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 나무꾼 (1)
프로메테우스 사(社).
란다도, 왕국도 아닌 신대륙 퍼스트 스텝에 본사(本社)를 둔 광산회사로, 그 역사는 대략 20년 남짓이라 하였다.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역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정치적으로 프로메테우스 사(社)는 그 중요성이 상당히 높은 회사라 할 수 있었다.
왜냐면 마법과 산업의 시대인 지금, 가장 중요한 자원인 마석(魔石)을 채굴하는 회사였으니까.
그렇기에 그 값어치는 단순히 돈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중앙 정부의 정치인, 귀족도 탐냈지. 왕국의 마석 공급량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니, 하고자 한다면 정치적 영향력도 발휘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기어코 상당한 주식을 확보했죠. 귀족과 중앙 정치인이요.”
에디스의 말을 레드몬드가 보충해줬다. 단순한 수다가 아닌 일 이야기를 하듯 진지하게.
달리는 차 안에서 올리버는 질문했다.
“원래는 소유하지 못했습니까?”
“물론. 만약에 소유했다면 지금이 아니라 훨씬 전에 주주총회를 열었을 테니까. 답답하게 질문하는 거 보니 이제 원래 모습을 되찾은 거 같아 빡치네.”
에디스가 반가움과 짜증을 동시에 빛냈다.
그 모습을 본 레드몬드가 말했다.
“두 분 모두 사이가 좋군요.”
“그래 보여?”
“예.”
“노안이 왔나 보군. 안경 맞춰.”
까칠하게 말하는 에디스. 올리버는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뭐, 저는 에디스 님을 좋아하긴 합니다.”
“······.”
“······.”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심상치 않은 반응에 올리버가 덧붙였다. 레드몬드가 다시 말했다.
“정말 보통이 아닌 친구군요.”
“그래서인지 매 순간 때리고 싶어.”
“어쨌건, 다시 설명하자면 원래 귀족이나 중앙 정치인들은 주식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최소한 한 세력을 구축할 정도로는요. 왜냐면 사실 프로메테우스 사(社)는 진짜 말도 안 되는 회사거든요.”
거짓말이 아닌 진실. 올리버는 그 이유를 물었다.
“왜 말이 안 되죠? 제가 볼 땐 충분히 대단한 회사 같은데요?”
“대단하긴 대단하죠. 이 도시의 경제를 도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다만, 그와 별개로 프로메테우스 사(社)가 맨 처음에 설립됐을 때는 다들 사기로 볼 정도로 형편없는 회사였습니다. 그래서 정신 나간 투기꾼 외에는 아무도 투자하지 않았죠.”
“그리고 그게 나지.”
에디스가 손을 들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 올리버는 자신이 요안나를 만나러 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지만, 점점 이쪽에도 흥미가 생겼다.
본능적인 호기심이랄까······. 이유는 올리버도 알 수 없었다.
“왜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죠?”
“왜냐면 없었으니까. 당시 마법사들과 지질학자들은 이 근방에 마석의 마자도 없다고 호언장담했거든. 또, 몇몇 겁 없는 채굴 업자들이 무식하게 도전했다 처참한 실패를 맛보기도 했고.”
“그런데 프로메테우스 사(社)는 성공한 거군요.”
짝. 짝. 짝. 레드몬드가 손뼉을 쳤다.
“정답입니다······. 마석 광맥을 발견하고 초창기에 대규모로 투자한 에디스 씨께선 엄청난 이익을 보셨죠.”
“아······. 들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에 투자해 거물이 되셨다고요. 그럼, 최대주주시겠군요. 초기에 대규모로 투자하셨으니까요.”
“아냐, 그건 또 아니야.”
에디스가 털이 수북하게 난 족발 같은 손을 휘휘 저었다.
“최대주주가 될 뻔했지만, 상당량을 팔았거든.”
“어째서죠?”
“사기인 줄 알았으니까.”
에디스가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런 경우가 왕왕 있어. 원석을 몰래 심어놓고 광맥을 발견했다고 우기는 경우가. 정당한 방법은 아니지만, 똑똑한 방법이긴 하지. 일단, 그럴듯하게 꾸며대면 다들 흥분하며 온갖 이야기를 알아서 만들어주거든. 그런 와중에 신문사에서 취재하고, 이름난 투자자에게 추가 투자까지 받으면 아주 미친 듯이 주가가 오르지. 미친년 널뛰기하듯이. 사실, 나도 그런 건 줄 알고 투자한 거고.”
“사기인 줄 알고 투자하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사기도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괜찮은 돈벌이가 되거든. 덕분에 그때 값이 오른 주식을 팔아 부동산이랑 다른 주식을 샀지. 결과적으로 보면 손해였지만.”
왜 손해인지는 올리버도 짐작됐다.
현재 시점에서도 프로메테우스 사는 굳건히 유지되고 있었으니까.
