 보내준 헤임달에서 알려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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