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 신대륙 (3)
“오, 내가 반갑나?”
투실투실 살찐 에디스가 뒤뚱뒤뚱 걸어오며 말했다.
요란한 그의 등장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예, 오랜만에 뵈니까 반갑네요······. 그런데 괜찮은 겁니까?”
올리버가 에디스 뒤편을 가리켰다.
그곳엔 에디스의 등장으로 희생된 수많은 사람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에디스의 차에 치인 자들로 그냥 허리를 부여잡은 이가 있는가 하면,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괜찮아. 자동차 새로 도색할 예정이었거든.”
“아뇨······. 그런 뜻으로 여쭤본 건 아니라-”
“-사람을 쳐놓고 이게 무슨 짓이요?!!”
올리버의 말을 누군가 가로챘다. 다름 아닌 성기사였다.
그는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란 동시에 분노했다.
“아, 안녕하시오. 성기사 나리······. 에디스라 합니다. 프로메테우스 사(社)의 주주 중 하나요.”
화가 난 성기사에게 에디스는 프로메테우스 사의 주주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올리버는 에디스가 왜 저렇게 행동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곳 퍼스트 스텝에서 프로메테우스 사의 영향력은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으로, 실제로 경찰 몇몇이 에디스를 알아보고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이 도시의 유지(有志) 같은 거구나. 그렇다 해도 상대가 너무 안 좋은데?’
성기사의 성향을 좀 알고 있는 올리버가 그리 생각했다.
실제로 와인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약사조차 성기사의 눈치를 봐 칩거 생활을 해야 하지 않았는가?
그러한 올리버의 예측은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선천적인 축복과 후천적으로 노력으로 강인한 신체를 얻은 성기사는 뚜벅뚜벅 에디스 앞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은 상당한 위압감을 내뿜었다.
“난 당신이 어디 주주인지 조금도 관심 없소. 신에겐 부유한 자든, 가난한 자든 똑같을 뿐이요.”
“하! 그럴 거라 생각했소. 성기사들이 재미없는 건 알고 있으니. 가벼운 해프닝에도 곧잘 정색하지······. 그보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곳은 처음이오?”
다수의 사람을 치어놓고 에디스는 뻔뻔하게 지껄였다. 그 덕택에 성기사는 방금 일어난 사고뿐 아니라 에디스란 인간 자체에 혐오감을 품게 됐다.
하긴 사람을 그냥 차로 밀어버렸으니.
성기사가 경찰들을 보며 말했다.
“이거 보시오. 체포 안 합니까? 방금 사람을 차로 쳤습니다.”
성기사의 물음에 서로를 바라보는 경찰들. 그때, 에디스는 껄껄 웃었다.
“역시, 이 도시 처음 왔구만······. 이보시오. 성기사 나리. 이곳 퍼스트 스텝은 워낙 바쁘고 사건 사고도 많아 합의만 하면 이런 사소한 일은 굳이 체포 안 합니다. 나쁜 놈들이 너무 많아서.”
“사소? 합의?!!”
성기사가 버럭 화를 냈다. 에디스는 엄지로 어깨너머 뒤를 가리킬 뿐이었다.
그곳에선 에디스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우락부락한 이들이 차에 치인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부상 정도에 따라 지폐 다발을 차등 지급, 합의서에 사인할 것을 요구했다.
차에 치인 이들은 그러한 행태에 분노하면서도 몇 달, 몇 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두툼한 돈다발을 보고는 이내 하나둘 합의서에 사인했다.
상식에서 벗어난 광경. 성기사는 인상을 찌푸렸으나, 에디스는 뻔뻔하게 웃을 뿐이었다. 오히려 저게 지금 세상의 정상이라는 듯이.
“어쨌건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시오. 귀한 손님 맞이하러 가는데, 좆같이 길을 막고 서있어 내 무심결에 밀어버린 거니까. 빡 치긴 했지만, 결코 고의로 그런 건 아니요.”
하나도 말이 안 되는 변명. 성기사는 에디스란 인간 자체에 분노와 혐오를 느끼면서도 물었다. 도대체 어떤 대단한 인간을 만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차로 민 건지 말이다.
에디스는 답했다.
“저 두 사람.”
에디스가 소시지처럼 통통한 손가락으로 실크햇을 쓴 중년 사내와 올리버를 가리켰다.
그 모습을 본 올리버가 검지로 자기를 가리키며 되물었다.
“저를요?”
