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 신대륙 (2)
[블랙 큐브(Black Cube)]
무수한 인파 속에서 올리버가 양손을 감싸며 영창했다.
그러자 시험관에서 뽑아낸 감정이 섬세하면서도 빠르게 헤엄쳐 송장인형의 앞뒤 좌우 위아래 육면(六面)을 감싸 검은색 막을 형성했다.
기본 흑마법 중 하나인 블랙 실드로, 송장인형은 무수한 인파 속에 홀로 고립돼 그대로 폭발했다.
쾅━━━!!!
둔탁한 폭발음이 항구 그것도 대낮 점심시간에 울려 퍼졌다.
폭발 특유의 끔찍한 소리와 땅 울림 탓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기겁하며 엉덩방아를 찧거나, 얼어붙었다.
실크햇을 쓴 중년 신사도, 허름한 재킷을 입은 청년도, 일행 없이 혼자인 소년도, 아내와 아이와 함께 온 남성도 이 순간만큼은 똑같았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올리버가 제때 막지 않았다면 승객들 대부분 죽거나 크게 다쳤을 테니.
다행히 블랙 큐브 덕분에 그런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폭발이 가라앉자 제 역할을 다한 블랙 큐브는 증발하듯 사라졌고, 흑마법 특유의 검은색 연기가 하늘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방금 전까지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은 모두 굳은 채 그 모습을 말없이 보더니, 천천히 올리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시선.
뭔가 말해야 할 것 같아 올리버는 입을 열었다.
“음······. 다들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누군가 대답했다. 아니, 비명을 질렀다.
“흐, 흑마법사다! 흑마법사!!”
“경찰! 씨발 경찰 불러!”
“으아아아아! 흐, 흑마법사!!”
“꺄아아아아악!!”
사람들은 폭발이 일어났을 때보다 더욱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제야 올리버는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깨달으며 손뼉을 쳤다.
“아, 맞다······. 흑마법사는 원래 이런 존재였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
흑마법사.
마법을 쓰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든 마법을 쓰기 위해 탄생한 아류와 같은 존재.
문제는 그 방법이 마력이 아닌, 인간의 감정과 생명력, 신체 등. 사람을 재료로 쓴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런 흑마법사는 사회에서 좋게 인식되지 못했다.
그건 올리버도 이해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사람을 재료로 사용했으니.
거기다 재료의 소모성이 높다는 특성과 그로 인한 부작용 탓에 흑마법사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재료로 삼아 더더욱 터부시됐다.
‘또, 대부분 흑마법을 배우는 사람은 사회 하류층인 데다, 이익에 민감해 범죄에 손대기 쉬우니 더 안 좋을 수밖에 없고······. 그래도 이건 예상 이상인데.’
올리버는 수백 명의 사람이 자신에게 멀어지기 위해 애쓰는 광경을 보며 생각했다.
비명을 지르는 것은 예사였으며, 경찰을 찾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자기 아이를 버리고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다.
‘음······. 진짜 큰일 났네.’
순식간에 난리 통이 된 주변을 보며 올리버가 생각했다. 반사적으로 펼친 흑마법에 이 정도까지 반응할 줄이야.
란다 뒷골목에서는 흑마법을 써도 문제가 없었기에 너무 안일하게 판단한 거였다. 도시 항구, 그것도 대낮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흑마법을 사용하다니, 명백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이건 좀 과하지 않나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가 됐건, 자폭-송장인형을 막기 위해 그런 것인데.
‘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걸 수도 있겠네. 그만큼 퍼스트 스텝(First Step)이 흑마법에 시달렸다는 거기도 했으니. 이제 어쩐다?’
올리버는 난리가 난 주변과 대조되게 차분히 고민했다.
이대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던 길 갈까 했지만, 주변 반응을 볼 땐 썩 좋은 생각 같진 않았다.
반대로 재빨리 도망쳐 자리를 벗어나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그럼, 너무나도 수상해 보일 거고, 진짜 경찰과 성기사가 쫓아올지 몰랐다.
신대륙 퍼스트 스텝은 홍인(紅人)으로 구성된 흑마법사들이 날뛰고 있어, 성기사의 힘도 강했으니 그렇게 된다면 정말 곤란했다.
‘근데, 저분들은 왜 저리 날 빤히 바라보는 거지?’
올리버는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자신을 관찰하는 마력 사용자와 마법사, 다섯 명의 여성형-송장인형을 대동한 젊은 흑마법사, 엔조이먼트로 보이는 드루이드 그리고 자폭-송장인형 바로 옆에 있던 실크햇 중년 남성을 보며 생각했다.
대부분 상당한 실력을 가진 이들로, 유일하게 실크햇을 쓴 남성만이 부유해 보인다는 점 빼고는 그렇다 할 특징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렬한 흥미를 느끼며 올리버를 관찰했다.
