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 신대륙 (1)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포레스트.
그 말을 들은 올리버는 알겠다며 포레스트와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는 부동자세로 선 채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고, 올리버와 포레스트가 사라진 후에야 숨을 쉴 수 있었다.
“후우······.”
“괜찮으신가요?”
긴장이 풀린 조 옆에서 웬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택하는 사람들의 대표 마리였다.
그녀는 유령처럼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노라라는 꼬마는 좀 나아졌나요?”
“······왜 궁금하시죠?”
조는 저도 모르게 방어적으로 말했다. 같이 일하는 동업자에게 다소 부적절한 태도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과거 데이브를 신으로 숭배한 사이비 종교의 교주였으니······. 아니, 어쩌면 지금도 마찬가지일지도.
교주로서의 활동을 포기했다지만, 데이브에 대한 신앙심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같이 일하면 알기 싫어도 알 수 있었는데, 조는 그 점은 영 마땅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게 X구역에서 그런 사이비 종자들을 심심치 않게 봐왔기 때문이었다.
‘사업이 시작되고 갑자기 사라졌지만·····. 찜찜해.’
어쨌건 조는 그들을 상대해봤고, 갱보다도 역겨운 존재라는 게 개인적인 평가였다.
살인, 고문을 넘어 인신 공양, 식인 등등. 약을 빤 갱들도 하지 않을 짓을 웃으며 하는 음험한 종자들이었으니.
그런 그들에게 노라가 어떻게 인식될지 감히 상상도 하기 싫었다.
허나, 그런 조의 걱정과 달리 마리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요? 걱정······은 아니지만, 궁금해서요. 상태가 어떤지요.”
상태가 궁금하다라······. 조는 몸을 돌려 마리를 정면으로 봤다.
병자 같은 창백한 피부와 괴상한 보랏빛 머리를 가진 여성을.
놀랍게도 따로따로 보면 매력과 거리가 먼 두 요소는, 조화를 이루자 묘한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보통 사이비 교주는 늙은 할망구나, 뚱보 늙은이인데, 참으로 특이하다 할 수 있었다.
조가 대답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지금은 제대로 밥 먹고 있거든요.”
“그래요?”
“예······. 데이브 씨께서 그래 달라 부탁했거든요.”
조는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자문했다. 데이브가 지켜보고 있으니 허튼 생각하지 말라고 미리 경고한 걸까? 아니면 그냥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자신도 헷갈렸다.
“그거 다행이네요.”
조는 움찔했다.
흑마법 수준이 차이나 마리의 감정을 완전히 꿰뚫어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빈말이 아니란 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노라의 상태가 호전된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럼 그 아이는 앞으로 뭘 할 예정이죠?”
“노라요? 무슨 말씀이신지. 뭘 한다니요?”
“말 그대로요. 아무것도 안 먹다 식사를 재개했다면 살고 싶어졌다는 거고, 살고 싶어졌다면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다는 뜻이잖아요?”
“글쎄요······. 아마, 데이브 씨를 기다릴 겁니다.”
“좋네요. 하지만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곧 다시 무기력해지는 법이죠······. 혹시 본인이 원한다면 저한테 보내세요. 흑마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경계하지 마세요. 그분께서 제게 따로 부탁한 거니까요.”
마리가 그분이라 칭했다. 그런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었다. 데이브.
“그분께서 말하길 노라의 무력감이 너무 심하다고 하더군요. 본인이 원한다면 흑마법을 가르쳐주라 제게 따로 말씀하셨어요. 무력감을 없애는 법은 강해지는 것뿐이니까요.”
마리가 짙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저 말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조는 확인했다.
“데이브 씨가요?”
“예, 가르치는 건 여러분도 할 수 있겠지만, 제가 더 잘하니까요·····. 말실수하실까 봐 미리 말씀하는 건데, 전 그분에 관해 농담도 거짓말도 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데이브 씨가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죠?”
“하류층이 힘을 얻는 방법은 보통 흑마법이니까요. 그분께선 일찍이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흑마법을 통해 힘을 구하는 걸 봐 그런 결정을-”
“-아뇨. 왜 노라에게 흑마법을 가르쳐주냐고 묻는 겁니다. 그 아이는······.”
조가 말꼬리를 흐렸다. 올리버가 용서해준 것과 별개로 노라의 죄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조의 질문은 왜 자길 죽이려 했던 아이에게 흑마법을 가르쳐주냐는 거였다.