즉, 사기가 아니었다는 이야기.
사기인 줄 알고 가지고 있던 주식을 상당량 처분한 에디스는 결과적으로 손해를 본 것이었다.
만약, 팔지 않고 가지고만 있었으면 더 큰 이익을 봤을 테니까.
“안타까우셨겠군요.”
“투기판은 늘 안타까운 순간밖에 없지. 후회를 안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덕분에 저번에 팔지 않고 오히려 사뒀으니 수업료치고는 나쁘지 않았어.”
저번이라 함은 프로메테우스가 발견한 광산이 전부 고갈돼 프로메테우스 사의 주식이 크게 떨어졌을 때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관심 있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프로메테우스 사가 기적적으로 새로운 광맥을 발견해 다시 주가를 올린 것도 들었고.
뭐랄까. 이제 와 보니 상당히 아슬아슬하면서도 기적적인 회사인 것 같았다.
가능성이 낮은 사업을 시작해 급성장한 것뿐 아니라, 위기 때마다 새로운 광산을 발견하니. 마치, 누군가 돕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문제는 그때 귀족들도 프로메테우스 사의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는 데 있지. 내가 속한 졸부 그룹, 전통 자본가 그룹과 맞먹을 정도로 말이야.”
“소문에 따르면 왕가에서 귀족들을 규합해 조직적으로 구매했다고 하던데, 사실일까요?”
“글쎄, 왕가에서 가장 많이 샀으니 사실일 거 같긴 한데, 그럴 대가리가 있는 인간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구만. 여왕은 그런 일에 관심 없고, 왕자라고는 둘 뿐인데, 한 놈은 한량이고, 다른 한 놈은 애새끼잖아.”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에디스와 레드몬드. 올리버는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손을 들었다.
“뭐야?”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귀족이 주주가 된 게 안 좋은 건가요?”
“엄청나게 안 좋지. 그놈들 때문에 주주총회가 시작됐는데.”
“그건 최고 경영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해서 일어난 거 아닙니까?”
“그건 아닙니다.”
레드몬드 부정했다.
“프로메테우스 사(社)를 건립하고 지금까지 운영한 케니는 훌륭한 인간은 아니지만, 사업에 대한 열정만큼은 진짜입니다. 자기 마누라가 집 나가 도망쳐도 광맥을 찾을 정도로······. 일하다 죽으면 죽었지, 좀 아프다고 사업을 그만둘 양반은 아닙니다.”
“그럼······?”
에디스, 레드몬드 두 사람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무성한 소문만이 있을 뿐이죠.”
레드몬드가 어깨를 으쓱이며 둘러댔다. 아는 게 없어서가 아닌, 조심하는 것. 놀랍게도 그건 에디스도 매한가지였다.
그 에디스마저 조심할 정도라니. 무성한 소문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최고 경영자가 바뀌면 큰일인가요?”
“정확히는 귀족 그룹에서 세운 최고 경영자면 문제입니다. 그럼, 어떤 꼼수를 써서 자기들끼리 이익을 나눠 먹을지 모르거든요. 귀족들은 다 그러니 말입니다.”
“귀족들이 어떻죠?”
올리버가 답답한 질문을 했다. 허나, 어쩔 수 없는 거기도 했다. 고아원, 광산, 와인햄, 란다에서만 살아본 올리버는 왕국의 귀족을 만나 본 적이 없었으니.
그 사실을 이해해주는 건지 에디스는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해줬다.
“살면서 성취라고는 태어난 것뿐인 주제에 거들먹거리기나 좋아하고, 대다수 사람과 다른 특별한 척하는 단어를 쓰며, 자기네들끼리 정치판과 땅을 독점해 서로 물고 빨고 해주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우리 것까지 탐내는 씹새끼들······. 그게 귀족이야. 그래서 우리 졸부 그룹과 전통 자본가들이 힘을 합치는 거고. 내가 널 고용하려는 거야. 이해했나?”
현 상황에 대한 분노가 느껴지는 에디스의 답변. 올리버가 대답했다.
“음······. 조금요?”
***
푸루루루루루······. 야생마와 같은 엔진이 서서히 잦아들며 차가 서행하더니 한 대저택 앞에 멈춰 섰다.
퍼스트 스텝에 지어진 집들은 대부분 아담했기에, 대저택은 체감상 훨씬 더 커 보였다. 흡사 성채(城砦).
성채를 연상시키는 것은 크기만이 아니었다.
지나칠 정도로 두껍고 높은 쇠창살 담장은 전운(戰雲)이 느껴질 정도로 흉흉했고, 기관단총과 도끼, 칼로 무장한 무장대원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긴장감을 심화시켰다.
분위기로 봤을 때 훈련을 받은 용병. 그중 마력사용자와 마법사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에디스 님 저택입니까?”
차에서 내린 올리버가 질문했다.
