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50화 (450/633)

450. 상황 정리 (4)

“신대륙에 간다고?”

마탑. 생명학파 타워, 그랜드 마스터실. 다른 그랜드 마스터실 보다 크고 화려한 그곳에서 멀린이 말했다.

갈로스에서 돌아온 지 꽤 됐음에도 책상 위에는 각종 서류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예.”

“흑마법사가 성기사를 만나러 신대륙으로 간다라······. 좀 놀라셨겠구만.”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포레스트는 성기사를 만나러 신대륙으로 가겠다는 올리버의 발언을 듣고 적잖게 놀랬다. 그렇다고 말리거나, 이유를 추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떠나는 것 자체는 반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

“예······. X구역에서 조금 큰일이 벌어졌으니. 란다를 잠시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셨거든요. 성기사라든가, 다른 이들이 귀찮게 할지 모른다고요.”

그랬다. 포레스트는 놀란 것과 별개로 올리버가 잠시 란다를 떠나는 걸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올리버가 자리를 비움으로 여러 귀찮은 일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말이다.

물론, 그로 인해 다시 적대 세력이 고개를 들 수도 있었지만, 그 역시 나쁘지 않다고 했다.

어차피 시(市)와의 협상까지 끝낸 상태. 판이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 이쯤에 와서 움직이는 건 날파리뿐이라 하였다.

그리고 날파리는 찾는 게 어려울 뿐 잡는 건 어렵지 않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파이터 크루와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일리 있는 말이었다. 올리버의 최근 활약에 가려졌다 뿐, 대부분 재개발 사업은 파이터 크루와 선택하는 사람들 선에서 처리됐으니.

그들 역시 란다에서 무시할 만한 세력은 아니었다.

“거참 배려심 넘치는 중개인이군.”

“저도 같은 생각 합니다······. 참 복 받았지요.”

“그걸 자랑하러 나한테 찾아왔나?”

“어쩌면요······. 또,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제가 신대륙으로 간다고요. 스승님이시니까요.”

“정확히는 임시 스승이지.”

멀린이 호칭을 정정했다. 마력의 벽 때문에 감정을 볼 순 없었지만, 비꼬거나 악의가 있는 거 같지는 않았다.

‘농담 같지도 않지만.’

멀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임시 스승도 스승. 질문 좀 해도 되겠나?”

“하시지요.”

“신대륙으로 가 그 성기사 아가씨를 만나 뭘 하고 싶은 건가?”

“음······. 우선 신대륙에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보고 싶습니다.”

“그래?”

“예, 궁금하거든요. 어떻게 지내시는지. 그 성기사님 덕분에 제가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으니까요.”

올리버가 요안나와 대화했을 때를, 또, 그녀의 말처럼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를 떠올렸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캔트와 포레스트, 로스번, 에디스, 제인, 조, 케빈, 멀린 등등 그 외 수많은 사람을······. 실망스러운 일도 있긴 했지만, 그녀가 올리버에게 큰 은인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분께 제가 세상 밖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다시 물어보고 싶습니다.”

“무엇을?”

“제가 정말 망가졌는지요.”

“······.”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심각한 건 아니니까요. 그냥 그분의 의견을 묻고, 조언을 구하려는 것뿐입니다······. 정말 망가진 건지, 그렇다면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를요.”

“······고친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건가?”

“음······. 저도 설명하기 어렵네요. 뭐랄까······. 좀 제대로 느끼고 싶습니다. 감정? 공감? 같은 것요.”

올리버는 허공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그 모습은 흡사 아이를 연상케 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걸 설명하는 아이.

“제가 아름다운 빛에 관심 있는 거 알고 계십니까?”

“알지. 말해줬으니까.”

올리버는 품 안에서 은으로 된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 그 안에는 필거렛 두 개비 들어있었다.

“그 아름다운 빛으로 만든 필거렛입니다. 하나는 던칸 님, 다른 하나는 셰이머스 님 거죠. 두 분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싸웠지만, 그와 별개로 전 두 분이 대단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가?”