“그래, 씨발 널요. 기억 안 나나?”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런 약속을 한 적 없었으니까.
에디스는 답답한 감정을 빛내며 성기사의 가슴을 살짝 밀곤 올리버에게 다가왔다.
그는 매우 친근하게 올리버의 어깨에 손을 얹어 으르렁댔다.
“내가 이번 주주 총회 때 가드가 필요하다고 자네를 불렀지 않았나? 밥을 못 먹어서 뇌에도 영양분이 안 갔나? 미친 듯이 슬프군. 너무 슬퍼서 이 귀를 뜯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야.”
에디스가 올리버의 어깨에 얹은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에디스의 말뜻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맞습니다. 요즘 허기가 져서요. 깜빡했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이런 얼빠진 행동을 하면 보통 술병으로 귀싸대기를 후려갈기지만, 자네가 나보다 힘이 세니 내 특별히 용서해주지. 다음부터 이러지 마, 죽여 버리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정말 자비로워······. 그럼, 이제 가도록 하지. 이보게 레드몬드. 자네도 나랑 가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에디스는 현란하게 혀를 놀려 어영부영 올리버와 레드몬드를 챙겨 빠져나가려고 했다. 모두 그 모습을 얼빠진 채 바라봤다.
딱 한 명만 빼고.
콱!
성기사가 혁대에 건 칼을 칼집 채 뽑아 에디스 앞 땅 위를 내리찍으며 그를 멈춰 세웠다.
힘이 어찌나 좋은지 바닥에 금이 갔다.
“어디서 흑마법사를 빼돌리려는 건가.”
말은 차분했지만, 목소리는 성기사의 장검처럼 서늘했다.
폭력에 웬만큼 종사한 사람조차 움츠러들게 하는 기세. 허나, 에디스는 웃을 뿐이었다. 허세가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성기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음······. 그런데, 성기사 나리. 내 하나만 질문합시다.”
“되지도 않는 말장난을 계속한다면 그대 역시-”
“-아니,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야. 합당한 질문이지. 왜냐면 당신은 여기 정식으로 발령받은 성기사가 아니니까,”
올리버는 그 순간 동요하는 성기사의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의표를 찔렸을 때와 비슷한 반응. 에디스의 말은 사실인 듯했다.
“놀랄 것 없소. 내가 이 도시에서 근무하는 성기사 얼굴은 다 외우고 있거든. 그리고 앞서 말했다시피 성기사 나리는 처음 보는 얼굴이고. 만약, 아니면 정식으로 이곳에 배정받았다는 신분증이나, 수사증(搜査證) 보여줄 수 있소?”
성기사는 인상을 쓸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에디스의 말이 사실인 듯했다.
“난 이곳 지부에 말을 전하기 위해 온 성기사요. 그리고 경찰들의 요청을 받았소.”
“역시! 이야기 끝났구만. 이만 비켜주시오. 아무리 성기사라도 정식 절차에 걸친 게 아니면 이 이상은 월권이니 말이요. 신분이 확실한 내가 고용한 마탑······. 마탑 신분증 있나?”
“여기 있습니다.”
에디스가 올리버를 보며 마탑 신분증이 있는지 물었고, 올리버는 마탑 신분증을 에디스에게 건넸다.
에디스는 신분증을 차분히 받은 뒤 다시 목소리 톤을 높여 과장된 어조로 말했다.
“마탑에서 신분을 보증한 마법사를 잡는 건 말이요!”
에디스는 신분증이 칼이라도 되는 듯 성기사 면전에 들이밀었다.
에디스의 의도대로 성기사가 분노했고, 그는 신분증을 도로 거두며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정 수사를 하고 싶으면 정식으로 절차를 걸쳐 요청해주시오. 그게 아니면 나도 정식으로 항의하겠소. 이곳저곳에 시끄럽고 요란하고 짜증 나게. 참고로, 그건 내 특기요.”
상큼하게 말을 끝마친 에디스.
차가운 물을 뿌린 듯 아까 전 소란으로 인한 열기가 착 가라앉으며, 성기사에게 도움을 청한 경찰들 역시 말리듯 성기사에게 뭐라 속삭였다.
에디스의 존재와 논리가 부담스러워.
달라진 공기. 그에 따라 주변에서 구경하던 구경꾼들도 웅성거렸고, 그 웅성임에 성기사는 압박감을 느꼈다.
“······나중에 정식으로 소환을 요청하겠소.”
성기사가 결국 길을 텄다.
