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46화 (446/633)

446. 업(業) (2)

“그만두시지요. 과하십니다.”

조가 말했다. 올리버의 손목을 잡은 채.

그 모습에 쌍권총 샘, 쇠몽둥이 오언 등 파이터 크루 멤버들과 마리의 선택하는 사람들 모두 숨을 들이켜며 놀랐다.

지금 올리버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의외로 마리만이 차분하게 그 모습을 바라봤다.

“······.”

올리버는 조의 얼굴과 자신을 붙잡은 조의 손을 번갈아 가며 봤다.

조는 두려워함에도 각오를 빛냈으며, 그의 손에서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올리버조차 느낄 수 있는.

모두가 숨소리도 못 내는 와중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뭐가 과하다는 거죠?”

“이제부터 하는 모든 게 과합니다.”

조가 떨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가라앉히며 말했다. 올리버를 향한 걱정을 빛내며.

“싸움은 끝났습니다. 반나절은커녕 2시간도 안 돼 끝났습니다. 더 이상 싸우려는 자들도 없습니다. 이제 충분합니다.”

올리버는 반박하지 않았다. 이미 싸움이 끝난 건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뭐?

“과하면 안 되나요?”

“······.”

“돈 받고 일하다가도 기분 나빠지면 더 죽이고 더 파괴하는 게 이쪽 세계에서 그리 드문 게 아닌데······. 저는 그러면 안 되나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돈을 매개로 폭력을 사는 세계라 해도 폭력은 폭력.

폭력은 원한을 만들고, 원한은 합리에서 벗어난 일을 일으키곤 했다. 오히려 이 바닥에서 합리만 찾는 게 비합리적인 거였으니.

조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더. 기간만 따지면 조가 이 바닥에서 누구보다 오래 있었으니.

허나, 그럼에도 조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부탁했다.

“전 당신께서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는 노라를 보호하려 했을 때 이상의 각오를 빛냈다.

그 빛은······. 제법 예뻤다.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올리버가 물었다.

“왜죠?”

“당신은 제······. 아니, 우리 영웅이니까요.”

조가 파이터 크루를 대표해 말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파이터 크루 전체가 조의 발언에 무언의 지지와 동의를 빛냈다.

거짓이 아니었다. 올리버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조는 진심으로 올리버를 영웅이라 생각했다.

올리버는 잠깐 놀랐으나, 곧 이를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으니까.

“······미안하지만, 조. 전 영웅이 아닙니다.”

“상관없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요.”

“······.”

“갑작스럽게 죄송하지만······. 혹시, 그때 기억하십니까? 저희가 데이브 씨 부탁으로 이완을 찾아 붙잡고 있었을 때요. 포레스트 씨와 데이브 씨께서 같이 오셨죠.”

올리버는 잘 기억이 안 났지만, 곧 떠올릴 수 있었다.

고기 해머에 관해 부탁할 게 있어 X구역에 머무는 이완을 찾아달라고 했다.

부탁을 들은 조는 포커를 치다 빚까지 진 이완을 찾아 대신 뒷수습해주곤 올리버가 갈 때까지 붙잡아주었다. 수면제를 탄 술을 먹여서.

“······기억합니다. 근데, 그건 왜?”

“그때, 소문이 돌았죠. 파이터 크루의 진짜 대장은 데이브 씨라고요. 저희는 데이브 씨와 비슷한 양복을 입어 오해를 가중했습니다. 나쁘지 않은 오해였거든요.”

“······.”

“또 저희는 데이브 씨에게 저희 대장이 되어 달라고도 했습니다.”

“기억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말씀하시는 건지요?”

“그럼, 그것도 기억하십니까? 그 제안을 거절하셨을 때 했던 말씀요.”

“······배우고 노력한 건 여러분이니, 제가 대장 자리에 앉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지요.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라고 했고요.”

“예, 맞습니다. 그러셨죠. 또 저희에게 여태까지 했던 것처럼 스스로 자립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책임지는······. 그런 사람들이 좋다고요. 그러면, 가끔씩 도와주시겠다고요.”