“예. 한 분께서는 마법을 못 쓰는 마력사용자임에도 마법사 이상의 지위를 꿈꾸며 끊임없이 노력했고, 셰이머스 님께서도 뭔가 나름의 꿈이 있었거든요. 목숨보다도 소중한 무엇인가요······. 전 그게 뭔지 알고 싶습니다.”

“모르나?”

“뭔지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는데, 여기로는 모르겠습니다.”

올리버가 자신의 왼쪽 가슴을 톡톡 쳐다.

“그분들의 꿈과 목표는 제겐 아름답지만, 딱 아름다운 수준이거든요······. 옛날에 그것만으로 충분했는데, 지금은 더 욕심이 생겼습니다. 단순한 아름다움 이상으로,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러면?”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알 수 없는 말에 멀린이 고개를 갸웃댔다. 그러나 구태여 묻진 않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잘 헤쳐나가길 빌지. 배운다는 건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두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그만한 값어치는 있을 걸세.”

멀린이 조언해줬다. 얼핏 쉬운 말 같았지만, 그 깊이는 달랐다.

“어르신의 가르침 명심하겠습니다.”

“신대륙은 언제쯤 갈 생각인가?

“오늘 저녁 배를 타고 떠날 생각입니다.”

“촉박하구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미, 급한 일은 다 끝내서 어르신께 인사드리고, X구역에만 한 번 더 들리면 됩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올리버는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써드와 함께 82구의 드루이드 시체에서 지식을 뽑아내는 데 성공.

용도를 다한 시체를 개혁파 드루이드에게 깔끔하게 넘겨줬다.

그 외에도 올리버가 자리를 비운 사이 X구역 숲을 관리할 써드와 퍼스트 역시 사회화 교육이 얼추 끝낸 상태라 믿고 떠날 수 있었다.

천사의 집 종업원들이 어찌나 일을 잘해줬는지, 어제는 혼자서 카페에 들어가 커피 주문에도 성공했다.

종업원 얼굴에 주먹이나 사커킥을 날리지 않고 말이다. 처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하지만 한편으로 아쉽구만.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는 학생과 교수들이 많은데.”

“저를요?”

“이상한 건 아니지. 자네 배경이나 최근 활약을 보면 혈기왕성한 학생들이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거든.”

“그런가요?”

“그래, 교수들은 자네와 논문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고. 거듭 검토한 결과, 자네 논문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거든.”

“아······.”

“뭐, 크게 신경을 쓰지는 마. 자기들끼리 연구하고도 있으니.”

“음······. 확언은 못 드리지만, 가급적 빠르게 마무리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오, 임시 스승 면 세워주려는 건가?”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럴 땐 빈말로도 그렇다고 대답하는 거야.”

“아······. 어르신을 위해 가급적 빠르게 마무리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오직 어르신을 위해.”

“늦었고, 거짓말인 게 너무 티 나······. 그래도 선물은 주도록 하지.”

멀린이 서류가 가득 쌓인 책상 아래에서 서류 가방을 꺼내 올리버에게 내밀었다.

“이건······?”

“악마의 서적.”

“예? 이걸 왜······?”

“걱정하지 마. 읽어보고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거만 추려낸 거니. 생각해보니 전부 안 주는 건 너무한 것 같아서.”

앞뒤가 맞지 않는 말. 그러나 올리버는 굳이 따지지 않았다. 뭐가 됐건 받은 건 받은 거였으니.

“감사합니다. 읽어도 되는 건가요?”

“당연히 읽어도 되지. 사람 많은 곳 말고, 혼자 있을 때만. 자네도 그 정도는- 몰랐구만. 이거!”

멀린이 올리버의 반응을 보고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악마의 책은 뭐가 됐건 악마의 책. 취급에 주의해. 잘못하다간 기껏 쌓은 노력이 한순간 다 무너질 수 있으니.”