노라가 흑마법을 배운다고 데이브를 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리는 이에 단호히 대답했다.
“원래 그런 분이니까요.”
“예?”
“원래 그런 분이라고요.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건, 상대가 의지를 보인다면 용서해주고, 기회를 주시죠. 당신도 아실 텐데요?”
조는 부정하지 못했다. 자신 역시 겪어봤기에.
조는 연이어지는 대화에 피로를 느껴, 톡 까놓고 물었다.
“당신은 노라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없습니까? 데이브 씨를 독살하려 했는데요.”
“오해는 하지 마세요. 노라, 그 아이가 좋다는 건 아니니까. 아직도 그분께 독을 건넨 건 몹시도 불쾌하게 생각해요. 불쾌하다는 건 순화해서 표현한 거고요.”
진심.
“하지만 그와 별개로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어요. 그분께서 그러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진심이군요.”
“물론이죠.”
“솔직히 말해 의욉니다. 교주라고 해 앞뒤 가리지 않고 미친개처럼 물어뜯을 줄 알았는데요.”
조가 도발했다. 마리의 감정을 제대로 보기 위해.
그러나 그녀는 훗 하고 웃을 뿐이었다. 무엇인가 깨달은 사람처럼.
“과거의 저였다면 그랬을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왜 그렇죠?”
“깨달았거든요. 숭배하기에 태양이 아니라, 태양이라 숭배한걸요.”
“?? 그게 무슨······?”
“제가 그분을 위해 멋대로 숭배하고 화내며 찬양하는 것 자체가 모욕이란 걸 깨달았다는 거예요. 기적을 겪고요.”
마리가 자신의 배에 손을 가져댔다.
“태양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이 숭배하게 될 테니까요.”
조는 말했다. 역시 이 여자와 맞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뭔가 잘못 아는 거 같은데, 내게 데이브 씨는 영웅이긴 해도 신은 아닙니다.”
“잘못 알고 있는 건 당신이에요······. 신, 영웅 그런 건 그저 단어일 뿐이거든요. 중요한 건 단어가 아닌, 그 내면에 깃들어 있는 의미고요. 제가 말하는 신과 당신이 말하는 영웅의 공통점이 정말 뭔지 모르시겠나요?”
평소였다면 개소리라 치부할 질문. 그러나 기이하게도 조는 호기심이 생겼다.
“뭐죠?”
“삶에 가치와 의미를 준다는 거예요. 우리에게.”
조는 그 말에 콧방귀를 뀌려 했으나, 막상 하려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가슴 속 깊이 그 말을 부정할 수 없듯.
마리가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기이하면서도 매력적인 미소를.
“물론 아직은 때가 아니지만요.”
***
우적. 우적. 우적.
란다에서 신대륙으로 이동하는 여객선.
올리버는 개인 책상과 침실이 딸린 일등석에서 칼로리바, 쿠키, 샌드위치, 치즈, 육포 등. 미리 챙겨오거나 여객선에서 산 간식을 먹으며, 신대륙 도시 퍼스트 스텝(First Step)의 행정 지도를 살펴보았다.
최소한의 도시 지리는 파악해야 곤란함을 겪지 않을 거라 판단해.
지도를 살펴본 순간 올리버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직감했다.
퍼스트 스텝은 이름처럼 신대륙에 첫 번째로 건설된 도시답게 상대적으로 오랜 역사를 지녔고, 그 역사에 걸맞게 꽤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탐사 거점을 시작으로, 노예 공급처를 거쳐, 현재는 신대륙의 군사 거점 겸 마석 공급처 역할을 맡았으니.
역할이 변한 것만 서너 차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 사(社)의 영향력이 아주 강한가 보네.’
올리버가 행정 지도에 떡 하니 자리 잡은 프로메테우스 사(社)의 본사 건물과 프로메테우스 사(社) 소유 광산, 마석 가공 공장 등을 보며 생각했다.
흡사 인간의 장기를 연상시키듯 도시의 핵심에 위치해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중요한 곳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침대 위에 널브러진 신대륙 신문을 통해서도 프로메테우스 사(社)의 존재감을 알 수 있었다.
왜냐면 해당 신문 모두 프로메테우스 사(社)가 곧 주최할 주주총회를 대문짝만하게 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금광이다, 새로운 사업이다 뭐다 신대륙을 기회의 땅이라 포장했지만, 아직은 마석 공급이 신대륙의 경제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었으니, 거기다 마석은 지금 산업과 마법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기도 했다.