올리버는 그때를 완전히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는 그리 말했었다.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건만 참으로 오래전 일 같았다.

“그러니 지금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쯤에서 멈춰주십시오. 당신께서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시든, 당신은 저에게 또, 저희에게 영웅입니다. 절 죽일 수 있음에도 살려주셨고, 기꺼이 지식을 나눠주며, 배신했음에도 용서해주고 도와주시기까지 했죠. 안정적인 일자리도 만들어 주셨고요······. 일개, 뒷골목 건달인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이기적이고 뻔뻔한 줄은 알지만, 부디, 당신께서는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심. 조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선 파이터 크루 역시 비슷한 감정을 띠고 있었다.

쌍권총 샘, 쇠몽둥이 오언. 그 외 십수 명의 파이터 크루 전부가.

그 순간 올리버는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마리.”

“예, 데이브 씨.”

조용히 있던 마리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마리는······. 무슨 의견 있나요?”

“저는 무슨 결정이든 데이브 씨를 따르고 지지할 겁니다. 그게 제 의견입니다.”

올리버는 마리를 봤다. 당연히 마리는 진심이었다. 선택하는 사람이라고 이름을 바꾼 것 치고는 과거와 똑같았다.

‘아닌가? 과거였다면 조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을 테니까.’

올리버는 과거와 비슷하면서도 또 달라진 마리를 보며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피곤하고 머리가 아파 더 이상의 고민거리는 사양이었다.

어쨌건, 마리의 대답은 진심이었다.

아마, 자신이 드루이드들을 죽인다 해도 말리지 않을 거고, 오히려 돕기까지 할 터였다.

구속구에 묶여 더 이상 싸울 힘도, 의지도 없는 드루이드를 죽일 거였다.

올리버는 문득 그 모습을 상상해봤다.

구속구에 묶이고, 부상 입은 드루이드를 죽이는 마리를.

아니, 마리만이 아니었다. 선택하는 사람들 역시 이를 도울 테니. 그러자 안면이 있는 셀린과 로렌스가 떠올랐다.

마리를 돕기 위해 와인햄으로 갔을 때 처음 만난 꼬마 아가씨 셀린과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마리를 걱정하던 로렌스를. 그 외 드문드문 예전에 봤던 다른 신도들도 떠올랐다.

그들이 꼼짝도 못 하는 드루이드를 죽인다라······. 썩 보기 좋을 건 같지는 않았다. 진심으로 말이다.

그 순간 올리버는 자신이 뭐 하고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여기서 더 피를 흘려 무엇을 얻겠다고 말이다.

아니, 오히려 잃을 것 같았다. 뭔지는 올리버도 알 수 없었지만, 잃을 것 같았다. 소중한 뭔가를 말이다.

자연재해가 지나간 듯 서서히 공기가 풀렸고, 올리버는 점점 차분함을 되찾으며 새로운 고민을 했다. 이제 뭘 해야 할지······. 때마침 하늘이 돕듯 새로운 기척이 느껴졌다.

다름 아닌 개혁파 드루이드였다.

“안녕하십니까. 피어스 님.”

올리버가 뒤돌아보며 말하자, 모두 다 같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곧 건물 사이를 뛰어와 땅 위로 착지한 개혁파 드루이드들을 볼 수 있었다.

과거 회의 도중 찾아온 세 명의 드루이드. 그들은 눈앞의 참상에 조용히 경악했다.

대장 격이었던 피어스란 남자 역시 마찬가지.

그는 눈앞의 사태에 겁먹진 않되, 긴장하며 냉철하게 주변을 관찰했다.

“데이브.”

“예.”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볼 수 있겠소?”

그가 전보다 더 예의를 갖춰 물었고, 올리버는 주변을 둘러봤다.

파괴된 X구역 중부, 그 폐허 속에서 생명을 얻은 무수한 거목과 잡풀, 시체가 된 수많은 엔조이먼트.

올리버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다.