“아니, 전통 자본가 그룹의 리더인 브라이언의 저택이야. 나랑 사이가 안 좋은 양반이지.”
“왜 사이가 안 좋죠?”
“나랑 하는 짓은 똑같은데 자긴 아닌 척하거든. 더 악질이지.”
“사실이긴 하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진 말도록 하죠. 어찌 됐건 지금은 손잡아야 할 때지 않습니까.”
레드몬드가 실크햇을 고쳐 쓰며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닌지, 에디스는 부정하지 않고 올리버를 데리고 저택에 다가갔다.
헤어질 타이밍을 놓친 올리버는 얼떨결에 에디스를 따라가 보통 사람의 1.5배 높이 정도 되는 대문 앞에 멈춰 섰다.
대문을 지키는 경호원은 얼굴을 내비쳐 에디스를 확인하더니 곧바로 문을 열었다.
바깥에서 본 것보다 대저택 안은 더 넓었으며, 더 많은 경호원이 있었다. 그중 턱시도 차림의 한 남자가 다가와 에디스에게 말을 걸었다. 이 저택의 집사인 듯했다.
“안녕하십니까. 에디스 님.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다른 손님들께선 먼저와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들 초조하긴 한가 보구만. 약속 시간을 이리 잘 지키다니.”
평소에는 잘 안 지키는지 에디스가 슬쩍 비꼬았다.
“그런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신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집사가 올리버를 슬쩍 보며 물었다. 겉으로는 예의를 지켰으나, 속으로는 상당한 경계심과 모멸을 빛냈다.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현재 올리버는 삐쩍 말라 그 모습이 다소 추레했으니. 옷을 깔끔히 챙겨 입어도 마찬가지였다.
“우연히 만난 내 손님.”
올리버는 살짝 놀랐다. 고용한 경호원이라 소개할 줄 알았건만. 배려해준 걸까?
집사가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에디스 님. 외부인은 출입에-”
“-신분은 내가 보증할 테니, 신경 꺼. 나랑 협력하고 싶은 거 아니었나? 뭣보다 그냥 손님이면 데려오지도 않았을 거야. 그냥 안내해.”
단호한 에디스의 태도에 집사는 잠시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다들 모이신 곳에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집사는 그리 말하고는 에디스와 레드몬드, 올리버를 대저택 한쪽 응접실로 안내했다.
거대한 응접실은 두 개의 면이 유리로 이뤄져 있어 채광이 잘 들고, 바깥의 화려한 정원과 분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거기다 내부 크기도 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있음에도 좁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분들이 프로메테우스의 졸부 주주와 전통 자본가 주주······? 확실히 티 나긴 하네.’
올리버는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두 그룹을 보며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미묘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선대 때부터 부를 축적해 자본가 중에서도 뼈대가 있다 하는 전통 자본가 주주 그룹과 자기 때에 일생일대의 도박(투기)으로 부를 축적한 졸부 그룹은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거기에 두 그룹 간에는 심리적 기류와 벽도 있어 구분하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주인님. 에디스 님께서 오셨습니다.”
집사가 화려한 대리석 바닥을 지나 거대한 소파에 앉은 대머리 노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신문을 보고 있는 노인은 멀린과 달리 주변머리까지 빠져 흡사 달걀과 같은 머리를 가졌는데, 그는 에디스 옆에 있는 올리버를 가리키며 뭔지 물었다. 집사는 귓속말로 설명했다.
“······해결사인가?”
설명을 다 들은 달걀 머리가 올리버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제법 위엄이 깃들어 있었으나, 에디스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정확히는 경호원으로 고용하려고 데려온 손님이요.”
“신(新) 계급인가 보군.”
초인적인 힘으로 자본가 못지않은 부를 축적한 새로운 계층. 대머리 노인이 단숨에 올리버의 정체를 추측했다.
“신(新) 계급까지 될 정도면 상당한 실력자라는 건데 그렇게는 안 보이는군. 거기다 여기 데려올 사람으로는 더더욱 안 보이고.”
“상당한 실력자라니······. 잘못 보셨소. 그 정도면 안 데려왔지.”
“······?”
“최고니까 데려온 거요.”
에디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너무 과한 칭찬이었지만, 에디스는 진심을 빛냈다.
“최고?”
“예. 핑크맨이 귀족 놈들에게 붙어 실력자 한 명이 아쉬운 마당 아닙니까. 그래서 떼를 써서 데려왔지. 뭐, 핑크맨 영입에 실패한 그쪽을 탓하는 건 아니고.”
몇몇 사람들이 불쾌한 티를 팍 냈다. 아무래도 그들이 전통 자본가들인 듯했다.
유일하게 달걀 머리 노인만이 차분함을 유지했다. 최소한 겉보기에는 말이다.
“누구길래 그리 자신만만하지?”
“란다에서 나무꾼이라 불리는 해결사 데이브요. 백 명이 넘는 드루이드를 해치운 살아있는 전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