“기쁜 마음으로 돕도록 하지요. 성기사 나리······. 이봐 가지.”
에디스는 지지 않고 대답하더니 올리버의 소매를 잡아끌어 레드몬드와 함께 왔던 차량에 올라타 자리를 떴다.
이번에는 사람을 치지 않았다.
***
푸루루루루루룽.
한 무더기의 사람을 밀어낸 힘을 증명하듯 에디스의 차는 야생마 같은 엔진 소리를 내며 도로 위를 달렸다.
올리버는 무의식적으로 창문 너머의 신대륙 도시 풍경을 살펴봤다.
“새빨갛지?”
에디스가 말을 걸었다. 올리버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예? 아, 예. 도시가 전체적으로 붉은 느낌이네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토양과 건물의 벽돌 등 전체적으로 이 도시는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란다만큼 도시화 됐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젊음이 느껴지긴 했다.
갓 태어난 생명처럼.
에디스가 답했다.
“왜 홍인(紅人)들 피부가 붉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
“······혹시 홍인들의 피부를 이용한 인종차별 농담인가요?”
에디스의 말을 곱씹으며 올리버가 추측했다. 아무리 분석해도 인종차별 농담 같았기에.
올리버는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졌다. 하루 1시간씩 꾸준하게 유머책을 본 노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에디스 씨가 말한 대로 재밌는 청년이군요.”
올리버를 도와주려 했던 실크햇을 쓴 중년 사내가 옆에 앉은 에디스를 보며 말했다.
“저게 재밌나?”
“재미라는 건 주관적이니까요······.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숀 레드몬드라 합니다. 소소한 투자자죠. 란다의 유명 해결사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문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정중히 인사하는 실크햇 중년 사내. 올리버도 예를 갖춰 정중히 인사했다.
“저야말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까 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레드몬드 씨.”
“별말씀을. 덕분에 목숨을 건졌는데요. 오자마자 자폭 테러를 당할 줄이야······. 식겁했습니다.”
“예······. 그런데 에디스 님과 아시는 사이입니까?”
“아니까, 내가 데리러 온 거겠지. 그것도 점심시간에 식사도 거르고.”
까칠하게 대답하는 에디스. 레드몬드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프로메테우스 사(社)의 같은 주주 그룹에 속해 있어 그렇습니다.”
설명을 들은 올리버는 흥미를 느꼈다. 둘의 모습은 정반대였기에.
레드몬드는 올리버에게 미소 짓는 것에 반해 타산적인 감정을 빛냈지만, 에디스는 순수한 호의에 더 가까운 감정을 빛냈다.
아까 전 도와줄 때나 지금이나.
“······같은 주주 그룹이라는 게 뭐죠?”
“말 그대로야. 주주가 뭔지는 알지?”
“예. 회사의 소유권을 가지신 분들 아닙니까?”
“맞아. 그리고 보통 주주들은 많은 편이지. 그런 주주 중 적잖은 지분을 가진 이들은 서로 이익을 위해 뭉치기도 하고.”
“아,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 어디 가고 있는 건지 여쭤볼 수 있습니까?”
에디스는 다소 놀란 반응을 보였다. 왜냐면 평소 올리버와 너무나도 다른 태도였기에.
“정말 너무 굶어서 대가리에 영양분이 안 가나?”
“글쎄요······. 잘 챙겨 먹고는 있는데. 왜 그러십니까?”
“평소 너였으면 난 어디 그룹에 속해 있는지, 다른 그룹은 또 뭐가 있는지, 왜 나뉜 건지 물어봤을 거 아니야? 어디 가고 있는지 같은 시시한 질문 말고.”
“아, 그것도 그렇네요······. 솔직히 약간 궁금하기도 합니다.”
“약간?”
“······약간보다 더요?”
“좀 낫군.”
에디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주주 그룹이라는 게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인 듯했다.
“중요하고 말고, 내가 널 도와준 이유기도 한데······. 곧 프로메테우스 사에서 주주 총회가 있거든.”
“알고 있습니다. 신문을 봤거든요. 새 경영자를 뽑는 것 아닙니까?”
“맞아. 그리고 그 주주 총회가 끝날 때까지 자넬 고용하고 싶어.”
“아, 그렇군요······. 혹시 거절할 수 있습니까?”
“음······. 절대 안 되지.”
에디스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넌 이미 붙잡혔다고 말하는 것처럼.
때마침 자동차 문이 철컥 잠기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