“잠시 대화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

올리버의 제안에 피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마자 조는 눈치 빠르게 동료들을 시켜 의자와 탁자를 가져오게 했다.

이 난리 통에서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다행히 멀쩡한 게 있어 곧 세팅할 수 있었다.

“우적. 우적. 우적······. 죄송합니다. 배가 고파서요.”

올리버가 칼로리바를 먹으며 자신의 무례에 대해 사과했다.

가급적 참고 싶었지만, 전투를 막 끝낸 직후라 그런지 몹시도 허기가 져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피어스는 이해해줬다.

“괜찮소. 얼굴을 보아하니 더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삐쩍 마른 것 치고는 힘이 좋은 거 같지만.”

피어스의 말에 올리버가 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는 셰이머스를 쓰러트린 실력을 보고 싶다며 올리버의 배후를 잡아 기습했고, 올리버는 그를 가뿐히 막았다······. 앞으로 주의해야 할지도.

올리버가 몸의 이변과 이에 관한 조심성을 인지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요?”

이야기를 돌릴 겸 질문했다. 실로 합당한 질문이었다.

올리버가 엔조이먼트를 치기로 한 것은 약 두 시간 전.

아마, 포레스트도 아직 시(市)와 대화를 나누는 중일 거였다.

그런데, 개혁파 드루이드가 벌써 나타나다니. 빨라도 너무 빨랐다.

“세계수를 통해 엔조이먼트들을 감시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바로 올 수 있었소.”

“아······. 란다에서 허가를 받지 않은 개인이 함부로 세계수를 사용하는 건 엄밀히 말해 불법입니다만?”

“그렇소? 도시 법은 잘 몰랐소.”

피어스가 뻔뻔하게 거짓말했다. 하긴, 개혁파 드루이드가 세계수를 사적으로 쓴 건 그리 큰 문제는 아닐 터였다.

죄 자체도 그리 심각한 건 아니었고, 무엇보다 시(市)는 드루이드와 굳이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을 테니.

드루이드와 거래를 해야 했고, 최근에는 왕실이란 뒷배도 생긴 상태.

먼저 선을 넘지 않으면 강하게 나가지는 않을 거였다.

“그리고 우리가 세계수 좀 쓴 건 지금 일어난 일에 비하면 별거 아닌 거 같은데 말이요.”

피어스가 지금의 상황을 다시 짚었다.

“란다 사람이 돈에 환장한다는 건 알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소.”

조와 마리가 반박하려 했지만, 올리버가 손을 들어 말렸다. 그런 다음 피어스에게 계속 이야기하라고 정중히 손짓했다.

올리버가 올리버만의 입장과 사정이 있듯, 피어스 역시 피어스만의 입장과 사정이 있을 테니.

피어스가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이렇게까지 한 이유가 뭐요? 엔조이먼트를 다 죽인 이유가? 사업 때문이요?”

질문을 들은 올리버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흑마법사의 눈으로 주변을 살펴봤다.

아까 전 퍼스트를 찾아오라고 시켰던 써드가 퍼스트와 함께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생존한 엔조이먼트를 데리고.

“피어스 님. 우선, 차례대로 말씀드리자면 다 죽인 건 아닙니다. 요새에 대략 100명 정도의 드루이드가 있었고, 지금 22명 정도 살아있거든요.”

곧 그 말을 증명하듯 구속구에 붙잡힌 엔조이먼트와 비슷한 수의 엔조이먼트들이 써드와 퍼스트의 손에 끌려 나타났다.

써드는 생존한 엔조이먼트 목에 콩 줄기를 걸어 개처럼 끌고 왔으며, 퍼스트는 피로 구속한 다음 피 날개를 붙여 데려왔다.

남다른 등장에 개혁파 드루이드들은 움찔했으며, 마리는 올리버가 부탁한 대로 그들을 치료해줬다.

“그러니까 대략 78명밖에 안 죽였다고 이야기하는 거요?”

“아뇨. 그냥 다 죽이지는 않았다고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또······.”

“······?”