“예······. 그런데 책 내용은 뭐죠?”

“악마를 소환하는 방법이나, 악마들이 강림했을 때를 담은 일기, 야사(野史) 등 다양해. 하지만 자네가 흥미를 가질만한 거까지는 아니야.”

올리버가 서류를 한참을 보다 대답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네요. 신대륙으로 가도 심심하지 않겠습니다. 선물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멀린과의 대화를 끝마치고 그랜드 마스터실을 나온 올리버는 곧바로 생명학파 타워 바깥으로 향했다.

복도를 걷는 도중 올리버는 마탑에 들어왔을 때처럼 여러 감정이 깃든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의심, 경계, 호기심, 호승심, 질투, 두려움, 원망 등등. 생명학파라 그런지 호기심보다는 적개심이 더 강했다.

멀린이 말처럼 아직 생명학파엔 테어도어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듯하였는데, 올리버는 개의치 않고 칼로리바를 하나 꺼내 입에 넣으며 걸어갔다.

자신에게 무슨 감정을 품든 그건 본인 자유였으니.

다행히 학교 안이라 그런지 감정은 감정으로 끝날뿐. 대부분 올리버가 멀어지자 하나둘 시선을 거뒀다.

그렇게 올리버가 입구에 다다를 때쯤, 웬 낯익은 감정이 보였다.

“야렐리 씨?”

올리버가 입구 앞에선 야렐리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제논 씨.”

“예, 안녕하십니까? ······어르신을 만나러 오신 겁니까?”

“아뇨, 제논 씨를 만나러 왔어요.”

“저를요?”

올리버는 되물으며 주변을 살펴봤다.

기형적으로 좁아지는 원뿔 형태인 타워 주변에 적잖은 사람들 있었고 모두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야렐리는 갈로스에서 영웅이란 칭호를 얻은 사람이었으니 당연했다. 신문과 라디오에서 그녀의 이름을 간간이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영웅 야렐리가 말했다.

“예······. 케빈 교수님께 여쭤보니 여기 있으실 거라 하셔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떠올랐다. 야렐리가 자신을 만나고 싶다고 한걸. 갈로스를 떠나기 직전 케빈이 말해줬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일정이 바쁜 올리버는 바로 용건에 관해 물었고, 야렐리는 아주 잠깐 서운한 감정을 빛냈다.

“······저번에 도와주신 것 인사드리고 싶어서요.”

“별거 아닙니다.”

“······그리고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사과요?”

“예······. 그런데 아직도 전투 후유증을 못 고치신 건가요?”

야렐리가 뺨이 푹 들어간 올리버를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어색하게 손을 뻗으려다 이내 멈췄다. 뭔가 하려다 하지 못하듯.

올리버는 칼로리바를 다시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이상하게 회복이 잘 안 되더군요. 계속 먹어도 허기가 져서요.”

“그럼, 위험한 것 아닌가요? 치료라도 해야 하지 않나요?”

“큰일은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올리버가 반쯤 거짓말했다. 큰일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큰일일 수도 있었다.

왜냐면 포레스트가 가져다준 성법 아이템으로도 치료하지 못하였기에. 즉, 단순한 기아병이 아닐 수도 있었다.

‘당장 알 방법은 없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올리버가 그리 생각하며 다시 말했다.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사과할 게 뭔지요? 야렐리 씨께서 제게 사과할 게 있나요?”

“제가······. 당신 공을 가로챘잖아요.”

“공이라면······. 라빌리 말씀입니까?”

“예, 로큘리 대학의 배신자를 처단한 것과 인육 요리사의 계획 등·····.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정말 죄-”

“-아닙니다.”

올리버가 단호하게 손을 들어 야렐리의 말을 멈췄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거 같기는 하지만, 전혀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오히려 야렐리 씨께서 그 공을 가져가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왜······?”