‘그래선가? 여기도 란다만큼 평화롭지는 않네.’
올리버가 신문을 다시 살펴보며 생각했다.
과거 카버가 말하길 신대륙엔 홍인(紅人)으로 구성된 흑마법사들이 날뛰고 있다 하였는데, 그 말을 증명하듯 신문에는 해당 흑마법사들이 몇 개월 전부터 프로메테우스 사(社)를 향해 지속적인 테러를 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싣고 있었다.
광산을 비롯한 사업장, 직원, 간부, 주주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이는 피처럼 붉은 피부를 가진 유색 인종이 얼마나 난폭하고 야만적인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 선택받은 국가는 이들에게 교육과 문명을 전파했지만, 이들이 받아들인 거라곤 흑마법뿐이며, 이를 잔혹하고 야만적인 테러에 사용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이들은 동족도 흑마법 재료로 사용한다 하며, 이를 참고해 홍인(紅人)에 대한 더욱 강경한 정책을 펼쳐-]
“······음.”
올리버는 신문에 실린 사설(社說)을 읽으며 침음성을 냈다.
마탑에 출근하고 들은 인종학, 우생학 수업과 비슷한 내용으로, 올리버는 개인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해 포기한 학문이었다.
물론, 이게 틀렸다고 판단한 건 아니었다.
자신은 이에 관해 연구도 공부도 한 적 없어 판단을 내릴 자격이 없었으니. 다만, 개인적으로 동의하긴 힘들었다.
왜냐면 올리버가 아는 홍인(紅人)만 해도 케빈과 알을 비롯한 포레스트 레스토랑의 종업원 등 다수가 있었건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야만적이거나, 멍청하지 않았다.
개인 성향상 발끈하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그 외에는 똑같았다. 아니, 오히려 훌륭했다.
케빈, 알 등. 모두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높은 능력을 보유했으니.
케빈은 마법, 학식, 강의 능력, 서류처리 등을, 알은 서빙, 서비스, 운전 실력 등을.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신문 내용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왜냐면 신문에는 란다에서도 보기 드문 테러의 흔적이 찍혀 있었기에. 그리고 동족을 재료로 쓴다는 것도 걸렸다······. 조금 그렇지 않은가?
마리가 선택하는 사람을, 조가 파이터 크루 사람들을 재료로 쓴다는 거였으니.
‘아니지, 오히려 이게 흑마법사다운 건가?’
올리버가 잠시 그리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뱃고동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부우우우우웅━!
신대륙 도시 퍼스트 스텝(First Step)에 도착한 것이었다.
***
웅성웅성웅성.
천천히 짐을 정리해 일등석에서 나온 올리버는 먼저 계단을 타고 항구에 내리는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좁다란 계단을 통해 내려가는 그들은 흡사 좁은 굴을 빠져나가는 개미처럼 보였는데, 차이가 있다면 개미와 달리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나름대로 개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빈민과 부자, 노동자와 사업가처럼. 왜냐면 정말 빈민과 부자, 노동자와 사업가가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흑마법사와 마법사, 마력 사용자, 드루이드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문의 광고대로였다. 신대륙은 기회의 땅이라 매일 온갖 사람들이 방문하였다. 어떠한 위험이 도사려도.
올리버는 이곳의 방문한 목적과 별개로, 이 기회의 땅에 흥미를 느끼며 개미 떼 같은 인파 사이로 섞여 내려갔다.
그 과정에서 올리버는 짐을 잃지 않기 위해 가방을 꽉 쥐며, 주변을 계속해 둘러봤다.
다시 봐도 다양한 사람이 있어 흥미로웠다. 심지어 사람이었던 것도 있었다.
가령, 저멀리 승객들에게 접근해 오는 송장인형이라든가.
그리 좋은 물건이 아닌지 비틀비틀 걸음걸이가 어설펐는데, 그보다 한 가지 사실이 더 눈에 띄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몸에 심장과 감정을 재료로 한 흑마법 폭탄이 장착된 점이었다.
“복수를.”
하선하는 승객들에게 접근한 송장인형이 양팔을 벌리며 외쳤다.
그와 함께 송장인형 내부에 장착된 폭탄이 발동, 송장인형의 입과 눈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단 몇 초 만에 벌어진 일. 여독이 쌓인 승객들은 깜짝 놀라 아무것도 못 하였고, 올리버만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담담히 대응했다.
[블랙 큐브(Black C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