“사업 때문에 한 것도 아닙니다. 관련이 있긴 하지만, 제 개인적인 감정이 더 큽니다.”

“개인적 감정?”

“예. 저기 저 아가씨가 이분 여동생을 이용해 절 독살하려고 했거든요.”

올리버가 조를 가리켰다. 노라가 조의 친여동생은 아니지만, 지금은 조가 책임지고 보호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피어스는 해당 사실을 듣자마자 여성 드루이드를 봤고, 곧 그 말이 사실임을 알아차렸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여동생분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짜증 때문이니까요······. 분풀이 같은 겁니다.”

“······짜증과 분풀이로 드루이드 78명을 죽였다?”

“예.”

올리버가 당당하게 답했다. 너무 당당해 뭐라 따질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창피하게 생각합니다. 또, 여러분께는 유감이라고 생각하고요. 여러분 역시 임무를 위해 오셨으니, 이 사태가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선 엔조이먼트를 데려가는 게 목표였으니까요.”

피어스는 계속 경청했다. 분노와 별개로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그는 지금 올리버와 충돌을 꺼렸다.

“하지만 이쪽 입장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엔조이먼트는 저희를 먼저 위협했고, 전 이 사업의 대표 중 하나라서요. 거기에 걸맞은 대응이 필요했습니다.”

올리버는 능숙하게 거짓말했다.

조직이니, 대표니, 대응이니 그딴 건 애당초 생각도 안 했다. 허나, 이치에 어긋난 말은 아니었다.

조직의 특성상 피해를 보면 거기에 걸맞은 대응을 하는 게 마땅했다. 특히, 그것이 조직의 우두머리라면 더욱.

그건 란다에 한정된 게 아닌 전 세계 보편적인 규칙이었다.

그게 아니면 조직은 유지될 수 없었으니.

올리버는 칼로리바를 먹으며 자신에게 감탄했다.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한 게 놀라워. 당분이 높은 칼로리바를 먹었기 때문일까?

“결국, 요점이 엔조이먼트를 많이 죽여 유감스럽지만, 이해해 주고 조용히 묻어 달라는 거요?”

“그래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허! 예의 바르군. 애당초 협력 관계도 안 맺었으니, 배 째란 식으로 나와도 우리가 뭐라 말하기 어려웠을 텐데.”

올리버는 침묵으로 부정했다.

피어스의 말이 얼핏 맞는 것처럼 들렸지만, 아니었다. 그건 올리버도 알았다.

뭐가 됐건, 개혁파가 엔조이먼트를 붙잡으러 온 건 알고 있었으니, 항의하려면 항의할 수 있었다.

최소한 우회적으로 이에 관해 불만을 표시하며 나름의 보복을 할 수 있었다.

애당초 세상일이 다 그런 거였으니.

올리버가 다시 한번 자신에게 감탄했다. 이런 걸 짚어내다니. 정말 칼로리바 때문일까?

“좋소. 들어보니 엔조이먼트도 잘못한 게 있으니, 이 문제에 대해 일절 따지지 않겠소. 대신, 조건이 있소.”

“감사합니다. 말씀하시지요.”

“숨통이 붙은 놈들은 전부 우리에게 넘기시오. 감히 가르침을 어기고 도시로 도망친 망할 놈들이지만, 드루이드는 드루이드. 처벌은 우리만 할 수 있소.”

“물론입니다. 데려가십시오.”

“또, 시체도 넘기시오. 죽어도 드루이드는 드루이드이니 숲에 묻혀야 하오.”

이번에 꽤 센 요구였다. 이 세계에서는 시체조차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었으니. 그 시체가 드루이드라면 더욱 그랬고, 시체 주인이 흑마법사라면 더더욱 그랬다.

조와 마리가 올리버 대신 따지려는 그 찰나 올리버가 대답했다. 믿을 수 없는 대답을.

“좋습니다.”

“정말이오?”

“예, 피어스 님께서도 양보해주셨으니까요. 대신, 일주일만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유가 뭐요?”

“확인해볼 게 있어서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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