“당시 제가 좀 피곤했거든요. 그래서 쉬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야렐리 씨 덕분에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건 제 쪽입니다. 야렐리 씨야말로 괜찮으신지요? 조금 피곤하시다고 들었는데요?”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실례해봐도 되겠습니까?”

“······? 무슨 급한 일이 있나요?”

“예······. 갈 데가 있어서요.”

“X구역인가요?”

야렐리가 추측해 물었다. 올리버가 X구역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이미 마탑 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했으니. 그와 관련된 각종 괴소문도 돌고 있었다.

올리버가 답했다.

“음······. 일단은 그렇습니다.”

애매모호한 대답. 야렐리는 저도 모르게 물었다.

“사업 때문에 가시는 건가요?”

“아뇨, 란다 밖으로 잠시 갈 예정인데, 그전에 인사 좀 하려고요.”

“란다 밖요? 어딜······?”

“그건 비밀입니다. 개인적인 일이거든요.”

***

“캬햐햐햐하하하!!”

“캬햐햐햐하하하!!”

X구역 중부 숲. 그곳을 관리하기로 한 퍼스트(First)와 써드(Third)가 올리버를 보자마자 동시에 소릴 질렀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똑같은 감정을 빛냈다.

원망, 미움, 경멸, 혐오.

갑자기 왜 이러는지 올리버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략 일주일 동안 2~3시간만 재우고 일 시킨 것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정말 모르겠나?”

옆에 있던 포레스트가 올리버를 보며 대뜸 물었다.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음······. 법정 근로 시간을 안 지켜서일까요?”

포레스트가 검지를 들며 뭔가 말하려다 말고 손가락을 접었다.

“포인트가 잘못되긴 했지만, 그렇긴 하지. 외국인 노동자도 하루 3시간만 재우고 일 시키진 않아.”

“차일드는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신이여.”

“맙소사.”

퍼스트와 써드는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참으로 대단했다. 천사의 집 종업원들 교육 덕분인지 반응이 한결 자연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하루 세 시간만 재우고 교육할걸.

그러나 후회에도 이미 늦은 일. 올리버는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한 채 퍼스트와 써드가 들어간 송장인형-바토리와 셰이머스의 손을 한쪽씩 붙잡으며 정중히 부탁했다.

“어쨌건 퍼스트, 써드. 제가 없는 동안 두 분이서 이 숲을 잘 관리해주세요. 특히, 퍼스트는 자연의 힘을 다룰 순 없지만, 옆에서 써드가 일하는 걸 보며 자연의 힘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배워주세요. 드루이드 송장인형이 생기면 바로 활용할 수 있게요.”

“······.”

퍼스트는 말없이 눈을 가늘게 뜨며 올리버를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써드에게도 따로 부탁했다.

“써드도 잘 부탁드려요. 엔조이먼트의 세포 82개 중 10개 정도 이식했으니, 아마 전보다 숲을 관리하기 더 쉬울 거예요. 만약 힘에 부치면 바깥은 포기하고 중심만 지켜주세요. 자연의 힘을 보충하러 갈 때는 포레스트 님에게 말씀하시고요.”

써드 역시 도끼 눈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두 분 다 천사의 집 종업원분들에게 배운 대로 사람들하고 잘 지내 주세요. 싸우지 말고요.”

“그건 모른다.”

“안 지키면. 어찌 되나?”

예상치 못한 대답. 올리버는 잠시 고민했다.

“음······. 그건 그때 가봐서 고민해보죠.”

고민해보겠다는 올리버의 대답에 퍼스트와 써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서운 것을 본 듯.

“그래도 전 두 분을 믿으니, 고민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퍼스트와 써드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고 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동시에 믿으라고 말했다.

올리버는 그런 그 둘에게 숲을 맡기며 다시 돌아갔다.

“참 믿음직하군.”

“차일드는 모두 믿음직합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게.”

“예?”

“신경 쓰지 마. 그보다 빨리 가지. 조 하고 그 꼬마 아가씨가 초조할 테니.”