‘그에 비해 나머지 분들은 하나같이 날 경계하고 있어······. 그것도 뭔가 구체적인 이유로. 도대체 뭐지?’
생각 이상으로 격렬한 사람들의 반응과 이상한 경계심을 보이는 초인들로 인해 올리버의 고민 시간은 길어졌고, 덕분에 어떻게 할지 채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경찰들이 몰려왔다.
삐리리릭-! 삐리리릭!- 삐리리릭-!
제복과 모자,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찰 넷이 호각을 불며 올리버를 에워싸 총구를 겨눴다.
“손들어! 손!”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쏜다!”
“성기사님도 왔으니 딴생각하지 마라!”
경찰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올리버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애쓰는 인파 사이로 철 코트와 장검으로 무장한 성기사가 나타났다.
제법 젊은 성기사로, 그의 양옆에는 산탄총과 거대한 방패를 든 서번트 둘이 따라왔다.
가만 살펴보니 이곳 퍼스트 스텝에는 성기사가 제법 있는 듯하였다. 올리버는 이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손을 들어 저항의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일을 크게 벌이기 싫었고, 뭣보다 잘 해명했으면 됐으니 말이다.
폭발을 막기 위해 피치 못하게 흑마법을 썼다고 하면 분명 이해해 줄 터였다.
올리버는 그리 판단 내리며 장검을 찬 성기사에게 아까 전 일에 관해 설명. 결코, 소란이나, 누군가에게 해를 입힐 생각이 없음을 이야기했다.
설명을 차근차근 다 들은 성기사가 말했다.
“그따위 헛소리를 믿으라는 거야?”
***
헛소리. 성기사는 불신을 빛내며 단호히 말했다.
올리버는 자신의 설명이 부족했나 싶어 손짓, 발짓을 이용 정성껏 다시 설명하려 했으나 움직이지 말라는 경찰들의 제지에 손든 자세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크게 아쉽진 않았다. 성기사의 감정 상태를 봤을 때 올리버가 어떻게 설명해도 믿을 것 같지 않았기에.
왜냐면 그는 논리적으로 올리버를 믿지 못한다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올리버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왜냐면-
“-흑마법사 따위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헛소리 그만하고 손 내밀어. 자세한 이야기는 가서 듣도록 하지.”
성기사는 임의로 결론 내리며 성법이 느껴지는 두꺼운 쇠사슬을 꺼냈다.
양쪽 끝에 묵직한 추가 달린 것으로 볼 때, 여차하면 휘두르거나 던질 수 있는 물건인 듯했다.
올리버가 손을 내밀지 도망칠지 다시 고민하던 중 누군가 끼어들었다.
놀랍게도 끼어든 사람은 다름 아닌 중절모를 쓴 중년 사내였다. 평범한 몸으로도 혼란에 휩쓸리지 않고 올리버를 관찰하던.
그가 말했다.
“죄송하지만, 성기사님. 그 사람이 하는 말은 사실입니다.”
차분하면서도 이지적인 목소리에 성기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뒤돌아봤고, 주변에 구경하던 사람들 역시 웅성거렸다.
그도 그럴 게 성기사가 흑마법사를 체포하려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말리는 정신 나간 짓이었으니.
“······선생께서는 누구시오?”
성기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고, 올리버도 손을 든 채 실크햇 중년 사내를 봤다.
그는 난리 통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올리버를 관찰한 배짱을 뽐내듯 인상을 찌푸린 성기사에게 차분히 대답했다.
“아, 실례했습니다. 전 사업차 이곳 퍼스트 스텝을 방문한 숀 레드몬드라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숀 레드몬드 씨. 성기사로서 묻겠습니다. 지금 흑마법사를 변호하는 겁니까?”
성기사는 의례적인 인사는 물론 자기 이름도 생략한 채 바로 레드몬드를 압박했다. 마치, 괘씸한 방해꾼을 대하듯.
그러나 레드몬드란 사람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는 성기사의 날카로운 태도에도 불구하고, 기가 꺾이긴커녕 차분히 예의를 지키며 제 할 말을 했다.
“오호, 결코 아닙니다. 성기사님. 감히요······. 다만, 저 흑마법사가 자폭하려던 송장인형을 막기 위해 흑마법을 쓴 게 사실이라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제가 바로 옆에 있었거든요. 그 증거로 지금 폭발의 흔적은 물론, 다친 사람도 없지요. 도망치다 자기들끼리 밟은 사람 빼고요.”
올리버는 갑자기 도와준 숀 레드몬드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도와주는 건지 의문을 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을 돕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그의 감정 상태 때문이었다.
그는 단순히 도움을 받았기에 호의를 베푸는 게 아니었다. 그는 지금 어떠한 목적의식을 빛내고 있었다.
올리버에게 뭔가 바라는 감정을 품는 게 그 증거.