포레스트가 차에 타며 말했고, 올리버도 퍼뜩 정신을 차리며 차에 올라탔다.

곧 있으면 신대륙으로 가는 배가 출발함에도 X구역을 방문한 건 꼬마 아가씨를 만나기 위해서였으니.

그런 올리버의 마음을 아는지 운전석에 앉은 알은 능숙하게 과속과 드리프트를 병행해 최고속력으로 움직여 줬고, 얼마 가지 않아, 올리버는 파이터 크루가 사는 거주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재개발에 필요한 인력 사무소와 자재 창고로 북적이는 도로 한복판에서 조가 올리버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예······. 노라는 어디 계시죠?”

“저기 있습니다.”

조는 자신의 집을 가리켰다.

조의 안내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전에 봤을 때보다 수척해진 노라가 죄인처럼 묵묵히 앉아 있었다.

······어쩌면 ‘처럼’이란 말은 틀린 걸지도.

엔조이먼트 드루이드들에 이용당해 올리버를 독살하려 했다지만, 어찌 됐건 자의로 올리버를 독살하려던 것은 사실이었으니.

만약, 올리버가 이번 일을 불문(不問)에 부치지 않았다면, 아무리 조가 있다 해도 핍박을 피하기 어려울 터였다.

“안녕하십니까?”

올리버가 노라에 앞에 가 대뜸 인사했다. 자신을 독살하려던 사람과 자기가 죽인 사람의 여동생에겐 어째 어색한 말이었지만, 아직도 이런 문제에 관해 그렇다 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올리버는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노라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독살 시도가 들켰을 때와 똑같은 상태. 하긴, 험한 구역에서 자라나 어른스럽다 해도 아직 10대 초중반 소녀였으니.

솔직히 올리버도 이편이 나았다. 그녀가 뭐라 말해도 올리버는 해줄 말이 마땅치 않았으니.

그래서 올리버는 미리 준비해온 말만 했다.

“노라 씨. 우선 당신께 세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대답하지 않아도 좋으니 들어주세요.”

“······.”

“첫 번째는 전 아직도 당신께 미안하지 않다는 겁니다.”

노라는 침묵했다. 분함과 무력감을 빛내며. 당연했다. 앞뒤 사정이야 어찌 됐건 자기 가족을 죽인 자가 이리 말하니. 어찌 화가 나지 않고, 무력하지 않겠는가?

“두 번째는 당신이 하려고 했던 일이 썩 현명치 못했다는 겁니다. 왜 그런 건지 이해는 되지만, 실패했건, 성공했건, 노라 씨를 지금 보호해주고 있는 조가 난감할 뻔했어요. 그건 아시죠? 노라는 똑똑한 사람이니까.”

노라는 또 침묵했다. 분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음 한구석으로 이를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었다. 역시 똑똑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드릴 말씀이라기보다는 부탁에 더 가까울 겁니다.”

“······?”

노라가 의문을 품으며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올리버는 그런 노라에 맞춰 한쪽 무릎을 꿇고, 시선을 똑바로 마주친 쳤다.

“제게 조금만 시간을 주실 수 있나요? 제가 노력해 당신께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게 시간을요······. 그때까지 부디 밥 꼬박꼬박 먹고, 잠도 푹 자며 무사히 있어 줄 수 있나요?

노라는 이번 역시 침묵했다. 허나, 그녀의 감정은······.

***

노라와의 대화를 마친 후, 올리버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포레스트가 차로 배웅해주겠다고 했지만, 이미 여객선 선착장 근처에 포털 마법이 깃든 종이를 미리 배치해둔 터라 그럴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

“포털 마법? 그거 참 편리하구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용하면 안 되지만 일정이 급해서요”

대답을 들은 포레스트가 시계를 갑자기 살피더니 물었다.

“그럼, 아직 시간은 좀 있겠군. 같이 좀 걸을 수 있겠나? 단둘이?”

“괜찮지만, 왜 그러시죠?”

“대화 좀 나누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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