그러나 그런 레드몬드의 생각과 별개로 성기사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레드몬드 씨. 신분이 불명확한 흑마법사를 잡는 건 우리 성기사의 임무. 정중히 말씀드리건대, 물러나시지요. 만약, 계속해 관여하신다면 레드몬드 씨 역시 무슨 관계가 있는 건지 조사해야 합니다.”
허세가 아닌 진심. 그 정도까지 말하자 레드몬드란 사내 역시 주춤했다.
역시 성기사라 할 수 있었다. 산업의 시대에 접어들어 그 위세가 약간 꺾였다 해도 자신들의 관리 분야인 악마와 흑마법사에 관해서는 아직 절대적 권위를 자랑했다.
그렇다 해도 올리버는 레드몬드란 사람에게 충분히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미 차고 넘치게 도와줬기에.
“혹시, 제가 신분을 증명할 수 있으면 괜찮겠습니까?”
올리버가 대뜸 말했다. 마치, 남의 일을 도와주듯 태연자약한 목소리로.
그 탓인지 목소리가 크지 않았음에도 모두의 시선을 끌어당길 수 있었다.
“제가 마탑에 고용된 직원이기도 하거든요······. 잠시 손 좀 내려도 될까요?”
올리버의 물음에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다시 한번 웅성거렸다.
마탑 직원이라는 건 마법사라는 걸 뜻했다. 그것도 상당한 엘리트 마법사.
올리버는 새삼 마탑의 직원이 된 게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기사는 웅성이는 사람을 살펴보고는 꺼내 보라 했으며, 올리버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마탑 직원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을 꺼내 성기사에게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며 구경꾼들은 더욱 웅성거렸고, 경찰과 성기사 역시 크게 놀란 반응을 보였다.
실크햇을 쓴 레드몬드는 역시나 라는 감정을 빛냈고, 올리버를 아까 전부터 관찰하던 마력사용자, 마법사, 드루이드, 흑마법사 역시 흥미를 보였다.
도대체 뭐가 뭔지······. 솔직히 썩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원래 계획은 조용히 요안나만 만날 예정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떠들썩해졌다.
“믿을 수 없군. 흑마법을 쓰는 마법사라니. 말이 안 되잖아?”
“아, 거기에 관해서라면 설명하기 조금 길어지는데-”
“-잘 됐군. 그럼, 따라와.”
“예?”
“설명이 필요하다며. 그럼, 와서 이야기해. 뭣보다 이런 신분증 따위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어서 추가로 확인해야 해.”
“아뇨, 꼭 그건 아닙니다.”
올리버가 성기사의 말을 정정하며 몸에 저장한 마력을 출력해 신분증에 가져다 댔다.
신분증에 저장된 술식은 마력과 반응해 허공에 마력으로 이뤄진 일정한 문양과 숫자를 띄웠다.
신분증 위조를 막기 위한 보안 마법으로, 신대륙 성기사도 이를 아는지 꽤 동요했다.
“······마탑 일로 방문한 건가?”
“아뇨, 개인적인 일 때문에 방문했습니다.”
“개인적인 일 무슨?”
“그게-”
올리버가 대답하려는 순간 목구멍에서 말이 막혔다.
성기사 요안나를 만나기 위해 란다에서 여기까지 배 타고 왔다고 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어쩌면 요안나에게 혹시 모를 피해가 갈지도 몰랐다.
올리버는 그럴듯한 거짓말을 대기 위해 침음성을 내며 고민했다.
“음······.”
마탑 일로 왔다고 말하긴 이미 늦었고, 혹시 조사할 수 있었으니 썩 좋은 핑계는 아니었다. 아예, 관광하러 왔다고 말할까 했지만, 성기사의 감정 상태를 볼 땐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이야기였다.
그렇게 올리버가 고민하는 사이, 성기사의 의심과 적개심은 최고조에 달해, 실력 행사를 해서라도 올리버를 끌고 가려 하였는데, 그 찰나 요란한 경적 소리가 들렸다.
저기 인파 뒤에서.
빠라바라빠라밤!!
곧 그것이 잘못 들린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두꺼운 보닛을 자랑하는 한 고급 차량이 구경꾼들을 밀어내며 나타났다.
“우, 우아아아악!!”
“끄아아아악!!”
“뭐, 뭐? 크왁!”
“밀지 마! 밟지 마!!”
“내 다리! 다리가······!”
자동차에 치여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비명의 하모니를 질러댔다.
아주 임팩트 있는 등장에 성기사와 서번트가 깜짝 놀랐고, 그사이 갑자기 들이닥친 자동차 뒷좌석에서 한 뚱뚱한 사내가 내렸다.
에디스였다.
란다 자수성가의 아이콘이자, 제인의 친아버지인 에디스.
그가 올리버를 보며 말했다.
“허! 삐쩍 곯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생각보다 더 심하군.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나?”
“안녕하십니까. 에디스 님. 만나서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